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27화
나는 오래된 폐허 같은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에 들어와 있었다.
아직 던전화가 진행되진 않은 것 같지만, 이 도시는 그 자체로도 여러 가지 의미에서 던전스러웠다.
쓰레기가 지천에 널려 있는 지저분한 골목길을 걷다 보면 드물게 사람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기 잃은 눈동자, 지독한 술 냄새, 비틀거리며 걸어가던 중년 남성은 벽에 부딪혀 넘어지자 귀찮다는 듯 그 자리에 드러누워 잠들었다.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거미줄이 낀 마루에 앉아 담배를 뻑뻑 피우는 여자가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거적때기로 대충 몸을 감싸고, 시꺼멓게 때가 낀 맨다리를 드러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은 거칠고 엉망이었다.
"외부인?"
하고 묻는다. 내가 돌아보자 그녀는 히죽 웃으며 손가락 하나를 펼친다.
"만 원."
뭔가 속에서 구역질 같은 게 올라올 것 같아서,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어서 도시 밖으로 대피하세요. 곧 몬스터들이 나타날 겁니다."
"9천 원."
…… 역시나 대화의 여지는 없는 듯했다.
내가 본 이 도시의 사람들 대부분이 이랬다.
우리가 아무리 이 사태에 대해 열심히 알려도, 삶에 대한 집착조차 없어 보이는 이들을 말로만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직접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계속 이런 식이겠지.
내가 무시하고 걸어가자 여자가 손가락을 들며 말했다.
"이거 아니야? 도시 사람이 여기까지 오는 이유는 하나뿐인데."
"……."
"아니면 혹시 헌터? 몬스터 문제라면 걱정 마. 그 꼬맹이가 처리해 줄테니까."
꼬맹이?
무슨 소린가 싶어서 돌아보는데, 술 고린내가 나는 사람들이 이쪽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괜히 주민들과 시비가 트이면 좋을 게 없었기에 나는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더러운 골목길을 거닐다가 적당한 높이의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곳으로 올라갔다.
끼이익. 끼이익. 계단을 오를 때마다 단조로운 잡음이 귀를 간질였다.
2층에서는 지독한 악취를 풍기는 남자 두 명이 널브러져 잠든 모습이 보였다. 화투가 어지럽게 널려 있고, 소주병들이 발에 챌 정도로 굴러다녔다.
나는 계속 올라가 건물의 4층까지 왔다.
여긴 아무도 없었다. 주머니에서 스피커를 꺼내 줄을 연결해 창가에 매달아놓은 다음 스마트폰을 귀에댔다.
"이쪽은 다 끝났어."
-저희도 막 끝냈습니다, 탑주님.
"그럼 자리에서 대기해. 여기 치안 최악인 것 같으니까 보라 잘 챙기고."
-어머, 선배니임! 지금 저 걱정해주시는 거예요?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른 나는 반쯤 망가진 낡은 의자에 앉아 가볍게 숨을 돌렸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피곤했다.
멍하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도시의 분위기가 병들어서 그런가, 들어와 있는 나조차도 같이 힘이 빠지는 듯한 느낌이다.
그렇게 휴식을 취하면서 가만히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진짜 가지가지 하네.'
이제는 아예 휘청거리다 못해 바닥을 기어 다니는 사람이 보였다. 여기 와서 나름대로 익숙한 장면이라 그러려니 넘어가려는데.
'잠깐.'
뭔가 이상했다. 그는 발작을 일으키듯 허리를 격하게 비틀며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사람이 아니었다.
-캬아아악!
-커어어!
'시작됐다.'
나는 마력을 끌어 올리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도시 전역에서 사람들의 비명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부우우우우웅!
거친 배기음을 내뿜으며 고급 외제차 한 대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조수석의 남자는 열린 차창으로 한 손을 뺀 채, 다른 한 손으로는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종국.
공인 5급 헌터다.
다만 오늘 마종국의 심기는 좋지 않았다. 담배 연기를 크게 내뿜은 그가 뒷좌석을 힐긋 바라보았다.
송사리 신인 세 명.
올해 공인 헌터 시험 합격을 노리는 길드의 유망주들이다.
'근데 왜 내가 애 보기 담당이냐고.'
