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마탑주 013화
아카데미에 통학했다.
오전의 몬스터 이론 수업은 거의 전 시간을 졸다시피했고, 점심시간이 돼서야 일어났다.
"……야, 김유신."
내 옆에 나란히 걸어가던 한윤정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걸어왔다.
"너 요즘 왜 이래? 평소엔 그렇게 악착같던 놈이 이젠 아예 수업시간에 코를 골아?"
"……내가 코까지 골았어?"
"그래! 내가 옆에서 몇 번이나 깨웠는지 아냐?"
머리를 긁적였다.
좀 민망하긴 하네. 코를 고는 타입은 아닌데 시련을 클리어하느라 쌓인 피로가 한 번에 폭발해 버린 모양이다.
"미안하다. 내가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하, 왜 잠을 못 자? 밤에 뭐 하길래?"
나는 대답 대신 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한윤정이 움찔하며 말을 멈추더니 이내 경멸에 찬 눈빛으로 노려보았다.
"……아씨, 아침부터 더럽게 진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아, 닥치시고요. 오전에 고생시켰으니까 밥은 네가 사라?"
학생 식당에 들어온 우리 둘은 적당히 메뉴를 시키고 빈 자리에 앉았다.
"뭐 시켰어?"
"여기 돈까스 말고 먹을게 있나."
"그러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피곤한 듯 어깨를 툭툭 두들겼다. 나도 맞은편 자리에 앉아 주위를 쓱 둘러보았다.
식당에서 날 훔쳐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왜들 이래?
그때 한윤정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네 주가가 오른 게 확 느껴져. 덩달아 나도 피곤해졌잖아."
"뭔 일 있었냐?"
"말도 마. 마나 운용학 시간에 있었던 일 때문에 자꾸 애들이 날 찾아 온단 말이야. 비결이 뭔지, 대체 어떻게 한 건지. 왜 자꾸 나한테 물어보는지 모르겠네, 진짜."
알 만하군. 알 만 해.
"그러는 넌 그 비결이 안 궁금하고?"
"별로."
그녀가 씁쓸하게 대꾸했다.
"알려줘 봐야 나는 따라 하지도 못할 테고."
으음.
한윤정은 요즘 자존감이 부쩍 줄어든 느낌이다.
내 변화를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해 준 것도 그녀였지만, 밑바닥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던 친구가 고유 능력이 바뀌면서 홀로 치고 올라가 버린 격이니 기분이 복잡할 것이다.
분위기가 처지기 전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물어볼 게 하나 있는데."
"뭔데?"
"1학년에 진보라라고 아냐?"
진보라.
포션 조제라는 말을 듣는 순간 첫번째로 떠오른 인물이었다.
예전에 탐지 능력으로 그녀의 상태창을 본 적이 있었는데, 꽤 인상적이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 있다. 그녀의 고유 능력은 포션 조제와의 궁합이 상당히 괜찮을 거라고 예상한다.
잠시 생각하던 한윤정이 손뼉을 짝 쳤다.
"아! 학생회에 다니는 그 1학년애! 왜? 관심 있어?"
"그냥 개인적인 용무가 있어서."
재미없기는. 그렇게 중얼거린 그녀가 등받이에 등을 쭉 기댔다.
"사실 나도 이름만 알아. 가끔 오가면서 인사 몇 번 나눠본 게 전부라서 자세히는 모르겠네."
"그럼 어쩔 수 없지."
"근데 걔가 여자들 사이에선 평이 별로 안 좋아."
"……왜?"
한윤정은 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여기서 남 뒷담화하긴 좀 그렇고. 나머진 직접 알아봐."
* * *
학생 식당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나와 한윤정은 서로 다른 수업이라 헤어졌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학교 도서관에 박혀 있을 생각으로 걷고 있는데.
"김유신!"
땍땍거리며 내 이름을 부르는 녀석과 마주쳤다.
저 큰 키에 무스 떡칠한 포마드헤어 스타일은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어, 과대냐."
