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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40화 (40/337)

나 혼자만 마탑주 040화

홍연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바로 도망쳤다.

'어쩌란 거야?'

사람을 도발했다가, 훔쳐봤다가, 이제는 도망이라니?

나는 그녀를 뒤쫓았다.

'없다.'

그녀가 있던 곳까지 뛰어가 보니 체육관 뒤편의 텅 빈 공터일 뿐이었다.

'에아! 아까 그 빨간 머리 녀석 추적 좀 부탁해.'

-10시 방향으로 이탈 중.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한번 해보자 이거지? 나는 발밑에 리프 부츠를 깔고 발동시켜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후우웅!

찬 바람이 몰아쳤다. 순식간에 체육관 천장이 보일 정도로 높은 곳에 와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모습이 다 내려다보였다.

-최단 루트 확보, 저쪽입니다.

'간다.'

나는 에아가 펼쳐준 허공의 쉴드를 딛고 건물을 몇 채나 뛰어넘어 지상으로 내려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몇백 미터나 되는 거리를 이동했다.

-모퉁이를 돌면 목표물이 있습니다.

'오케이.'

나는 은밀하게 고개를 내밀어 앞을 바라보았다.

"……."

기껏 추적까지 해서 쫓아온 게 무안해질 정도로, 홍연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가 손짓하자 좁은 틈에서 길고양이가 꼬물꼬물 기어 나오고 있었다.

"지금 뭐 하잔 거야?"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고양이가 놀라서 도망쳤다. 홍연이아, 하고 아쉬운 탄성을 흘렸다.

"잠깐 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 학생회장."

내 말에 몸을 일으킨 그녀가 쭈뼛쭈뼛 다가왔다. 마치 고학년 선배의 부름에 긴장해서 달려오는 새내기 같은 연출이지만.

전부 연기다.

"왜 자꾸 사람을 훔쳐봐? 용무가 있으면 지금 말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와 눈을 마주했다.

"……호기심입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선배는 이번에 고유 능력이 변했다고 들었습니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한국에서는 첫 케이스."

아하. 그거 때문인가.

"바뀐 능력은 마나 조작 계열. 마나를 이용해 광범위한 이능을 일으키는 힘."

"많이 조사했는데."

"하지만."

그녀가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이번에 보니 그리 대단한 건 아닌……"

……이런 씁.

이게 자꾸 사람 도발하네.

"기대 이하였다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면 되지. 왜 자꾸 사람을 훔쳐봐?"

"실은 개인적으로 궁금한게 있어서요."

순간 움찔했다. 마치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 깊고 짙은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시선은 틀림없이, 렌즈를 끼고 있는 내 오른쪽 눈을 향해 있었다.

"선배가 어떻게 그 힘을 손에 넣었는가 하는 것."

…이건 무슨 의미로 받아들여야할까. 뭔가 알고 있는 건가?

"남의 패가 궁금하다면."

나도 그녀의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부터 까서 보이는 게 순서지. 안 그래?"

"……."

말없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결국 눈길을 거두었다.

"실례했습니다. 선배."

송곳니를 드러낸 주제에, 그녀는 다시 공손한 1학년 생을 연기하며 인사하고는 뒤돌아섰다.

그렇게 돌아가려나 생각했는데, 그녀는 멀리 가지 않고 잠자코 근처의 벤치에 앉아 내 쪽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용무가 남았어?"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스윙볼 연습, 이제 해보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녀의 손가락 끝은 내 주머니에 볼록 하게 들어 있는 스윙볼을 향해 있었다.

"……뭐, 좋아."

실은 저 녀석이 했던 방법에 조금 영감을 받았다.

네가 했던 그런 반칙도 기록으로 친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마.

나는 오른손에 건틀릿을 두르고는 공을 위로 던졌다.

'준비됐지? 에아.'

-준비됐습니다!

나는 히죽 웃으며 주먹을 뻗었다.

투콰앙!

푸른 불똥이 터져 나오는 것과 함께 공이 빠르게 직진했다. 나는 검지를 위로 추켜올렸다.

<아이스 자벨린>

지면 바로 위에서 솟구친 서리의 창이 공을 하늘 위로 쳐냈다.

그리고 공이 올라간 하늘에는 나와 에아가 정밀하게 계산해서 만든 마법진들이 펼쳐져 있었다.

