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블록버스터 (3)
“그래. 촬영.”
오백호 부장이 다시 한번 답했다.
그때 스태프들과 이야기를 마친 장뤽 감독이 도욱과 케이케이 멤버들을 향해 다가왔다.
“오! 케이케이! 그룹 케이케이를 여기서 보게 될 줄을 몰랐는데 말이죠.”
도욱의 옆에 있던 다니엘이 통역을 자처했다. 다니엘의 통역에 오백호 부장이 장뤽 감독과 간단하게 할 수 있는 모든 영어를 끌어다 인사하며 악수로 인사를 나누었다.
“와······. 저야말로 이곳에 올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벌써 상상만으로도 짜릿한 기분이에요. 초대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장뤽 감독님!”
김원이 나서서 멤버들을 대표해 이야기했다.
장뤽 감독이 그렇다면 다행이라는 식으로 김원을 보며 말했다. 멤버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뒤에 서 장뤽 감독을 바라보고 있었다.
멤버들이 가 본 그 어느 스튜디오보다 큰 스튜디오를 힐끔거리며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고 있기도 했다.
특히 박태형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늘 스타의 입장이었지만, 이곳에서 만큼은 박태형이 팬의 입장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도욱은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막을 아는 장뤽 감독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도욱은 멤버들이 온 게 반갑지 않나 봐요? 표정이 이상하네?”
“아! 그게 아니라!”
멤버들의 시선도 도욱에게로 쏠려 있었다.
도욱이 크게 당황하며 손을 저었다.
“너무 갑작스러워서요. 아직 인사도 제대로 못 했고······. 촬영이란 게······.”
“하하! 나도 농담입니다. 그럼 다들 잘 도착한 것 같으니 난 이만 가 보죠. 다들 내일 봐요!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요, 미스터 캉.”
장뤽 감독이 당황하는 도욱을 보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인사했다.
“네! 내일 뵙겠습니다!”
김원을 비롯한 멤버들이 고개를 꾸벅이며 장뤽 감독을 향해 인사했다. 도욱도 우선은 감독에게 인사를 했다.
계속해 얼떨떨해하는 도욱을 보던 안형서가 장뤽 감독이 떠난 뒤 입을 열었다.
“이 정도 깜짝 방문에는 도욱이도 정말 크게 놀라는구나!”
“그러게. 마, 진짜 안 반가워서 계속 당황스러워하는 거는 아니지.”
정윤기의 말에 도욱이 그럴 리가 있겠냐고 답하자 김원이 낄낄대며 답했다.
“흐흐. 너 당황하는 거 보려고 우리가 한국에서부터 완전 탑 시크릿으로 하고 왔지.”
“어쩐지······. 갑자기 어제부터 아무도 말이 없어서 다들 바쁜가 했거든요.”
하루에 몇 번씩 대화가 오가던 케이케이 단체방에 아무런 메시지도 올라오지 않아서 의아했던 도욱이었다.
“다 비행기 안에 있었으니까요!”
석지훈의 명쾌한 답에 도욱은 피식 웃었다.
“촬영이란 건 도대체······.”
“우리 다 케이케이 이름으로 히어로즈에 출연하게 됐다 안 하나.”
“케이케이요······?”
“마, 강도욱 없는 케이케이가 되겠지만. 내일 공연하는 거 야외에서 촬영하기로 했다.”
정윤기의 말에 더 놀랄 수 없을 것 같았던 도욱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멤버들의 서프라이즈 방문을 위해 미국 현지에서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다니엘도 도욱에게 이 사실을 숨기고 있었던 건 마찬가지였다.
“도욱 씨, 그 시나리오 중에 도시 전광판에 북한이 적인 알파론과 손을 잡았다는 내용이 송출되는 씬 있는 거 아시죠?”
“네. 알아요.”
“그 씬 보면 뉴욕 시민들의 평화로운 모습들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뉴스가 나오면 가장 높은 빌딩에서 빌리언맨이 나와 상공을 뚫고 출발하는 거잖아요?”
“네. 설마······?”
“그 평화로운 모습 중에는 센트럴 파크에서 음악회가 나오는 장면도 스쳐 지나갈 거구요.”
“그럼 그 음악회에······!”
“맞아요. 원래 감독님은 사중주 오케스트라 공연 같은 거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 그 공연에 케이케이가 나오는 걸로 바뀌었어요.”
다니엘의 설명이 계속될수록 케이케이 멤버들의 입가에는 뿌듯한 미소가 차올랐다.
김원은 가슴을 부풀리다 못해 내밀 듯했고, 덕분에 가슴이 빵빵해 보일 정도였다.
