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42화
우리는 다 같이 마법진 엘리베이터위에 올라탔다. 허공에 아홉 개의 버튼이 들어왔다.
처음엔 1층과 9층뿐이었는데 이제는 총 4개의 버튼에 불이 들어와 있었다. 한 층만 더 차지하면 마탑의 절반 이상을 개방한게 된다.
나는 뿌듯한 기분을 느끼며 3층 버튼을 눌렀다.
순식간에 주위가 뒤바뀌며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오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기들로 가득한 층이었다. 공장 견학 온 기분이 든다.
"마탑 제3층 '골렘 공방'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3층의 관리 기능을 회복한 에아가 설명했다.
"본 층에서는 마탑의 골렘 파트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녀의 안내를 들으며 골렘공방을 구경했다.
용암로, 냉각기, 절단기, 그 외에 용도를 알 수 없는 다양한 마공학기계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겉면에는 화려한 빛을 내는 마법진이 덕지 덕지 붙어 있어서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골렘은 마탑에 있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마법사들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신체 능력과 '머릿수'를 커버해 주는 게 바로 골렘이었으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쪽 벽에 기대어 있는 녹슨 골렘을 만져 보았다. 상당히 단단했다.
"골렘은 인간 병사보다 튼튼하고, 감정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상대적으로 고급 인력인 마법사에 반해, 골렘은 얼마든지 충원이 가능하지요. 그래서 마탑의 실질적인 '병력' 역할을 했습니다."
"마탑에도 군대가 있었어?"
에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긍정. 아이러니하게도 마탑이 가장 강성했었을 시기는 역대급 3층 관리자가 나타났을 때였다고 합니다. 질 좋은 골렘들의 물량과 후방 마법사들의 화력으로 제국의 군대를 무너뜨리고 방대한 영토를 마탑의 영향권에 종속시켰다고 전해집니다."
"그만큼 이번 3층이 중요하다는 말이네."
마탑의 주요 수입원인 포션 조제소.
정보의 원천인 대서재.
그리고 군사력의 핵심인 골렘 공방까지.
아직 3층까지 개방했을 뿐이지만 밸런스가 훌륭하다.
"그리고 저 또한 3층의 봉인이 해제되는 것으로 관리 기능을 회복했으며, 관리자 호문쿨루스로서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음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이번엔 뭔데?"
그녀가 녹슨 골렘을 향해 부드럽게 손짓 했다. 그러자 골렘의 눈에 푸른불빛이 들어오더니 끼이익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마탑에서 제작한 모든 골렘의 통제권입니다."
"오! 움직일 수 있는 거야?"
"물론입니다."
녹슨 골렘은 제자리에서 여러 가지 포즈를 취해보더니, 급기야 에아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댄스를 추기 시작했다.
"아! 그거 솔이도 할 수 있어!"
은솔이 팔을 뻗자, 기능이 정지된또 다른 골렘의 몸에 푸르스름한 마나가 감돌았다. 이내 천천히 몸을 일으킨 골렘이 댄스를 추는 골렘의 몸을 꼭 껴안아 주었다.
"그래서 둘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아이돌 댄스에서 동화식 마무리라니, 파격적인 스토리다.
그때 은솔이 조종하던 골렘이 에아가 조종하는 골렘을 바닥에 깔아뭉갰다.
……동화치고는 좀 위험한 것 같은데.
"역시 은솔 양의 '원격 통제' 능력은 골렘에게도 적용되는 것 같군요."
정서진은 그렇게 말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탑주님, 골렘 공방의 관리자로 생각해 두신 인재가 있으십니까?"
"아직 없긴 한데."
정서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원격 조종 능력을 가진 은솔에게 3층 관리자 자리를 맡기는 것. 하지만 아직 어린 그녀가 마탑의 골렘파트를 제대로 감당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테스트를 한번 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테스트?"
"예. 은솔 양의 골렘에 대한 적성을 알아보는 겁니다. 과연 관리자 특성 없이 골렘을 만들 수 있을지. 없을지."
나쁘지 않은데. 그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골렘인 '머드 골렘'을 만드는 제작소로 들어갔다.
'오호.'
골렘을 만드는 장소는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묘사하자면 아주 커다란 씨름판 같았다. 바닥에 진흙이 담긴 판이 펼쳐져 있고 벽면에는 빛나는 마법진들이 쭉 나열되어 있었다.
손을 뻗어 진흙을 만져 보니 촉촉하고 점성이 있었다. 마법에 의해 습도 관리도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듯했다.
"이게 바로 골렘 제작의 핵심인 '마나 도면'입니다."
에아가 벽면에 있는 도면을 들어서 모두에게 보였다. 종이나 섬유가 아니라 마나 그 자체로 이루어진, 홀로그램 화면을 연상케 하는 특수 도면이었다.
"……예쁘다."
에아에게 도면을 건네받은 은솔이 눈을 빛냈다.
