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막판 (4)
서중원 본부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안 돼! 아직은!······.’
아직은 기사가 나갈 때가 아니었다. 서중원 본부장은 차마 입 밖으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으로 빠르게 기사의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맨투맨 前멤버 서준, 연예계 복귀하나? 한국행 비행기 티켓 끊어..
지인의 제보에 따르면 학교 폭력 사건으로 물의를 빚었던 서준이 연예계로 복귀한다는 소식이다. 서준은 외국 생활을 하면서도 한인들과 어울려 매일 밤 파티를 열며 ‘반드시 연예계에 돌아갈 것이다.’, ‘억울하다.’ 등의 말들을 반복했다고 한다.
······확인 결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은 정황이 확보되었다. 서준의 아버지가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중역인 것을 감안하면 충분히 연예계 복귀는 어렵지 않은 일로 보인다. 그러나 고작 일 년 만에 돌아온 서준의 복귀를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피해자의 상처는 아물지 않은 상태로 여전히 정신과 통원 치료를······.]
기사를 끝까지 읽은 서중원 본부장이 이를 갈았다.
“이런 씨!”
결국 참지 못하고 서중원 본부장이 욕지기를 내뱉었다.
함께 기사를 읽은 진국선 실장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 외에는 하기 힘들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아들인 서강준을 복귀시키려 하다는 것은 진국선 실장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성공적인 복귀를 위해서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었다. 사실 사죄를 하기 충분한 시간이라는 것은 없었지만, 적어도 대중들의 분노가 가실 시간은 필요했다.
대중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2, 3년만 지나도 약간의 눈물이나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쉽게 용서해 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었다. 여전히 맨투맨의 기사 중 한두 개의 댓글에는 서강준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최소한 6개월은 더 지나야 한다는 것이 서중원 본부장의 판단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은 자신이 대표 자리에 앉은 이후로 서강준의 복귀 시점을 잡고 있었다.
또 복귀를 하더라도 이러한 방법은 절대 아니었다.
어떻게든 드라마에 밀어 넣어 캐스팅을 성사시킨 후 캐스팅 기사를 내는 게 계획이었다.
일단 캐스팅이 되면 잠깐은 논란이 되지만, 그뿐이었다. 작품이 나가고 나면 사람들은 연예인 그 자체보다 배역에 더 몰입했다. 배역이 덧입혀지면서 연예인 자체의 문제는 흐려졌다.
다른 분야의 연예인들보다 배우가 논란을 일으키고도 복귀가 쉬운 건 그 덕분이었다.
그런데 너무 이른 시기에 한국에 돌아온다는 기사부터 났으니 여론이 뒤집어질 만했다.
기사의 내용도 서중원 본부장 쪽의 입장에선 악의적으로 느껴졌다.
파티를 열었다. 억울해했다. 피해자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모두 사실이었지만 서강준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내용이었다.
역시나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는 맨투맨과 서준, 아라 엔터테인먼트, 서준 아버지 등으로 난리가 나 있었다.
방금 전 ‘어그로’를 끌어서라도 채은호와 밸런타인 이슈 몰이를 시키라고 지시했던 건 서중원 본부장이었다.
그러나 ‘어그로’도 정도가 있었다.
심지어 이런 식으로 부정적으로 잊힐 때쯤 이슈가 터져버려, 다시금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각인되면 서강준의 복귀는 정말로 요원해져 버린다.
“어떤 새끼가······. 당장 명예훼손으로······.”
역시나 신문사는 뉴스패치였다. 기자의 이름은 김주연이라는 평범한 이름이었다. 어차피 작성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뒤에 서강준 학교 폭력 피해자의 형인 최성준 기자가 있을 거란 것은 뻔했다.
고소를 하라고 말하려던 서중원 본부장이 입을 닫았다. 고소를 하면 서강준은 복귀 의사가 없다는 강경한 입장으로 보일 수는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괜히 일만 커질 수 있었다.
혈압이 정수리까지 오르는 느낌에 서중원 본부장이 뒷목을 붙잡았다.
밸런타인이 소녀들에게 밀리고, 채은호가 얼굴도 모르는 가수에게 밀렸다. 유통사는 수수료를 올리고, 서강준의 복귀는 철저히 무산될 위기였다. 하나씩 해결해 나갈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문제들이 너무 한꺼번에 밀려들고 있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진국선 실장이 굳은 얼굴로 물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듯했기 때문이었다.