"과대냐 같은 소리 하네. 내가 네 친구냐?"
그럼 친구지, 동갑인데.
이 아니꼽게 구는 녀석의 이름은 고신욱. 2학년 학생 대표로 그냥 다들 '과대'라고 부른다.
뒤에는 두 명의 친구들을 수하처럼 거느리고 있는데 음, 미안하지만 이 녀석들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뭔데."
"……너 요즘 좀 뺀질거린다?"
길가에 침을 탁 뱉은 고신욱이 가까이 다가왔다. 뺀질거리는 쪽은 아무래도 그쪽인 것 같은데.
사실 고신욱이 이렇게 대놓고 아니꼽게 구는 이유가 있다. 이 학교는 조금 특별했다.
"바쁘니까 거두절미하고 말한다. 너 조기졸업시험 신청했더라?"
"어."
"개당당하게 말하네. 네가 뭔데 그 시험을 신청해?"
뭔가 했더니 그거 때문이었구나.
언젠가 한 번 터질 줄 알았지만 내 예상보다 빠르다.
"참가자격은 누구에게나 있는 걸로 아는데?"
"그렇다 한들 격 떨어지는 놈이 기어들어가도 좋은 시험이 아니야! 졸업은 커녕 낙제 위기인 주제에 뭔 깡으로 신청했냐?"
조기졸업시험.
말 그대로 아카데미 4년 커리큘럼을 전부 패스하고, 바로 졸업장과 헌터 자격증을 부여받을 수 있는 시험이다.
시험 내용은 항상 '대인전'으로 정해져 있다. 합격 정원은 오로지 다섯 명뿐.
그 때문에 전 학생 대상이라도 교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실력자들만 지원하는 게 관습이 됐다.
대인전이 시험 내용인 이상, 평범한 학생들이 운으로 붙을 확률도 거의 없기도 하고.
"툭 까놓고 말해서, 네가 이 학교에서 보여준 게 뭐가 있는데?"
고신욱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뭣도 없는 2학년 찐따가 졸업시험신청했다니까 바로 위에서 프레셔 들어오잖아! 애들 관리 제대로 안한다고 내가 욕먹는다고!"
"너 아직도 선배들한테 맞고 다니냐?"
고신욱이 발끈하며 달려들려 하자, 뒤에 있던 친구들이 다급히 뜯어말렸다. 네가 참으라느니, 곧 나갈 놈이 뭘 알겠냐느니 열심히 입을 놀렸다. 그제야 고신욱은 못 이기는 척 화를 삼켰다.
……이건 뭐 싸구려 시트콤도 아니고. 귀찮으니까 그냥 바로 본론으로 넘어가야겠다.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시험 취소해라. 자격도 없는 놈이 무슨……"
"그럼 네가 시험해 보면 되겠네."
"……뭐?"
"자격이 있는지 없는 지 네 눈으로 확인해 보라고."
고신욱의 눈이 시뻘게 졌다.
"지금 진심으로 지껄이는 소리냐?"
"그러는 편이 서로에게 깔끔하잖냐."
나는 손가락으로 체육관 건물을 가리켰다.
"한번 해보자고."
* * *
확실히, 내가 다니는 헌터 아카데미는 지구상에서 가장 희한한 교육시설 중 하나다.
일단 지상 최고의 또라이라고 불리는 '한국 헌터 협회장'이 직접 세운교육시설이란 점부터가 위험한 냄새가 풀풀 난다.
사실 설립 취지만큼은 꽤 그럴듯하다.
헌터라는 개념이 완전히 확립되기 이전의 오버레이 초창기 시절, 길드에 스카우트 받지 못한 20대 청년들은 프리랜서를 자처하며 무리한 몬스터 사냥을 일삼았다.
이로 인해 청년 사망률이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되자, 협회장은 신인 플레이어들을 관리하기 위한 아카데미를 설립한 것이다.
