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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9화 (39/337)

나 혼자만 마탑주 039화

이어서 다른 학생들도 한 명 씩 나와 스윙 기록 경신에 도전했다.

투척에 고유 능력을 응용할 여지가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든 능력을 활용해서 공을 날려 보냈고 대부분이 좋은 점수를 얻었다.

능력의 활용 여지가 없는 학생들은 단순한 팔심에 마나를 더해 던지는 수밖에 없었는데, 역시나 기록은 전자에 비해 떨어졌다.

왜 고유 능력의 우수함이 헌터의 강함으로 직결되는지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나중에 전용 슈트를 착용하게 되면 이 격차는 더 벌어진다.

"2학년 한윤정 학생!"

그러다 한윤정의 차례가 다가왔다.

아니나 다를까 조그맣게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 그 김유신 친구네."

"요즘 되게 싸가지없게 굴지 않냐?"

이야기가 들렸는지 스타트라인으로 나온 한윤정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지만 금세 평정심을 되찾았다.

그녀의 좌표 추적 능력은 이 시험에 어떤 응용도 불가능하다. 오로지 신체 능력, 그리고 마나 활용도에 달렸다.

"시작하세요."

"네!"

그녀가 지면을 박차고 와인드업을 시작하더니 기합까지 내지르며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부우웅! 공은 꽤 강하게 날아갔다.

자세 좋은데.

"총 기록 231 PHH입니다."

주위에서 숨죽인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잊고 있었지만 나도 항상 저런 취급이었다. 그래서 이 수업이 싫었다.

한윤정은 기록을 듣고는 조금 굳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홀가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김윤지 교수가 다가와 코멘트 해주었다.

"전보다 기록이 조금 올랐네. 너무 던지는 자세에만 집중하니까 마나출력이 완벽하지 못했어. 그 부분에 조금 더 신경 써보렴."

"감사합니다, 교수님."

"더 좋아질 수 있을 거야."

한윤정이 차례를 마치고 돌아왔다.

나를 보고는 쑥스럽게 미소 지어 보였다.

"아, 난 쭉 이렇지 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모르겠다.

위로의 말?

아니면 격려?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냥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그녀도 웃으며 팔꿈치로 내 몸을 건드리며 걸어갔다.

아카데미에 와서 짓뭉개지고는 있었지만, 그녀는 꽤 프라이드가 센 성격이었다.

내가 넌지시 제시한 던전 출장권이나 훈련장 혜택도 전부 거절했다.

그거 밀어주기 아니냐고. 계속 그래왔던 것처럼 내 힘만으로 성장하고 싶다고.

나로서는 그런 취급당하면서 왜 그렇게 융통성 없이 구느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그만뒀다.

사람은 모두 중요시하는 가치가 다를 뿐. 타인의 가치를 내 잣대로 미련하다고 할 수는 없다.

"자, 그럼 다음은 김유신 학생!"

웅성웅성.

내 이름이 불리자 한차례 소란이 일었다.

타이밍이 좀 안 좋다. 하필이면 한 윤정이 점수로 바닥을 찍은 뒤에 내 차례라니.

슬그머니 눈동자를 굴려보니 그녀와 눈이 딱 마주쳤다.

"야."

"……왜."

"노파심에 말하지만 날 더 비참하게 만들진 마라?"

해석하자면 눈치 보지 말고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었다. 나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왔다.

"어디 보자……. 김유신 학생의 이전 기록은 284 PHH로군요."

한윤정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몇몇 저학년 학생들이 은근한 비웃음을 흘리다가 옆 사람들의 제지를 받았다.

김윤지 교수가 공을 내밀며 빙긋 웃어 보였다.

"수업에는 잘 안 들어왔지만, 그동안 던전에 많이 갔다고 들었어요. 이번엔 기록 경신! 노려볼 수 있겠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나는 공을 잡고 앞을 바라보았다.

-기대되는군요, 탑주. 방금 팝콘을 꺼냈습니다.

……에아. 이 녀석은 철저히 감상모드구만.

자아, 어떻게 던져볼까.

시험도 아니고 그저 개인 기록 경신을 위한 테스트다.

막 카피 매지컬 포지션까지 동원하면서 너무 오버하기는 싫고, 그냥 심플하게 가기로 했다.

<건틀릿>

푸른 광채가 휘몰아치며 내 가슴앞에 건틀릿 마법진이 펼쳐졌다.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오른손을 마법진 안에 밀어 넣자 마나가 주먹을 휘감으며 푸른 빛으로 코팅되었다.

