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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4화 (34/337)

나 혼자만 마탑주 034화

그날 밤.

나는 2층 서재에서 올라와 3층으로 가는 길 끝에 섰다. 3층으로 향하는 문 대신 일렁거리는 새까만 포탈이 차지하고 있었다.

[시련의 마법이 공간을 잠식하고 있습니다.]

[다음 층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시련을 통과해야 합니다.]

나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마탑 멤버들이 마중 나와 있었다.

"선배님! 꼭 무사히 돌아오셔야 해요!"

진보라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외부 일은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다녀오십시오."

정서진이 말했다.

"오, 오빠야 파이팅!"

마지막으로 은솔의 깜찍한 응원까지.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등을 돌렸다.

"다녀올게."

천천히 걸어가 검은 포탈 앞에 섰다.

[시련에 도전하시겠습니까?]

"도전한다."

내 몸이 포탈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 * *

울렁거림이 멈추자 눈을 떴다.

나는 어딘가 사원 같은 곳에서 있었다. 피라미드의 내부처럼 천장의 끝은 뾰족했고, 그 위로 인공적인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벽면에는 색 바랜 벽화들이 보였고, 바닥은 모래와 돌로 뒤덮여 있었다.

[3층 시련에 도착했습니다.]

[시련 참가자의 데이터 확인 중.]

[시련 참가자의 마나를 본 시련에 적합하게 보정합니다.]

[본 시련의 규칙이 적용됩니다. -현재 보유한 3공정 이상의 모든 마법 봉인.]

[3층 시련 클리어 시 새로운 시설 '골렘 공방'이 개방됩니다』

나는 도착하자마자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에아! 들려?'

-예. 잘 들립니다, 탑주.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자 크게 안도했다. 시련에서도 함께 싸울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시련은 이런 곳에서 펼쳐지는군요.

'그래, 이번에도 잘 부탁한다.'

-잘 부탁드립니다, 탑주.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때? 뭔가 있을 것 같아?'

-주위에 미세한 마력 반응이 느껴집니다만. 아직 그 원인은 찾아 내지 못했습니다.

'알겠어. 계속 간다.'

걸어도 걸어도 흙과 돌무더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공간일 뿐이었다.

대체 여기서 뭘 한다는 걸까?

-후방에 마력 반응입니다!

에아의 외침에 저절로 고개가 홱돌아갔다.

지면을 구성하고 있던 바위 더미가 갑자기 솟구치더니 그대로 내게 휘둘러 졌다.

쿠쿠쿵!

"……우왓!"

에아가 미리 알려준 덕분에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다. 나는 상체를 일으켜 그것과 대면했다.

주위의 지면이 통째로 솟구쳐 올랐다. 모래가 쏴아아 떨어지며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암석으로 이루어진 대형 골렘이었다.

'분명 이번 시련의 보상도 '골렘공방'이라고 했었지?' 골렘의 몸 표면에는 검게 빛나는 선 같은 것들이 줄무늬처럼 그려져 있었는데, 일종의 마법이 걸려 있는 것 같다.

-몬스터 검색 결과 정보 없음. 이시련에서만 존재하는 특별한 골렘 몬스터인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 당연히 시련 전용 몬스터겠지. 이번엔 어떤 요소가 숨어 있을까?

쿠구구구구!

골렘이 거구를 일으키며 공격을 시작했다. 나는 현인의 눈으로 팔의 궤적을 체크하고는 원격영창으로 쉴드를 깔았다.

파창!

그러나 골렘의 암석 팔은 그것을 너무나 가뿐히 깨부수며 다가왔다.

다급히 몸을 굴러서 빠져나왔지만, 이마에 식은 땀이 흐를 정도로 위험천만 했다.

'라바 골렘과는 차원이 달라!'

지금까지 상대한 그 어떤 강력한 적수도, 일단은 쉴드를 펼치면 시간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쉴드가 아예 통하지 않는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시련 초반이랍시고 힘을 아끼고 어쩌고 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에아, 바로 전력으로 가자."

-예, 탑주.

<카피 매지컬 포지션>

가드가 불가능한 적. 그렇다면 미친 듯이 공격할 뿐이다.

카피 매지컬 포지션을 깔고 다섯개의 아이스 자벨린을 소환해 골렘의 몸통을 향해 날려 보냈다.

콰드드드드!

얼음 창이 꽂히며 골렘의 몸 군데 군데가 얼어붙었다.

2공정 마법의 카피 매지컬 포지션은 여전히 내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도 2공정이니 효과는 확실하겠거니 생각했지만…….

'더럽게 튼튼하네.'