"마탑에서는 이 마나 도면으로 마공학 골렘을 만들었습니다."
"어떻게 쓰는 거야?"
"지금부터 알려드리겠습니다."
나와 은솔은 진흙탕에 앉아 마나도면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자 도면에 나와 있는 수치들이 변화했다. 에렌델어로 '일치'라는 표시가 뜨는 것을 확인했다.
에아가 다가와서 도면에서 조금 떨어진 위치에 순도 높은 마정석을 각각 하나씩 놓았다.
"그럼 모든 준비가 끝났습니다. 도면 위에 양 손바닥을 대어주십시오."
그녀의 말대로 도면에 보이는 손바닥 모양 위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도면 전체에서 푸른 빛이 내뿜어지며 활성화를 시작했다.
"오오오오……!"
내 머릿속에 도면의 골렘 제작도가 선명히 들어왔다. 은솔도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이제 도면에 나와 있는 순서와 공정대로 골렘을 제작해 주십시오."
"좋아."
먼저 팔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도면에 보이는 골렘의 팔 부분에 마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진흙판의 진흙이 허공으로 불쑥 솟아올라 팔의 형상으로 구축됐다.
이거 신기한데.
도면이 아니라 리모컨 컨트롤러 같다. 마나를 이용해 도면을 작동시키면, 보이지 않는 팔이 무거운 진흙을 대신 허공에 들어서 굳혀주는 느낌이었다.
감이 조금씩 잡히자 재미도 들렸다. 나는 도면에 나와 있는 대로 최대한 비슷하게 팔 부위를 만들었다.
"좋아. 이제 다른 쪽 팔을……"
왼쪽 팔을 얼추 완성한 내가 오른쪽 팔 쪽으로 집중력을 옮겼다. 그러자 떠 있던 왼팔이 죽처럼 변해 진흙 판으로 되돌아가 버렸다.
"이거 은근 어렵네."
"오빠야. 오빠야."
은솔이 옆자리에서 나를 불렀다.
"몸통부터 만들면 편해."
은솔의 제작품은 나보다 더 그럴듯했다. 그녀는 마정석을 허공에 띄워놓고, 진흙으로 살을 덕지덕지 붙여가고 있었다.
저게 정답인 거 같다. 나도 몸통부터 만들어보기로 했다.
도면을 이용해 마정석을 띄워놓고 발동시키자, 마정석의 마나가 마법진을 만들 때 쓰이는 '베이스'처럼 널찍하게 퍼져 나갔다.
그것은 골렘의 그림자 형상을 하고 있었다. 마나가 전기처럼 파직거리며 얼른 살을 붇여달라고 조르는 것만 같았다.
자세히 보니 푸른 선 같은 것이 희미하게나 있었는데, 인간의 신경과 비슷했다.
나는 작업을 재개했다. 진흙을 끌어올려 마정석을 덮었다.
둥글게 덮어서 빚어내다가 이내 몸통의 형상으로 굳혔다. 재미 삼아 가슴과 복근도 그려보았다.
'재밌다. 어렸을 적 생각나네.'
진흙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으려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우선 몸통을 만들고 팔과 다리를 제작해 나갔다. 골렘의 '코어'가 된 마나의 신경위에 살을 채워 넣어갔다.
물론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도감이 제시한 대로 살을 붙이지 못하면 진흙이 흘러내렸고, 살이 부족하거나 형태가 기이하면 골렘 전체의 밸런스가 이상해지면서 축 늘어지는 부위가 생겼다.
생각보다 세심한 컨트롤을 요구하는 작업이었다.
'좋아. 팔다리 완성.'
대강 형태는 잡았다. 이제 가장 어려운 얼굴 차례.
나는 얼굴을 제작하는 도면을 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이게 가능해?'
지금까지 하드웨어였다면, 골렘의 머리는 소프트웨어 제작이었다. 마공학 수식을 배치해서 골렘을 프로 그래밍해야만 했다.
물론 에아 같은 인공지능 수준을 창조하는 건 아니고, 신호를 신경에 전달해 몸을 제대로 움직이도록 하는 방식이었지만,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도면에 나와 있는 대로 수식을 입력해 나갔다.
그렇게 다시 삼십 분 후.
"완성이다!"
내가 마나 도면에서 손을 떼며 소리쳤다.
"……."
뒤에서 지켜보던 정서진은 말없이 안경을 밀어 올렸고, 에아는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다들 반응이 왜 이래?"
"도면에 나온 골렘과는 조금 다르군요."
정서진의 말대로, 완성된 내 골렘은 가늘고 긴 다리에 두 팔은 꽈배기처럼 비비 꼬여 있었다.
"……하하. 소프트웨어에 집중하다보니 밸런스가 자꾸 무너져서……. 그래도 움직이긴 할걸?"
내가 그렇게 말하며 에아를 바라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움직여 보겠습니다."
눈을 감은 에아가 팔을 한 번 휘저었다.