이어서 다리를 벌리고 상체를 낮추며 펀칭 자세를 취했다.

"후우."

가볍게 호흡하고, 손목 스냅만을 이용해 공을 위로 던졌다.

그냥 수업일 뿐이지만 내 집중력은 제대로 가동해 주고 있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나를 옭아매고 있던 시련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사라졌다.

공이 위로 올라가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아래로 내려온다. 나는 그 궤적을 정밀하게 계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팔의 각도를 수정하고, 허리를 비틀며, 공이 내려오는 각도에 맞춰 힘껏 주먹을 내질렀다.

투콰아아앙!

푸른 불똥이 맹렬하게 튀어 오르며, 공이 쐐애액! 소리를 내며 미사일처럼 뻗어 나갔다.

"우왓!"

"꺅!"

후폭풍이 휘몰아치며 뒤에 있는 학생들의 옷과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경악한 얼굴로 지켜보던 김윤지 교수가 측정 장비를 체크했다.

"초, 총 기록 25, 842 PHH입니다! 신기록이네요!"

"우오오오오!"

"와, 미친!"

누가 먼저 랄 것도 없이 곳곳에서 격렬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가뿐하게 친 느낌인데 저 정도야?"

"역시 다르네."

신기록 달성이라는 쇼를 선보이자 수업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내 예전 기록을 듣고 비웃던 사람들도 이제는 나를 전과 다른 눈으로 보고 있었다.

음, 음, 기분 좋다.

내 순서를 마치고 돌아오자 곳곳에서 하이파이브 요청이 밀려 들었다.

다는 대수롭지 않게 툭툭 쳐주며 한 윤정에게 다가갔다.

"야호! 제법인데?"

그녀가 활짝 웃으며 손바닥을 펼쳤다. 나도 손바닥을 펼치고 힘껏 그녀와 하이파이브했다.

"아주 좋아요! 다음은 1학년 황보인 학생!"

수업은 계속 진행됐다. 하지만 아무도 내 기록을 넘지 못했고, 잘 하는 사람들도 대충 6~7천대 점수를 기록했다.

"……하아."

한숨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땅 꺼지겠다. 야."

"조용히 해."

역시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제 그녀와 같은 선상에서 뛸 수 없다. 그러기엔 너무 많이 앞으로 와버렸다.

여기서 괜한 동정심을 내비치는 건 그녀의 자존심만 해칠 뿐이다.

그러니까.

"힘내라."

내가 할 수 있는 건 응원뿐이었다.

"응."

그녀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의 기록을 구경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앞에서 웅성거림이 커졌다.

"와……"

"진짜야?"

나도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누군가가 걸어오고 있었다.

남들과 같은 심플한 아카데미 트레이닝복 차림이었지만, 뭔가가 달랐다.

레드톤의 머리카락, 세련된 걸음걸이, 눈이 번쩍 뜨이는 외모.

한윤정도 입을 크게 벌렸다. 물론 나도 알고 있는 얼굴이다.

"어머나! 학생회자앙!"

김윤지 교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학생회장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저도 교수님 수업을 수강했어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오호호! 죄송은 무슨, 원래 학생회장은 수업 안 들어도 되지 않아요?"

"그래도 한 번쯤 찾아 뵙는 게 예의라고 생각해서……"

"오호호호! 말뿐이라도 고마워요."

현 아카데미 총학생회장, 홍연.

1학년으로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전4학년 학생회장에게 결투를 신청해 압도적인 격차로 쓰러뜨리고 정상에 우뚝 선 괴물이다.

조용히 지켜보던 에아가 말을 걸어왔다.

-탑주. 저 여인에게서 흥미로운 마력이 느껴집니다.

'그래?'

-대단한 사람입니까?

'뭐, 그렇지.'

단순히 아카데미 1학년생이라는 말로 그녀를 설명하기엔 어폐가 있다.

한국 헌터계 최고의 유망주.

세계의 축복을 몰빵 받은 자.

헌터 협회장의 여동생.

플레이어로 각성해서 헌터계에 진입하자마자 한국 TOP 10 길드는 물론, 전 세계의 초대형 길드에서까지 스카우터를 파견할 정도로 압도적인 포텐 덩어리였다.

보통은 던전에서 활동하느라 학교엔 거의 안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웬일이지?

그때였다.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녀의 시선이 갑자기 내 쪽으로 꽂히는 게 느껴졌다.

'진보라한테 관심병이라도 옮았나?'