도욱은 멤버들의 얼굴을 한 번, 다니엘을 한 번, 번갈아보며 사실 여부를 확인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모두 히어로즈에 특별 출연을 하게 됐단 말이었다.
“어······.”
“음악감독님이 빌리언맨이 상공을 뚫고 가는 장면에 파워풀한 락이나 팝을 넣으려고 했었는데······. ‘Continue’도 후보곡 중에 하나였나 봐요.”
확실히 ‘Continue’는 해당 장면에 어울릴 만한 힘이 넘치는 곡이었다.
그럼에도 후보곡들 중 ‘Continue’가 후보에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었다.
‘Continue’는 케이케이의 곡들 중 최초로 빌보드에 올랐던 곡으로 케이케이가 세계적인 그룹이 되는 데 크게 기여한 곡이었다.
당시에는 빌보드 차트에 진입한 것만으로도 감격에 젖었었는데 이제 ‘Continue’라는 곡은 이렇게 어디에서나 거론될 수 있을 만큼 유명한 곡이 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에 도욱 씨 출연이 확정되고, 장뤽 감독님 아이디어로 케이케이가 직접 공연을 하는 장면을 넣는 게 됐어요. 실제로 케이케이가 센트럴파크에서 공연했던 일이 무척이나 센세이셔널 하기도 했고······. 영화 속에서도 현실과 같이 슈퍼스타인 케이케이의 공연을 시민들이 즐기고 있던 장면인 거죠.”
다니엘의 설명을 모두 들은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 장면에서 ‘Continue’의 노래가 커지며 빌리언맨이 하늘을 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 실제로 상상되기도 했다.
멋진 장면이 될 게 분명했다.
영화 외부적으로도 꽤 그럴 듯한 일이었다. ‘히어로즈 2’ 제작진의 입장에서나 케이케이 입장에서나 모두 프로모션에 활용하기 좋은, 서로 윈-윈 할 수 있는 기회였다.
케이케이가 세계적인 스타로 명실상부하게 자리 잡았다는 데 이제 어떠한 이견도 없었지만, ‘히어로즈 2’ 특별 출연은 그러한 이름에 도장을 찍는 일이 될 것이었다.
이미 도욱은 ‘히어로즈 2’ 출연만으로도 한국에서는 전무후무한 초특급 스타 대우를 받았다.
이제 ‘한국의 스타’라기보다는 ‘세계적 스타’였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있는 건 도욱만이 아니었다.
도욱 개인이 이 자리에 오기까지 케이케이라는 그룹이 있었듯이 케이케이 멤버들 모두가 도욱과 함께였다.
케이케이라는 그룹 전체에게 좋은 일이었다. 도욱은 자신에게 영화 출연 제의가 왔을 때보다 더 벅찬 감정을 느꼈다.
“세상에······. 너무 잘됐어요. 그렇게 큰일을 안 알려주고, 너무 기쁜 소식인데······. 와······. 너무 좋다. 한 영화에 모두 출연이라니······. 그것도 히어로즈······.”
일의 전말을 모두 알게 되자 도욱은 밀려드는 기쁨에 답지 않게 횡설수설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도욱에 멤버들도 뿌듯한 기분을 느꼈다.
도욱은 케이케이가 ‘히어로즈 2’에 출연하게 되었고, 노래까지 실리게 됐다는 사실에서 오는 기쁨 외에 오랜만에 멤버들을 만났다는 사실에 대한 반가움을 그제야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첫 촬영은 오늘이었지만, 도욱은 촬영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이미 3주 전 부터 미국에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다니엘이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고, 영화사인 제네럴 측에서도 주연 배우인 도욱의 생활에 부족함이 없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욱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혼자 미국에서 생활하는 일은 이전에 멤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던 생활과는 달라 도욱도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제는 동료를 떠나 친구이자 가족이 된 멤버들을 만나니 반가움은 배가되었다.
“내일이 촬영이래. 일단 우리 비행기 내리자마자 온 거라 너무 배고프니까 가면서 더 얘기하자. 얼른 버거 먹으러 가자, 햄버거!”
“도욱이 햄버거 물리지 않았겠나. 한식당이 낫지.”
“그런가? 도욱아 뭐 먹을래? 난 너무 배고파서 다 괜찮은데.”
안형서와 정윤기가 말했다. 확실히 멤버들이 모이니 금세 시끌시끌한 기운이 감도는 것이 도욱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저 어제도 한식당 갔다 와서 괜찮아요, 햄버거. 그런데 피곤하진 않으세요?”
“댓츠 낫 프라브럼! 비행기에서 엄청 잤다. 윤기 형은 코도 골았어.”
