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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8화 (28/337)

나 혼자만 마탑주 028화

구출 작업을 재개했다.

나는 몇 가지 가설을 세우고 좀비들을 상대해 보았다. 어느 녀석들이든 처음에 나를 발견하고 뛰어들어오는 건 동일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공격을 주저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고, 할렘가의 다른 주민들로 타깃을 바꾸어 달려갔다.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플레이어라서 피하는 걸까? 아니면 우리가 외부인이라서?

"에아. 혹시 이런 현상에 대한 기록이 있어?"

-저도 계속 찾아 보고는 있습니다만, 언데드들이란 생자들에게 맹목적인 증오를 가진 존재. 공격할 대상을 가린다는 건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금기의 땅 사건에서도 이런 기록은 없었습니다.

"으음, 알겠어. 계속 조사해 줘."

-예, 탑주.

그때 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들리며 정서진의 전화가 왔다.

-탑주님. 이 근방의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켰습니다.

"수고했어. 그쪽으로 갈게."

나는 좀비가 득실거리는 도시에서 빠져나와 임시 대피처 쪽으로 이동했다.

대피처에서는 급하게 도시에서 탈출한 사람들이 몸을 추스르고 있었다.

다들 입고 있는 옷가지도 허름했고, 영양 상태 또한 나빠 보였다.

정서진이 알코올에 취해 쓰러진 아저씨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있었다.

진보라는 예전에 용암굴에서 썼던 천막을 펼치고 간이 의무대를 열었다. 아직도 '열기 저항 장비 30%OFF'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저, 저기 좀비! 좀비가……!"

"괜찮아요. 통제구역의 몬스터들은 구역 밖으로 나오지 않으니까요."

진보라는 부상자들을 안심시키며 긴급조치를 취하고 있었다.

좀비에게 긁히거나 물리는 사람들, 심지어는 살점이 뭉텅 떨어져 나간 사람도 있었다.

확실히 우리가 아닌 이곳 주민들을 제대로 노리는 것 같은데.

"보라야. 구조대는?"

그녀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연락은 한참 전에 했는데 제때 와줄지 모르겠네요. 비보호 구역으로 진입해야 하는 상황이라 협회의 헌터 지원을 기다리는 것 같아요."

"……끙."

명색이 구조대란 것들이 제 몸 사리기에 급급했다. 자체 헌터를 운용하고 있는 조직이 협회 지원은 무슨.

뭐, 할렘가 주민들을 구해봐야 떨어지는 떡도 없을 테고, 협회가 도착해서 상황 정리하면 그제야 나타나서 생색이나 낼 공산이 높았다.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우리가 부상자들을 치료하며 한숨 돌리고 있는 그때, 할렘가의 어린 소년이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혀, 형들 헌터죠? 제발 도와주세요!"

울먹이는 소년의 표정을 보니 뭔가 일이 터졌다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진보라가 쪼그려 앉아 소년과 시선을 맞추고 상냥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니?"

"은솔이! 은솔이가 없어요! 아직 도시 안에 갇혀 있을 거예요!"

정서진이 안경을 고쳐 쓰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아직 구조되지 못한 사람들이 더 있는 것 같습니다. 좀비에게 당했을 수도 있고, 혹은 어딘가에 모여서 숨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한번 가보자."

안정적인 구조 활동은 협회로부터 사냥터 운영권을 확실히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필요했다.

우리는 다시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캬아아아악!

-크르륵!

도시 안으로 진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길이 막혔다. 좀비들이 앞에 쫙 깔려 있었다.

"수가 너무 많아. 그물에 걸린 애들 좀 치우고 가자."

"바로 이때를 기다렸습니다!"

그동안은 구조 활동이 우선시된 상황이라 이래저래 조심했지만, 이제부터 진짜 제대로 된 사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진보라는 방송 스피커가 설치된 포인트로 이동했다.

정서진이 좀비들의 시선을 끌어주는 사이, 우리는 건물 안으로 신속히 들어왔다.

적당히 4층으로 올라가 창밖을 내려다보자 스피커가 줄에 연결되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고, 그 아래에는 우글거리는 좀비들이 벽을 치거나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제 주변에 사람도 없으니 조심할 것도 없다. 나는 마법진을 전개했다.