<쉴드>

<아이스 자벨린>

<쉴드>

<아이스 자벨린>

하늘에서 내 지시에 맞게 딱딱 등장하는 얼음의 창과 쉴드가 계속해서 공의 방향을 계속해서 꺾고 비틀었다. 멀리서 보면 마치 공 튀기기 게임처럼 공이 무한히 휙휙 움직이며 노는 것처럼 보인다.

홍연이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때, 나는 마무리로 공을 아래로 내리꽂았다.

투콰악!

공이 우리의 중앙에 박히며 맹렬한 바람을 일으켰다.

나는 다가가서 공을 들어 올렸다.

"뭐, 사실 이건 전용 장비로 측정하는 게 정확하긴 하다만 일단 볼에 나온 수치는……"

볼 자체 측정 수치 389, 452 PHH.

그것을 본 홍연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벤치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다가 왔다.

"선배."

"……왜?"

"이걸로는 결판이 나지 않을 것 같고."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혹시라도 제가 결투 신청하면, 받아들여 주실 건가요?"

* * *

나는 마탑으로 돌아왔다.

아, 결투 신청?

당연히 거절했다. 안 그래도 바빠죽겠는데 결투는 무슨 결투.

신경 쓰이는 녀석이긴 했지만 일단 내가 직면 한 목표인 3층 시련부터 해결하는 게 먼저다.

"어서 오세요! 선배님!"

마탑으로 들어오자 진보라가 손을 흔들며 반겨주었다.

"오늘 밤 보스전에 도전할 거야."

내 선언에 그녀가 흠칫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급한 거 아녜요? 데바스타는……!"

"이제 해결됐어. 중요한 힌트를 얻었거든."

결과적으로 아카데미에 가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수업으로, 그리고 홍연과의 대면으로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

스윙 테스트에서, 나는 너무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공을 던져야 하니까 던졌을 뿐이다.

하지만 홍연이 했던 걸 보고 1차원적인 사고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깨달음이란 건 거창한 사색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의 한 순간에서 튀어나온다.

요는 '굳이 모든 걸 한 번에 할 필요'가 없다는 것.

"준비는 다 끝났어."

내가 얻은 힌트는 마법진의 분할이었다.

* * *

[세이브 포인트 지점으로 이동합니다.]

나는 다시 3층으로 올라가는 포탈을 밟고 시련 안으로 들어왔다.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로 있는 그대로였다.

박살나 있는 검은 골렘, 벽면에 여전히 큼지막하게 나 있는 해골형상까지.

뒤를 돌아보니 이제 세이브 포인트의 푸른 포탈은 사라졌고, 그냥 밖으로 나가는 녹색 포탈만 남았다.

세이브 기회는 딱 한 번 뿐인 듯했다.

"그럼 더더욱 물러설 수 없지."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탑주.

"괜찮아. 자신 있어."

결국, 문제는 데바스타.

이 기술만 완벽하다면 보스로 어떤 몬스터가 나오던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한다.

나는 보스룸이 있는 검은 포탈을 향해 걸었다.

[시련의 마지막 보스룸으로 이동합니다.]

[한번 보스룸에 들어가면 나올 수 없습니다.]

[보스룸에 들어가시겠습니까?]

후욱. 크게 숨을 들이마신 나는 각오를 다지고 말했다.

"들어간다."

다시 한번 내 몸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시련에서 가장 긴장되는 순간. 나는 침착하게 시야가 회복되기를 기다렸다.

우우우우우!

엔진음을 연상케 하는 요란한 소리가 들린 후, 내가 있는 방향에서부터 주위가 서서히 밝아지기 시작했다.

"……!"

어둠에 물든 사원의 끝까지 불이 들어오는 순간,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사원의 끝벽면엔 거대한 눈이 붙어 있었다.

흔들리는 눈꺼풀과 눈주름, 혈관까지 너무 사실적이어서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눈 주위로는 징그러운 시신경 같은 것들이 덕지덕지 붙어 사방으로 뻗어 나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르르르르르.

스르르.

스르르르르르르르르.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수백 개의 촉수들이 넘실거리고 있다.

"밥 안 먹고 와서 다행이네."

-끔찍하군요.

나와 에아는 소감을 공유하며 마나를 끌어올렸다.

결국, 저놈을 쓰러뜨려야 여기서 나갈 수 있다.

"몬스터에 대한 정보는?"

-검색 완료. 명칭은 엘더 텐타클. 랭크 불명. 대사막의 고대 유적에서 발견됐다는 기록이 있으며, 유적을 노리는 모험가들과 상인들을 잡아먹고 살았던 괴물입니다. 수백 가닥의 촉수를 채찍처럼 휘두르거나 창처럼 찌르는 공격을 합니다.

