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14화 (214/225)

# 214

Hero (2)

“히어로즈……. 그, 그 히어로즈…….”

박태형이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 김원은 이미 대기실을 한 바퀴 빙빙 돌며 무릎을 치고 난리가 난 상태였다. 이십여 년 전 국민적인 인기를 얻었던 시트콤의 아역배우처럼 이마까지 치고 있었다.

물론 김원이 외치는 건 ‘맙소사’ 대신 영어였다.

“Oh, my gosh! That’s……, so, so amazing!”

김원이 도욱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고는 흔들어댔다.

도욱은 김원 때문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지만, 김원이 어깨를 흔들어서 어지러운 것인지 너무 어마어마한 소식을 들어서 어지러운 것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히어로즈’에 캐스팅이 됐다고 하면, 영화 ‘히어로즈’ 캐스팅을 말하는 것이었다. 원작은 제네럴코믹스에서 출판된 동명의 만화였다.

만화 ‘히어로즈’에는 제목 그대로 수많은 현대판 영웅들이 등장했다.

그러한 영웅들의 스토리를 하나씩 따와 제네럴 코믹스에서 만든 영화들이 ‘빌리언맨’, ‘헤라클레스’, ‘스피드 스파이더’, ‘솔저 아메리카’, ‘샤크’ 등이었다.

영화들이 연이어 성공하며 제네럴 코믹스는 ‘제네럴’이라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그러한 가운데 만화 ‘히어로즈’의 모든 영웅들을 불러 모아 출연시킨 게 영화 ‘히어로즈’였다.

영화 ‘히어로즈’의 성공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역대 많은 영웅 영화가 있었지만, ‘히어로즈’는 출연진부터 제작비까지 모든 것에 있어 스케일이 달랐다. 미국 영화의 ‘끝판왕’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이미 각각 캐릭터의 팬들이 집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그들이 합쳐졌으니 그 시너지 효과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몰랐다.

‘히어로즈’의 인기는 단순히 미국만의 것이 아니었다. 전 세계적인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700만이 넘는 관객이 ‘히어로즈’를 관람했다.

흥행 수익은 무려 15억 불에 달했다. 한화로는 1조를 넘어선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히어로즈에 영웅으로 분하는 주연급이면 말할 것도 없었고, 주조연급들도 세계적인 스타로 성장하는 발판, 그 자체였다. 아니 이미 ‘히어로즈’에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셈이었다.

그 ‘히어로즈’였다.

대기실 분위기는 무척이나 고조되어 있었다.

“히어로즈에서 무슨 역할인데요?”

안형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마, 역할이 뭐 중요하노. 히어로즈에 10초만 얼굴 나와도 엄청 성공한 거 아이가.”

“형! 히어로즈가 대단하긴 하지만, 도욱이도 케이케이거든.”

정윤기는 도욱에게 온 역할이 그다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에 얼른 안형서의 질문을 막은 것이었고, 안형서의 입장은 영화 ‘히어로즈’도 대단하지만 도욱도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두 사람 다 같은 멤버이자 동시에 도욱의 ‘팬’이라고 해도 될 만한 태도들이었다.

도욱 또한 캐스팅 자체만으로 이미 어지러웠지만, 사실 역할도 무척이나 중요했다.

K-POP이 성행하고, 한류 배우들이 생겨나면서 할리우드 쪽에서도 간혹 아시아 시장을 노리고 한국 배우를 캐스팅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할리우드에서 아시아 배우들의 역할은 무척이나 제한적이었다. 한국 배우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씬이 없는 배역들이 많았고, 악역이거나, 상대적으로 나약한 모습의 역할을 해야 했다. 일본풍 사무라이에서 따온, 한국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 식이라면 안 하는 게 낫겠지……. 제아무리 히어로즈라고 해도…….’

도욱은 여전히 겸손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케이케이와 도욱은 한국 국민들의 자랑 중 하나였다.

