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9
새로운 서막 (1)
처음 도욱이 잼 뮤직의 주식을 산 건 혜성 엔터테인먼트에 투자를 했을 시기였다.
앨범 시장이 줄어들고, 음원 시장이 생겨나면서 아주 초기에는 시장의 가능성을 본 투자자들이 음원 유통사들에 상당한 돈을 투입했다.
당시 우후죽순으로 생겨난 음원 유통사 중 그나마 살아남은 것은 현재 3대 음원 유통사라 불리는 ‘파인애플 뮤직’, ‘BN 뮤직’, ‘잼 뮤직’이었다.
그러나 잼 뮤직의 음원 시장 점유율은 10퍼센트대로 상당히 낮았다.
파인애플 뮤직과 BN 뮤직의 점유율이 각각 56퍼센트, 26퍼센트라는 사실을 비교해 보면 이 사실을 확실히 실감할 수 있었다.
심지어 업계 선두주자였던 파인애플 뮤직과 TBN이라는 음악 방송사로부터 힘을 받고 있는 BN 뮤직에 밀려 점점 입지가 줄어드는 추세였다.
음원을 풀면 똑같이 공개되지만 유통사가 파인애플이면, 파인애플 사이트에 노출이 많이 되고 파인애플 차트에서 강세를 보였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제작자 입장에서는 가장 점유율이 높은 파인애플 뮤직을 통해 유통하는 것이 이득이었다.
그러한 연결고리 때문에 파인애플 뮤직은 계속해서 커지고, 잼 뮤직은 계속해서 뒤쳐지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런데 도욱이 잼 뮤직에 투자를 한다고 했으니 도욱의 아버지로부터 소개받은 컨설턴트는 깊은 우려를 표할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도욱이 주식을 산 이후에도 잼 뮤직의 주가는 계속해서 하락세였다.
그러나 도욱은 잼 뮤직의 주가가 떨어질 때마다 더 많은 주식을 사 모았다.
결과적으로 도욱이 가진 잼 뮤직의 주식은 어마어마해졌다.
물론 금전적인 가치 자체는 그다지 없었다.
도욱이 같은 돈을 다른 곳에 투자했더라면 오히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도욱이 얻고자 했던 건 금적적인 이득이 아니었다.
잼 뮤직에 투자하면서 얻고자 했던 건 다름 아닌 제작자로서 방어 도구를 갖추는 것이었다.
이전 시대에 앨범 판매량과 방송 순위가 인기의 척도였던 것처럼 음원 차트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하면서 음원 유통사들이 가지는 권력은 가요계에서 어마어마한 것이 되었다.
생산자가 생산해 낸 음악이 소비자에게로 가기 위해선 유통사가 반드시 필요했다.
그런 구조였기 때문에 몸집을 키운 유통사들은 점점 더 자신들의 수익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부담을 떠넘겼다.
그렇게 유통 수수료는 총 수익에 절반에 달했고 소비자가 비싼 금액으로 음원을 구입해도 생산자에게 돌아오는 실제 수익은 얼마 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너무 과한 이득은 취한다는 비판이 계속됐지만, 이미 정착된 구조를 바꾸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파인애플 뮤직이 유명 대기업에 인수되고, 거의 독점에 가까운 시장을 형성하면서 횡포는 더욱 심해진다······.’
도욱은 그러한 미래를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막 파인애플 뮤직이 유명 대기업에 인수된 직후였다. 파인애플 뮤직에서는 수수료를 일괄적으로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BN 뮤직과 잼 뮤직 등에 물밑 작업을 통해 담합을 제안한 것도 파인애플 뮤직이었다.
도욱의 준비는 바로 그에 대한 대비책이었다. 도욱은 이제 단순히 기획사 직원이 아닌 음악을 생산해내는 생산자의 입장이었다. 그리고 소비자들은 도욱의 음악을 듣는 팬들이었다.
‘과거에는 파인애플 뮤직이 너무 커졌기 때문에 아무도 파인애플 뮤직의 횡포를 막을 수 없었지만······.’
도욱은 잼 뮤직을 소유함으로써 잼 뮤직이 수수료를 올리는 것을 막을 예정이었다.
수수료를 올리지 않으면 당연히 잼 뮤직은 당장의 수익에서는 다른 유통사에 비해 손해를 볼 것이었다.
