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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마탑주-4화 (4/337)

나 혼자만 마탑주 004화

살면서 뭔가에 이렇게까지 미쳐본 적이 있었던가.

사흘 내내 잠도 제대로 자지도 않고 먹지도 않은 채 마법진 훈련에만 매진했다.

지금이 낮인지, 밤인지도 알지 못했다.

졸리면 책상에 엎드려 잤고, 배가 고프면 에아에게 건네받은 물약 같은 것을 들이켰다. 약의 효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공복을 잠시 잊게 해주었다.

마법의 정석 저자가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탄탄한 기본기였다.

그래서 나는 마법진을 폭넓게 익히는 것보다, 기초 마법의 숙달에 충실하기로 했다.

마탑에 들어온 첫날, 책상에 베이스를 깔고 손가락 끝에 마나를 짜내 마법진을 그리는 건 초보자 수준의 작업이었다.

이다음에 손바닥 위에 베이스를 깔고 마법진을 그리는 훈련을 했고.

이것도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손을 쓰지 않고 마나로 마법진을 그리는 훈련으로 넘어갔다.

마법진은 시전 속도가 생명이다.

이를 위해 마법의 정석에서 추천한 것은 일명 '도장법'이라는 것이었다.

마법진의 도형과 수식을 머릿속에 확실히 집어넣은 상태에서, 신체 내부의 마나를 움직여 손바닥 위에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숙련자 수준이 되면 도장을 찍듯이 쾅쾅 마법진을 찍어낼 수 있었다.

비유하자면 프로 연주자들이 악보를 외워서 무대 위에서 암보(暗譜)로 연주하는 것과 비슷한데, 마법진은 그보다 더 쉬웠다.

한 가지 마법을 수백, 수천 번씩 반복하다 보면, 나중엔 그 공정과 흐름을 마나가 기억했다.

마법진의 수식을 떠올리면서 기본 틀만 잡아놓으면 마나는 스스로 움직여 마법진을 완성하려는 성질을 보였다.

마치 마법사의 의도를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연주자들이 암기력과 몸의 기억에 막연히 의존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안정성이었다. 이제는 손가락으로 그리는 것보다 마나로 그리는 편이 훨씬 더 쉽다고 느껴질 정도까지 됐다.

그렇게 나흘 내내 훈련에 몰입하자 어느 정도 전개에 속도가 붙었고, 실수도 많이 줄었다.

수백 번 반복하니 이제는 상당 부분 무의식에 의존해서 마법진을 띄울 수 있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렇게 마탑에 들어온 지 4일째되는 아침.

나는 기본 마법진 세 개를 숙달했다.

나머지는 실전에서의 활용이 남아 있을 뿐이다.

"……후아아아암."

물론 피곤했다.

하지만 피곤하다는 이유로 마법을 멈출 수는 없었다. 지금 나에게 마법은 비유하자면 마약과도 같다.

배우면 배울수록 나도 모르게 더 많은 힘과 지식을 탐하게 됐고, 이것은 내 과몰입 특성과 홀륭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옆에서 있던 에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권고. 탑주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학습을 중지하고 휴식을 취하시는 것이……"

"……딱 한 페이지만 더 보고 잘게."

그렇게 대꾸하며 다음 마법진으로 진도를 넘어가려는데.

툭!

뭔가가 발치에 부딪혔다. 고개를 숙여 책상 밑을 보니 내 스마트폰이 떨어져 있었다.

……이제야 조금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정신을 차리고 스마트폰을 켜보니 친구의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 기록이 몇 개나 떠 있었다.

-야, 오늘 학교 안 나와?

-무슨 일 있어? 전화 좀 받아!

-안 그러던 애가 갑자기 왜 이래? 나홀 연속 무단결석이면 퇴학인 거 알지? 너 설마 이대로 포기하는 거야?

-내가 네 결정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포기하면 나중에 후회할 거야. 한 번만 다시 생각해 줄 수 없을까?

마지막에는 꽤 진지한 내용의 메시지까지. 이렇게까지 걱정해줬는데 학교 일은 깜빡 잊고 있었다고는 말못하겠다.

'음, 어쩐다?'

한국 헌터 아카데미(KHA).

무려 현 헌터 협회장이 총장으로 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헌터 교육시설이다.