한국인들은 외국인에게 한국에 대해 이야기할 때, ‘Do you know 김치?’와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무언가로 묻는 경향이 있었다.

외국인에게 그런 것을 물어보는 게 촌스럽다는 얘기도, 우스갯소리로 ‘두유노 클럽’이라는 등의 얘기도 많았지만, 어쨌든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했다.

‘Do you know’ 뒤에는 김치뿐 아니라 불고기, 독도, 박진성, 김아영 등과 같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들과 문화,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따라붙었었다. 케이케이도 이제 그 대열에 당당히 합류해 있었다.

최근에는 외국인이 먼저 한국인을 만나면 ‘케이케이’를 아냐고 물어오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들이 인터넷에 다양하게 퍼져 있었다.

그런 케이케이의 도욱이 단지 유명세를 위해서 ‘히어로즈’에 말도 안 되는 역할로 출연하게 된다면 국민들이나, 팬들의 자존심이 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도욱도 그런 일은 원하지 않았다. 지금도 충분히 자신이 위치한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오백호 부장은 도욱이나 멤버들의 생각을 안다는 듯 끄덕였다.

“어……. 도욱이가 히어로즈에서 맡은 역이 뭐냐면…….”

오백호 부장이 말했다.

“히어로즈 중 한 명이라던데…….”

도욱은 침을 한 번 삼켰다.

‘히어로즈의 히어로!’

완전히 주연이었다. 생각하기 힘든 스케일이었다.

“샤……, 샤크 같은 거요……?”

사실 박태형은 한국에 존재하는 ‘히어로즈’ 매니아들 중 하나였다. 특히 평소에는 수줍고 평범한 사람이다가 순식간에 돌변해 모든 것을 물어 뜯어버리는 샤크의 광팬이었다.

“흠……. 내가 사실 히어로즈를 잘 몰라서. 이대형 팀장도 캐릭터까진 모르겠다고 했어. 아시아 영웅 캐릭터가 제네럴 코믹스에 따로 없었던 것 같다고…….”

“맞아요…….”

박태형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박태형은 ‘히어로즈’ 만화 원작까지 이미 완독한 상태였다. 원작엔 아시아인 캐릭터는 전무한 수준이었고, 몇십 년이 지난 만화였기 때문에 영웅들도 모두 미국인이거나 아예 우주에서 온 이들이었다.

미국식 영웅주의라고 ‘히어로즈’가 비판받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가서 얘기해봐야 알 것 같다고 하더라. 히어로즈 중 한 명인데 도대체 어떤 캐릭터인지는……. 그래서 당장 미팅 잡은 거야. 기든, 아니든 빨리 결정돼야 활동 계획을 세우고 스케줄도 잡으니까…….”

회사 입장에서는 당연히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

“네.”

도욱은 들뜬 마음을 애써 다잡았다. ‘히어로’라고 하더라도 어떤 히어로가 될지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는 셈이었다.

“아무튼 엄청난 건 확실하네요. 히어로즈에서의 캐스팅 제의라니…….”

석지훈이 말하자 잠시 차분해졌던 멤버들도 모두 다시 신나서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래, 이거는 출연 안 하더라도 진짜 토크쇼 나가서 백 번은 우려먹어도 될 것 같은데?!”

안형서의 말에 도욱도 약간의 긴장감을 풀고 웃었다.

대기실을 정리하고 오백호 부장을 필두로 멤버들이 한 명씩 대기실 밖으로 나오고 있을 때였다.

화장을 모두 지우고 무대의상에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소녀들이 대기실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오!”

여자 아이돌 그룹을 좋아해 여자 아이돌들의 이름을 줄줄이 꿰차고 있는 김원이 역시나 가장 먼저 소녀들을 보고 반응했다.