아카데미에서는 프로 헌터가 되기 위한 교육은 물론, 학생들로 파티를 꾸려서 던전에 직접 출장 보내기도 한다. 말이 학교지 실은 교육을 겸한 '헌터 길드'에 가까운 개념이다.
뭐 여기까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건 아카데미의 교풍(校風)이다.
실력 만능주의.
이곳에서만큼은 '실력'이 모든 것이다. 현 학생회장이 1학년생인 걸 보면 말 다한 셈.
학생들의 실력에 따라 혜택과 던전 출장 기회가 차등 지급되며, 실력에 따른 대우와 차별이 지나치게 노골적이다.
심지어는 학생들 간의 실력을 명확히 하겠다는 명목으로 '결투'라는 시스템까지 존재한다.
쉽게 말해 학생들끼리 한판 붙어서 상대방의 모든 특권과 직위를 빼앗아 올 수 있다.
그야말로 노골적으로 학생들 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시스템.
물론 이런 제도는 수 많은 병폐와 논란을 낳았다.
기자들은 명색이 교육시설이라는 곳에서 헌터의 사병화를 부추긴다느니, 성적이 낮은 학생들의 심리적 박탈감을 유발한다느니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며 이 문제를 이슈화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또라이 협회장은 한마디로 일갈했다.
'내 돈으로 만든 학굔데 왜 너희가 난리세요?'
헌터가 곧 군사력인 시대에, 협회장의 권력은 나는 새도 떨어뜨릴 정도였다.
결국, 그 정신 나간 인간의 굳건한 고집 덕분에 지금까지도 이 아카데미의 미친 시스템은 유지되고 있다.
뭐 그러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서도 결투가 하나의 문화처럼 자리 잡았고, 채용을 원하는 길드에서도 학생들의 결투 기록을 눈여겨보게 되는 등 이제는 나름대로 제도가 정착되어 버린 상태다.
나와 고신욱도 바로 그 결투를 위해 체육관에 들어와 몸을 풀고 있었다.
아카데미의 넓은 부지에는 체육 관련 시설만 열 곳이 넘는데, 모두 결투가 가능한 장소였다.
"나중에 질질 짜지나 마라."
고신욱이 마나 슈트를 입으며 히죽거렸다.
"상태창 보는 능력으로 어떻게 싸운다는 거야?"
"그냥 미친 거지 뭐."
수하들도 한마디씩 했다. 나는 이모든 개소리를 무시하며 고신욱의 상태창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름 : 고신욱
고유 능력 : 회전 가속
개인 특성 : [투지 Lv.3] [기동대Lv.2] [과욕 Lv.2]
주요 능력치 : [근력 48] [마력35] [순발 29] [체력 25]
특수 능력치 : [위압 2] [저항 1]
능력치 총합 : [140]
'나름대로 실력은 있네.'
실력 만능주의의 아카데미에서 2학년 과대를 맡고 있는 인물. 적어도 2학년에서는 상위급 실력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만 꺾으면 2학년은 거의 다 깔고 가는 셈인데…….
"야, 김유신."
마나 슈트를 모두 착용한 고신욱이 다가왔다.
"나는 이번 결투에 과대 자리는 물론, 내가 받는 특권과 스폰을 전부 걸 생각이야. 너도 뭔가 걸어야지 않겠냐?"
"그래. 뭐로 할까?"
녀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내일 하루. 학교에 나오지 않는 조건은 어때?"
……이놈 봐라?
내가 최근에 무단결석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게 틀림없다.
"사실상 지면 퇴학이란 건데."
고신욱은 이죽거리기만 할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그래, 원하는 대로 해주마.
"그냥 깔끔하게 퇴학 걸고 한다."
"크하하하! 이 자식 갑자기 왜 이래? 진짜 인생 다 살았냐?"
그때 마침 시설 직원이 졸린 눈을 비비며 다가왔다.
"그럼 대충 합의 다 봤지?"
"네."
"옙."