“마, 내가 무슨 코를 골았다고 그래.”
“형······. 진짜 비즈니스 클래스라 다행이었어요. 팬들이 들었다고 생각하면······.”
김원의 지적과 막내의 일침에 정윤기는 더 할 말 없다는 듯 입맛만 다셨다.
지켜보고 있던 오백호 부장이 고개를 저으며 모두를 이끌었다.
“그럼 햄버거 집 가자. 다니엘 씨, 안내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에요.”
다니엘이 흔쾌히 답했다.
그렇게 도욱과 멤버들은 모두 함께 햄버거 가게를 향해 촬영장을 나섰다.
“도욱이 촬영하는 걸 못 봐서 아쉽네.”
“그러게. 시간이 안 맞아서. 너 또 언제 촬영한다고?”
나가면서도 멤버들은 그동안 떨어져 있어 하지 못했던 대화들을 이어 나갔다. 멤버들과 대화하는 도욱의 얼굴이 무척이나 밝았다.
***
[케이케이 전멤버 ‘히어로즈 2’ 특별 출연 결정!]
[케이케이 센트럴파크에서 또 한 번의 공연, 이번에는 ‘히어로즈 2’ 촬영?]
[강도욱, ‘히어로즈 2’ 촬영 순항 중... 케이케이 카메오 등장]
[케이케이 노래 ‘히어로즈 2’에 실린다! 인기는 컨티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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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보이밴드 케이케이가 ‘히어로즈 2’에 출연한다?!]
다음 날 센트럴파크에서의 촬영과 함께 한국에서는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졌다. 한국뿐이 아니었다.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케이케이 팬들이 있는 곳에는 모두 기사가 나갔다.
도욱이 처음 캐스팅됐을 때만큼 많은 기사들이 나갔다.
처음 노렸던 홍보 효과는 양측 다 톡톡히 노린 셈이었다.
아직까진 케이케이의 팬보다 ‘히어로즈’의 팬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는 미국과 유럽 지역에서도 많은 기사들이 나왔다.
‘히어로즈 2’에 대한 기대감에 기사를 낸 것이었지만, 영화에서 색다른 재미로 케이케이의 공연을 짧게나마 볼 수 있다는 소식에 즐거워하는 팬들 또한 많았다.
“뉴욕타임 문화면에도 기사가 났더라구요. 오늘 현장을 찍으러도 직접 왔던데. 보셨어요?”
“네. 지금 기사 확인했어요.”
다니엘의 말에 답하며 도욱은 흐뭇하게 웃었다.
오늘 케이케이 멤버들의 촬영은 평소와 같이 무대를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어서 총 두 번의 촬영 끝에 빠르게 마무리될 수 있었다.
어차피 라이브 무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도욱의 빈자리는 멤버들이 N분의 1로 나눠 빈틈없이 안무를 소화해냈다.
무대 아래에서 멤버들의 공연을 보는 일은 무척이나 생소한 기분이었지만, 촬영 현장에서 도욱은 즐거운 마음으로 멤버들을 응원했다.
“도착했어요.”
다니엘이 차를 세우며 말했다.
도욱은 촬영을 마친 멤버들과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어제 헐버트가 초대했던 파티의 장소에 온 참이었다.
파티에서 미리 친분을 쌓아 놓으면 합동 액션신이 많은 다음 촬영 현장에서 도움이 될 게 분명했다.
“고마워요, 다니엘.”
“끝나고 연락주세요. 제가 데리러 올게요.”
“아니, 그렇게까진 그냥 택시를 부르면 될 것 같은데······.”
“미국은 한국보다도 더 조심해야 할 것이 많기도 하고, 이게 제 일이니까 너무 부담스러워하지 마셨으면 해요.”
“알겠습니다. 그럼 집에 돌아갈 때 연락드릴게요.”
“네. 혹시 중간에 무슨 일 생기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헐버트 외에는 모두 처음 보는 배우들이 모여 있을 테고, 미국에서 이런 식의 모임에 참여했던 적이 전무해서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야말로 히어로즈에 출연하는 배우들이 여는 ‘사적인’ 파티였기 때문에 따로 매니저와 함께하긴 힘들었다.
“뭐, 도욱 씨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아요. 헐버트 마음에도 들었는데……. 다른 배우분들은 조금 더 난이도가 낮은 편이지 않겠어요?”
“하하. 네.”
다니엘의 말에 도욱도 동의했다. 어차피 같은 영화에 출연하는 동료 배우들이었다.
도욱이 생각하며 차에서 내렸을 때, 파티가 열리는 헐버트의 햄튼 별장 앞에는 익숙한 얼굴도 막 도착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