논란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그래도 내게 있어선 이곳에서의 졸업이 프로 헌터가 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일단 졸업하기만 하면 길드 취직은 물론, 협회장 인맥으로 협회 공무원이 될 가능성도 생기니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전체 입학생 중 졸업률이 50%도 안 되는 아카데미에서 비전투 계열의 능력으로 버틴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당시 나의 모든 신경은 어떻게 하면 아카데미에서 버틸 수 있을까에 쏠려 있었고, 살아남기 위해 안 해본 게 없었다.

하지만.

이젠 꼭 아카데미가 아니어도 괜찮잖아?

나는 마탑주가 됐고, 마음의 여유도 생겼다. 지금 내 최우선 사항은 아카데미에서의 생존이 아니라 마법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연구다.

물론 그냥 이대로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하기엔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었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도망치듯 빠져나가는 꼴도 좀 그렇고, 날아니꼽게 보던 놈들이 그럴 줄 알았다느니 지껄이면서 낄낄거리는 장면을 떠올리니 짜증이 났다.

무엇보다 던전에 자유롭게 출입하려면 헌터 자격증이 필요한데.

"에아."

"예, 탑주."

"아카데미에 갈까? 말까?"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만 물었지만, 그녀는 즉각 대답했다.

"외출이라면 적극적으로 권하는 바입니다. 탑주는 바람을 쐐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냥 나를 내보내고 싶은 거구만.

아무튼, 여러 상황을 고려한 끝에 나름대로 최적의 결론을 도출했다.

일단은 아카데미에 계속 다니는 것으로 결정했다.

물론 졸업까지 죽치고 있을 생각은 없다. 2주 후에 있을 조기졸업을 신청해서 정식으로 학교도 졸업하고 자격증까지 따낼 생각이다.

이제 내게는 마탑과 마법이 있으니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고.

앞으로 딱 2주.

나는 나흘 만에 겉옷을 걸치며 외출준비를 했다.

* * *

오래간만에 마시는 바깥 공기는 상쾌했다.

마탑 밖으로 나오니 지구의 것이 아닌 이계 식물들이 잔뜩 보였다.

이계의 영향권이 큰 곳일수록 이렇게 이계수가 정글처럼 자라나고, 몬스터들의 출몰도 잦았다. 괜히 마탑주위가 통제구역이 된 게 아니다.

나는 스마트폰의 지도 앱을 실행시켰다.

'역까지 거리가 좀 있네. 버스 타고 환승할까?'

내가 잠시 최적 경로를 계산하고 있는 사이, 뒤쪽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크르르르르!

온몸이 너덜너덜해진 털북숭이 몬스터가 수풀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재미있네, 이 녀석.

"설마 그 앙갚음하려고 여기서 계속 기다린 거야?"

내 비웃음이 전해지기라도 한 건지, 놈은 거칠게 포효하며 돌진해왔다.

나는 전면으로 팔을 뻗었다.

먼저 경화의 룬으로 마나를 굳혀서 전면에 방패를 세우는 마법진.

<쉴드>

카앙!

내 손바닥 앞에 마법진이 펼쳐졌다. 놈의 발톱은 쉴드를 뚫지 못하고 크게 튕겨 나갔다.

몬스터가 놀란 듯 주춤거렸고, 그사이 나는 이미 다음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은 출력의 룬으로 마력을 날려보내 적을 타격하는 마법진.

<마나 에로우>

우웅, 웅.

양손의 마법진에서 마나로 이루어진 화살이 쏜살같이 날아가 몬스터의 가슴팍에 박혔다. 피가 튀어 오르며 놈이 고통스럽게 몸부림쳤다.

좋아! 충분히 싸울 수 있다.

-캬아아아아아아아악!

놈이 끈질기게 달라붙었지만 나는 여유롭게 쉴드를 전개해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마나 에로우로 놈의 상처를 겨냥해 발사했다.

녀석의 몸에 화살이 한 발 한 발꽂힐 때마다 움직임도 눈에 띄게 느려졌다.

퍽!

마침내 한쪽 눈에 마나 에로우를 명중시키는데 성공했다. 괴로움에 버둥거리던 몬스터가 힘겹게 눈에서 화살을 뽑아내고 고개를 들었다.

-캬륵?!

그쪽이 아니라 위다.

<건틀릿>

넋 놓고 있는 놈의 머리 위로 건틀릿 마법진 하나를 전개했다. 그리고 공중에서 내려오고 있는 내가 마법진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스릉!

마법진을 통과해 푸른 빛으로 뒤덮인 주먹이 몬스터의 머리에 닿는 순간.

꽈아아아앙!

