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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10화 (10/337)

나 혼자만 마탑주 010화

클리어를 알리는 플레이어 메시지가 내 눈앞에 떠올랐다. 큐브 중앙에 다음 장소로 향하는 이동 마법진이 생겼다.

"허억! 허억! 후우욱……!"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폭풍 같은 한때를 넘기고 긴 여운이 몸을 타고 흐른다.

이렇게까지 깊이 몰입해 본 적은 또 처음이었다.

'……미쳤다는 생각밖에 안 드네.'

원격 시전 특성을 얻었고 벽에 막혀 있던 과몰입 특성까지 레벨업했다. 여기 있으면 대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 거야?

숨을 가라앉힌 나는 시험 삼아 원격 시전으로 쉴드를 펼쳐 보았다.

대기의 마나를 장악하자, 허공에 베이스가 깔리면서 마법진이 만들어질 준비를 마쳤다.

손바닥을 이용해 도장법으로 펼치는 것보다는 속도가 느렸지만, 원거리에서 다수의 마법을 펼칠 수 있다는 건 상당한 이점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닌 모양이네.'

나는 몸을 일으켜 큐브 중앙에 생긴 마법진을 밟아보았다.

[시련의 마지막 보스룸으로 이동합니다.]

[보스룸을 클리어하면 '마탑 제2층 대서재'가 개방됩니다.]

[한번 보스룸에 들어가면 나올 수 없습니다.]

[보스룸에 들어가시겠습니까?]

그렇군. 아직 보스전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라, 재도전이 불가능한 끝장전 같은 느낌이다.

'뭐, 여기까지 와서 고민할 것도 없지.'

큐브가 의도한 주요 기술도 배웠으니 이곳에 더 볼 일은 없다.

물이 오른 지금 승부를 내고 싶었다.

"들어간다."

* * *

내 몸이 붕 떠오르며 다음 공간으로 이동했다.

다시 어두운 곳이었다.

시야를 빼앗겼지만, 이제는 제법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엔 또 뭐가 나올까?

화륵! 화륵! 화륵!

그때 벽면에 붙어 있는 화로들이 일제히 점화되며 주위가 밝아졌다.

그리고.

화르르르르!

전면의 거대한 화로가 점화되며 제단에 앉아 있는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산양의 머리, 털 덮인 인간의 체구, 그리고 머리 위로 한 쌍의 흑색뿔이 높게 솟아 있었다.

나는 이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다.

'바포메트……!'

호주의 멜버른을 멸망 위기까지 몰아넣은 산양 머리의 괴물.

기록적인 민간인 사상자를 낸 오세아니아의 악몽.

내가 뉴스에서 본 녀석은 집채만큼 거대했지만, 이 녀석은 딱 인간 정도의 크기였다.

아직 성체가 아닌 걸까?

그때 바포메트가 눈을 번쩍 뜨며 내 쪽을 응시했다.

"…!"

그 시뻘건 눈과 마주치는 순간 오싹한 느낌에 전신이 떨렸다.

큐브도 목숨을 건 시련이었지만, 역시 몬스터를 상대하는 실전은 차원이 달랐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다. 침착하자, 침착해.'

내가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있는 사이, 바포메트는 지팡이와 도끼를 합쳐놓은 외형의 미늘창을 들고 천천히 내가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타악, 타악.

돌바닥이 울리는 소리가 가까워질 수록 입안이 바싹 말랐다.

일단은 선빵이다. 나는 몸의 마나를 끌어올리며 두 팔을 뻗었다.

<마나 에로우>

두 발의 마나 에로우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바포메트는 그것을 관찰하듯 가만히 지켜보더니 가뿐히 미늘창을 휘둘러 쳐냈다. 화살이 두 동강 나며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뭐, 이런 거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상대는 아니겠지.

공격을 막아낸 바포메트는 미늘창을 두 손으로 고쳐잡고 일자로 세운 자세에서 눈을 감았다.

마치 어떤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경건한 분위기였다.

우웅!

바포메트의 옆에 청색의 마법진이 허공에 떠올랐다.

저번 무슨 마법진일까 하는 의문을 품기도 전에, 바포메트가 눈을 부릅뜨며 내게로 달려 들었다.

'……빠르다!'

