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12화 (212/225)

# 212

새로운 서막 (4)

전화를 받은 오백호 실장은 그길로 이대형 팀장을 만나러 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이대형 팀장은 급할 것 없다고 했지만 오백호 실장의 마음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오백호 실장과 이대형 팀장이 만난 곳은 사무실 근처의 카페였다.

“오 부장님, 여기요!”

먼저 와서 오백호 실장을 기다리고 있던 이대형 팀장이 손짓했다.

오백호 실장은 얼마 전 인사이동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 성과나 수익적인 면에서는 케이케이 한 팀만으로 이미 3대 대형 기획사를 넘어서기 시작한 힛 엔터테인먼트였지만 아직 조직 규모적인 면에서는 영세한 편이었다.

그 때문에 직급 승진 자체가 내부에서 큰 의미를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미 매니저 팀 내에서 오백호 실장은 실장이 아니라 부장급, 아니 그 이상의 일을 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래도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이 뒤따르는 자리였고, 그만큼 급여도 많이 인상되었다.

“아. 팀장님.”

오백호 부장이 이대형 팀장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자리로 향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부장 직함을 달고 나니 안 그래도 큰 체구에 남다른 기세가 느껴지던 것이 한층 심화된 느낌이었다. 오백호 부장이 자신에게 위해를 가할 것도 아닌데 이대형 팀장은 어쩐지 저도 모르게 뒤로 몸을 물리며 움츠러들었다.

‘부장’이라는 직함도 오백호 뒤에 붙으니 회사의 직함이 아닌 어둠의 세계의 직함처럼 느껴졌다.

“하하. 빨리 오셨네요.”

얼른 정신을 차린 이대형 팀장이 앞에 앉은 오백호 부장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대형 팀장에게도 물론 급여 인상이 있었다.

그러나 직급은 여전히 실장이었는데, 이대형 팀장의 경우 아예 부서 이동까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획운영팀 조애니 부장 자리에 이대형 팀장이 갈 가능성이 높았다. 조애니 부장이 상무 자리에 앉을 때의 이야기였다.

잼 뮤직 인수 건이 생기면서 그 시일이 조금 미뤄지게 되었다. 조애니 부장이 인수 건을 마친 후, 힛 엔터테인먼트 내부 조직은 완전히 개편될 예정이었다.

“부장 승진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지난번에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아라 엔터로 간다는 겁니까?”

오백호 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직 음료도 주문하기 전이었다. 주문을 받으려 메뉴판을 들고 오던 종업원이 오백호 부장의 험악한 기운을 느꼈는지 뒤에서 쭈뼛거리고 있었다.

이대형 팀장이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내젓고는 종업원을 불러 메뉴판을 받았다.

“아, 아니에요. 부장님. 이거 참. 우선 주문부터 하시죠.”

“아니라고요? 전 아이스 카라멜마끼아또 마시겠습니다.”

“하하. 네. 아니에요. 여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아이스 카라멜 마끼아또 한 잔이요.”

이대형 팀장이 빠르게 주문을 하고는 오백호 부장과 다시 마주했다.

전화로 도욱에게 새로 들어온 제안이 있다고 말하면서 자신에게도 아라 엔터에서 제안이 들어왔다고 했더니 당장 만나자고 성화를 부린 오백호 부장이었다.

오백호 부장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대형 팀장은 멤버들도 모르는 도욱과 아라 엔터테인먼트와의 스토리를 알고 있는 자신 외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또 데뷔 초부터 지금까지 케이케이가 지금의 자리에 있기까지 관계자들 중에서는 가장 중요한 순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특히 미국 진출 등에 있어서 이대형 팀장의 역할이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조애니 부장도 그 점을 높게 사고 있었고, 오백호 부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팀도 다르고 업무도 다르지만, 케이케이라는 그룹의 최측근으로서 이대형 팀장과 같은 인물을 아라 엔터테인먼트에 보낼 수는 없었다.

“네. 그 서중원 본부장 밑에서 일하던 전략기획 진국선 실장 자리를 제안받긴 했어요······.”

“아······.”

서중원 본부장이 그렇게 되면서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대대적인 물갈이가 진행 중이었다. 서중원 본부장 라인을 타던 사람들은 대부분 갈려 나가고 있었다. 그 자리를 내부에서 채우고는 있었지만, 어쨌든 공석이 꽤 생겨난 건 사실이었다.