애들끼리 싸우다 보면 당연히 격한 일도 일어날 수 있기에, 결투는 직원의 참관하에 이루어져야 효력이 있다.
체육관 벽에 붙어 있는 커다란 스크린에는 우리의 학생증 사진과 마나 슈트의 내구도가 표시되었다.
룰은 간단하다. 이 슈트의 내구도 수치를 먼저 0으로 만드는 쪽이 이긴다.
"둘 다 거리를 좀 벌려. 그래, 거기서 멈추고. 대전 룰은 지겹도록 들어서 다 알지? 바로 시작한다."
직원이 신호기를 조작했다. 삐이익하고 결투의 시작을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결투가 시작되는 동시에, 고신욱이 억누르고 있던 환희를 발산했다.
"캬하하! 이젠 빼도 박도 못해!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김유신!"
녀석이 꺼낸 것은 가운데가 텅 비어 있는 차크람 형태의 무기였다.
그것을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기 시작하자 회전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키이이이이이잉!
회전이 점점 빨라지면서 차크람의 몸체에 마나로 이루어진 칼날이 튀어나왔다. 이제 녀석의 손가락이 멈춰 있더라도 무기 스스로가 맹렬히 회전하고 있었다.
나는 제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아. 보고 있어?'
-예, 탑주. 보고 있습니다.
에아의 차분한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든든했다. 혼자가 아니라 둘이서 함께 싸우는 느낌이랄까.
'첫 데뷔전이네. 상대에 대한 분석을 부탁해.'
-알겠습니다. 플레이어 고신욱의 고유 능력은 회전 가속. 특히 미토라의 힘줄을 엮어 만든 특제 무기에 회전을 더해 날리는 원거리 공격형 스타일입니다.
흐음, 원거리 공격형 스타일이라.
-전투 가능 판정을 받은 고유 능력, 몬스터의 부산물로 만든 무기, 그리고 마력을 통한 고유 능력의 응용까지. 세간에서 말하는 가장 정석적인 헌터 스타일입니다.
'어떻게 상대하면 좋지?'
잠시 그녀의 목소리가 끊겼다가 다시 들렸다.
-의문.
"뒈져!"
고신욱이 고속으로 회전하는 차크람 두 개를 날려 보냈다.
나는 투사체의 진행 방향을 확인하고는 쉴드를 허공에 전개했다.
터엉! 텅!
쉴드에 부딪친 차크람은 허무할 만큼 쉽게 튕겨 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의기양양한 얼굴로 지켜보던 고신욱의 입에서 얼빠진 소리가 튀어나왔다.
-탑주의 예상 승률 99%. 어떻게 상대하든 탑주의 승리인데 굳이 공략을 찾아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하하. 그런 거였냐.
"바, 방금 뭘 한 거냐!"
당황한 고신욱이 바락바락 소리쳤다.
"탐지 능력으로 어떻게 막은 거냐고!"
"능력이 아니라 마법인데."
내가 놀린다고 생각한 건지, 고신욱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달아올랐다.
"그리고 네가 사용하는 기술 말이야."
나는 바닥에서 박힌 채 힘없이 회전하고 있는 차크람을 가리켰다.
"겉보기엔 위협적이긴 한데 장갑에 대한 대책은 세워뒀냐?"
"……뭐?"
"지금 네가 상대하는 저 랭크 몬스터들이야 가뿐히 썰려나가겠지만, 나중에 태생적으로 튼튼한 몬스터나 갑주를 입은 것들을 상대할 때는 애 좀 먹을 걸. 칼날에 덧입힐 마력으로 회전력에 더 집중하는 게 좋을 거야."
"지금……"
격분한 고신욱이 두 팔을 날개처럼 펼쳤다.
"누가 누구한테 충고질이냐!"
찰칵! 찰칵! 손가락마다 작은 원형칼날이 하나씩 걸리더니, 동시에 회전을 시작했다.
"받……!"
퍽! 퍽!
