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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43화 (43/337)

나 혼자만 마탑주 043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홍연이 내게 결투를?"

-네! 지금 학생회에서는 난리가 났어요! 벌써 다른 학생들에게도 소문이 파다하게 펴졌다구요!

진짜 했군. 그 녀석.

"일정은 언젠데?"

-바로 오늘 오후일 거예요.

나는 스마트폰을 켜고 학교 앱에 들어가 보았다.

과연, 오늘 오후 4시로 되어 있었다. 우리의 통화를 들은 정서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탑주님."

"글쎄."

그런 거물이 왜 자꾸 내게 관심을 가지는 걸까.

단순한 호기심? 아니면 최근에 학교를 마음대로 뒤집어엎은 것에 대한 학생회의 압력?

단서가 너무 적어서 할 수 있는 건 추측뿐이었다.

"어차피 이제 곧 조기 졸업시험이지 않습니까? 괜히 결투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으으음."

정서진의 말대로 안 받아도 그만이긴 한데, 헌터계 최고의 재능이라니까 궁금하긴 하다.

지금의 내 역량으로는 벅차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까지 닿을 수 있을까 하는 정도의 호기심.

3공정 마법사.

마탑 3층 개방자.

그런 것 말고 좀 더 내 실력에 대한 객관적인 지표가 필요했다.

'자, 어떻게 할까.'

* * *

다음 날.

아카데미 중앙 체육관.

선수 대기실.

"네, 알고 있습니다."

학생회장 홍연은 스마트폰을 귀에 대고 통화 중이었다. 그녀는 뭔가가 마음에 안 드는 듯 고운 이마를 살짝 찡그렸다.

"그쪽 일을 왜 자꾸 제게 떠맡기시는 겁니까."

-아, 쫌 해줘. 좋은 게 좋은 거 잖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홍연은 한숨을 푹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 한 번 뿐입니다."

-오, 허락하는 거지? 잘 부탁해!

이제 어디가?

"5분 후에 김유신 선배와의 결투가 있습니다. 바로 그쪽 때문에요."

-그렇게 튕기더니 결국 다 준비해놨잖아? 흐으음, 역시 귀엽다니까.

"닥쳐요. 끊습니다."

홍연은 스마트폰 액정을 꾹 눌러 전원을 끄고는 몸을 일으켰다.

똑똑하고 노크 소리가 들렸다.

"회장! 이제 곧 시작이야."

"알겠습니다."

그녀는 활동성이 좋은 훈련용 복장에 허리에 검을 차고 자리를 나섰다. 문을 열자 볼륨 단발의 소녀가 뛰어 들어와 홍연의 팔에 매달렸다.

학생회 운영부장인 윤슬아였다.

"가자! 사람들 엄청 많이 왔어!"

홍연이 윤슬아를 팔에서 떼어놓으며 말했다.

"……저는 비공개 결투로 조용히 진행하고 싶었습니다만."

"헤헤, 이미 이렇게 되어버린 걸 어쩌겠어? 사람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당신이 정보를 흘린 건 아니고요?"

"아, 아니야!"

반응을 보니 맞는 모양이다. 홍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며 윤슬아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오오오오!"

"진짜 홍연이다!"

그녀가 체육관에 모습을 드러내자 어마어마한 인파가 함성을 질러댔다.

"오셨수, 회장."

"어서 오십시오. 회장님."

3학년 총무부장 김승현은 껄렁한 태도로, 4학년 체육부장의 오호승은 깍듯이 허리를 숙이며 그녀를 맞이했다.

윤슬아까지 합쳐 이렇게 세 명은 홍연의 심복을 자처하는 자들이었다.

홍연도 그들과 안부 인사를 나눈 다음 체육관 중앙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다가 말했다.

"아직 김유신 선배는 안 왔군요."

"며, 면목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을 풀어서 찾고 있습니다!"

산만 한 덩치의 오호승은 그녀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고 있던 윤슬아가 어깨를 으쓱했다.

"쫄아서 결투 시간 끝날 때까지 어디 짱박혀 있으려는 거 아녜요?"

"멍청아, 쫄았으면 처음부터 결투를 안 받았겠지."

김승현이 귀를 후비며 말했다. 그가 걸을 때마다 등 뒤의 다섯 자루의 검이 절그럭거리며 소리를 냈다.

귀지를 파낸 김승현이 후하고 바람을 불고는 다시 귀에 가져다 댔다.

"그보다 내 불만은, 절차상 우리를 다 꺾은 뒤에 회장에게 도전하는 게 맞지 않냐는 거야."

"또 입으로 똥 싸는 소리 하신다. 우리가 뭐 게임에 나오는 사천왕이라도 돼요? 다 꺾고 올라가야 하게?"

"에헤이, 이래서 군대에 안 간 애들이랑은 말이 안 통한다니까. 중요한 건 절차와 형식이라고. 나 때는 말이야."

