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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9화 (19/337)

나 혼자만 마탑주 019화

진보라는 즉석에서 간이 텐트를 하나 더 펼치고 내게 마법진을 만들게 시켰다.

사실 이쯤 되면 그녀가 나서서 영업을 할 필요가 없었다. 소문이 나서 남은 물량 100장도 날개 돋친듯 팔리고 있었으니까.

"여기 한 장만 더!"

"우리 길드원들 다 쓸 건데, 스무장만 주쇼."

"앗, 죄송해요! 뒤에 다른 분들도 기다리고 계셔서 한 분당 최대 세장씩만……"

아니, 잘 팔리다 못해 벌써 품귀현상마저 일어나고 있었다.

용암굴 사냥터에서는 한 장에 10만 원씩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리고 있었다.

그렇게 두 시간 만에 완판.

순식간에 천만 원이 내 주머니에 꽂혔다.

"보라야, 철수하자."

결국, 우리는 매진을 선언했다.

현장에서 일일이 만들고 있을 바에, 그냥 던전을 나와서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작업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장사가 잘 되는 건 확실하니까 물량 채우고 내일 다시 와도 괜찮겠지.

그렇게 우리는 던전 밖으로 나왔다.

"선배님의 마법! 생각보다 훨씬 더 대박인데요?"

진보라가 신이 나서 말했다.

"너도 잘 했어. 데려온 보람이 있네."

내 칭찬에 그녀가 헤실헤실 웃었다.

"그리고 포션이 출시되면 이거랑은 비교도 할 수 없을 걸."

"으으, 기대되네요! 그때까지 어떻게 참죠?"

"그보다 그렇게 막 학교 이름 팔아도 괜찮아? 학생회잖아. 학교에 직접 문의 들어오면 어쩌려고?"

그녀가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럴 줄 알고, 실제로 아카데미 연구회 쪽 선배님이랑 말 맞춰놨어요."

오. 이 녀석 제법인데.

나도 이번 일로 조금은 그녀를 다시 봤다.

"그리고 우리가 품질에 대한 사기를 친 것도 아니고, 굳이 따지자면 과장 광고 정도잖아요? 실제로 손님들은 물건에 만족하고 있고, 모두가 행복! 그럼 된 거예요!"

……다시 생각하는 거지만 참 합리화가 빠른 성격이다.

나는 지도 앱을 열고 근처의 숙소를 검색해 보았다.

"근처에 싼 게스트 하우스 찾았다. 여기서 작업해야겠어."

"그럼 전 그동안 뭐 해요?"

"적당히 혼자서 놀고 있어. 근처에 피시방도 하나 있네."

"……피시방."

조용히 중얼거린 그녀가 입술을 삐쭉 내밀며 나를 바라보았다. 피시방이 얼마나 아늑한데.

"그게 싫으면 기왕 던전 출장 왔으니 사냥이나 하던가."

"으으, 거긴 너무 덥단 말이에요! 그냥 선배님이랑 같이 있으면 안돼요? 방해 안 할게요."

"내가 방해된……"

"그럼 출바알!"

그녀가 내 팔에 매달리며 '렛츠고'를 외쳤다.

속 뻔히 보이는 애교지만 뭐, 그래도 오늘 큰 공을 세운 것도 사실이니까 넘어가기로 했다.

* * *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고강도의 막노동이 시작되었다. 나는 미친 듯이 마법진 옷의 제작에 매달렸다.

정말 힘들었지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마력이 1 올랐습니다.]

간간이 뜨는 바로 이 플레이어 메시지.

이건 훈련이다. 이건 훈련이다. 그렇게 되뇌며 피로가 극에 달한 상태에서도 간신히 정신을 붙들었다.

"선배니임! 이거 너무 어려워요오!"

그리고 내 옆에서는 진보라가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고 있었다. 자기 방에 안 가고 자꾸 옆에서 재잘재잘 떠들면서 방해하길래 입을 막을 겸해서 마법을 가르쳐 줘봤다.

"이걸 왜 못 해? 봐봐."

그런데 진보라는 마나를 퍼뜨리는 것조차 못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손을 대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평평한 도화지를 펼치는 느낌으로 바닥에 마나를 넓게 퍼뜨리는 거야. 이렇게."

손바닥 아래로 푸르스름한 막 두장이 정확히 겹쳐진 형태로 형성되었다. 그 모습을 본 진보라가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 어렵단 말이에요! 도화지 같은 느낌이라고 말씀하셔도 감이 잘 안 와요."

"이게 왜?"

그녀가 손을 번쩍 들었다.

"일단 선생님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음?"