문제는 수수료가 낮다고 하더라도 점유율도 낮기 때문에 제작사들 입장에서는 잼 뮤직은 최우선 선택지가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케이케이가 잼 뮤직과 손을 잡는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었다. 이제 케이케이는 방송 활동 없이도 앨범판매량과 음원 성적 모두 최고점을 찍는 가수였다.
굳이 수수료가 높은 파인애플 뮤직을 통해 홍보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에 더해 오히려 힛 엔터테인먼트가 잼 뮤직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 잼 뮤직의 시장 점유율이 늘어난다면, 잼 뮤직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욱이 원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제작사와 유통사, 소비자의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을 현재 여러 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도욱 혼자 처리하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도욱은 조애니 부장에게 이 일을 넘길 생각이었다.
도욱은 이미 잼 뮤직의 대주주였고, 잼 뮤직을 움직일 힘이 있는 상황이었다. 입지를 잃어가는 잼 뮤직으로선 힛 엔터테인먼트의 손길은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었다. 기사회생할 기회였다.
장기적으로 유통 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떠안아야 할 힛 엔터테인먼트로서도 유통사 인수라는 도욱의 제안은 놀라운 것이었다.
자신도 생각지 못한 방향의 일을 도욱이 오래전부터 준비해 왔단 것에 조애니 부장은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파인애플 뮤직 쪽에선 이미 고객사들한테 수수료를 올리겠다고 통보한 모양이던데······. 잼 뮤직은 따르지 않을 거란 걸 알려야 하지 않겠나?”
조애니 부장이 도욱에게 물었다.
잼 뮤직이 수수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분명히 수수료에 대한 부담을 느껴 파인애플이 아닌 잼 뮤직을 선택하는 이들도 생겨날 것이다.
특히 대형 가수들을 가진 기획사에서 관심을 보일 터였다. 그렇게 되면 파인애플 뮤직의 수수료 인상 정책도 취소될 가능성이 컸다.
“외부에 알리는 건 조금 기다리죠.”
유통사 수수료 인상 건은 서중원 본부장을 압박할 상황 중 하나였다.
수수료가 인상되면 영업 실적이 떨어질 게 분명했고, 그러한 사실은 아라 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서 서중원 본부장에게 더 많은 실적을 요구할 명분이 될 것이었다.
수수료 인상 건이 무산되는 일은 서중원 본부장이 완전히 나락으로 떨어진 이후가 되어야 했다.
‘물론 이미 너무 많은 일들이 서중원 본부장을 가로 막았겠지만······.’
그때 도욱의 휴대폰이 울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주민아구나.’
도욱은 조애니 부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일이 끝나가고 있음을 알리는 전화이기도 했다.
***
‘안녕히 가세요.’
도욱의 마지막 인사였다. 주민아는 도욱과의 전화를 끊고 담담히 걸어 나갔다.
가족들을 비롯해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매니저와도 제대로 된 인사는 하지 못했다. 일을 그만둘 것이며 당분간 외국에 나가서 살 것이라는 소식만 일방적으로 통보한 상태였다.
홀로 입국장을 향해 걸어가는 주민아를 기자 한 명이 발견하고는 달려왔다.
한 명이 달려오자 공항 근처를 배회하던 기자들이 모두 몰려들기 시작했다.
푹 눌러쓴 모자나 마스크, 선글라스로도 그녀는 가려지지 않았다. 그러기엔 너무나도 큰 톱스타였다.
‘우주에서 온 연인’ 이후 다음으로 출연한 주말 드라마에서도 주연을 맡으며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던 주민아였다. 그런 그녀가 돌연 은퇴를 발표한 게 한 시간 전이었다.
소속사를 통해 발표한 것도 아닌 개인 SNS를 통해 한 은퇴 선언이었다.
오랜 연예계 활동에 심신이 지친 상태이며, 연예인 주민아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는 내용이었다.
주민아의 소속사인 아라 엔터테인먼트 내부는 발칵 뒤집어진 상태였다. 기자들의 전화가 빗발쳤다. 그러나 상황을 파악 중이라는 답변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재계약이 일주일 남은 시점이었다. 계약서에 사인만 하지 않았을 뿐, 이미 예전에 재계약 조건까지 합의된 상태였다.