망치로 쇠못을 때려 박듯, 몬스터의 머리가 바닥에 처박혔다. 건틀릿이 작동하면서 작렬하는 푸른색 불똥은 언제봐도 아름답다.

놈은 그대로 축 늘어져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으, 아파라."

바닥에 착지한 나는 저릿저릿한 느낌에 팔을 탈탈 털었다.

마법사가 된 이후 첫 승리.

며칠 전만 해도 목숨을 위협하던 몬스터를 이제는 맨손으로 가뿐히 사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장의 기쁨보다는 마법에 대한 생각이 먼저 들었다.

마법진의 숙련도와 명중률의 관계.

쉴드의 유지 시간.

위력은 내가 가진 마법 중에 최강이지만 근접해서 사용해야 하는 건틀릿의 보완책.

나는 여러 생각들을 하며 통제구역을 벗어났다.

* * *

헌터 아카데미.

마나관 4층 강의실.

"다들 아시다시피, 현대 헌터들의 전투는 고유 능력의 활용과 몬스터의 부산물로 만든 '특수 과학 장비'를 사용한 전투가 주류입니다."

아카데미의 마나 운용학 교수, 오연희가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마나 운용을 부가적인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만,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나 운용이 곧 고유 능력의 활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오연희가 손에 든 스마트펜의 버튼을 누르자 뒤쪽의 PPT 화면이 넘어갔다.

"화면을 보실까요? 손전등 앞에 색깔 렌즈를 달면 빛의 색이 달라지죠. 볼록 렌즈나 오목 렌즈를 달면 거리에 따라 빛을 모아주거나 확장시킵니다. 플레이어의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선 렌즈가 '고유 능력', 그리고 손전등을 '마나'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네요. 개인의 고유 능력에 따라 마나는 불을 일으키기도 하고, 몸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며, 적을 속박하거나 분쇄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플레이어들의 '렌즈'는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손전등의 성능을 올리거나, 더 좋은 것으로 교체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지요! 마나 운용이야말로 성장에 직결되는 요소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겠어요. 자, 그럼."

오연희가 무대 위에 세팅된 장치들의 전원을 켰다. 사진관을 연상케하는 조명 장비들이 한 곳에 빛을 집중시켰다.

이 모두가 값비싼 마나 증폭 장비였다. 오연희는 그곳으로 다가가 마나를 일으켰다.

"다들 2학년이니 '마나실' 정도는 충분히 뽑을 수 있죠?"

그녀의 검지 끝에서 가느다란 청색실이 흘러나왔다.

"기본적으로 마나는 기체의 형상이지만, 플레이어들은 마나를 한 점에 굳히고 집중시켜 고체의 형상인 실로 뽑아낼 수 있습니다. 이 마나실은 실전에서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활용되므로, 프로 헌터 지망생이라면 반드시 숙달해야 하는 기술입니다."

그녀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마나실이 똬리를 틀며 움직이더니 이내 작은 꽃의 형태가 되었다. 학생들의 감탄이 곳곳에서 튀어나왔다.

"마나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나 운용의 섬세함. 그리고 집중력입니다. 집중력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꽃을 피우기도 중에 사라지겠죠."

그녀가 말하는 순간 마나실로 만든 꽃이 대기 중으로 흩어져 사라졌다.

"좋아요. 그럼 이제 한 명 씩 나와서 해볼까요?"

학생들이 한 명 씩 마나 투사기 앞에 서서 마나꽃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나 소모에 대한 부담 없이 컨트롤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나 생각보다 쉽지 않은 듯 대부분의 학생들이 실패를 맛보았다.

마나실을 일으키는 것까지는 쉽게 했지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 형태를 잡지 못하고 허물어지거나, 중간에 집중력이 끊겨 허공에 흩어져버리는 경우가 속출했다.

그래도 오연희는 웃는 얼굴로 학생들을 격려 했다.

"처음이니 실수하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대신 2주 후에 수행평가로 성과를 반영할 테니 철저히 연습해 오세요. 다음."

수행평가라는 말에 학생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제야 다들 자기 자리에서도 분주히 마나꽃을 만들어보고 있는 가운데.

덜컥.

강의실 문이 열렸다.

그리고 등장한 것은 퀭한 얼굴의 유신이었다.

"……."

강의실에 싸한 정적이 흘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유신이 꾸벅 고개를 숙이고 자리로 가려는데.

"김유신 학생. 사흘 연속 결석이라고 들었는데 무슨 일 있었나요?"

오연희가 그를 불러세웠다.

