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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22화 (22/337)

나 혼자만 마탑주 022화

"아카데미에서 왔다."

내가 고개를 바짝 들이밀며 말을 이었다.

"당신들 말고 다른 지원은?"

"……어, 없습니다."

"그럼 외부 지원은 어떻게 요청하지?"

"던전 내에서는 외부와의 통신이 불가능합니다. 직접 던전 밖으로 나가서 하는 수밖엔……"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헌터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켜서 마나실을 일으켰다.

"그, 그럼 제가 서둘러 가서 지원을 요청하고 오겠습니다!"

"지랄."

퍽!

나는 녀석의 뒤통수를 진심으로 내리친 다음 멱살을 붙잡아 일으켰다.

"정신 차려 미친 놈아! 당신이 가면 여기 다 뒤진다고! 명색이 공인 헌터가 혼자 도망칠 셈이냐?"

뒤통수를 어루만지는 녀석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래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 모양이다.

나는 녀석의 멱살을 놓고 눈을 감았다.

'에아 들려?'

-들립니다, 탑주.

'지금 바로 헌터 협회 홈페이지의 긴급 재난 통제반에 구조 메일 한 통보내. 여주에서 열린 용암굴 던전에 이레귤러 출현이라고.'

-지금 접속했습니다. 그런데 로그인을 해야 메일을 보낼 수 있다는데…….

'내 걸로 쓰면 돼.'

나는 즉시 내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잠시 후 에아가 말했다.

-구조 메일 전송했습니다.

나는 시선을 돌려 어리둥절해하는 헌터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지원 요청했다."

"……예? 어, 어떻게요?"

"다 방법이 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당신 고유 능력은 뭐야?"

"패……."

"패럴라이즈네. 하필이면 속박계 능력이냐? 아, 돌겠다. 진짜."

"그, 그걸 어떻게?"

헌터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보았지만, 남의 상태창을 볼 수 있다느니 뭐니 설명하기 귀찮아서 그냥 씹었다.

하필이면 이곳의 최고 전력이 하필이면 속박계라니……. 저 자식이 아니라 아까 그 빡빡이가 살았어야 했는데.

"별수 없네. 우리가 싸울 테니까 보스한테 속박만 제대로 걸어. 괜히 눈치 슬슬 보다가 혼자 도망치려 하면 진짜 뒈진다."

"예, 옛!"

그렇게 군기가 바짝 들려서 대답하던 녀석은 이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저, 저기요. 근데 교수진은 아닌 것 같고, 아카데미 소속 학생이면 제가 한참 선임……"

내가 눈을 확 부라리자 헌터 녀석이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쳤다.

"제발 정신 좀 차려라! 이런 상황에 뭔 족보 따지고 있냐?"

어떻게 이런 어리바리한 놈이 헌터자격증을 딸 수 있었는지 세기의 의문이다. 아무리 속박계열 능력자가 귀하다지만 너무하잖아.

나는 빠르게 현장으로 걸어갔다.

쾅!

쿠득!

정서진이 열심히 분투하고 있었다.

간혹 길드 출신의 멤버들이 원호해주긴 했지만, 전면에서 상대하는 건 정서진 혼자였다.

요리조리 도망 다니면서 시선을 끌고 있었지만, 슬슬 한계인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문제는.

쿠웅!

"끄아아악!"

용암 바다에서 나타나는 라바 골렘들이었다.

대형 몬스터라는 특성 때문에 한 방 한 방의 위력도 상당했고 공략도 쉽지 않았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간신히 한 놈 쓰러뜨렸지만, 금방 다음 녀석이 올라왔다. 사람들의 피해가 가장 큰쪽은 이레귤러가 아니라 저 몬스터들이었다.

정서진을 커버하면서 저 라바 골렘까지 막아내야 한다라. 하드한 미션이네.

'준비됐지? 에아.'

-네, 탑주.

'간다.'

크게 숨을 한 번 들이마신 나는 눈을 감고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 * *

"여러분,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공인 5급 헌터 강현입니다!"

언덕 위로 올라간 강현이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여러분이 상대하고 있는 적은 단순한 2랭크 보스 몬스터가 아닙니다! 이레귤러 몬스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웅성웅성.

모두의 시선이 강현에게로 집중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이곳에 있는 모든 플레이어 여러분의 협조를 요청합니다! 제가 속박 능력으로 보스 몬스터를 붙들 테니 그때 모든 화력을 집중해 주십시오!"

