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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30화 (30/337)

나 혼자만 마탑주 030화

우리는 던전 탐색을 재개했다. 여전히 송장 거미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었지만 특별히 위험한 상황은 없었다. 왜냐하면…….

"멈춰!"

우리에겐 이제 은솔이 있었으니까.

그녀가 허리에 손을 올리며 귀엽게 윽박지르자, 거미들이 움찔하며 정말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 틈에 바로 내가 파이어 캐논을 퍼붓거나, 정서진이 주먹으로 머리를 깨뜨리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잘 했어, 솔아!"

진보라가 팔을 빙빙 흔들며 기뻐했다. 하지만 은솔은 어쩐지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좀비는 움직일 수 있는데, 거미는 멈추는 정도밖에 못 해."

"멈추는 거로도 충분하잖아! 저기 저 무식하게 센 오빠들이 있으니까."

무식하다니 너무하네.

아무튼, 은솔의 도움으로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어렵지 않게 물리칠 수 있었다. 그렇게 20분쯤 더 걸었을까.

-탑주. 전방에 강한 마력이 느껴집니다. 먼저 들어간 헌터 일행들의 마력도 여기서 함께 느껴집니다.

'오케이.'

우리는 회색빛 거미줄이 가득한 보스존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했다.

"푸핫!"

기껏 긴장하고 있었더니,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웃음보가 터졌다.

헌터 마종국과 부하 플레이어들은 온몸이 거미줄로 칭칭 감긴 채 방치되어 있었다.

예상했던 광경과 한 치도 틀리지 않아서 당황스러울 정도다.

"혀, 형님! 저길 좀 보십쇼!"

플레이어 한 명이 다급히 마종국을 불렀다. 체념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마종국이 우리를 발견하고는 눈을 부릅떴다.

"너, 너희들……!"

"여기서 다시 보게 되네요. 헌터 아저씨."

얼굴이 시뻘게진 마종국이 다급하게 '쉿! 쉿!' 을 외쳤다.

"조용히 해! 저 거미 자식 자고 있다고!"

마종국은 여기서 조금 떨어진 곳에 거미줄이 수북한 지점을 겁먹은 듯 바라보았다.

"아, 아무튼 잘 왔다! 지시를 어기고 여기 온 건 특별히 넘어가 줄테니까 어서 이것 좀 풀어다오!"

"싫습니다."

이제 살았다며 희희낙락하던 마종국 패밀리들의 표정이 단숨에 굳어졌다.

"뭐, 뭐라고? 지금 장난할 때냐!"

마종국이 윽박질렀지만, 도롱이처럼 칭칭 감겨 있는 주제에 그래 봐야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나는 귀를 후비며 대꾸했다.

"괜히 거기까지 갔다가 보스가 눈치채면 어쩌려고요? 공인 5급 헌터가 당했는데 우리 같은 학생들이 뭘 할 수 있겠어요."

녀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마종국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진보라는 뒤에서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 씨! 닥치고 이거 풀지 못해? 헌터 명령이다!"

"자, 애들아. 얼른 튀자, 튀어."

우리가 정말로 등을 돌려 걸어가자 얼굴이 흙빛이 된 마종국이 다급히 외쳤다.

"잠깐! 잠깐! 잠깐!"

내가 슬쩍 돌아보자, 마종국은 굴욕을 참는 듯 입술을 깨물며 말을 이었다.

"……그, 그래. 아깐 니들을 무시해서 미안했다. 사과하지. 그리고 나공인 5급 헌터, 마종국이야! 잠깐 방심해서 이렇게 된 거지, 내가 3랭크 던전에서 당할 리가 없잖아! 저놈 금방 정리하고 보상도 균등하게 분배하마."

"보스도 무섭지만, 당신도 문제죠. 풀어주면 우리한테 무슨 위해를 가할 줄 알고?"

나는 마종국이 뜨끔한 표정을 짓는 걸 놓치지 않았다.

"거기서 한번 잘 생각해 보십쇼. 우리가 목숨 걸고 당신들을 구할 이유가 뭐가 있는지."

"매, 맹세할게! 절대 아무 짓도 안한다고!"