설마 그쪽에서 지적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

"내가 하는 거 봐! 이제 따라 해봐! 아니, 이걸 왜 못 해? 이런 식으로 가르쳐 주시면 배우는 입장에선 기분이 어떻겠어요?"

"……난 그냥 책에 나와 있는 대로 가르쳤을 뿐인데."

나로서는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정말로 마법의 정석에 나와 있는 그대로 따라 하니까 무리 없이 마법진을 만들 수 있었다.

눈을 가늘게 뜬 진보라가 국어책 읽듯 말했다.

"와아, 그거 정말 대단하네요. 역시 우리 마탑주님은 달라도 뭔가가 다르다니까요. 흥."

결국, 삐쳐 버렸지만, 진짜 내가 해줄 말은 이것밖에 없다.

이게 왜 안돼?

뭐, 나도 아직 마법이란 학문에 대해 그리 조예가 깊지 않아서, 초보자 눈높이에 맞춰 조언을 해줄 수는 없었다. 그냥 내가 겪은 대로 설명해 주는 게 나름의 최선이다.

"조금 쉴래요."

결국, 진보라는 흥미가 떨어졌는지 벌러덩 침대에 드러누워 스마트폰 액정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는 그녀를 조용히 만드는 데는 성공했으니 다시 작업에 들어갔다. 그런데 완성해 놓은 옷더미중에서 미흡한 한 장이 눈에 띄었다.

"에아, 이거 네가 한 거지?"

첫 작업은 숙련도를 붙이기 위해 나 혼자 했지만, 이번 작업은 에아와 함께하고 있었다.

내가 메인인 '방열의 마법진'을 그려놓으면, 그녀가 옆에 '지속의 마법진'을 그리는 식이었다.

"이것 봐. 지속의 마법진 수식이 틀려서 불량품이 됐잖아. 이걸로는 한 시간도 못 버틸……"

-……탑주.

"왜?"

-제 마법 능력은 탑주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집중력만큼은 별개입니다.

그러니까 실력은 같은데 네가 집중 안 해서…… 이게 아닌가?

-일단 몇 시간 내내 눈도 제대로 안 깜빡이는 탑주의 집중력이 비정상적이라 사료됩니다.

……아차차.

-이대로 작업을 계속 하면 정신이 피폐해져 관리자 본래 기능에 지장이 생길 것을 우려. 파업을 선언합니다.

"앗! 선배님 지금 에아 씨랑 대화하고 있는 거 맞죠? 에아 씨한테 한 소리 들은 거 맞죠? 봐봐요!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니까요."

"……."

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자 진보라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음, 선배님은 그러니까.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심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

생각해 보니 나는 나보다 못하다는 개념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내가 제일 밑바닥인 줄 알았고, 위로 올라갈 일만 있는 줄 알았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단순히 의지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이젠 마탑주가 됐다. 주위의 환경도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그래, 맞아. 앞으로 내가 조금 더 신경 쓸게."

내가 순순히 인정하자 진보라의 표정이 풀어졌다. 머릿속에서 울리는 에아의 목소리도 다시 부드럽게 돌아왔다.

"저도 버릇없게 굴어서 죄송해요."

-탑주께서 호문쿨루스에게 사과할 이유가 없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은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나는 기지개를 쭉 켜며 말했다.

"조금 쉬었다가 하자."

"콜! 저녁 먹으러 갈래요? 방금 여주 맛집 검색해 보니까 부추 돼지찜이 그렇게 맛있대요!"

"그래, 나가자."

아직은 어색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맞추는 것도 조금씩 익숙해져 보기로 했다.

* * *

용암굴 파견 2일 차.

나는 에아의 도움을 받아 기어코 남은 400장 물량을 채우는데 성공했다.

늦잠 자느라 개방시간에 딱 맞추지 못하고 조금 지각했는데,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우리를 찾느라 기웃거리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카데미 학생들 왔다!"

"오늘도 그 아이템 파는 거죠?"

"커뮤니티에서 보니까 입구에서 열기 저항템 꼭 구매하고 가라던데."

이제는 소문이 다 나 버려서 호객같은 것도 필요 없었다.

내가 테이블에 앉아 계산을 맡았고 진보라가 번호표를 배부하거나 사람들 줄을 세우는 일을 맡았다.

"거기 아저씨! 지금 새치기했죠? 당장 줄 다시 서요!"

"뭐, 뭐? 내가 어디 길드인 줄 알고……"

"아, 시끄러워요! 길드든 뭐든 사고 싶으면 나가서 줄 다시 서라고요!"

용암굴에 와서 매번 느끼는 거지만, 진보라는 매사에 똑 부러지는 성격이라 그런지 일 하나는 잘 했다.