아이돌이 무대에 올라와 손을 흔들면, '나한테 손 흔들어줬어!' 라고 생각하는 관중들을 가볍게 10명쯤은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그녀를 마주 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샥 시선을 회수해 다시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윙 측정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한번 해보겠어요?"

김윤지 교수가 공을 내밀며 반짝반짝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홍연은 무안한 미소를 지으며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가 거의 폭탄처럼 터지는 환호성과 마주해야 했다.

"그럼 살짝만……"

결국 그녀가 공을 잡고 스타트라인으로 나왔다.

"오호호호! 기대되네요!"

누구보다 신난 김윤지 교수가 측정기계를 세우며 말했다.

"현재 최고 기록은 김유신 학생의 25, 842 PHH! 학생회장은 어떨까요?"

"25, 842……"

그 말을 들은 홍연이 멈칫하더니 다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착각이 아니라면, 이번에도 나를 보고 있었다.

"교수님."

"네?"

"혹시 룰이 있나요? 타격 수 제한같은."

"타격 수 제한? 그런 건 없어요. 무슨 수를 쓰든 공을 멀리, 그리고 빠르게 보내면 됩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을 꽉 쥐었다.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할까?"

"주특기가 검술이라는데, 공을 막검으로 치는 게 아닐까?"

"에이, 말도 안돼."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기상천외한 방법과는 달리, 그녀는 두 손으로 공을 잡은 평범한 던지기 자세를 취했다.

그녀가 움직였다. 다리가 앞으로 나오며 상체가 과할 정도로 아래로 내려갔다. 이내 그녀의 손안에서 공이 빠져나갔다.

투콰아아앙!

적색의 마력이 팽창하는 효과와 함께 공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김윤지 교수가 재빨리 측정 점수를 확인했다.

"2만……"

그러나 홍연의 움직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을 던지고는 재빨리 왼팔로 허리 뒤에 매여 있던 검을 붙잡았다.

이미 공은 점처럼 보일 정도로 멀리 날아가고 있는 상황.

그러나 그녀가 물 흐르는 듯한 움직임으로 발검해 내뻗자, 새빨간 검격이 빛살처럼 날아갔다.

저 멀리서 투쾅! 하고 2차 타격음이 들렸다.

"와아아……!"

"저게 가능해?"

홍연은 마침내 검을 내리고는 김윤지 교수를 보았다.

"87, 507 PPH! 아카데미 최고 신기록입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그동안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거대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특히 남학생들은 두 팔을 쩍 벌리며 광신도처럼 부르짖었다.

홍연은 모두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보인 후, 다시 내 쪽을 바라보았다.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다.

'하하. 이것 좀 보게?'

내가 민감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확실히 날 도발하고 있었다.

"산뜻한 마무리네요!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할까요?"

교수는 수업 종료를 선언했고, 홍연은 검을 챙겨 들고 나섰다. 학생들은 홍연과 뭐라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눈치였지만 '싫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그녀의 냉랭한 분위기 때문에 쉽사리 말을 걸지 못했다.

"김유신."

한윤정이 내 팔을 툭 쳤다.

"어? 어, 그래. 밥 먹으러 가자."

"쟤 아까부터 널 쳐다보던데."

한윤정도 그렇게 느꼈나?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내 알 바 아냐."

"흐응, 둘이 아는 사이?"

"알기는 무슨, 요즘 학교에서 좀 시끄럽게 굴었다고 학생회에 찍혔나봐. 계속 사람 째려보네."

"……."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던 그녀가 갑자기 등을 휙 돌렸다.

"나 점심 약속 있어서 먼저 갈게."

"……네가?"

그녀가 다시 달려와 내 옆구리를 때렸다.

"네가 하도 안 나와서 밥 먹을 친구 따로 만들었다! 됐냐?"

한윤정은 삐쭉 혀를 내밀고는 등을 돌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하여간 쟤도 종잡을 수 없는 성격이다.

'……그럼.'

나는 수업이 끝나고 바닥에 떨어져 있는 스윙볼 하나를 바라보았다.

뭐라고 해야 할까, 간질간질한 기분이다.

머릿속에 홍연의 스윙 장면이 떠올랐다.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는데.

'한번 해볼까?'

나는 수업 뒷정리 중인 조교에게 다가가서 스윙볼 좀 빌려도 되겠냐고 물었다. 반납만 제때 해주면 괜찮다며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스윙볼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드는 순간.

……조금 소름이 끼쳤다.

나간 줄 알았더니, 홍연은 건물 옆에 고개만 내밀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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