<파이어 캐논>

화르륵! 마법진에서 불꽃이 넘실거리며 피어올랐다. 아이스 자벨린과 같은 2공정 화염계 마법이다.

"지원 들어갑니다!"

진보라가 아공간에서 투명한 액체가 담긴 포션 병을 꺼내 좀비들을 향해 골고루 던져놓았다.

"오일 포션이에요! 마나 엘릭서에 몬스터 기름을 섞어 만들었죠."

"오, 하루 만에 그런 걸 개발했어?"

"헤헤, 관리자 자격도 받았는데 밥값은 해야죠."

서재의 정보에 의하면 저 좀비들은 신성 마법과 불에 약하다.

그래서 우리는 이번 던전 공략을 위해 화염계열 수단을 잔뜩 마련해놓은 상태다.

나는 캐스팅을 마무리한 다음 좀비들을 향해 파이어 캐논을 조준했다.

까닥.

내가 손짓을 하는 것을 신호로, 화염구가 쏜살같이 날아가 좀비 밭에 폭발했다.

화르르르르륵!

기름이 듬뿍 처져 있는 좀비 떼들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나는 안전한 4층에서 계속해서 파이어 캐논을 발사했고 괴로움에 발버둥 치는 좀비들의 몸이 새까맣게 그을려갔다.

[가속 시전 특성이 Lv.5에 도달했습니다.]

[마력이 3 올랐습니다.]

[지능이 1 올랐습니다.]

"와아아아! 장난 아닌데요?"

진보라도 플레이어 메시지를 봤는지 환호성을 내질렀다.

"이거야말로 몰이 사냥의 묘미네요! 저 많은 3랭크 몬스터를 한꺼번에!"

동의한다. 나도 의욕이 확 생기는 참이다.

"다음 장소로 가자."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네 군데의 스피커 포인트를 순회공연하며 좀비들을 불살랐다.

시련급의 성장치까지는 아니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상당히 괜찮게 능력치가 올랐다.

이런 게 바로 제대로 꿀 빠는 거지.

쭉쭉 올라가는 마력 능력치와 늘어난 마나 통이 느껴지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보스전 치르기 전에 몸보신 제대로 하고 가는구나.

-탑주. 근처에 생명 반응이 느껴집니다.

"오케이. 안내해 줘."

사냥을 마치고 좀비의 수가 줄어드니 구조작업도 훨씬 편해졌다. 우리는 편의점에 갇혀 있던 민간인 다섯명을 추가로 구해냈다.

"이렇게 감사할 때가……!"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때 정서진이 앞으로 나와 말했다.

"혹시 여기서 '은솔'이라는 소녀에 대해 아시는 분 계십니까?"

정서진의 물음에 구조자들은 서로 은밀한 눈빛을 교환했다.

"저희도 잘……"

"모, 모르겠네요."

흐음, 뭔가 반웅이 수상쩍다. 이 동네 사람들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은데.

"일단 같이 안전지대로 가시죠."

우리가 구조자들을 데리고 돌아가려는데 다시 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탑주. 생명 반응이 느껴집니다.

'주민들이야?'

-아닙니다. 마력 반응이 함께 느껴지는 것을 보니 플레이어들입니다.

'뭐라고?'

우리 말고 다른 플레이어들이 여기 왔단 건가? 우리는 잠시 골목에서 대기했고, 잠시 후 한 무리의 사람들과 마주칠 수 있었다.

"뭐야, 너희는?"

어깨가 쩍 벌어진 커다란 덩치의 남자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그의 뒤에는 플레이어로 보이는 세 명의 남자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저 남자는 꽤 강한데.

실력 있는 유망주거나, 5급 초짜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다.

"아카데미 파견 생도입니다. 지금은 인명 구조 중이고요."

남자가 피식 웃었다.

"그래, 수고 한다."

"그쪽은 어딜 가십니까?"

"학생 따위에게 시시콜콜 용무를 밝혀야 하나?"

……그렇게 나오시겠다?