물론 도욱이 투자한 그룹이라는 이유 때문에 김원에게도 소녀들은 다른 아이돌과는 달리 조금 더 특별한 존재였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케이케이를 발견한 소녀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음악방송에 출연한 대부분의 이들이 선배 가수였기 때문에 방송국에 오면 소녀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인사를 하곤 했다. 때문에 케이케이를 발견하자마자 인사를 하는 반응속도는 거의 기계 수준이었다.

일렬로 서 인사를 해 오는 소녀들을 보며 케이케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도욱이 덕분에 데뷔했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도욱이가 투자해서 만든……!’

멤버들은 팔불출 같지만 그런 말들을 하고 싶어 입가를 실룩거렸다. 정작 도욱은 다른 후배가수들을 대하듯 덤덤하게 인사했다.

도욱은 가장 맨 왼쪽에 서 반짝거리는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소녀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인사를 할 때에도 반 박자 정도 늦게 고개를 숙이던 멤버였다.

인사를 하는 발음이 불분명하던 그녀는 소녀들의 일본인 멤버였다.

장혜성 대표가 도욱의 조언을 받아들여 어렵게 영입한 멤버였다.

그냥 보아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얼굴형이나 눈썹 모양 등에서 미묘하게 차이가 났다.

볼에 분홍색 치크를 한 수줍은 일본 소녀의 이름은 하시모토 미루.

수줍어 보이지만 무대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다. 물론 연습생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은 데다 언어적 제약 때문에 실력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떨어졌지만 분명한 매력 포인트들이 있었다.

덕분에 한국에서도 막내인 다혜와 리더 윤지 다음으로 인기가 많았다.

‘역시…… 장혜성 대표도 보는 눈이 확실히 있다.’

도욱은 미루를 보며 생각했다.

소녀들은 현재 국내에서 가장 핫한 여자 아이돌이었다. 팬덤이 가장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가장 빠르게 세력을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심지어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K-POP 팬들 사이에서 소녀들의 팬들이 생겨났다.

소녀들의 음악이 일본과 잘 맞은 것도 있지만, 역시 자국 멤버가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일본에서는 미루의 인기가 가장 많다는 게 그 증거였다.

일본 시장의 자금 동원력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므로로 자본이 많지 않은 혜성기획으로서는 큰 기회였다.

도욱의 혜안이 여러모로 혜성기획과 소녀들에게 큰 도움을 준 것이었다.

“그럼…….”

리더인 윤지가 긴 머리를 뒤로 넘기며 예의바르게 인사를 하고는 지나갔다.

뒤로 줄줄이 소녀들이 윤지를 따랐다. 케이케이 멤버들이나 도욱에게는 더 이상의 불필요한 시선도 주지 않은 채였다.

사실 도욱과 석지훈이 Bunker21이었던 것도 궁금했을 거고 오랜만에 본 도욱에게 인사도 하고 싶었을 텐데도 전혀 그런 티를 내지 않는 모습이었다.

막내 다혜만이 아쉬움에 뒤를 한 번 더 돌아보았을 뿐이었다.

오히려 벙 찐 것은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어…… 아는 사이 맞아?”

“마, 도욱이 우리한테 뻥친 거 아이가.”

팔불출처럼 도욱의 능력을 자랑하고 싶었던 안형서와 정윤기가 캐물었다.

”하하.”

도욱이 어색하게 웃었다.

자신의 당부를 들어도 너무 잘 듣는 소녀들이 귀엽게까지 느껴졌다.

흐뭇한 미소와 함께 도욱이 돌아섰다. 오백호 부장이 멤버들을 재촉했다.

***

미국 캘리포니아 대저택.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크기의 저택이었다. 처음 문에서 저택의 응접실까지 들어오는 데 차로만 몇 분이 걸리는 수준이었다.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고용인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도욱과 이대형 팀장을 맞았다.

‘이곳이…….’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도욱은 감탄했다. 벽마다 히어로즈의 히어로 그림과 사진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곳, 캘리포니아 저택은 ‘히어로즈’를 탄생시킨 마틴의 저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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