비서가 눈치껏 서중원 본부장의 앞에 찬 물을 대령했다.
서중원 본부장이 벌컥벌컥 물을 들이켰다.
“하······.”
서중원 본부장의 입에서 탄식이 새어 나왔다.
이 모든 문제들이 하필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대표 선임 이사회가 내일이었다. 이런 식이면 이사회에서 서중원 본부장의 대표 선임을 또 미룰 가능성이 높았다.
이 이사회가 열리기 전까지도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 ‘아직 제대로 된 성과가 없다’는 말들을 넘어서야 했던 그다.
그가 실무진일 때 사방신화 등을 키워내며 이룬 혁혁한 공들은 마치 본부장 자리에 오르면서 리셋이 된 듯한 반응들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현 대표의 직계였거나 조금 더 든든한 뒷배가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검증받진 않았을 것이다.
이사회의 외부인에게만 적용되는 ‘성과주의’가 우스웠고, 때로 치욕스러웠다. 그래서 더 대표의 자리에 앉는 날만을 손꼽으며 물불을 가리지 않았다.
코앞에 두고 또 대표 자리가 떠밀려가는 것을 볼 수는 없었다.
“일단.”
머리에 쥐가 나는 듯했다. 서중원 본부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일단 내일 이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될 부분부터 처리해야 했다. 서강준은 서중원 본부장의 자식이었다. 서강준으로 인해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이미지에 금이 간다면 그것은 단순히 소속 연예인의 문제가 아니었다.
서중원 본부장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게 뻔했다. 처음 서강준의 일이 있었을 때 다른 때보다 빠르게 논란을 종결시키고자 서강준을 맨투맨에서 내보낸 것도 그 때문이었다.
“공식 입장 전해. 아라 엔터에서는 절대 서강준 복귀시킬 생각 없다고. 보도 자료 전부 뿌리라고 지시해.”
스스로 아들의 복귀 불가에 쐐기를 박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집에서 아내가 난리를 칠 게 뻔했지만, 기사가 나는 바람에 나중으로 밀릴 뿐이라고 둘러대면 될 것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지시에 비서가 답하곤 황급히 본부장실을 빠져 나갔다.
서중원 본부장의 눈치를 보며 진국선 실장이 물었다.
“그런데······. 파인애플 뮤직 건은 어떻게 할까요.”
진국선 실장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 묻고 싶진 않았지만, 어쨌든 파인애플 뮤직에도 빠르게 답을 해야 했다.
서중원 본부장이 조금 찌푸리고는 답했다.
“일단 최대한 빠른 시일로 미팅 잡아요.”
“네. 알겠습니다.”
답하는 진국선 실장의 표정이 달갑지 않았다. 그조차 이번만큼은 서중원 본부장도 마땅한 타개책을 찾지 못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정리했다.
‘당장 내일 대표가 될 순 없어도······. 본부장 자리에 계속 머무르며 또 기회를 보면 되는 거겠지······. 어차피 이 회사에 다른 대체자도 없을 테고······.’
자신이 잡은 끈의 미래를 생각하며 진국선 실장은 고개를 숙였다.
본부장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아라 엔터테인먼트 서중원 본부장 대표 선임 건에 대한 이사회가 열리는 당일.
조간신문과 함께 날아든 소식은 이사회의 안건이 추가되었다는 것이었다.
‘서중원 본부장 해임의 건’.
추가 안건은 서중원 본부장을 탐탁지 않아 하는 정 이사가 올린 것이었다.
대표 선임이 유보되는 일이라면 몰라도 본부장 자리까지 박탈당하는 것은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그럴 이유가 없었다.
이 정도 성과 미진을 이유로 이사회에서 해임까지 논하는 것은 말이 되질 않았다.
현재의 아라 엔터를 만든 대형 가수들, 걸그룹은 물론이고 아이돌 그룹의 역사를 썼다고 평가받는 사방신화까지 모두 서중원 본부장이 멤버 구성부터 앨범과 활동 전략까지 손댄 이들이었다.
덕분에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이후에 맨투맨도 풍파는 있었지만 어쨌든 정상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케이케이에게 밀리는 바람에 그간 서중원 본부장의 성과들은 저평가되고 있었다. 저평가된 상태 그대로라도 해임을 당할 일은 아니었다.
‘이사회에서 날 해임한다고? 말도 안 돼. 정 이사가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뭔가 있는 거야······.’