다른 동료들은 타 길드와 연합해서 레이드 작전에 참여하고 있다는데, 자신은 가면허 애들 데리고 2랭크 던전이나 다녀야 한다니. 팔자 한번 기구했다.
마종국은 태우던 담배를 창밖으로 날려 버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걸리지?"
운전사는 나이 지긋한 중년이었지만 마종석은 그를 조금도 존중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운전사 또한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앞으로 세 시간이면 도착합니다."
"아 씨, 더럽게 멀어. 진짜."
뒷좌석의 신인들이 흠칫하며 마종국의 눈치를 보았다.
이렇게 하루를 그냥 날려 버려야 한다니. 마종국은 짜증이 치밀었다.
홧김에 저 망할 유망주들을 좀 분질러 놓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고.
지금 하는 애 보기 일도 길드에서 내린 일종의 처벌 비슷한 것이었다.
이번에는 사고 치지 말고 무조건 참아야만 했다.
"뭐야?"
그때 마종국의 시선에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우르르 고속도로 위로 올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세워봐."
끼이이익!
차가 매끄럽게 멈추자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 들었다.
"사, 살려주세요! 제발 우리 좀 태워주세요!"
"몬스터! 몬스터가……"
마종국은 유리창을 내리고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아, 무슨 일인지 설명을 해야 차에 태워주든 몬스터를 잡아주든 할 거 아니오."
"몬스터를 잡아준다고? 호, 혹시……"
바로 이 순간이 마종국이 가장 즐기는 순간이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속주머니에서 헌터 공인증을 꺼내 내밀었다.
"5급 공인 헌터, 마종국이오."
"오오! 진짜 헌터다!"
"제발 도와주세요! 마을 안에 좀비들이 나타났어요!"
"좀비라고? 어느 마을이요?"
마종국은 사람들에게 자세한 주소를 듣고는 씩 웃었다.
"오버하지 말고 그냥 가쇼. 그쪽 동네가 던전화된 것 같은데, 걔들은 자기 구역 밖으로 안 나와."
마종국은 바로 창문을 올려 버리고는 운전기사에게 출발지시를 내렸다.
"이야, 이게 웬 떡이야. 아저씨, 아까 들은 주소 네비 찍고 갑시다."
운전기사가 놀란 눈으로 그를 보았다.
"하, 하지만 길드 측 일정이……. 모두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요."
그 말에 마종국이 한숨을 푹 쉬더니 다리를 올렸다.
와장창!
운전석 옆 창이 발길질 한 번에 깨져 나갔다. 운전기사는 기겁하며 몸을 비틀었다.
"……허, 허억!"
"아 씨. 운전대 똑바로 잡아 운전대! 아저씨, 내가 누구라고?"
"고, 공인 5급 헌터 마종국……"
"이쪽 계열에서 일하는 건 처음이지? 원래 헌터라는 직업이 변수의 연속이야. 던전이 나타났다? 그럼 군말 없이 그쪽으로 가면 되는 거야. 한 번만 더 내 말에 토 달았다간……"
결국, 운전사는 마종국의 지시대로 방향을 틀었다. 마종국은 히죽거리며 창가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기댔다.
'이게 웬 떡이야, 잘 하면 한몫 제대로 챙기겠는데?'
* * *
한 도시가 '던전화'가 되는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어디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몬스터들이 사방에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 몬스터들은 정서진의 정보대로 '좀비'였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외형이다. 신체 전반에 광범위하게 펼쳐진 끔찍한 염증과 썩어 문드러진 살점, 눈을 까뒤집고 창백한 팔을 뻗으며 괴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나는 정신없이 좀비들을 막아내며 할렘가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악!"
마침 내 앞에서도 한 노숙자가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고 있었다. 뒤따라온 좀비가 노숙자의 다리를 붙잡아 넘어뜨리더니 허벅지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레피드 에로우>
허공에서 쏘아져 나간 황금빛 화살이 좀비의 머리통에 연이어 꽂혔다.
그사이에 노숙자가 허겁지겁 빠져나왔다.
"저쪽입니다! 도시 밖으로 대피하세요!"
노숙자는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부리나케 도망쳤다.
안전하게 도망친 것을 확인한 나는 시선을 돌렸다. 제법 치명타를 먹였다고 생각했는데, 좀비는 머리를 맞았음에도 계속해서 성큼성큼 걷고 있었다.