"조금 개인적인 사정이 있었습니다."

무미건조한 유신의 대답에 오연희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실 아카데미에서 김유신이란 학생은 꽤 유명했다.

비전투 계열의 고유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아카데미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학생이었다. 노력을 넘어서 광기가 느껴질 정도였기에, 지켜보는 모두가 혀를 내두르곤 했다.

마나 활용을 가르치는 오연희는 그런 그의 태도를 높게 평가했고, 자신의 수업에서 우수한 성적을 내는 유신을 마음에 들어 했지만.

지금의 유신은 뭔가 이상했다.

예전의 열정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티는 내고 있지 않지만 모든 것을 달관한 표정. 그리고 수업을 대하는 태도도 진지하지 못했다.

'정신 좀 차리게 해줘야겠네.'

오연희가 입을 열었다.

"김유신 학생. 가방 놓고 바로 올라오세요."

"예."

유신은 시키는 대로 그녀의 앞에 섰다.

"오늘의 수업 내용은 간단합니다."

그녀가 직접 투사기의 빛에 손가락을 넣어 마력실로 꽃을 피워보았다.

"마나실을 이용한 형태 구성입니다."

그녀가 설명하고 유신이 듣고 있는 사이, 자리에 앉은 학생들은 숨죽인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찍혔네, 저거. 오늘 탈탈 털리겠는데?'

'오연희 교수님 수업 태도에 민감한 거 빤히 알면서.'

'저 열등생이 이런 것도 못하면 진짜 답 없지.'

'그나마 있던 근성도 실종됐네. 잘 가라.'

열정적이다 못해 집념까지 보이는 김유신의 태도는 유난히 튈 수밖에 없었고, 이것은 다른 또래들에게 그리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유신은 그녀의 설명을 다 듣고 물었다.

"꼭 꽃이 아니어도 됩니까?"

"뭐든 상관없어요."

고개를 끄덕인 유신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우우우."

천천히 심호흡을 마친 그가 한 순간 눈을 떴다.

웃음기 하나 없이 싸늘하게 식은 표정에, 동공이 풀린 눈. 가끔 유신이 보이는 특유의 똘끼가 엿보였다.

'……저 오싹한 집중력은 여전하네.'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오연희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스르르륵.

유신의 손가락 끝에서 마나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었다. 무려 다섯 개의 마나실이 서로를 휘감으며 위로 쭉쭉 뻗어 나가고 있었다.

오연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실의 동시 운용?'

튼튼한 줄기를 형성한 마나실들이 이내 여러 갈래로 뻗어 나갔다.

가지를 형성한 마나실에서 다시 새로운 마나실이 일어나 잔가지를 형성했고, 이어서 그 자리에 잎과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오연희 입이 벌어졌다.

'…아니, 이건 마나실의 동시 운용이라는 개념이 아냐!'

유신은 그저 마나를 통째로 장악하고는 그때 그때 실의 형태로 뽑아 쓰고 있을 뿐이었다.

"……어어?"

"뭐야 저게?"

자기 자리에서 작은 꽃잎을 만들고 시시덕거리던 학생들은 입을 딱 벌릴 수밖에 없었다.

다들 기껏해야 손가락 위에 작은 꽃을 만드는 게 전부였지만. 유신은 꽃이 흐드러지게 핀 거대한 나무를 창조해 내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나무는 확장을 계속 했다.

마력 투사기의 범위는 진작에 벗어났지만, 지금의 유신에게 기계의 도움은 필요 없었다.

마나실로 만들어 낸 나무는 어느새 강의실의 천장 전체를 뒤엎었고, 그곳에서 피어난 꽃들은 하나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처럼 반짝였다.

마침내 만족한 유신이 고개를 돌렸다.

온 얼굴에 경악을 드러낸 오연희교수는 어정쩡한 자세로 강단을 붙들고 간신히 서 있었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요?"

오연희는 완전히 사고가 정지된 상태였다. 교수로서 학생의 결과물에 뭐라도 코멘트를 해주어야 했지만 불가능했다.

이건 자신의 역량을 뛰어넘었다는 개념을 넘어서, 기존의 상식을 아득히 초월한 것이었으니까.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만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유신이 눈을 감으며 다시 심호흡하자, 거대한 나무가 대기 중에 흩어져 사라졌다.

"……."

"……."

깊은 정적이 강의실에 깔렸다.

"오,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입니다."

완전히 넋이 나간 오연희가 결국 수업 종료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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