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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6화 (26/337)

나 혼자만 마탑주 026화

"안녕하세요! 선배님!"

"오셨습니까, 탑주님."

아카데미 수업을 마치고 마탑에 복귀했다.

진보라와 정서진은 벌써 탑에 와 있었다. 진보라는 솥 앞에 쪼그려앉아 포션 레시피를 시험해 보고 있었고, 정서진은 서재에서 가져온 책들을 쭉 펼쳐놓고 키보드를 두들기는 중이었다.

"탑주님. 중대 보고 사항이 있습니다."

"중대 보고?"

내 시선이 정서진이 펼쳐놓은 책쪽으로 향했다.

"이거 에렌델 대륙의 역사서잖아. 뭔가 알아낸 거야?"

"예. 죄송하지만 잠시 이쪽으로 와주시겠습니까?"

정서진이 노트북 화면을 내가 보기 좋도록 세웠다. 진보라도 궁금했는지 힐긋거리며 다가왔고 어느샌가 에아도 허공에서 나타나 합류했다.

"본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에렌델대륙에서 일어난 재앙으로 지구에서 곧 벌어질 미래의 재앙들을 부분적으로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오! 그 가설이 진짜란 말이야?"

"100% 확정은 아닙니다만 한 가지 예시를 보여드리죠."

정서진이 노트북을 조작하자 무수히 많은 숫자와 버튼이 있는 전문가 용 계산 프로그램이 떠올랐다.

"지금 보고 계신 숫자는 우리 마탑의 '마나 좌표'입니다. 혹시 마나 좌표라는 개념을 알고 계십니까?"

"당연히 알지."

스핀 가이드 에로우가 마나 좌표를 이용하는 방식이라 잘 알고 있었다.

마법은 위치를 지정할 때 지구의 좌표가 아닌 이 마나 좌표를 사용했다.

"그럼 이야기가 빨라지겠군요. 여기를 봐주십시오."

정서진이 책의 한 구절 쪽으로 손을 뻗었다. 에렌델 대륙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수록된 서적이었는데, 사건의 발생 위치가 좌표로 적혀 있었다.

"에렌델에서도 그들만의 독자적인 좌표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제국 공간마법 연구회'에서 고안한 위치 계산식을 이용해 마나 좌표로 변경해 보겠습니다."

정서진은 사건 발생 좌표를 써놓고, 계산 프로그램을 돌려 새로운 숫자로 바꾸었다.

"이제 이 변경된 마나 좌표를 다시 지구의 좌표로 바꿔보겠습니다."

에렌델 대륙의 좌표를 마나 좌표로 변경, 그리고 마나 좌표를 지구의 좌표로 변경.

이것저것 수식 프로그램으로 변수를 입력하던 정서진이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새로운 숫자가 떠올랐다.

"……그래서 이게 어떻다는 거죠?"

진보라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다 됐습니다. 이제 이 좌표가 가리키는 위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정서진이 세계 지도 앱을 띄운 다음 좌표를 입력했다. 그러자 화면이 확 바뀌며 지구본 어딘가에 위치가 표시되었다.

"여기가 어딘데?"

"호주의 멜버른 입니다."

멜버른? 멜버른이라면 바포메트 사태가 일어났던 바로 그 지역이다.

"아, 잠깐! 네가 좌표를 입력했던 사건이 설마……!"

내 시선이 재빨리 역사서 쪽으로 향했다.

"예. 에렌델 대륙에 있었던, 알란 드왕국의 바포메트 사태입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알란 드 왕국의 바포메트 사태.

그리고 호주 멜버른의 바포메트 사태.

두 사건의 마나 좌표가 동일했던 것이다.

"……우와아. 소름 소름."

진보라가 자기 팔을 스르륵 쓸었다.

"물론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에렌델에서 일어난 모든 재앙들이 이 법칙을 따르는 건 아닙니다."

정서진은 내가 오기 전에 미리 작업해 뒀던 결과물을 공개했다.

붉은 글씨로 '불일치'라는 창이 마구 떠올라 있었다.'일치'라고 적혀 있는 푸른 글씨는 전체의 10% 정도에 불과했다.

"마나 좌표만으로 정확히 계산이 가능한 건은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뭔가 다른 규칙이나 변수가 들어갔겠죠. 계속 연구해 보겠습니다."