지시를 들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헌터가 보조를 하려고? 그냥 자기가 싸우는 게 나을 텐데."

"능력이 지원계열인가 보죠."

"그래도 일단 헌터 명령이니까 따라야지."

"다들 준비해! 뭐든 해볼 수밖에 없어!"

헌터가 직접 전면에 나서자 혼란스러웠던 주위가 한결 가라앉았다.

어차피 여기 있는 모두가 던전에 조난된 운명 공동체였다. 살아남으려면 무작정 도망치는 게 아니라 힘을 합쳐야만 했다.

그런 공감대가 형성되고 사람들이 모여들며 반격의 준비를 하고 있는 그때, 용암 바다에서 또 다시 두 기의 라바 골렘이 튀어나왔다.

"그런데 헌터님! 우리가 다 보스전에 투입되면 저놈들은 어쩌죠?"

"맞습니다! 보스보다 저것들이 더 위협적이에요!"

플레이어들의 물음에, 강현은 저 멀리서 정좌를 하고 앉아 있는 유신을 가리켰다.

"저, 저분이 알아서 하겠다는데요."

"네?"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나도 몰라.'

강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실 아직도 왜 일개 아카데미 학생의 말을 따르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실히 인상에 박혀 있는 건, 저 남자의 시퍼런 오른쪽 눈이었다.

그것과 눈을 마주쳤을 때 숨도 쉬지 못할 만큼 지독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저 그가 내뱉는 요구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우우웅! 우우웅!

유신의 캐스팅이 시작됐다.

눈을 감고 앉아 있는 그의 주위로 마법진들이 화려한 푸른빛을 내뿜으며 펼쳐졌다.

서서히 형태가 잡히며 마법진이 내뿜는 불빛이 최대가 되는 순간.

슈콰앙!

요란한 포성과 함께 얼음의 창이 날아갔다. 그것은 플레이어들을 짓밟고 있던 라바 골렘의 머리통 한 가운데에 정확히 박혔다.

쿠구구구구!

얼굴에 박힌 창을 움켜쥐며 괴로워하던 라바 골렘이 이내 천천히 용암바닷속으로 쓰러져 갔다.

유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슈콰앙! 슈콰앙! 슈콰앙!

시원시원한 발사음이 들릴 때마다 섬을 포위하고 있던 라바 골렘들이 하나둘씩 나가떨어졌다.

창을 쏘아 보내고 마법진이 사라지면, 다시 그 자리에 새로운 마법진이 생성되었다.

발사와 재장전 작업이 기계처럼 완벽한 속도와 타이밍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 진심으로 혼자서 다 상대할 생각인가?'

강현은 유신의 얼굴을 보았다. 싸늘하게 굳은 표정에 반쯤 풀린 동공.

으스스한 느낌에 왠지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정녕 저게 사람의 집중력인가 싶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강현은 정신 차리고 보스 몬스터가 있는 곳으로 달려나갔다.

다행히 이 보스룸에는 기대 이상의 전력들이 몇몇 있었다. 그들에게 걸어볼 수밖에 없었다.

쾅!

"으윽!"

간신히 보스의 공격을 받아낸 정서진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유신이 지시한 대로 방어는 최소한 으로, 철저하게 도망 다니면서 시선만 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슬슬 힘에 부치고 있었다.

아무리 '철인' 능력이라도 무적은 아니다.

공격을 가드 해낼 때마다 어마어마한 마나가 빠져나가고 있었다.

-크르르으으!

보스 몬스터가 성큼성큼 정서진에게로 다가오고 있는 그때.

지면에서 새까만 넝쿨 같은 것이 올라와 순식간에 보스의 전신을 칭칭 휘감았다.

보스가 그것을 떼어놓으려고 했지만, 그것은 마치 얼룩처럼 빨려 들어가서 몸을 검게 물들였다.

"지금입니다!"

고유 능력을 사용한 강현이 있는 힘껏 소리쳤다.

"보스가 약해진 이 틈에 모든 화력을 쏟아부어 주십시오!"

"오오오!"

"쏴라! 쏴!"

사방에서 고유 능력과 원거리 공격무기들의 향연이 펼쳐졌다.

패럴라이즈 능력에 노출된 보스 몬스터는 좀 처럼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화력에 얻어맞았다.