나는 진보라를 바라보았다. 참고는 있었지만, 얼른 이 재미있는 놀이를 하고 싶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알아서 해."

내 허락이 떨어지자 그녀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

……누가 악당인지 모르겠네.

"아직 '진정성'이 보이지 않네요. 자아, 이렇게 따라 해볼래요?"

* * *

잠시 후.

마종국 패밀리는 한마음 한뜻을 모아 외치고 있었다.

"우, 우리는 보스 몬스터의 보상을 영구적으로 양도 할 것을 맹세합니다!"

"좋아요."

"우리는 아무런 위해도 가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며 던전 최초 발견자에 대한 증언을 아끼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한 분 느려요!"

"우리는……"

진보라는 어떻게 하면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 수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재시도를 시킨 끝에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 찍었죠? 서진 씨."

"예."

정서진은 이들과 만난 처음부터 휴대폰 카메라로 촬영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이 일제히 굳어졌다.

이거 좀 고소하네.

"다 놀았으면 이제 가자."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두 사람이 내 옆으로 붙었다.

"솔이는 위험하니까 여기 숨어 있어."

"웅!"

"이, 이봐! 잠깐!"

마종국이 시뻘게진 얼굴로 소리쳤다.

"이걸 풀어줘야 나도 같이 싸우지!"

"그냥 우리끼리 싸울 겁니다."

"뭐? 이 미친 놈아! 저건 평범한 3랭크 보스 몬스터가 아니야!"

물론 알고 있다.

-키리리리리리릭!

그러게 조용히 좀 하지.

저 멀리서 괴이한 울음 소리가 들리자 고신욱과 부하들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쿠 쿵! 쿵! 쿵!

털이 숭숭 난 여섯 개의 다리를 이끌고, 거대한 검은 줄무늬를 두른거미형 몬스터가 등장했다. 송장 거미도 컸지만, 저것에 비해서는 미니사이즈였다.

아라크노포비아 (Arachnophobia).

이 구역의 지배자인 보스 몬스터다.

-키리릭! 키이이이!

새로운 먹잇감이 만족스러운 지 녀석은 연신 괴이한 음성을 토해냈다.

입에서는 탁한 녹색의 액체가 뚝뚝 떨어졌다.

진보라는 질색하며 내 뒤로 숨었다.

"서진아, 시선 좀 끌어줘."

"예, 탑주님."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온 정서진이 셔츠를 홀라당 벗어 던졌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 꽉꽉 들어찬 근육들이 화가 난 듯 불끈거렸다. 그가 안경을 고쳐 쓰며 비장하게 말했다.

"자신은 없지만 온 힘을 다하도록 하죠."

-키리리리리릭!

아라크노포비아가 다가왔고 천생파이터 정서진도 앞으로 뛰어나갔다. 둘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그때, 거미가 입가에서 무수히 많은 거미줄을 쏟아냈다.

"…!"

스무 갈래도 넘게 쏟아져 나오는 거미줄의 홍수에 정서진은 급브레이크를 밟고는 정신없이 옆으로 달렸다.

'바로 저거구나.'

내가 마종국 일행이 절대로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할 거라고 장담했던 이유가 바로 저기술 때문이다. 에렌델에서의 사건을 기록한 저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거미의 입에서 쏘아진 거미줄은 하늘을 새하얗게 뒤덮었고 순식간에 기사단 스무 명의 움직임을 봉쇄했다. 나와 병사들이 도착했을 때 기사단원들은 새끼 거미들이 자신의 내장을 파먹는 모습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봐야만 했다.』

저자의 표현은 적절했다. 정서진의 회피 기술 자체는 군더더기가 없었으나, 공간을 통째로 막아버리는 거미줄의 파도에 점점 도망칠 공간이 사라지고 있었다.

정신없이 피해 다니던 정서진은 바닥의 거미줄을 밟아버렸고, 끈끈이 처럼 쭉 늘어나는 거미줄 때문에 빠져나갈 수도 없게 됐다.

결국, 멈춰 버린 그의 몸이 순식간에 거미줄에 집어 삼켜졌다.

"저거 봐라! 저거 봐! 내가 말했잖아!"

뒤에서 마종국이 꽥꽥 소리를 질러댔다.

