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33화
곽찬희는 베테랑 스카우터였다.
비록 저번 김유신 쟁탈전에서도 마땅한 성과가 없어 그리 모어 길드에서 잘리고 말았지만, 이번에는 사냥터 관리 업체에 취업하며 제2의 전성기를 꿈꾸고 있었다.
'이번에도 김유신인가? 녀석과는 질긴 인연이군.'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이미 한 번 영입 실패를 맛보았던 그 김유신이 이번에는 사냥터 운영권을 통째로 손에 넣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국내에 흔치 않은 3랭크 사냥터였다.
서울과 거리도 가깝고, 줄 몰하는 주요 몬스터 또한 상대적으로 약점이 명확한 편이라 사냥터의 가치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는 계산이 나왔다.
그야말로 금싸라기 같은 땅. 반드시 관리권을 따내야 했다.
'이번에는 절대 거절하지 못할 거다, 김유신!'
곽찬희는 유신의 통학 루트를 꿰고 있었다. 마침 그가 자주 타는 버스가 멈추고 유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유신 학생!"
곽찬희가 바로 달려나갔다. 유신은 '또 너냐.'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길드에 들어갈 생각은 아직 없는데요."
"하하하! 그게 아닙니다. 이번엔 새로운 제안을 할까 해서 왔습니다."
"새로운 제안?"
"최근에 사냥터 운영권을 따내셨다고 들었습니다."
유신이 뜨끔한 표정을 지었다. 그반응을 본 곽찬희는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100% 확신했다.
"대단하십니다! 요즘 학생들이 말하는 것처럼 돌풍의 핵과도 같은 행보네요! 용암굴에서의 활약에 더해 이번엔 던전화 재앙까지!"
"……아, 예."
"하지만 업계 선배로서 조언을 드리자면 이번 사냥터 건은 신경 쓰실 부분이 많을 겁니다. 혹시 사냥터관리는 어떻게 하실 생각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뭐, 제가 거기 계속 지키고 있을 수도 없으니 업체에 맡겨야겠죠."
"아이고! 그럼 서두르셔야겠네요! 협회에서 주는 시간은 고작 2주! 그리고 관리 업체에서 최소한의 사냥터 형태라도 구축하려면 적어도 1주는 걸립니다. 사실상 유신 학생에게 남은 시간은 2, 3일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거죠!"
"그러네요."
"2주가 넘어가서도 사냥터 체계가 지지부진하면, 협회는 개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리고 권한을 몰수해 버립니다. 화가 나지만 인명과 관련된 문제라니 어쩌겠습니까? 하하!"
유신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본 곽찬희는 80%쯤 넘어왔다고 생각했다.
어느새 두 사람은 교문을 넘어 캠퍼스 안까지 들어와 있었다. 유신은 여전히 빠르게 걷고 있었고 곽찬희는 숨을 헐떡이면서도 그의 속도를 따라잡으며 열심히 설득하고 있었다.
"자, 이제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화성 기획에서 나온 스카우트 곽찬희라고 합니다."
곽찬희가 새로 만든 명함을 내밀며 말했다.
"저희는 사냥터를 대리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충주호 베라드 사냥터 아시죠? 그쪽 모두가 저희 관할입니다."
"아하."
두 사람이 건물 안까지 들어온 사이에도 곽찬희는 줄줄 설명을 늘어놓고 있었다.
"저희에게 사냥터를 믿고 맡겨주신다면 1주일 기한 내에 깔끔하게 준비 마쳐 드리겠습니다."
"그러니까 제 사냥터를 전담해서 관리하고 싶다는 거죠?"
"예!"
"그럼 같이 들어오시죠."
달칵.
유신이 세미나실 문을 열었다.
드디어 본격적인 계약 이야기로 넘어갈 셈인가. 곽찬희가 바람과 같은 속도로 가방에서 펜과 계약서를 꺼내 들려는 순간.
웅성웅성!
벌써 수 많은 사람들이 세미나실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뭐야 이게!'
곽찬희가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이벌 업체인 메트로 큐브는 물론, 송정, 피앤비, 심지어는 요즘 가장 핫한 던전 관리 기업인 반제프까지 와 있었다.
그는 뻘쭘한 표정으로 가방에서 꺼낸 계약서를 슬그머니 원위치시켰다.
"다 모이신 것 같네요."
유신이 중앙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그 옆으로는 선글라스를 쓴 정서진이 착 기립했다.