진작에 캐스팅을 마치고 날아간 내마나 에로우가 고신욱의 허벅지에 하나씩 박혔다. 녀석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지며, 회전하던 원형 칼이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그리고 뭣보다 공격이 너무 느려. 그거 빙빙 돌리고 있는 걸 누가 가만히 기다려줘?"
"#$$#&^#%!"
고신욱은 입에 거품까지 물며 격분했다.
뭐, 그래도 이 녀석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 자기는 2학년 과대고, 상대는 언제 아카데미에서 짤려도 이상하지 않은 그 열등생 김유신이니까. 날 깔봤던 만큼 충격도 크리라.
"내가 어떻게서든 네놈 면상 갈아버리고 만다!"
고신욱은 중간 크기의 차크람을 꺼내 살짝만 회전을 부여하여 빠른 템포로 날려 보냈다. 물론 속도를 낸만큼 위력이 떨어졌고, 여지없이 허공에 소환된 내 쉴드에 막혔다.
이어지는 공격들도 마찬가지.
고신욱은 숨까지 헐떡이며 공세를 퍼부어댔지만, 차크람들은 내 쉴드를 뚫지 못하고 바닥에 쌓여가기만 했다.
'2학년 상대도 이제는 가뿐하네.'
악몽 같은 큐브를 겪은 지 얼마되지도 않았다.
사방팔방에서 내 목숨을 노리고 날아오는 마나 에로우를 막다가, 이렇게 뻔하고 느린 투사체를 막고 있으려니 하품이 다 나올 지경이다.
내가 정말로 하품하는 시늉을 하자, 녀석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시뻘게 졌다. 놀리는 보람이 있는 녀석이다.
"김유시이이이인!"
녀석은 마침내 비장의 무기를 꺼내들었다. 몸을 다 가릴 정도의 거대한 원반으로 앞을 막고, 회전을 가하기 시작했다.
"신욱아! 뒤! 뒤!"
친구들의 말에 고신욱이 재빨리 고개를 뒤로 돌렸다.
바보같이 스스로 시야를 가리는 틈을 타, 나는 빠르게 놈의 측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뿌드득 이를 갈던 녀석이 냅다 원반을 내팽개치며 내게로 뛰어들었다. 녀석의 손아귀에서 한 움큼의 마력이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쳤다.
"근접전으로 날 이길 것 같냐!"
퍽!
허공에서 발사된 내 마나 에로우가 놈의 발꿈치에 틀어박혔다. 중심을 잃은 고신욱의 빈틈을 유유히 파고 들며, 나는 건틀릿 마법을 착용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말 더럽게 많네."
놀람과 공포가 뒤섞인 녀석의 표정을 만끽하며, 그대로 오른팔을 내질렀다.
빠아아아아악!
푸른 불똥이 사방으로 튀어 올랐다. 녀석의 못생긴 얼굴이 캔처럼 찌그러지며, 밀려난 힘 그대로 바닥에 처박혔다.
쿠우우웅!
요란한 충돌음이 체육관을 울렸다.
"허억……"
"신욱아!"
고신욱은 그대로 뻗어버렸고,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며 뛰쳐나왔다. 그때 에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경고. 몬스터가 아닌 사람을 향해 마법을 사용 시, 좀 더 세심한 위력조절이 필요합니다.
……그러게 말이다. 나름대로 힘조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위력이 장난 아니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던 나는 고개를 돌려 시설 직원을 바라보았다.
쓰러진 고신욱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던 그는 마지막으로 슈트 게이지를 확인했다.
김유신 : 1, 000/1, 000
고신욱 : 0/1, 000
"경기 종료! 승자는 2학년 김유신이다."
두말할 것도 없는 완승이었다.
"……아아악!"
한편 고신욱은 바닥을 이리저리 뒹굴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었다.
내가 천천히 다가가자 녀석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뒷걸음질쳤다. 녀석의 앞에 쪼그려 앉은 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결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