더럽게 시끄럽네. 거미줄로 입도 좀 막아주지.

그래도 정서진이 시간을 끌어주는 동안, 나는 카피 매지컬 포지션으로 다수의 마법진들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에아, 준비됐어?'

-포착 완료. 아라크노포비아의 다리 관절을 표적으로 표시합니다.

거미의 다리 관절 부위마다 FPS 게임의 크로스헤드처럼 청색 조준선이 떠올랐다.

바로 지금이다.

<스핀 가이드 에로우>

마법진에서 쏘아져 나간 마나 화살들이 궤적을 읽을 수 없을 만큼 격렬하게 회전했다. 아라크노포비아가 어떻게든 피해 보려고 버둥거렸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퍼억!

측면에서 파고든 마나 화살이 중간의 다리 관절을 부쉈고, 놈이 박힌 화살 쪽을 보고 있을 때 반대편으로 두 개의 화살이 다리에 꽂혔다.

퍼억! 퍽! 퍽!

-키리리리리릭!

이어서 여섯 개의 화살이 모두 다리의 관절 부위에 박혔다. 녀석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뱉었다.

-다리 관절 격추 완료. 아라크노포비아의 기동력이 70% 봉쇄됐습니다.

"보라야."

"넷!"

오일 포션을 한 아름 품에 안고 대기하고 있던 진보라가 우스꽝스러운 기합을 내지르며 그 다량의 포션을 내동댕이쳤다.

말 그대로의 '내동댕이친 것'이었지만, 포션들은 그녀의 품을 떠나는 순간 가공할 만한 속도로 날아가 아라크노포비아의 몸통에 정확히 떨어졌다.

……하여간에 말도 안 되는 특성이다.

'우리도 시작하자.'

-알겠습니다.

나와 에아도 집중 상태에 들어가며 마법진을 완성해 나갔다.

<카피 매지컬 포지션>

<파이어 캐논>

화르르르르륵!

커다란 파이어 캐논이 내 머리 위에 떠올랐다.

아라크노포비아는 불을 보고는 경기를 일으키듯 몸을 뒤틀었다. 그러곤 거미줄을 쥐어 짜내려는지 꺽꺽거리기 시작했다.

이제는 속도 싸움이다.

정서진에게 이미 한바탕 거미줄을 퍼부은 녀석이 얼마나 빨리 사용할수 있을까.

촤아아아아아아아악!

젠장. 거의 딜레이 없이 새하얀 파도가 전면으로 들이닥쳤다.

거미줄은 순식간에 시야를 새하얗게 물들이며 내 몸을 뒤덮었다. 콧구멍에 좀 들어왔는지 역한 페인트냄새 같은 것이 올라왔고 입가에도 실을 씹는 느낌이 감돌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내 몸은 거미줄에 파묻혀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서, 선배님!"

"내 이럴 줄 알았다, 미친 놈들아!"

백야가 온 것처럼 거미줄만 보이는 새하얀 시야. 움직이지 못하는 몸.

뭐, 그래도.

화르르르르르르륵!

집중력만큼은 전혀 깨지지 않았다.

원격 시전으로 만든 파이어 캐논이 맹렬하게 불타오르며 거미줄 더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열기가 닿자 거미줄은 밀랍처럼 녹아 바닥에 질척거렸다.

'가라.'

화아아악!

파이어 캐논이 시커먼 연기를 남기며 곡선으로 날아갔다. 나는 손끝에 조그맣게 불길을 일으켜 손가락을 자유롭게 한 다음, 눈앞의 거미줄을 벌려 시야를 확보했다.

아라크노포비아는 다리의 관절이 나갔음에도 격하게 꿈틀거리며 피하려 하고 있었다.

'저러다 피하면 곤란한…… 어?'

그때 아라크노포비아의 움직임이 멎었다. 놈은 멍한 시선으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염구를 그냥 바라만 보고 있었다.

콰아앙!

결국, 화염구가 제대로 직격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

마법 자체의 화력은 견뎌낼 수 있겠지만, 기름에 흠뻑 젖은 몸에 불길이 옮겨붙는 게 치명적일 것이다.