"그럼 이제 다 같이 계약 조건에 관해 이야기해 볼까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얼굴이 시뻘게진 사람들이 팔을 들어 올리며 막대한 계약 조건과 계약금을 내뱉기 시작했다.
"7년 보장 8 대 2!"
"에끼, 이 사람이! 어떤 사냥터인데 그렇게 막 부르면 쓰나! 7 대3!"
"운영비에 공과잡비 다 포함해서 7대 3 부릅니다."
"막 나간다, 저 인간들 또!"
멍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곽찬희가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들고 온 제안으로는 경쟁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이, 이번에도 실패……'
새로운 직장도 위태로워졌다.
* * *
한국 헌터 아카데미 총학생회실.
"요즘 학교가 너무 어수선한 것 같지 않아요?"
소파에 앉아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던 여학생이 툭 던지듯 말했다.
그녀의 말을 반대쪽 자리에 앉은 남자가 말했다.
"그 2학년의 김유신이란 놈 때문이지."
게임 방송을 옆에 켜놓고 시시덕거리고 있는 이 남자의 이름은 김승현. 종학생회 총무부장을 맡은 3학년생이었다.
"저번엔 교문 앞 스카우터들이더니, 이번엔 사냥터 관리 업체? 그놈은 대체 뭔 일을 벌이고 다니는 거야?"
"난들 어떻게 알겠어요. 그보다 그사람 좀 건방지지 않아요?"
운영부장 윤슬아가 손톱 위에 후후 바람을 불며 말했다.
"우리가 뭐 봉도 아니고. 세미나실 대여해 줘, 주차권 끊어줘, 다과도 내줘. 그런 건 좀 밖에서 하라지 진짜."
"후웁!"
바닥에서 코어 운동을 하던 어깨가 떡 벌어진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4학년 체육부장의 오호승이었다.
"외부인 접견도 학생회의 임무다. 그리고 우리 학생이 외부에 이름을 알리는 건데 나쁠 거 없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라."
"흥."
윤슬아가 고개를 획 돌리자, 김승현이 피식 웃었다.
"우리 운영부장께서는 학생 따위가 던전주가 된 게 영 아니꼬운 거지. 배 아파하잖아."
"시끄러워요!"
그들이 떠들고 있을 때, 찰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돌아갔다.
이질적인 붉은 머리카락의 여학생이 안으로 들어왔다.
"회자아아앙!"
"어서 옵쇼."
"장기 던전 출장 수고하셨습니다!"
체육부장 오호승이 얼른 달려가 겉옷을 받아 걸어놓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세 사람이 하시던 이야기."
"…?"
"흥미가 생기는군요."
세 사람의 눈이 동시에 커졌다. 저차갑다 못해 냉혈한 학생회장이 흥미라니?
"아, 무슨 일이 있었냐면……"
윤슬아는 일러바치듯 김유신의 이야기에 대해 술술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듣던 그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그렇군요."
그녀가 시선을 돌렸다.
"총무부장."
"예, 회장."
"그 김유신이라는 사람. 저도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 * *
"오케이. 여기까지는 성공이야!"
나는 더 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허공에 마법진을 하나 띄워놓고 있었다.
에아는 내 옆에서 열심히 보조를 해주고 있었다.
"아이참, 선배님! 밥 먹다가 또 뭐하시는 거예요!"
더없이 진지한 분위기의 우리와는 달리, 옆에서는 진보라와 은솔이 막끓인 짜장라면을 후루룩 먹고 있었다.
"딱 이것만 하고. 지금 삘이 왔어."
나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다시 집중했다.
"나 손 뗀다. 이 형태를 계속 유지 해 줘."
"알겠습니다, 탑주."
내가 마법진의 마나를 끊고 에아가 마법진을 대신 유지해 주었다. 부담이 사라지자 한숨 돌린 나는 마법진의 상태를 전체적으로 쭉 살폈다.
"그런데 선배님. 대체 무슨 마법을 개발하시길래 이렇게 공을 들이는 거예요?"
나는 웃으며 마법진을 가리켰다.
"구조를 한번 봐. 마법진에 원이 몇 개로 보여?"
"큰 거 하나에 두 개의 작은 마법진이 들어가 있으니까…… 3공정 마법 맞죠?"
"바로 맞췄어."
필수적인 1공정과 2공정 마법은 대부분 익히고 숙달했다. 이제는 새로운 경지에 도전하는 중이었다.
내 설명을 들은 진보라가 고개를 갸웃했다.