"……너 지능캐가 맞긴 맞구나."

"물론입니다. 이쪽이 제 장르죠."

바로 이런 칭찬을 듣고 싶었는지 정서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흥, 셔츠만 벗으면 우락부락 근육남으로 변신하는 주제에."

진보라가 조그만 목소리로 툴툴댔지만, 그녀도 이번 만큼은 정서진의 공을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전체의 10%라고 해도, 지구에 닥칠 미래를 조금이라도 알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메리트였으니까.

"이 좌표법을 사용해 지구에서 일어날 재앙 몇 가지를 예측해 보았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최근에 일어날 일이며, 바포메트 사건의 요소들과 가장 일치율이 높은 건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정서진은 에렌델 대륙의 역사서를 가져와서 미리 포스트잇을 붙여둔 페이지로 넘겼다.

그곳엔 삽화 그림이 있었다. 으스스한 묘비가 중앙에 있고, 그 주위의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얼굴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살벌하네. 이건 무슨 사건인데?"

"지노스 지방의 언데드 출현 사건입니다. 한적한 시골 마을 사람들이 좀비가 되어버린 대규모 감염 사건이었죠."

나는 직접 책의 내용을 읽어보았다.

언데드들의 수가 점점 많아지고, 마을의 자경단까지 전멸하자 교황청에서는 성당 기사단을 파견하기에 이른다. 기사단은 마을의 모든 언데드들을 소탕하는데 성공했으나, 이땅의 언데드들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결국, 교황청에서는 이 마을의 완전 폐쇄를 선언하고 '금기'지역으로 지정했다. 언데드들도 감염지역 밖으로는 나오지 않았다.

"……이거 설마?"

"눈치채셨습니까? 지구의 '통제구역'과 유사한 현상입니다."

정서진은 이미 펼쳐놓은 몬스터 도감을 가리켰다.

"출현 몬스터는 딱 이 두 종뿐입니다."

-3랭크 좀비. 언데드 타입 몬스터. 불과 신성 마법에 취약.

-3랭크 송장 거미. 언데드 타입 몬스터. 불과 신성 마법에 취약.

"……흐흐흐."

나도 모르게 음침한 웃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이거 돈 냄새 나지 않냐?"

"후후! 역시 탑주님이십니다."

우리가 계속 웃기만 하자 진보라는 '이 남자들이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두 분 다 뭐 잘못 먹었어요? 좀비가 나오는데 웬 돈 냄새?"

"생각해 보십시오. 저쪽에서야 '금기의 땅'이겠지만, 우리 쪽에서는 금싸라기 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입술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고민하던 진보라의 눈이 일순간 커졌다.

"설마…… 저길 사냥터로 만들려고요?"

통제구역은 사냥터가 되지 못한 몬스터들의 구역이다.

사냥터가 되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출몰하는 몬스터의 종류가 일정해야하고, 위험 몬스터가 출몰하지 않아 야하며, 무엇보다 사냥했을 때 부산물이나 마정석을 통한 수익이 있어야만 한다.

좀비와 송장 거미가 나오는 저 땅은 여러모로 사냥터가 될 조건이 충분해 보인다.

그리고 협회 규정상, 사냥터나 던전은 최초 발견자가 소유권을 가지게 된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과 장소를 알 수 있으니, 누구보다 저 땅의 소유권을 빠르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국내에서 3랭크 사냥터는 드뭅니다. 우리가 저곳을 차지해서 운영할 수 있다면 마탑의 재정 상황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직원 사냥터 개념으로 쓸 수도 있겠고."

흥분한 나는 테이블을 탁 내려치며 몸을 일으켰다.

"큰일을 해줬어. 서진아."

"감사합니다."

오늘은 저 재수 없는 미소도 기쁜 마음으로 넘어가 줄 수 있다. 역시 연봉 값을 한다니까.

"위치는?"

정서진이 지도 프로그램을 열고 좌표를 입력했다.

"여기군요."

"경기도 파주라…… 위치도 괜찮네. 재앙 발생일은?"

"바로 내일입니다."

시간이 그리 여유롭지 않았다. 나는 모두를 보며 말했다.

"다들 준비해. 내일 바로 현장으로 갈 거야."

* * *

그렇게 다음 날 오후.

우리는 경기도 파주로 넘어왔다.

"도착했습니다."