오랜 시간 업계 1위를 지켜 오던 회사였다. 그렇다 보니 갑작스럽게 생겨난 자리들에 엔터 업계 인력 시장이 요동치고 있었다.

청월이나 주요 기획사들은 아라 엔터에 핵심 인력을 뺏기지 않기 위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어쨌든 아라의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이었으니 아라 엔터에서 밀려난 인사들을 데려오기 위해 애쓰는 중소 기획사들도 많았다.

이미 힛 엔터테인먼트 앨범제작팀 직원 중 한 명도 아라에서 스카우트해 갔다.

케이케이라는 그룹이 현재 가장 최고의 그룹이었기 때문에 이제 ‘케이케이 제작’에 몸담았다고 하면 업계 어디에서도 쳐 주는 경력이 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회사를 옮기는 정도는 본래 있는 일이고 큰 누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괜찮았다. 물론 이대형 팀장급이라면 말이 달라졌다.

‘역시 이대형 팀장에게 중요한 자리로 제안이 들어왔구나.’

오백호 부장은 차분히 끄덕였다. 어쨌든 이미 이대형 팀장의 선택은 힛 엔터테인먼트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차분함이었다.

“한 6개월 정도 일하면서 아라 쪽 일 다시 익히고, 그다음에 서 본부장 있던 자리로 가는 것 어떻겠냐고······.”

오백호 부장의 눈이 커졌다.

다시 말해 이대형 팀장이 제안받은 자리는 서중원 본부장의 자리였다. 전략기획 실장 자리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자리였지만, 본부장 자리는 아니었다.

이대형 팀장이 부장이 된다고 해도 힛 엔터테인먼트의 부장과 아라 엔터테인먼트 본부장 자리는 그 차이가 꽤 있었다.

“그걸 거절했단 말입니까?”

오백호 부장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네.”

이대형 팀장이 사람 좋게 웃으면서도 명확하게 답했다.

“뭐······. 회사 입장에서나 저야 좋지만······.”

거절한 제안을 굳이 오백호 부장에게 언급한 건 이대형 팀장 스스로도 더는 흔들리지 않게 쐐기를 박아 놓고 싶어서였다.

이대형 팀장으로서도 무척이나 솔깃한 제안이었다.

확실히 아라 엔터의 본부장자리까지 가게 된다면, 회사의 규모나 업계 영향력을 바탕으로 국내외에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힛 엔터테인먼트를 계속해서 함께 키워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현재와 미래,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고 많은 갈등이 있었다.

“향후 십 년 안에 힛은 아라보다 더 큰 회사가 되어 있을 겁니다. 저는 그 미래를 본 거예요.”

막 두 사람이 주문한 음료가 테이블에 놓였다. 이대형 팀장의 말에 오백호 부장이 목을 축이며 답했다.

“그렇게만 되면 바랄 게 없겠죠. 위쪽에서 다들 꿈꾸고 있는 거고······. 안 그래도 신인개발팀 팀장이랑 회의를 하다 왔습니다. 케이케이도 계속 성장할 테지만, 후발 주자도 키워야 하니······.”

“그렇죠······.”

“도욱이가 소녀들에 투자한 거 이 팀장님까진 알고 계시죠? 힛 엔터에서 다음으로 나올 그룹은 아마 도욱이가 케이케이처럼 키워낼 겁니다. 이 팀장님도 남아주신다면 더욱더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지 않겠습니까?”

오백호 부장이 확신하듯 물었다.

“그럼요.”

이대형 팀장은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번 확인받은 듯했다. 강도욱이라는 제작자가 있는 회사가 곧 업계의 탑이 될 것임을 이대형 팀장은 이미 굳게 믿고 있었다.

도욱은 스타로서도, 제작자로서도 대한민국의 전무후무한 인물이었다.

사실 아라에서 제안이 들어왔을 때, 이대형 팀장은 가장 먼저 도욱에게 제안에 대해 말했다.

처음 서중원 본부장에게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을 때에도 힛 엔터에 남게 된 계기는 결국 도욱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도 선택에 많은 영향을 끼칠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역시나였다.

도욱에게 제안에 대해 말했을 때, 도욱은 망설이지 않고 축하부터 전했다.

“벌써 아라에서만 두 번째 제안이지 않나요? 팀장님을 업계 모두가 주시하고 있을 겁니다.”