살이 타들어가며 녀석이 거칠게 몸부림쳤다.

나는 이 틈에 거미줄을 태우고 빠져나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멀쩡해."

전신이 불타고 있는 보스 몬스터는 우리를 신경 쓰지도 못했다. 바닥에 뒹굴거나 벽에 몸통박치기를 하며 어떻게든 불을 끄려고 했다.

아라크노포비아뿐만 아니라 이 던전 전체의 약점은 불. 헌터까지 무력화시킬 정도로 막강한 저 거미줄 난사기술도 불만 있다면 쉽게 파훼할 수 있다.

『거미줄에 붙잡힌 우리 병사 중 하나가 실수로 횃불을 떨어뜨리자, 검으로도 잘리지 않던질긴 거미줄이 거짓말처럼 바스러졌다. 그것을 본 우리는 양손에 횃불을 들고 거대거미와 맞섰다. 마을의 등불기름을 전부 가져와 녀석의 몸에 끼얹고 불을 붙여서 쓰러뜨렸다. 위기의 순간 깨달음을 내려주신 열두 신들께 이 영광을 바친다.』

아라크노포비아의 움직임이 서서히 굼떠지더니, 결국 바닥에 축 늘어졌다.

[마력이 10 올랐습니다.]

[의지가 3 올랐습니다.]

[인내가 1 올랐습니다.]

떠오르는 플레이어 메시지를 확인하고 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멀리서 고개를 빼꼼 내민 채 지켜 보고 있던 은솔이 얼른 다시 숨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말이 돼? 저 괴물이 저렇게 간단히 잡힌다고?"

마종국은 믿기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온 부하 플레이어들은 수상쩍어하는 눈빛으로 마종국을 보고 있었다.

뭐, 대장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는 것도 당연하다. 아카데미 학생도 잡은 몬스터를 공인 헌터가 못 잡았으니까.

그만큼 플레이어의 상성과 던전에 대한 정보는 중요하다. 그리고 마탑의 대서재를 보유한 나는 그 압도적인 정보량만큼 남들보다 앞서 있다.

마법사는 유리한 상성으로 공격할수 있으니까 공략이 더 쉽기도 하고.

나는 거미줄에 파묻혀 있는 정서진을 발화마법으로 꺼내주었다.

"수고했어. 서진아."

"후후."

정서진이 검지로 안경을 슥 밀어올렸다.

"실로 전략과 전술의 승리였습니다, 탑주님."

……그래. 네 튼튼한 몸으로 미끼역할을 한 것도 전략이라면 전략이지.

그렇게 모두가 한숨 돌리고 있는 그때.

꾸드득!

꾸득!

불에 그을린 아라크노포비아의 몸통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꾸드드드드득! 뚜둑! 툭!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던 살갗이 터지고 그 안에서 액으로 흠뻑 젖은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허억!"

"저건 또 뭐야?"

마치 지네를 연상케 하는 길쭉한 몸뚱이는 굴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했다.

몸통에 난 작은 다리들은 자글자글 움직였으며, 얼굴은 갑각류의 밋밋한 그것이 아니라 동물처럼 배치된 눈, 코, 입이 기이하게 꿈틀거리는 형태였다.

꾸루루룩! 꾸룩!

이제는 죽은 거미의 몸뚱이가 부풀어 올랐다. 털과 갑각 부분이 살덩이에 파묻히며 점점 더 기이한 형상이 되어갔다.

빠직! 콰득!

주변에 있던 뼈들이 살에 파묻히며 가루가 되었다. 박동하는 심장처럼 꿈틀거리는 살덩이에서 아기의 통통한 팔다리 같은 것들이 퍽! 퍽!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그것은 살아 있는 자를 탐하듯 우리 쪽을 향해 휘휘 손짓하고 있었다.

보스전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키리리리리릭!

압도적인 위압감이 보스존 전체에 내려앉았다.

모두가 그 끔찍한 모습에 얼어붙어 있을 때. 제일 먼저 움직인 건 정서진이었다.

"선제 공격하겠습니다."

지면을 내려 앉히며 번개처럼 쏘아져 나가던 정서진의 몸뚱이가 갑자기 훙! 하는 파공음과 함께 사라졌다. 뒤이어 인지 외의 장소에서 쿵!