끼릭끼릭 소리를 내며 골렘의 양팔이 펼쳐지더니 이내 위아래로 움직였다.
"됐다!"
나는 기쁨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팔은 정상적으로 움직였고 다음은 다리 차례다.
골렘이 역사적인 첫걸음마를 내딛는 순간.
까득!
두 발짝 만에 종아리 쪽이 무너지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실패다.
"으, 아깝다."
"오빠야! 솔이도 완성했어!"
"그래?"
나는 그녀의 완성품을 보았다.
……맙소사. 도면에 나와 있는 대로, 거의 완전한 골렘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외견만큼은 은솔 님의 압승이군요. 그럼, 한번 움직여 보겠습니다."
에아가 통제를 시작하자 골렘의 팔이 척 올라갔다. 그리고.
부들부들부들.
"……왜 떨기만 해?"
눈을 감고 있는 은솔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일단 골렘이 걷거나 팔을 들어 올리기는 하는데, 몸에 떨림이 너무 심했다. 에아가 크게 한숨을 쉬며 물러섰다.
"명령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군요. 실패입니다."
은솔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다가가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괜찮아, 충분히 잘 했어."
"……응."
"신경구축 쪽이 어렵지? 나도 그랬……"
그 말을 하는 순간 갑자기 눈이 번쩍 뜨였다.
"솔아! 너 어떻게 소프트웨어를 만든 거야? 전부 에렌델어에 마법 수식이었을 텐데?"
"그냥 했어."
"……그냥?"
"응! 어떤 수식을 쓰면 오른팔이 움직이고 어떤 수식을 쓰면 왼팔이 움직였어. 그런 식으로 짜 맞춰서 하다 보니까……"
이거 대단한데.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테스트 합격이군요."
정서진이 말했다.
"그래."
"제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은솔양의 재능은 천재적이라고."
사실 은솔을 마탑에 데려와야 한다고 누구보다 주장한 건 진보라가 아니라 정서진이었다. 그때 정서진은 내게 어떤 영상을 보여주었다.
은솔의 원격 조종은 살아 있는 생명체는 통제할 수 없다. 즉 할렘가 사람들이나 몬스터를 직접 움직이는 건 불가능하다. 오로지 사물, 아니면 생명이 없는 언데드는 가능하다.
이런 능력으로 어떻게 사람들을 지킬 수 있었을까?
할렘가 곳곳에는 헌터들이 쓰다 버린 장비들이 많이 있었다. 은솔은 그것을 고쳐서 폐품과 결합해 포탑처럼 만들었고, 몬스터들이 침입하려는 족족 이 포탑들을 움직여서 몬스터를 쓰러뜨린 것이다.
정서진의 노트북에서 그녀가 만든 완성도 높은 포탑을 봤을 때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나는 쪼그려 앉아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골렘 만드는 거 어땠어? 재미있었어?"
"응! 재밌었어!"
걱정한 점 없이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다.
"골렘 만드는 거 계속해 볼래? 앞으로는 네가 우리 마탑에서 골렘 담당이 되는 거야."
그녀는 고민하지도 않았다. 작은 주먹을 꼭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할래! 오빠를 도와주고 싶어!"
요 귀여운 녀석. 말도 참 예쁘게해요.
나는 은솔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목에나 있는 칼자국을 발견했다.
갑자기 조금 울컥했다.
……다시 할렘가에 가서 확 쓸어버리고 싶네.
"그럼 바로 관리자 권한을 줄게. 기분이 좀 이상할 수도 있는데 조금만 참아."
나는 영지창을 열고 손가락에 관리자 전용 문양을 띄웠다. 그리고 에아의 목덜미에 나 있는 흉측한 상처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우우우웅!
마탑의 문장이 흉터를 가리며 푸르스름한 빛을 뿜어냈다.
[3층 관리자가 등록되었습니다.]
이름 : 은솔
고유 능력 : 원격조종
개인 특성 : [몽환경 Lv.6] [발명가 Lv.4] [잠재력 Lv.1] [엔지니어Lv.1]
주요 능력치 : [마력 32] [순발29] [체력 15] [근력 4]
특수 능력치 : [손재주 38] [창의20] [지능 15] [인내 11]
능력치 총합 : [164]
신규 특성 : New![3층 관리자Lv.10] New![골렘 공학 Lv.10] New![골렘 마스터리 Lv.10]
짝짝짝!
에아와 정서진이 손뼉을 쳐주며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은솔은 수줍게 웃으며 좋아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데 내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들렸다.
진보라였다.
"어, 무슨 일이야?"
-선배님! 큰일 났어요!
수화기에서 진보라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한테 겨, 결투 신청이 왔어요!
"……난 또 뭐라고. 아카데미 학생이면 흔한 일이잖아. 누가 신청했는데?"
-회장이요!
"회장? 갑자기 무슨 회장?"
-아이참! 아카데미 학생회장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