사실 안 물어봐도 뻔하다. 이 녀석들, 보스존에 있는 보스 몬스터를 선수 칠 생각이다.

"저기요."

진보라가 나섰다.

"우리가 최초 발견자예요. 여기 던전 공략에 대한 우선권이 있다고요."

"아, 그게 니들이었어? 협회에 전화하니까 아쉽게도 최초 발견자가 있다고 하던데."

남자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 우리 얼굴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에 고민이 감도는 것을 느끼며 나는 싸한 느낌을 받았다.

'위험한데. 설마 우릴 치울 생각을 하고 있나?'

최초 발견자가 사라지면 저 남자가 최초 발견자가 된다. 워낙 헌터계가 뒤숭숭하다 보니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당장 현실적으로는 힘들 것이라 본다. 저 남자가 최초 발견자가 되기 위해 치워야 하는 인원은 다음과 같다.

협회장의 보호를 받는 헌터 아카데미 학생 둘에, 유닉스 그룹의 삼남.

그리고 민간인 다섯 명까지.

완벽을 위해선 저 뒤에 있는 셋까지 깔끔하게 처치하거나 설득해야 할 거고, 조금 있으면 이곳으로 협회 직원들까지 들이닥칠 것이다.

여기가 던전 안이라면 모를까, 짧은 시간 내에이 많은 사람들을 처치하고 뒷정리까지 하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일 것이다.

내 생각대로, 남자는 우리 뒤쪽의 피난민들까지 바라보더니 쯧 하고 혀를 찼다.

대신 속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헌터공인증을 꺼내 우리에게 흔들어 보였다.

"공인 5급 헌터, 마종국이다."

"…!"

이번엔 진보라의 표정이 굳어졌다.

"프로 헌터가 부여받는 비상시 현장 지휘권에 대해서는 들어봤겠지? 여긴 학생들이 나설 자리가 아니야. 신속히 이 도시에서 빠져나가서 차후 지시를 기다리도록."

"뭐, 뭐라고요?"

마종국의 의도는 명백했다. 우리를 보스존에 들어가지도 못하게 할 셈이다.

"본 지역을 계속 방치할 시에 인명피해가 커질 것으로 판단, 우리 라피드 길드가 던전을 공략하겠다는 거다."

진보라가 발끈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인명피해 우려라고 하셨어요? 그럼 여기 있는 인원들 구출부터 하셔야겠네요!"

마종국이 우리 뒤에서 떨고 있는 할렘가 사람들을 보더니 픽 웃었다.

"학생은 그냥 헌터의 지시에 따라. 니들이 현장에 대해 뭘 안다고 지껄여?"

"그건 우리가 할 소리……!"

"보라야."

나는 진보라의 어깨를 짚으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뭐, 알겠습니다. 구조자들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편히 볼일 보세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가자."

"서, 선배님!"

"헌터 지시라잖냐."

나는 일행들과 할렘가 사람들을 데리고 빠져나왔다. 뒤에서 마종국과 파티원들의 낄낄거리는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진보라는 분한 듯 이를 갈았다.

"다들 화도 안 나요? 저건 순 억지잖아요!"

"큰 그림을 보십시오. 진보라 씨."

정서진이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했다.

"우리는 이미 최초 신고자가 됐고, 조기의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벌어들일 수익에 비하면 보스 몬스터는 아무것도 아니죠. 차라리 저들의 협력을 받아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저 사람들 하는 짓이 화나잖아요! 명색이 프로 헌터면서 쪼잔하게…… 안 그래요?"

"걱정 마."

내가 음침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저 새끼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던전 못 깨."

"네? 그걸 어떻게……"

나는 푸르스름한 오른쪽 눈을 가리켰다.

"내가 상태창 볼 수 있는 거 잊었어? 장담해. 저 녀석들 조합으로는 안돼."

나는 던전과 출몰 몬스터에 대한 정보를 모두 꿰차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따져본 결과 아무리 헌터가 있는 파티라고 한들 클리어할 수 없을 것이다.

3랭크 보스전이라서 잔뜩 각오하고 왔는데 이거 수고를 덜었다.

"상황을 최대한 이용하자. 어부지리를 한번 노려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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