하고 울리는 충돌음과 함께 동굴이 격하게 흔들렸다.

뭐에 당했는지도 모를 정도의 속도.

이것은 지켜보던 모두의 전의를 정면으로 꺾어버리기에 충분했다.

"벼, 변이형 몬스터?"

"……하, 하하. 뭐야, 본체가 또 있었어? 으흐흐! 이젠 끝이야! 진짜 다 뒤질 거라고!"

부하들은 물론, 마종국 본인마저도 멘탈이 터졌는지 자포자기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한 발째."

천천히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마종국의 사나운 시선이 내게 꽂혔다.

"뭐라는 거야, 이 미친 새끼가! 네놈이 진작에 우릴 풀어주고 같이 도망쳤으면……!"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마종국을 마주 보았다.

"이제 한 발 쐈을 뿐이라고요. 남은 장탄은."

화아아아아악!

사방에서 푸른 빛이 휘몰아치며, 내 주위로 청색의 마법진들이 꽃이 개화하듯 펼쳐졌다.

도합 열아홉 발의 파이어 캐논.

경악하는 마종국의 표정이 볼만 했다.

-약점을 좌표로 표시하겠습니다.

지네 괴물의 목 부위에 푸른 표식이 떠올랐다. 에아의 명중 보정만 있다면 거리낄 게 없다.

생태계 구축을 마친 마나들이 얼른 파티를 시작해 달라고 난리였다. 나는 마나의 외침을 들으며 발동 트리거에 손을 올렸다.

'일제 사격.'

내가 주먹을 움켜쥐는 것을 신호로, 열아홉 개의 화염구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지네 괴물의 목을 노리고 날아갔다.

이어서 2공정 화염계열아홉 발분량의 마법이 맹렬한 대폭발을 일으켰다.

폭발의 빛은 동굴을 한 순간 대낮처럼 훤히 밝혔다.

"크윽!"

"꺄아악!"

강렬한 후폭풍에 모두가 바닥에 엎드렸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동굴 천장에서 파편들이 후두둑 떨어졌다.

그리고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마종국의 앞으로.

쿠우우웅!

목이 타들어 간 지네 괴물의 머리통이 떨어졌다.

이번에도, 단 한 방이면 충분했다.

[파이어 캐논 마법진의 숙련도가 70%에 도달했습니다.]

[마력이 10 올랐습니다.]

[집중이 3 올랐습니다.]

[지능이 1 올랐습니다.]

참았던 호흡을 내쉬며 마나를 갈무리했다.

-무리하지 않기로 하셨지 않습니까, 탑주.

새침한 에아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웃었다.

'그래서 어젯밤에 밤샘해서 숙련도 맞춰놨잖아.'

파이어 캐논의 숙련도 훈련. 이번 던전 공략을 위해 준비한 것이다.

사실 이거 때문에 한숨도 못 잤다.

"고생하셨어요! 선배님!"

"그래, 수고했어."

모두를 옥죄던 긴장감이 한 번에 증발하며 동굴에는 묘한 여운만이 남았다.

"역시 탑주님이십니다."

어느새 정서진도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걸어와 우리와 합류했다. 완전히 넋이 나간 마종국 일행과는 달리 우리는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사냥을 마무리했다.

나는 죽은 보스 몬스터 곁으로 다가갔다. 불에 탄 시체를 조금 뒤적거리다가 순도 높은 마정석을 챙겼다. 시체는 협회 직원들에게 회수하도록 하면 될 듯했다.

"다 됐어. 돌아가자."

"네에!"

"아니, 잠깐만! 우, 우리는?"

다급히 묻는 마종국의 말에, 진보라가 싱긋 웃으며 손가락을 흔들었다.

"걱정 마세용! 협회 직원들 부른 지 한참 됐으니 금방 올 테니까요. 그때까지 벌 받는다고 생각해요."

"자, 잠깐만! 니들지, 진짜 가는 건 아니겠지? 어어? 이봐아아아!"

다 큰 아저씨가 엄살은.

오늘은 왠지 기분 좋은 꿈을 꿀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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