"3공정 마법이 그렇게 어려운 거예요? 이론상으로는 마법진 세 개를 그리는 거잖아요."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였으면 얼마나 좋겠냐."
두 개 공정을 사용해 생태계를 만드는 것과, 세 개의 공정을 사용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차원이 다른 난이도였다.
일단 나만 해도 한 번도 3공정 마법에 성공한 적이 없다.
"자, 간다."
나는 에아가 유지하고 있는 마법진에 간섭했다.
출력 수식 이상 없음.
운용 수식 이상 없음.
현재 세 개 공정이 독립적인 수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제 각자 따로 놀고 있는 출력 수식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마법진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마나를 움직여 마법진 내부의 수식을 하나하나 수정해 나갔다. 이건 아주 민감한 작업이다. 룬어 하나만 달라져도 공격마법이 보조마법으로 바뀌기도 하는 게 마법이니까.
'좋아, 침착하게.'
나는 최대한 집중해 수식을 완성한 다음, 대기 중인 마법진에 '실행'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마법진이 눈부신 푸른빛을 뿜으며 세 개의 수식이 하나로 이어졌다.
"좋아! 됐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보라와 은솔이 환호를 보냈다.
"신기해! 글자가 붙였다가 떨어졌다가 해!"
"이제 다 된 거예요?"
"이제부터 시작이야."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은 내가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려는 그때.
파지직!
마법진에 스파크가 튀었다. 합쳐진 줄 알았던 융합 마법진에 갑자기 문제가 일어났다.
A 마법진과 B 마법진은 성공적으로 합쳐졌지만, C 마법진과의 융합과정에서 오히려 C 마법진의 영역을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셋이 밸런스를 유지해야 3공정 마법인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2공정 마법보다 못한 불량품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결국, 비대하게 덩치가 커진 A+B 마법진에 과부하가 일어났고, 거친 스파크와 함께 마법진 전체가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이것이 밸런스가 붕괴된 생태계의 최후다.
"1, 572번째 실패입니다, 탑주."
"끄아아."
바로 이게 문제다.
어떤 방식을 쓰든 간에 세 개 공정을 쓰면 적어도 두 개는 서로 충돌했다.
"오빠야!"
은솔이 쪼르르 다가와 내 몫의 짜장라면을 담은 그릇을 건네주었다.
"힘내!"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그릇을 들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역시 시련에 도전하면서 감을 잡아야겠어."
"아, 이제 다음 층 개방하시게요?"
"그래."
내가 그동안 3층 개방을 미루고 있었던 이유는, 안톤의 일기로 시련의 제한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 보유한 3공정 이상의 모든 마법 봉인.
저번 시련과 레퍼토리 자체는 비슷해 보인다.
3공정 이상의 마법 금지가 아니라, 보유한 3공정 이상의 마법 봉인.
2공정 마법으로 싸우다가 시련 안에서 3공정 마법을 개발해 시련을 클리어하는 방식이 될 가능성이 크다.
사실 3공정 마법의 초입까지는 익혀두고 가고 싶었는데, 지금의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다음 공정 마법으로 가기 위해서는 벽을 넘기 위한 어떤 직접적인 깨달음이 필요한 것 같다.
물론 그 번뜩이는 기지는 마탑에 박혀 연습만 한다고 저절로 깨우쳐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선배니임! 또 또 그러신다!"
아차.
진보라의 잔소리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짜장라면을 입에 반쯤 넣은 채 멈춰 있었다.
"어후, 대체 어떻게 된 집중력이에요? 아니, 그 전에 이거 문제 있는 거 아녜요?"
"미안. 그냥 딴 생각 좀 했을 뿐이야."
나는 변명하듯 빠르게 중얼거리며 짜장라면을 한 입 후루룩 먹었다.
와, 미친.
엄청 맛있네.
나는 허겁지겁 짜장라면을 해치우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예습은 포기하지 뭐. 오늘부터 폭풍 레벨업이다."
"아! 시련에 들어가면 능력치가 미친 듯이 오른다면서요? 저도 같이 가고 싶어요!"
"아쉽지만 마탑주 전용이야. 다른 사람은 못 들어가더라고."
진보라가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으으, 부러워요! 전용 사냥터라니! 마탑주만 너무 복지 혜택 너무 좋은 거 아니에요?"
나는 끌끌 웃으며 팔로 뒷머리를 받쳤다.
"화살 맞아서 고슴도치가 되어보면 그런 소리 안 나올걸."
"……네?"
더 이상은 노코멘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