골렘은 멀쩡했다. 창은 골렘의 피부를 뚫지 못하고 표면에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이렇게 되면 극단적인 화력 승부야, 에아.'

-알겠습니다.

이번엔 카피 매지컬 포지션 세 개를 깔았다. 그리고.

<파이어 캐논>

<파이어 캐논>

<파이어 캐논>

…….

아라크노포비아까지 쓰러뜨린 내최고의 화력을 다시 한번 불러왔다.

'가라.'

하르르르르르르륵!

열다섯 발의 파이어 캐논이 역한 회색 꼬리를 남기며 골렘에게 날아갔다.

이어지는 강렬한 폭발음과 소음에 나는 귀를 틀어막은 채 고개를 돌렸다.

'너무 오버했나?'

장내는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골렘의 몸의 절반 정도는 붕괴시켰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쿠구구구구!

이번에도 골렘은 멀쩡히 움직이고 있었다. 몸의 군데군데가 그을리거나 금이 갔지만 딱 그 정도.

'아니, 이런 걸 어떻게 잡으란 거야? 심지어 아직 보스도 아니잖아!'

골렘이 거대한 주먹을 내질렀다.

나는 옆으로 몸을 날리면서 쉴드 마법진을 펼쳤다.

쩌엉!

그러나 역시 시간 벌이도 되지 못하고 깨져 나갔다. 아슬아슬하게 골렘의 팔이 내 머리카락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렵다. 그 사실이 뼈에 사무칠 정도로 다가왔다.

그리고 낯설다. 그동안 내가 펼쳐 왔던 전투와는 너무 다르다.

쉴드로 안전하게 몸을 지킬 수도 없고, 내 특기인 화력 공세도 통하지 않는다.

저 골렘의 존재 자체가 내 완벽한 카운터처럼 느껴진다.

공수가 모두 막힌 상황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약한 몸뚱이로 뛰어다니는 것뿐이었다.

"에아! 저 골렘의 약점은?"

-계속 분석하고 있습니다만, 좀 더 많은 전투 데이터가 필요합니다.

그녀에게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골렘을 노려보았다.

"그렇단 말이지."

짜증이 났다.

그동안 내가 쌓아온 모든 것을 부정하는 듯한 저 몸뚱이를 억지를 써서라도 박살 내고 싶어졌다.

눈을 감았다.

분노와 짜증은 의외로 집중력에 도움이 되는 재료들이었다.

서서히 잡 생각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내 몸 안의 마나 한 가닥까지 통제가 가능해졌다.

"에아, 수식 마무리는 맡길게."

-알겠습니다.

그녀도 상황이 상황인 만큼 무리하지 말라거나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

<카피 매지컬 포지션>

다시 한번 마법 재개다.

카피 매지컬 포지션에 카피 매지컬 포지션을 매달고, 스무 개 이상의 레피드 에로우를 지속적으로 꺼내서 퍼붓는, 이레귤러까지 처치한 내가 가진 최고의 공격기술이다.

지옥과도 같은 수식과의 전쟁을 펼치면서 눈을 뜨자, 골렘의 머리 위로 별처럼 무수히 많은 마법진들이 떠올라 있었다.

'이것도 멀쩡하면 인정해 주마. 개자식아.'

공중에 떠오른 마법진에서 황금빛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무차별적인 화력 공세에 골렘의 몸이 크게 기우뚱하며 바닥에 엎어졌다. 그리고 드러난 등으로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난도질했다.

골렘의 등이 순식간에 벗겨졌고 이제는 암석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역시 통해! 아무리 튼튼한 몸뚱이라도 물량엔 장사 없지!'

격파하지 못한다면 압도적인 화력으로 가루로 만들면 그만이다.

더, 더.

더 빠르게.

더 심플하게.

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콰!

골렘 주위의 땅이 움푹 파였다. 이제는 몸뚱이를 삼 분의 일 넘게 갉아먹었다.

여긴 이레귤러전과는 달리 마나가 무한이니까 집중력과 체력만 따라준다면 얼마든지 이 기세를 유지할 수 있다.

리듬감을 유지하면서 이 템포로 계속 끌고 나가면 나의 승리다.

쿵!

골렘도 당하고만 있지 않았다. 맹렬한 공격을 받고 있는 중에도 다리를 굽히고 팔로 지면을 디뎠다.

그러곤 웅크린 자세에서 순간적으로 앞으로 쭉 밀고 나갔다.

'……!'

생각보다 도약 거리가 길다.

-골렘이 공격 범위를 벗어났습니다!