나는 다급히 원격 시전으로 전면에 쉴드를 펼쳤고, 뒤이어 바로 녀석의 무기가 부딪쳐 왔다.

터엉!

다행히도 미늘창은 내 쉴드를 뚫지 못하고 튕겨 나갔지만, 즉시 허공에서 방향을 바꾸어 측면으로 쇄도해왔다.

아니, 뭐 이리 빠르냐고!

원격 시전으로는 늦을 거라는 생각에, 직접 팔을 뻗어 측면에 쉴드를 만들었다.

쉴드가 바포메트의 공격을 받아냄과 동시에 나는 뒤쪽으로 몸을 날려거리를 벌렸다.

'……사, 살았다.'

한 번 공방을 주고 받았을 뿐인데 온몸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지독한 긴장감에 다리도 덜덜 떨리고 있다.

스륵.

공격을 멈춘 바포메트는 다시 미늘창을 고쳐 잡고 눈을 감았다. 이번엔 붉은 마법진이 허공에 생겼다.

'후우, 미치겠네! 마법을 쓰는 몬스터라니……"

캐스팅 이후 바포메트가 재차 달려들어왔다.

두 개의 마법진은 마치 놈을 호위하듯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침착하게 원격 시전으로 전면에 쉴드를 펼치고, 두 손으로는 마나 에로우를 준비하고 있는 그때.

콰직!

예상 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내 앞을 막아주고 있던 쉴드 마법진이 일격에 쪼개져 버린 것이다.

'위력이 전보다 증가했어?'

쉴드를 부숴낸 바포메트가 나를 향해 다이렉트로 뛰어들었다.

계산이 꼬인 나는 다급히 뒤로 물러났지만 휘둘러지는 미늘창을 완전히 피하지 못하고 어깨를 베였다.

"크으으으!"

살갗이 찢기고 핏물이 튀었다. 마나 에로우에 맞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고통.

다행히 마법진이 완성되어 후속 공격은 봉쇄했지만, 더럽게 아팠다.

한 번이라도 삐끗하면 죽는다는 사실이 뇌리에 박혔다.

여기선 도망칠 수도 없다. 보스룸에 들어온 이상 쟤가 죽든 내가 죽든 승부를 봐야만 했다.

'쉴 때가 아니야! 움직여!'

뒤늦게 정신을 붙들고 건틀릿 마법진 두 개를 동시에 준비했다. 바포메트는 다시 미늘창을 가슴 앞에 고쳐 잡고 의식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번엔 녹색의 마법진이 생겨났다.

녀석은 세 개의 마법진을 이끌고 움직였다.

스르르르!

바포메트가 움직일 때마다 녹색 잔상이 일었다. 이번엔 스피드업인가?

빠른 놈이 더더욱 빨라졌다.

'방향을 보고 쉴드를 치면 늦어!'

눈으로 보고 막는 걸 포기했다.

교란 하듯 내 주위를 돌아다니던 바포메트가 한 순간 등 뒤로 돌아들어와 미늘창을 내려쳤다.

터업!

바포메트의 동공이 커졌다.

내가 허리를 비틀면서 건틀릿을 착용한 두 손으로 미늘창의 창대를 붙잡아낸 것이다.

"크……!"

팔이 부르르 떨렸다.

인상을 찡그리며 버티던 내가 갑자기 고개를 확 들이밀며 놈과 시선을 맞추었다. 당혹으로 가득 찬 붉은 눈동자를 보며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너 보기보다 약골이구나?"

미늘창을 꽉 붙잡은 채로 원격 시전으로 두 개의 마나 에로우 마법진을 준비했다. 놀란 바포메트가 물러서려고 했지만 놓치지 않았다.

그래, 아무리 보스전이라지만 이건 너무 어렵다고 했다.

시련 도전자에게는 기초 마법밖에 쓰지 못하게 하면서, 상대 몬스터는 버프 마법진을 쓰는 데다가 빠르기까지 하다.

하지만 한 가지, 근력은 부족했다.

아무래도 이곳의 보스 몬스터께서는 전형적인 마법사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물론 녀석이 붉은 마법진을 시전한 이후 내 쉴드가 일격에 깨져 버리는 사태는 조금 놀라긴 했지만, 저 붉은 기운은 미늘창에 집중되어 있었다.