"좋아. 그럼 우선 마법이 통하는지부터 시험해 봐야겠지?"

나는 바로 다섯 발의 스핀 가이드 에로우를 꺼내서 발사해 보았다.

불규칙적으로 회전하는 마나 화살들이 모두 엔더 텐타클의 눈동자에 꽂혔다.

하지만 물렁한 녀석의 눈에 닿는 순간, 마나 화살은 쿠션에 부딪힌 장난감처럼 툭툭 바닥에 떨어질 뿐이었다.

-역시나 안 통하는군요.

"음."

아무래도 마법 공격 면역이라는 컨셉은 이번 시련 내내 유지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역시 답은 데바스타뿐이다.

보스 몬스터도 이제 침입자를 감지 하고는 공격을 시작했다.

슈화아아아아악!

수백 개의 촉수들이 나를 노리고 움직이는 모습은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거리가 꽤 있음에도 불구하고, 촉수의 길이도 덩달아 늘어나 내게 닿으려 하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데바스타 영창을 중지하고 몸을 날렸다.

꽝!

위에서 날아온 촉수 하나가 바닥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바닥이 움푹파인 걸 보니 위력이 장난 아니다.

혹시나 해서 쉴드를 깔아보았지만, 역시나 시간 벌이도 되지 않고 깨졌다.

아슬아슬하게 좌우로 오는 공격을 허리를 젖혀 피해내고는, 에아가 막 완성시킨 리프 부츠를 밟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큭!"

바닥에 착지하고 잠깐 숨을 돌리기 무섭게, 이번엔 위에서 촉수들이 들이 닥쳤다.

콰득! 콱! 콱! 콱!

비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정신없이 몸을 움직였다. 이래서야 데바스타같은 고위 마법진을 시전할 수가 없다.

-탑주! 괜찮으십니까?

"그래."

바닥을 긁으며 물러난 내가 고개를 들었다.

엘더 텐타클이라고 했나? 이 녀석도 나랑 비슷한 타입이다. 압도적인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공격.

그런데 역시.

"생각보다 할 만한데."

-……네?

정면. 머리 쪽.

고개를 옆으로 꺾자, 번개처럼 날아온 촉수 하나가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다시 정면과 측면.

지면을 박차고 뛰어나가 하나를 피해낸 다음, 허공에 깐 쉴드를 발로 딛고 반대 방향으로 텀블링했다.

두 개의 촉수가 내가 있던 공간을 갈랐다.

부우우웅!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허리를 과할 정도로 확 젖혔다. 촉수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숨을 헐떡이며 허리를 되돌리니 무수히 떠오르는 플레이어창이 보였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탑주! 어떻게……!

"패턴화하니까 할 만 해."

엘더 텐타클이 사용하는 수백 개의 촉수는 틀림없이 위협적이다. 그렇다고 속도가 느린 것도 아니고, 공격력이 약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패턴이 일정하다.

휘두르거나 찌르거나.

즉, 수백 개의 같은 스타일의 휘두르기가 찌르기가 매우 빠르게 반복되는 것.

미리 공격을 예측할 수 있다면,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어떻게든 피할 수 있다.

스르르르르.

스르르.

스르르르르르르르르.

보스가 공격의 수를 늘렸다. 도합서른 개가 넘는 촉수들이 몰아닥치고 있다.

나는 현인의 눈을 부릅떴다. 촉수들의 궤적을 미리 읽고 허공에 쉴드 네 개를 깔아두었다.

그리고 바로 몸을 날렸다.

콰득! 쾅! 쾅!

허공에 쉴드들을 밟고 정신없이 뛰어올랐다. 공중에도 촉수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리프 부츠를 밟아서 빠져나오면 한 번에 수십 개가 넘는 촉수들을 따돌릴 수 있었다.

앞. 휘두르기.

오른쪽. 찌르기.

위. 찌르기.

내 몸이 무아지경으로 공격을 피하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촉수가 나를 위협할수록, 순발 수치가 오르고 경험이 쌓였다. 이어지는 다음 공격은 훨씬 더 수월하게 피할 수 있다.

그런 위기와 경험들이 쌓이고 쌓이자, 내 움직임에도 점점 군더더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순발이 1 올랐습니다.]

[예측 회피 특성을 얻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내 첫 육체계열 특성이 생겼다.

기왕 시련에 들어온 거, 보스전까지 확실히 뽕을 뽑고 가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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