남자 문제만 어떻게 좀 하면 참 좋을 텐데.

아무튼 결과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400장 그 자리에서 완판이다.

"매진! 이걸로 목표 금액 달성 맞죠?"

"그래, 수고했어."

"야호!"

조금은 일찍 끝나 버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과적으론 해피엔딩이었다.

내가 만든 제품을 들고 만족스럽게 돌아가는 손님들을 바라보며 나는 기지개를 쭉 켰다.

"그럼 시간도 많이 남았으니까 사냥이나 좀 하다 갈까?"

사실 어제부터 계속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었다.

"좋아요! 오늘은 보스 몬스터도 나온다고 했으니까 재미있겠네요. 아!"

"왜 그래?"

"이럴 줄 알았으면 옷 몇 벌 남겨둘 걸 그랬네요."

"그 옷을 만든 마법사를 앞에 두고 무슨 소리야?"

나는 그녀의 옷감에 열기 저항 마법진을 새겨주었다. 이제는 숙련도가 70%에 육박해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펼칠 수 있었다.

"오오오! 정말 하나도 안 더 운데요? 대단해요!"

신이 난 그녀가 옷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좋아했다. 나도 내 옷에 마법진을 새기고 함께 사냥터로 출발했다.

우리가 장사했던 던전의 입구 지역은 커다란 화강암 언덕만 무성할 뿐, 특별한 게 없었다.

좀 더 앞으로 나아가니 바닥에 용암이 들끓는 거대한 평지가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이곳에선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까마득한 높이에 동굴의 천장 같은 것만 보일 뿐이었다.

'이래서 용암굴이구나.'

필드에서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몬스터를 사냥하고 있었다. 주요 몬스터는 시뻘건 용암으로 이루어진 괴물이었다.

"몬스터 정보를 부탁해, 에아."

-예, 탑주. 해당 몬스터의 명칭의 라바 웜(Lava Worm). 입에서 불꽃을 내뿜어 공격하는 2랭크 화염 계열 몬스터입니다. 공격력은 위력적이지만 움직임이 굼떠서 원거리 공격 위주로 공략하지만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 사료됩니다.

"좋아, 가볍게 붙어볼까."

마력을 일으키며 라바 웜에게로 다가갔다. 용암으로 쌓아 올린 굼벵이 처럼 생긴 몬스터가 나를 발견하고는 꿈틀거리며 다가왔다.

<마나 에로우>

내 손끝에서 일어난 두 발의 마나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갔다. 정확히 라바의 몸뚱이에 적중했지만, 녀석은 그 공격을 버텨내고는 허리를 크게 젖히며 화염 용액을 토해냈다.

<쉴드>

바로 쉴드를 시전해서 지붕을 만들었다. 위에서 뚝뚝 떨어지는 고열의 액체를 보고 있으려니 제대로 맞으면 골로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마나 에로우는 잘 안 먹히네. 그렇다면……"

새로운 마법을 시험해 볼 차례였다.

'에아, 수식 서포트를 부탁할게.'

-예, 탑주.

나는 눈을 감고 새로운 마법진을 펼쳐냈다. 빙결의 룬과 출력의 룬을 결합한 빙결계열의 교과서와도 같은 마법.

<아이스 자벨린>

두 개의 원이 결합된 마법진이 현란한 빛을 뿜으며 얼음으로 이루어진 창을 발사했다.

콰드드드득!

창은 정확히 라바 웜의 옆구리에 적중했고, 녀석이 고통스러운 듯 허리를 비틀었다.

"와! 냉기계 마법!"

진보라가 옆에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생각해 보니까 마법사 짱 좋은데요? 상황에 맞춰서 유리한 속성으로 적을 공략할 수 있으니까 훨씬…… 서, 선배님? 제 말 듣고 계세요?"

이게 아닌데.

뭔가 아쉽다.

아직 아이스 자벨린의 숙련도가 낮아서 그런 걸까.

분명히 역 속성으로 공격했는데 마나 소모량이나 영창의 난이도를 생각해 고려 했을 때 효율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좋아.

이번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자.

<카피 매지컬 포지션>

<카피 매지컬 포지션>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스릉.

사방에서 열 개의 마나 에로우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라."

촤좌좌좌좌좌좌좌!

난데 없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화살비가 라바 웜의 몸뚱이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버틸 수 없는 화력을 받아낸 라바 웜의 몸이 이내 펑! 소리를 내며 죽으로 변했다.

주위에서 사냥하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마력이 1 올랐습니다.]

[지능이 1 올랐습니다.]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역시 마법은 물량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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