3랭크라 그런지 더럽게 튼튼하긴 하네.
나는 레피드 에로우로 좀비를 견제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쪽 골목에서 거의 십수 마리의 좀비들이 우르르 몰려오고 있었다.
일단 뒤로 후퇴하면서 정서진에게 연락했다.
"시작해."
내 신호에 맞춰 도시 곳곳에서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비상 상황. 비상 상황입니다! 몬스터가 출몰했습니다. 비상구를 통하여 신속히 근처의 피난시설로 대피하시길 바랍니다!
사이렌 소리가 도시를 뒤덮었다.
건물 곳곳에 설치해 둔 스피커를 통해 헌터 홈페이지에서 다운로드받은 경고 방송을 틀어둔 것이다.
아직 집안에 있거나 잠들어 있는 사람들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키이이이익!
-캬아아악!
소리에 민감한 좀비들을 빈 건물로 몰아넣기 위한 한 수다.
날 뒤쫓던 몇몇 좀비들이 경보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몰려가자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선배님! 이쪽은 다 끝났어요!"
반대 방향을 맡았던 진보라가 손을 흔들며 뛰어왔다.
"그래, 수고했……"
순간 내 동공이 급격히 커졌다. 오른편 돌담이 와르르 무너지더니 좀비가 두 팔 벌리고 뛰쳐나왔다.
그녀는 너무 놀란 나머지 동작이 얼어붙어 있었다.
'……너무 멀어!'
쉴드를 써주려고 했지만 '원격 시전'의 거리가 닿지 않았다. 쩍 벌어진 좀비의 아가리가 그녀의 목덜미로 향하려는 순간.
우뚝 하고.
목덜미 바로 앞에서 움직임이 멈췄다.
'뭐야?'
과부하가 걸린 듯 고개를 마구 흔들어대던 좀비가 갑자기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곤 진보라는 내버려 둔 채 그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보라야! 괜찮아?"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던 진보라가 퍼뜩 소리쳤다.
"전 괜찮아요! 그보다 저기 주민이……."
진보라를 공격하려던 좀비는 목표를 바꾸어 할렘가 주민을 노리고 있었다. 나는 서둘러 공격마법을 영창했다.
<아이스 자벨린>
최고속도로 전개된 얼음 창이 좀비의 다리를 꿰뚫고 바닥에 박혔다.
좀비의 움직임을 봉쇄한 후 쓰러져 있는 주민에게 외쳤다.
"이 틈에 빨리 피해요!"
"가, 감사합니다!"
주민이 도망치고, 나는 다리가 얼어붙은 좀비에게 다가갔다. 입을 쩍 벌리며 나를 물려고 하고 있다.
쉴드를 펼쳐서 앞을 가로막자, 녀석은 지능이 그리 높지 않은지 발버둥을 치며 쉴드에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냥 언데드 맞는데. 아깐 뭐였던거야?'
한숨을 쉰 나는 그대로 오른팔에 착용한 건틀릿으로 녀석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콰직!
청색 불똥이 튀며 좀비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일어나지 못하게 발로 짓밟으며, 날붙이로 쓸 겸 가져온 플레이어 전용 단검을 목에 쑤셔 박았다.
으득. 으드득.
체중을 실어 칼을 비틀자 펄떡거리던 사지의 움직임이 조금씩 멎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여러 몬스터들을 잡아봤지만, 역시 사람 비슷하게 생긴 것의 숨통을 끊는 건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선배님!"
진보라가 다가왔다. 나는 단검을 뽑아 진액을 바닥에 닦고는 다시 허리춤에 집어넣었다.
"다행이다. 다친 곳은 없어?"
"네, 고마워요."
많이 놀랐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씩씩하게 웃어 보이며 옷을 털고 있었다.
"그보다 이게 어떻게 된 걸까요? 좀비가 전 내버려 두고 여기 주민을 공격한 거 맞죠?"
"……내 눈에도 그렇게 보였는데."
언데드가 사람을 가려서 공격한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본다.
뭐,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지.
"좀비들이 주민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는 거라면 그것도 문제야. 계속 싸울 수 있겠어?"
"물론이죠!"
옆 건물에서 찢어질 듯한 비명이 들렸다. 뒤이어 우당탕하고 가구 따위가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좀비 특유의 날카로운 울음 소리가 났다.
"서두르자."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