무기의 절삭력이 강해졌을 뿐이지 일단 붙잡아두면 힘으로 버틸 수 있었다.

'지금!'

캐스팅이 완료되며 두 발의 마나에로우가 발사됐다. 녀석은 몸을 움직여 피하려고 했지만.

파삭! 퍽!

내 목표는 처음부터 녀석의 주위에 떠다니고 있던 녹색과 붉은색의 마법진이었다.

마나 에로우에 맞은 마법진에 균열이 생기더니 파창! 소리를 내며 깨져 나갔다. 그와 동시에 녀석의 몸을 감싸고 있던 이질적인 기운도 사라졌다.

"역시!"

괜히 출제자가 보스전에 앞서 큐브를 배치한 게 아닐 것이다.

붉은 번개를 공격해 상쇄시킨 것처럼, 이번에도 상대의 기술을 내 공격으로 깰 수 있었다.

그때 바포메트가 기습적으로 미늘창을 놓으며 내 복부를 발로 찼다.

충격에 밀려난 사이, 녀석은 재빨리 창을 회수하고 뒤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나는 입안에서 흐르는 핏물을 퉤뱉으며 웃었다.

[체력이 1 올랐습니다.]

[의지가 1 올랐습니다.]

"좋아, 좋아."

처맞는 것도 성장에 직결된다면 얼마든지 맞아줄 용의가 있다. 그때 바포메트가 미늘창을 머리 위로 올리는 새로운 동작을 취했다.

화르르르륵!

미늘창의 중앙에 박혀 있는 구슬에서 광채가 번쩍이더니 그 주위로 세개의 화염구가 맺혔다.

화염구는 반죽이 부푸는 것처럼 팽창하다가, 그 형태가 완전해지자 각기 다른 방향으로 발사됐다.

……치사하게 너만 센 마법 쓰기냐.

나는 화염구의 진행 방향을 계산하고 다중 시전으로 쉴드를 세웠다.

꽈아아아앙!

쿠쿠쿵!

화염구가 쉴드에 부딪혀 폭발하며 주위로 매캐한 연기를 뿜어댔다.

이 틈에 바포메트가 눈을 감고 마법진을 쌓으려고 했지만.

화아아아악!

폭발 연기를 뚫고 내 몸이 미사일처럼 돌진했다.

지속시간이 다 되어가던 양팔의 건틀릿을 뒤쪽으로 향한 채 강제 발동시켜 부스터처럼 사용한 것이다.

"흐라아아아아아아!"

내 기세에 흠칫한 바포메트가 캐스팅을 취소하고 미늘창을 잡아 휘둘렀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휘두른 탓인지 전과 같은 날카로움이 없었다.

돌진과 동시에 상체를 낮춰서 공격을 피해낸 나는 몸을 빙글 회전시켰다.

내 등 뒤에는 티셔츠 로고처럼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슈쾅!

그 즉시 마법진에서 마나 에로우가 발사되어 바포메트의 어깨에 박혔다. 놈이 고통스러운 울음 소리를 내뱉으며 휘청거렸다.

"역시 맷집이 좋은 편은 아니잖아."

바포메트의 어깨에 마나 에로우가 깊게 틀어박혀 있었다. 놈이 피를 철철 흘리며 나를 노려보았다.

몬스터들 중에서는 마나 에로우 정도는 그냥 몸으로 맞으며 달려드는 놈들이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바포메트에게는 마나 에로우 한 방도 치명적이었다.

딱 인간 정도의 방어력. 아니, 마력으로 신체 강화가 가능한 플레이어 이하의 수준이다.

'건틀릿 한 방만 제대로 박아 넣으면 골로 보낼 수 있다.'

입술에 묻은 피를 소매로 슥 닦았다.

이것은 사람 죽으라고 만들어진 던전이 아니라, 마탑 측에서 마탑주 후보의 성장을 위해 만들어낸 시련.

그렇다면야 파훼법은 틀림없이 있다.

'흐흐흐흐! 아, 미치겠네.'

분명히 위기인 건 맞는데, 왜 이렇게 즐거운 지 모르겠다.

점점 미쳐가는 건가? 아니, 지금 심정으로는 그냥 미쳐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고양감을 느끼며 마법진을 펼쳤다.

드디어 승산이 보인다.

제2층 개방이 눈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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