"잠시 쉬게! 우리가 대신 하지!"

탱커 포지션의 플레이어들이 방패를 앞세워 보스 몬스터의 앞을 가로 막았다. 정서진은 이 틈에 후방으로 빠져서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저런 공격으로는 못 잡아. 온몸에 마나 코팅을 두르고 있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깰 수도 없는 강도와 탄력이…….'

쨍!

고민 중인 그의 얼굴에 포션 한 병이 날아와 부딪쳤다. 붉은 액체로 범벅이 된 그가 고개를 돌렸다.

"……뭡니까."

"왜요? 힐이에요, 힐."

어느새 뒤에서 다가온 진보라가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

확실히 포션의 효과로 다친 상처가 낫고 있어서 뭐라 말은 못하겠지만, 기분이 찜찜했다.

"아아악!"

그런데 교대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전면의 탱커들이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자, 다 쉬었으면 들어가라고요! 에이스 탱커!"

"……저는 탱커가 아니라 후방에서 머리를 쓰는 지략가 포지션입니다만."

"에이, 누가 봐도 탱커면서!"

우당탕!

전면의 탱커들이 형편없이 나가떨어졌다.

그 사이로 보스 몬스터가 정서진을 향해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며 다가오고 있었다.

"꺄아악! 온다! 빨리 가라고요!"

'도움이 안 되는군.'

정서진이 몸을 일으키며 전투자세를 취했다.

그 즉시 보스가 들이닥치며 트윈블레이드를 휘둘렀고, 정서진은 있는 힘껏 두 팔을 뻗어 받아냈다.

거대한 두 힘이 충돌하며 대기가 떨렸다.

-크르르으으으!

"……!"

확실히 헌터의 고유 능력은 대단했다. 검게 물든 보스 몬스터가 전보다 약해진 게 확연히 피부로 와닿았다.

다만 문제는, 이렇게 억지로 버틸수는 있어도 놈을 꺾어버릴 결정타가 없다는 점이다.

꽈드드드드드득!

-케에에에에에!

갑자기 보스 몬스터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불현듯 날아온 얼음의 창이 녀석의 옆구리에 틀어박힌 것이다.

'탑주님!'

정서진이 고개를 들자 언덕 위에서 유신이 아이스 자벨린을 난사하며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슈콰앙! 슈콰앙! 슈콰앙!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았다. 유신은 오로지 캐스팅에만 집중한 채 360도 방향의 모든 라바 골렘들에게 서리의 창을 쏘아내고 있었다.

유신의 등 뒤로 라바 골렘의 거대한 주먹이 휘둘려졌지만, 그림처럼 쉴드가 올라와 막고, 바로 반격의 얼음 창이 쏘아져 나갔다.

공방 일체.

거기에 보스 몬스터와 라바 골렘들의 동시 공략까지. 그 모습은 마치 걸어 다니는 포격부대를 연상케 했다.

"오오오오오!"

"잘 하는데!"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유신은 보스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다들 라바 골렘 쪽을 맡아주세요. 보스는 우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급한 불은 껐으니 이제 자신이 보스 몬스터를 맡을 생각이었다. 그때 정서진과 대치하고 있던 보스가 방향을 꺾어 유신을 향해 달려갔다.

"……어딜!"

다리에 마력을 폭발시켜 도약한 정서진이 보스 몬스터를 앞질러 가로 막았다.

"선배님!"

하늘에서 마나를 회복시켜 주는 블루 엘릭서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유신이 손바닥을 펼치자 그 위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착착 떨어졌다.

바로 뚜껑을 열고 꿀떡꿀떡 포션을 들이켠 유신이 입가를 닦으며 말했다.

"좋아. 붙어보자, 보스."

정서진이 움찔하며 유신을 돌아보았다. 냉랭한 목소리와 기계처럼 싸늘한 분위기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어후, 또 시작됐네요."

두 사람에게 합류한 진보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중얼거렸다.

"진보라 씨. 지금 탑주님의 상태가……"

"네, 또 몰입 모드인 것 같은데."

"몰입…… 뭐요?"

"어제 숙소에서 봤는데, 솔직히 좀 소름 끼쳤다니까요. 열기 저항 장비 400장 만들 때 바로 저 표정이었어요."

정서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보스에게 다가가는 유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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