기자들은 글을 올린 주민아의 행방을 찾아 헤맸고, 주민아가 오늘 출국한다는 소식까지 알아내 공항에 진을 치고 있는 상태였다.
“주민아 씨! 왜 갑자기 은퇴를 결심하신 겁니까?!”
“무슨 일이 있으신가요?”
“결혼입니까?”
“한 번만 대답해 주세요! 민아 씨!”
공항 일각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주민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마스크를 내렸다. 주민아의 얼굴을 초췌하기 그지없었다.
주민아는 어렵게 입을 뗐다.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닙니다. SNS에 쓴, 그대로입니다. 지금까지 저를 좋아해 주셨던 팬 여러분들께 너무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제겐 너무 과분한 생활이었던 것 같습니다. 반성하고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겠습니다. 더 이상의 관심은 저를 너무 힘들게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발랄한 이미지로 사랑받아오던 그녀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주민아의 눈가에 눈물이 매달렸다.
주민아는 깊이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기자들을 뚫고 입국심사장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은 주민아의 초라한 뒷모습을 여과 없이 카메라에 담아냈다.
‘끝이구나.’
주민아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참아냈다. 자신에게는 눈물을 흘릴 자격도 없었다.
이렇게 스스로는 절대 낼 수 없던 ‘끝’을 낼 수 있게 해준 도욱에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도욱이 주민아를 찾아온 건 불과 일주일 전이었다.
최성준 기자가 찍은 주민아와 서중원 본부장의 사진을 받았을 때, 도욱은 깊이 고민했다.
두 사람의 불륜설이 터지면 당연히 서중원 본부장에게 타격이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불륜 관계라면 타격은 서중원 본부장보단 역시 주민아 쪽이 클 것이었다. 주민아는 앞으로의 인생이 불투명해질 정도로 타격을 입게 되겠지만 서중원 본부장은 알 수 없었다.
단지 부도덕하다고 해서 아라 엔터테인먼트 이사회에서 서중원 본부장을 내칠지는 미지수였다.
소녀들로 인한 밸런타인의 약세.
서강준의 연예계 복귀 무산.
복병과 같은 Bunker21의 등장.
믿었던 파인애플 뮤직의 수수료 인상.
모든 것이 서중원 본부장의 내부 입지를 약하게 하기 위해 도욱이 준비한 것들이었다.
이사회에서는 부도덕함보다 무능을 더 심각하게 여길 게 분명했다.
여기에 불륜 관계를 폭로한다?
‘아니, 목표는 주민아가 아니라 서중원이야. 권력 관계가 확실한 이상 서로 사랑해서 이루어진 불륜이라고만 생각하기도 힘들고······. 주민아 카드를 더 효과적으로 쓸 방법이······.’
더 큰 게 필요했다. 입지를 흔드는 것뿐 아닌, 아예 보내버릴 무언가.
도욱은 서중원 본부장과 주민아의 관계에서 얻을 다른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밑져야 본전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의 불륜 관계에 관한 증거는 이미 도욱의 손안에 있었다.
그래서 도욱은 주민아에게 직접 연락했다.
최성준 기자가 나설 수도 있었지만, 연예인들은 기자들에게 절대 무언가를 털어놓지 않는 법이었다. 접근 의도의 진의가 어떻게 됐든, 기자를 믿기란 힘들었다.
주민아와 은밀히 접촉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주민아는 도욱이 자신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한껏 꾸미고 나온 주민아에게 도욱은 사진을 내밀었다.
“친한 기자가 보내 주더군요. 이 일이 터지면 민아 씨 연예계 생활은 끝일 것 같아서······.”
연예계 생활이 아니라 여자로서의 인생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충격, 그 후에는 공포로 인해 주민아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말없이 눈물만 흘려대던 주민아는 자신의 인생이 이미 끝났다고 생각한 듯 도욱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쨌든 이런 선택을 한 건 다 저니까. 벌을 받아야 한다면 받아야겠죠······.”
주민아의 얘기가 끝날 무렵, 도욱은 서중원 본부장에게 인간적인 분노를 느꼈다.
그는 약자의 피를 빨며 살아온 권력이라는 이름의 기생충이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이 기사는 제가 막겠습니다. 대신······.”
기사를 내보내지 않겠다는 도욱의 말에 주민아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