정서진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차에서 내려서 주위를 둘러보니 커다란 저수지가 있는 동네였다.

지도에 나오는 위치상 완전히 시골인 줄 알았는데, 콘크리트 건물과 각종 편의시설들이 쫙 깔린 어엿한 주택단지였다.

물론 대부분 폐건물이거나 텅 비어 있었다. 내가 자주 드나드는 마탑근처의 상계동도 비슷한 분위기였지만 이렇게까지 인적이 없지는 않았다.

"어머, 그래도 사람이 살긴 사는 모양인데요?"

진보라가 바닥에 굴러다니는 막걸리 통을 살피며 말했다.

"유통기한이 얼마 안 됐어요."

"할렘가 사람들이 있겠지."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라는 천적의 등장으로, 인류의 생활양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도시 같은 인구밀집 지역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변두리나 시골쪽은 몬스터 문제가 심각했다.

현실적으로 헌터 협회에서 대한민국의 모든 영토를 100% 지키는 건 불가능했다. 몬스터들은 전국에서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데, 시골에 사는 마을 사람 몇 명 지키겠다고 헌터 같은 고급 인력을 항시 배치할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적정 인구수를 충족하지 못한 곳들은 국토교통부에서 '비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 통제구역이나, 바로 이런 유령 도시들이 그랬다.

"의외군요. 이 정도 도시 규모라면 헌터 지원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정서진이 도시를 둘러보며 말했다.

"사람 심리의 문제지."

내가 말을 받았다.

"헌터가 있다고 한들 모든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불안에 떨바엔 다들 안전한 대도시로 떠나는 거야."

"그러면 선배님. 여기 사는 사람들은 왜 큰 도시를 두고 이런 위험한 곳에서 지내는 걸까요?"

진보라의 물음에 나는 팔짱을 꼈다.

"뭐, 전부 먹고 사는 문제 아니겠어?"

치안이 좋은 대도시에 가는 것도 문제다.

안전하기는 하지만 헌터들을 지원해야 하는 만큼 세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일반인이야 세금 좀 늘어났다며 투덜대는 정도일지 몰라도 문제는 장애인, 고아, 노인과 같은 노약자들이다.

인류의 모든 여력이 생존에 집중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복지는 날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었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도시에 일자리를 구하기도 어렵고 세금을 낼 형편도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보호구역에 숨어드는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팍팍해지고, 약자들이 살기 어려운 시대가 되어가고 있다.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추세였다.

"여기가 던전화되면, 할렘가 사람들은 또 다른 곳으로 떠나야겠네요."

"그래. 안타깝긴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인명피해를 줄이는 것뿐이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정서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시간은?"

"이제 10분 정도 남았습니다."

"서두르자."

대서재의 서적에 따르면, 그 사건은 우물이 감염을 일으키는 독극물로 바뀌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을 그대로 재현하듯 도시 옆작은 저수지의 색이 혼탁해졌다. 뭐, 요즘이야 이걸 그대로 마시고 감염되는 경우는 없을 거고.

나는 헌터 협회에 전화를 걸어서 던전 발견 사실을 신고 했다. 우선내 이름과 소속을 제시하고, 징조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몬스터들을 발견해 사살했다는 이야기까지.

협회 직원은 조금 미덥지 않아 하는 목소리였지만, 우리가 저수지 사진 같은 자료들을 보내주니 결국은 믿어주는 눈치였다.

-몬스터까지 출몰했다면 큰일이군요. 알겠습니다. 직원을 보내서 상황을 파악하도록 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리나요?"

-철원에 파견 간 인원이 진행 중인 업무를 마치는 대로 신고지역으로 갈 겁니다.

젠장.

오래 걸리겠군.

"알겠습니다. 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전화를 끄고 기대 어린 눈으로 보고 있는 진보라를 보았다.

"어때요? 어떻게 됐어요?"

"신고는 정식으로 등록해 준단다. 당연히 우리가 최초고."

"야호!"

그녀가 기쁨의 비명을 지르며 깡충깡충 뛰었다.

"그럼 우리 이제 부자 되는 거예요?"

"아직 축포를 터뜨리기엔 일러. 사람들을 대피시키고, 던전도 다른 플레이어들이 오기 전에 클리어해야지."

"알아요, 알아. 렛츠고!"

나는 고개를 돌려 음침한 회색빛도시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이런 곳에 사람이 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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