레피드 에로우는 여전히 같은 지점에 화력을 쏟아붓고 있었다. 순수하게 화력과 재장전에만 집중하는 마법이기에 타깃 재설정 같은 유틸적인 변화를 주기는 어려웠다.

골렘이 두 다리와 팔을 이용해 네발 짐승처럼 달려 들어왔다.

-피하셔야 합니다! 탑주!

나는 시전 중인 레피드 에로우를 캔슬하고 옆으로 몸을 날렸다.

강제 캔슬의 반동으로 몸 안의 마나가 뒤틀리며 입에서 피가 왈칵 튀어나왔다.

그리고.

쩌어어어억!

골렘이 휘두른 주먹에 부딪혔다.

머리가 핑 돌며 코와 입안에 짙은 혈향이 감돌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나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탑주! 일어나 주십시오! 탑주!

"……크으윽!"

머리를 부여잡으며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지만, 다행히 바로 깨어난 모양이다.

내 상대인 골렘 또한 멀쩡하진 못했는지 바닥에 엎드린 채 미동이 없었다.

'하아, 더럽게 아프네.'

고개를 숙여보니 입고 있는 옷이 온통 내가 흘린 피로 시뻘겠다. 옆구리 쪽을 더듬어보니 뼈도 좀 부러진 것 같았다.

잔뜩 분비된 아드레날린이 진통제처럼 통증을 억제하고 있을 뿐이다.

-제안. 우선 마탑으로 돌아가 대책을 세울 것을 권합니다.

나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에아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도망치려고 해도 출구 마법진은 골렘을 넘어 반대편에 있었다.

골렘이 바로 쫓아올 테고, 이 몸상태로 녀석을 따돌리는 건 어렵다.

"에아, 전투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고 했지? 정확히 어떤 게 필요한건데?"

-…….

에아는 망설이고 있었다. 내가 닦달하자 그녀는 마지못해 답했다.

-근접전투. 그리고 골렘의 몸에 그려진 마법을 더 가까이에서 살펴봐야 합니다.

"좋아. 주문대로 해줄게."

<건틀릿>

재도전은 하겠다만, 이대로 아무 성과 없이 도망치는 것도 모양 빠진다. 나는 양손에 건틀릿을 착용하고 골렘을 향해 걸어갔다.

피차 떡이 되어가는 상황.

상체가 반쯤 깎여나간 골렘도 힘겹게 몸을 세우고 있었다. 그래도 공격 의지는 확실한지 나를 보고 거대한 주먹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이 몸 상태로 100% 피하는 건 힘들어.'

컨디션이 정상이라고 해도 내 순발수치로 회피는 간당간당 하다. 쉴드로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야.

나는 골렘의 주먹이 휘둘러지는 타이밍에 맞춰 건틀릿을 장착한 왼팔을 뒤로 뻗었다.

'발동!'

슈콰앙! 건틀릿이 발동한 후 폭발로 내 몸이 부스터처럼 밀려났다.

공격을 피하며 순식간에 골렘의 몸안까지 파고든 나는, 오른쪽 현인의 눈을 부릅뜨고 골렘의 문양을 보았다. 부디 에아가 분석해 주기를 바라며.

쿠구국!

골렘의 다른 쪽 팔이 빠른 타이밍에 들이닥쳤다. 나는 제자리에서 도약해 이번엔 오른손을 바닥을 향하게 한 후 건틀릿을 발동시켰다.

투콰앙!

골렘의 팔이 간발의 차이로 지상에 처박히고 내 몸이 하늘로 붕 떠올랐다. 골렘의 머리가 바로 앞에 보였다.

잘 됐다! 이 짜증 나는 새끼.

<건틀릿>

다시 한번 가속 시전으로 오른 주먹에 건틀릿을 덧씌우고, 그대로 놈의 면상을 향해 휘둘렀다.

쩌어어어어엉!

푸른 불똥이 튀어 오르며, 거체가 충격에 휘청거렸다.

'…어?'

쿠구구구구쿵!

골렘의 몸뚱이가 그대로 지면에 처박혔다. 한 대 때렸을 뿐인데 골렘의 안면 부위가 크게 금이 간 채로 깨져 있었다.

2공정 원소 마법이나 레피드 에로우로도 깨지 못했는데 저렇게 쉽게……?

-분석 완료.

기다렸던 에아의 음성이 들렸다.

-골렘의 몸에는 항마력 효과가 적용되어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마법으로 공격하면 그 위력이 크게 상쇄됩니다.

"그럼 어떻게 공략하면 좋지?"

-건틀릿과 같은 순수한 물리 공격력은 항마력을 뚫을 수 있습니다.

내 입이 쭉 찢어졌다.

'그거였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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