"징병제 폐지된 지가 언젠데 왜 자꾸 군부심이에요?"

세 사람이 재잘재잘 떠드는 사이 홍연은 홀로 나가서 중앙에 섰다.

아카데미 학생들뿐만 아니라 외부인도 있었고 벌써 냄새를 맡고 몰려든 스카우터들이 쫙 깔려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김유신 이 자시익! 회장을 기다리게 하다니!"

얼굴이 시뻘게진 오호승은 계속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홍연의 시선이 닿자 그는 다급히 허리를 굽신거리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경기 시작 전까지는 도착할 겁니다! 하하하!"

홍연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안색이 하얗게 질린 오호승은 머리를 쥐어뜯었다.

'화, 화났다! 이제 다 끝장이야!'

마침 결투 진행을 맡게 된 아카데미 직원이 앞으로 나왔다. 그가 시계를 한번 보고는 말했다.

"1분 전이다. 시간 내에 김유신 학생이 참석하지 않을 경우, 그 시점에서 결투를 종료하고 승자는 홍연 학생으로……"

"늦어서 죄송합니다."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그때, 반대쪽 문이 열리며 김유신이 등장했다.

"오오오오오오!"

빅 매치가 이대로 끝날까 노심초사하던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 함성을 내질렀다.

김승현과 윤슬아는 피식 웃었고, 오호승의 표정은 거의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 유신은 느긋하게 체육관 중앙으로 걸어왔다.

"어서 오세요, 선배."

홍연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어, 그래."

스트레칭에 열을 올리고 있던 유신이 손을 들어 인사를 받았다.

"이 자시이이익! 회장에게 무례하게!"

"아 쫌! 누가 이 꼰대 좀 말려봐요!"

윤슬아가 광분한 오호승을 뜯어말리고 있는 사이, 무대의 주인공들은 절차상의 악수를 위해 서로에게로 걸어왔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될까?"

"예."

"그 대단한 학생회장님이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랑 싸우려는 거야?"

홍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죄송스럽지만, 제 의지는 아닙니다."

"그래?"

유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은 예상했던 바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 당신에게 흥미가 있다면……."

"……?"

그녀는 유신의 오른쪽 눈을 힐긋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모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나도 잘 부탁해."

두 사람은 가볍게 악수하고 서로 떨어졌다.

직원들이 유신에게 다가와 마나 슈트를 착용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홍연은 윤슬아와 오호승이 뛰어와서 도와주었다.

마나 슈트 착용이 끝나고, 널찍한 스크린에 마나 슈트의 내구력 게이지가 떠올랐다.

아무리 결투라지만 학생들끼리 목숨을 걸고 싸움을 시킬 수는 없으니, 먼저 마나 슈트의 내구력이 0이 되는 쪽이 패배하는 룰이다.

"그럼 지금부터 1학년 홍연과 2학년 김유신의 결투를 시작하겠다."

"오오오오오오오!"

열화와 같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뒤이어 삐이이익! 하고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유신은 천천히 마나를 끌어올리며 에아와 동화했다.

'왜 덤벼들지 않지?'

조사까지 해왔다면 이쪽이 어떤 전투 스타일을 구사하는지도 알고 있을 터, 하지만 상대는 제자리에 못이 박힌 듯 가만히 서 있었다.

'선공을 양보할 셈인가.'

유신은 시간을 들여 느긋하게 마법진을 완성한 다음,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러곤 발꿈치를 들고 신발 밑창에 스치듯 두 손을 가져다 두었다. 양발 아래로 검은 연기가 넘실거리며 흘러나왔다.

다시 허리를 세운 그가 홍연을 바라보았다.

"검. 안 뽑아?"

"괜찮습니다."

그녀가 답했다.

"진검을 사용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흐음."

유신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었다.

"이러면 좀 공평하겠지?"

홍연의 눈썹이 꿈틀했다.

"결투는 장난이 아닙니다."

"그 말 그대로 돌려 줄게."

신경전은 여기까지.

유신은 홍연의 상태창을 살펴보았다.

이름 : 홍연.

고유 능력 : 수호자.

개인 특성 : [신성의 아이 Lv.3] [검제 Lv.10] [세계수의 축복Lv.10] [불가침 Lv.10] [과성장Lv.8] [숙달 Lv.8] [철벽 Lv.6] [예지안 Lv.6] [저주면역 Lv.5] [전투논리 Lv.5]…….

기본 능력치 : [근력 105] [체력73] [순발 60] [마력 30]

특수 능력치 : [신성 43] [통찰25] [집중 15] [행운 9] [의지 6] [육감 4] [통솔 3]

능력치 총합 : [373]

'……괴물.'

정말로, 타인의 상태창을 보는 능력을 보는 능력을 얻은 이후 이런 괴물을 본 적이 없었다.

기본 능력치는 그렇다 쳐도, 저 압도적인 양과 질을 모두 갖춘 개인특성은 뭐란 말인가.