“그렇게 띄워주면 부끄러워요. 하하.”

“팀장님이라면 아라에 가서도 정말 잘하실 겁니다. 오히려 서중원 본부장보다 더 아라를 일으켜 세울 수도 있고요······.”

“도욱 씨는 제가 아라에 가길 바라는 거예요?”

“너무 좋은 제안이지 않습니까? 팀장이 이끌어가는 1위 기획사의 모습도 보고 싶어요. 다만······.”

도욱의 말에 이대형 팀장은 도욱이 단지 자신을 회사의 일원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이대형 팀장 개인에게만 좋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도욱은 망설이지 않고 이대형 팀장에게 좋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 자리가 워낙······. 아시지 않습니까. 아라 내부 파벌도 심하고, 방송가 권력도 쥘 수 있는 곳이니까요. 팀장님께서 흔들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대형 팀장은 잠시 침묵했다.

사실 이대형 팀장이 고민하던 부분 중 하나였다. 이대형 팀장은 야망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까지는 힛 엔터의 건강한 분위기와 함께 그 야망이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발산되고 있었다.

그러나 분위기가 사람을 어떻게 바꿀지 몰랐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에 가면 서중원 본부장처럼 권력의 개가 될까 스스로도 두려웠다.

역시 도욱은 정확하게 그 부분을 짚어주었다.

이대형 팀장은 끄덕였다.

이미 힛 엔터테인먼트에서 노력과 열정, 그 뒤에 오는 순수한 성취의 기쁨들을 너무 많이 알아 버린 이대형 팀장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에는 그것을 인정해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다.

또 당장이 아니라 오 년 후, 십 년 후를 생각하면 힛 엔터테인먼트에 남는 게 맞다는 생각이 도욱과의 만남 이후 강하게 이대형 팀장의 머릿속에 남았다.

“끝까지 잘해 봅시다.”

“네, 부장님. 그리고······.”

“맞아, 도욱이한테 들어왔다는 제안은 뭡니까?”

“지금 도욱 씨는 bunker21 스케줄 갔죠?”

오백호 부장이 시간을 확인하고는 끄덕였다. 도욱에게 메시지를 보낼까 하다가 무대를 앞두고 마음을 들뜨게 하고 싶지 않아 그만둔 이대형 팀장이었다. 물론 도욱이 그런 걸로 무대를 망칠 초보는 아니었지만, 도욱조차도 들뜰 수 있는 소식이었다.

“도욱 씨······. 제네럴 코믹스를 좋아하던가요?”

이대형 팀장의 물음에 갑자기 웬 만화 얘기냐는 듯 오백호 부장이 무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 이내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

SVS ‘인생가요’ 생방송 현장.

“자! 모두가 궁금해하던 Bunker21이 오늘 드디어 그 정체를 밝힙니다!”

“네~ 오늘의 1위 후보이기도 하죠? 인생가요 최초 공개! 채널 고정해 주세요!”

“소개합니다! Bunker21!”

인생가요 MC인 오빈과 특별 MC가 된 소녀들의 다혜가 Bunker21을 소개했다.

Bunker21의 무대는 비공개 사전녹화로 최소 인원만을 데리고 진행했기 때문에 MC들 조차 아직 Bunker21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두근대는 마음으로 모두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곧 ‘들어보세요’의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함께 뿌연 드라이아이스 연기를 헤치고 두 남자의 모습이 공개되었다.

“꺄악!”

“헐!”

“뭐야? 뭐야, 뭐야!”

“대박! 무대 위 봐요!!!”

얼굴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도욱과 석지훈이 VCR 화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방송에 녹화된 화면이 나가는 동안 생방송 무대 현장에도 서비스 차원으로 도욱과 석지훈이 올라서고 있었다.

방청을 온 이들은 대부분 오늘의 다른 1위 후보인 채은호와 맨투맨 팬들, 그리고 다른 그룹의 팬들이었다.

그럼에도 도욱과 석지훈을 본 팬들의 반응은 엄청 났다. 다들 까무러칠 듯 놀란 상태였다.

“꺄아아아아!”

소리를 질러대는 방청석만큼이나 MC석의 오빈과 다혜도 놀란 상태였다. 도욱의 팬이기도 한 다혜는 생각지도 못한 만남에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도욱과 석지훈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방청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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