서중원 본부장의 머릿속이 전에 없이 복잡해졌다.
‘뭐지······. 도대체······.’
전날 서중원 본부장은 밤늦게까지 사무실에서 해결책에 대해 생각하다 사무실 근처의 호텔에서 1박을 한 상태였다. 한남동 집에 들어가 아내와 아들의 일로 언쟁을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이유였다.
‘다른 이사들에게 연락을 돌려서 정보를 캐내야 하나······.’
그때 서중원 본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현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대표였다.
서중원 본부장이 서둘러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표님!”
다급함과 분노가 정제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목소리에 섞였다.
그러나 상대의 목소리는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병세 악화로 요양 중인 노인이었다. 서중원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대표님, 연락받으셨습니까······? 이사회 안건에 제 해임 건이······!”
-자네.
서중원 본부장을 부르는 현 아라 엔터 대표의 목소리가 차고 엄중했다. 어쨌든 자신을 이 자리에까지 세우고, 서중원 본부장에게 대표 자리를 넘기려고 했던 지금의 대표였다.
대표의 얼음장 같은 목소리에 서중원 본부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다시금 느꼈다.
-이사회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는 게 좋겠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스스로 물러나게. 조용히. 자네 아꼈던 사람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충고이자 배려일세. 먼저 그만두면 그 뒤는 내가 수습을 하지.
그만두라니. 믿었던 대표로부터의 권고사직은 서중원 본부장을 분노에 차게 만들었다.
그는 궁지에 몰려 있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느낄 수 있었다. 쌓아왔던 것들이 무너지고 있었다.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처럼 소리 없이. 그러나 빠르게.
-정 이사의 손에 자네가 저지른 온갖 비리가 담긴 증거가 원본으로 들어갔어. 이사회에 가면 횡령에 배임죄까지 까발려질 걸세.
“그게 무슨 개소립니까?!”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서중원 본부장이 소리쳤다.
정 이사 쪽에 서중원 본부장을 자르고도 남을 증거가 들어갔고, 서중원 본부장 스스로 물러나면 대표 선에서 어떻게든 다른 책임은 묻지 않게 해주겠다는 얘기였다.
“나는 분명히 기회를 줬네.”
그렇게 대표의 전화가 끊겼다.
패닉에 빠져 굳어 있던 서중원 본부장이 빠르게 통화 목록을 뒤졌다.
[주민아]
통화연결과 동시에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금은 없는 번호이오니······.’
서중원 본부장은 그대로 휴대폰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휴대폰이 카펫 위에 나뒹굴었다.
“이 개 같은 X!”
***
[음원차트 강타! ‘들어보세요’ Bunker21은 누구?]
스포츠신문 연예면 1면에 난 헤드라인을 보며 조애니 부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얼굴도 모르는 가수가 이러한 성적을 낸 건 십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아무런 정보도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궁금증은 절정에 달해 있었다.
이제는 정말로 알고 싶은 건지, 맞히는 놀이에 빠진 건지 모를 정도로 인터넷상에서는 초 단위로 목소리를 분석한 글이 올라오거나 누구인지 안다는 류의 소설 같은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들어보세요’가 흘러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누구인지 맞히는 내기를 하기도 했다.
“다들 난리야. 도욱이라는 얘기도 꽤 있네요.”
“하하.”
조애니 부장 앞에 앉은 도욱이 가볍게 웃으며 오늘 조애니 부장을 만나 하려고 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잼 뮤직에서는 연락받으셨나요?”
“네. 받았어요. 원래 기획사에서 통제 불가능한 소속 연예인들 안 좋아하는 건 알죠? 정말······. 어떤 의미로는 도욱 씨야말로 통제 불능이랄까. 이런 투자를 하고 있는지는 또 몰랐네. 비밀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조애니 부장의 말은 얼핏 들으면 불만처럼 들렸다. 그러나 조애니 부장의 얼굴은 흡족함과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덕분에 나는 할 일이 없을 정도라니까.”
“죄송해요. 부장님 일 뺏어서······.”
“이제 그런 조크까지 날리는군요? 아무튼. 잼 뮤직 인수 건은 빠르게 진행하고 있어요. 유통 수수료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것도 끝이군요."”
조애니 부장과 도욱 사이에 미소가 오갔다.
도욱은 미소 지으며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서중원 본부장이 더 이상 서중원 ‘본부장’이 아닐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