심지어 그녀는 유신처럼 마탑주가 되어서 인위적인 혜택을 받았거나, 시련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성장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정도.

왜 사람들이 오버레이 세계의 혜택을 몰빵 받은 소녀라고 부르는지 알것 같았다.

사실이 정도 되면 한국의 희망이라고 하기 전에, 인류의 희망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이 사람이 완전히 성장해서 본격적으로 헌터계에 뛰어들면, 이 지긋지긋한 몬스터들의 위협에서 빠져나갈 실마리를 손에 쥘 수 있지 않을까.

유신은 수 많은 생각을 하며 공기를 들이마셨다.

크게 심호흡을 마치고 그녀를 보았다. 검을 뽑으라니 뭐니 말했지만, 사실 그녀의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휘오오오오오오오오!

주위에 마나가 그녀를 보호하듯 휘감고 있었다. 단순히 마나를 일으켰을 뿐인데, 대형 자연 현상까지 일어날 정도의 위용.

유신은 현인의 눈으로 마나의 흐름을 볼 수 있다. 그가 보는 광경은 다른 사람들이 보는 광경은 또 달랐다.

단순한 소용돌이가 아니다.

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

이 장소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가 모여들어 그녀를 끌어안고 있었다.

마치 마나가 그녀를 보호하기라도 하듯.

마치 이 세계가 그녀의 존재를 지키려고 하는 것처럼.

-탑주, 조심하십시오. 마나 이탈현상이 일어납니다.

장악했다고 생각했던 대기 위에 마나가 그녀에게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유신이 허공에 펼쳐두었던 가이드 에로우의 마법진의 마나까지 끌려가며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었다.

그저 서 있는 것만으로.

마나를 다루는 유신의 천적 그 자체.

그런 상황인데도 유신은 가슴이 뛰었다.

그녀는 검을 뽑는 대신 주먹을 올려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일말의 군더더기도 없는 자세에 감탄이 나왔다. 촬영해서 어디 벽보에 붙여두고 싶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이상적이다.

유신은 마음속으로 감탄하며 천천히 허리를 굽혔다.

그리고 부동.

이번에는 홍연의 눈에 의아함이 깃든다.

'뭘 하려는 거지?'

정보에 의하면 주력 기술은 마나를 화살 형상으로 조형하여 무수히 발사하는 능력.

시간이 지날수록 화살이 기하급수적으로 쌓이며 상대를 물량으로 찍어누르는 원거리 공격형 타입.

그 진가를 보고 싶어 일부러 선공을 양보했지만, 그의 주변에는 이제 어떠한 마법진도 없었다.

그저 발에서 흘러나오는 검은 연기가 전부.

그리고 무릎을 굽히고 마치 돌진해오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아무런 방책 없이 자신에게 돌격해오는 건 자살행위겠지만, 이상하게 홍연은 방심할 수가 없었다.

뭔가가 있다.

뭔가가.

그렇게 숨 막히는 정적이 이어지는 어느 한 순간.

유신의 몸이 흔들렸다.

"……!"

그리고 사라졌다.

홍연은 경악했다. 자신이 상대방의 움직임을 놓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녀의 눈이 이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세상을 한없이 느리게 돌려놓았다.

유신의 몸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그가 있던 자리의 지면이 출렁이며 어떤 형상이 그려지고 있었다.

마치 해골 모양 같았다.

슈슈슉.

인지하지 못한 그다음 장면. 유신은 그녀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아…!'

그리고 그녀가 마지막으로 본 광경은, 검은 연기를 이끌고 다가오는 유신의 신발 밑창이었다.

투콰아아아아앙!

유신의 발차기가 무방비 상태인 그녀의 복부에 꽂히는 것으로, 세계의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디귿 자로 꺾인 그녀의 몸이 번개처럼 쏘아져 나가 후면의 관중석에 부딪혔다.

콰콰콰콰콰콰쾅!

관중석의 의자를 부수고 틀어박힌 홍연의 몸 주위가 통째로 눌러앉으며 거대한 X자 해골 형태로 황폐화됐다.

"……!"

"……허억!"

경기장은 지독한 침묵에 휩싸였다.

누구도 이 사태에 대해 입을 열수 없었다.

아니, 사고 자체가 불가능했다.

완전한 침묵 속에, 몇몇 사람들의 고개가 삐걱거리며 스크린으로 향했다.

-김유신 <1, 000/1, 000>

-홍연 <0/1, 000>

이걸로 끝이었다.

홍연 또한 정신을 잃거나 하진 않았지만, 믿기지 않는다는 눈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슈트 게이지는, 틀림없이 0이었다.

완벽한 발차기 자세를 취하고 있던 유신이 다리를 내리며 심호흡했다.

그러곤 눈을 떠 관중석에 처박힌 홍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가 검 뽑으라고 했지?"

아카데미에 대파란이 일어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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