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7
막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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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 엔터테인먼트 홍보팀에서 보도자료 작성을 담당하고 있는 직원은 당황스러움을 감추기 힘들었다.
‘맨투맨 채은호의 성공적인 솔로 데뷔, L.U.V 1위 돌풍..’과 같이 뽑아 놓은 제목들을 수정해야 할 듯했다.
채은호의 음원 발표 시각은 오후 여섯 시. 그러나 자정, 음원 순위가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한 것은 음원 출시 이후 성과를 분석하는 일을 하는 기획전략팀과 앨범제작팀도 마찬가지였다.
어제 채은호의 ‘L.U.V’가 음원차트 1위에 안착해 있는 것을 분명히 확인했었다.
물론 진입을 1위로 한다고 해도 1위에 계속해서 머무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2위였던 소녀들의 노래는 이미 음원이 출시된 지 3주 정도 되어가는 상황이었다. 며칠 동안 계속 3, 4위였고 다시 최고로 올라와도 2위 정도였다.
신인으로서는 꽤 오래 차트 상위권에 머물렀던 것이니 이제 내려갈 일만 남은 게 분명했다.
그리고 당분간 출시될 음원 중에는 채은호만큼 인지도가 있는 이의 음원은 없었다. 드라마 OST 등이 복병이 될 수도 있었지만, 딱히 치고 올라올 만한 영향력 있는 드라마도 없었다.
서중원 본부장의 지시로 당겨지긴 했지만, 그런 것들을 모두 고려해 잡은 출시 시기였다.
심지어 음원차트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자랑하는 파인애플 뮤직을 통해 음원을 유통하면서 노출까지 약속된 상황이었다.
채은호의 곡은 메인 화면에 뜨는 것은 물론 계속해서 추천곡에 떠 이용자들의 클릭을 유도하고 있었다.
맨투맨의 팬덤도 이제 케이케이 다음 가는 대형 팬덤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채은호의 음원이 밀릴 만한 상황은 없었다.
실시간 음원차트에 가장 암담한 기분을 느끼고 있는 건 전략기획팀의 진국선 실장이었다. 단시 서중원 본부장의 분노가 두려운 게 아니었다.
진국선 실장은 서중원 본부장과 한 배를 탄 사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라 엔터 실무자 중 가장 핵심 자리인 전략기획팀 실장 자리를 꿰찰 수 있었다.
1 들어보세요, Bunker21
2 L.U.V, 채은호
3 우리들의 시간, 소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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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초콜릿처럼, 밸런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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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런타인도 신인치고는 무척이나 선전하고 있는 상태였다. 채은호 역시 성공적인 솔로 데뷔였다.
그러나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그것은 곧 서중원 본부장의 명성에 금이 가고 있음을 의미했다.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가 나올 만도 했다.
심지어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곡들을 의도적으로 밀어주고 있는 파인애플 뮤직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 성적이었다. BN 뮤직과 잼 뮤직에서는 채은호가 3위, 밸런타인은 80위였다. 점유율이 파인애플 뮤직보단 낮지만, 그래도 큰 음원 사이트들이었다.
차라리 기습적으로 대형 가수가 음원을 발표해 밀린 것이면 경쟁 구도라도 세워 보겠는데 채은호가 밀린 가수는 ‘Bunker21’이라는 처음 듣는 그룹명의 가수였다.
자존심에 크나큰 상처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식이면 채은호를 내세워 밸런타인을 이끄는 전략에도 한계가 있었다. 채은호를 1위로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할 판이었다.
“도대체 누구야? 어떻게 갑자기 1위를 할 수가 있어? 사재기라도 한 거 아냐?”
음원 사이트의 영향력이 강해지면서 ‘음원 사재기’라는 편법을 쓰는 기획사들이 몇 있었다. 일단 순위를 올려놓고 나면 아무래도 많은 이들이 들어 순위 유지가 쉽기 때문에 어떻게든 자신의 가수를 띄워 보려는 기획사들에서 쓰는 수법이었다.
진국선 실장의 분노에 찬 혼잣말에 전략기획팀 사무실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러나 듣고 있는 팀원으로선 진국선 실장의 분노가 우스운 것도 사실이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경우 사재기 논란만 없을 뿐 파인애플 뮤직과 전략적으로 제휴해 대놓고 아라 엔터의 곡들을 밀어주었다.
말이 좋아 ‘전략적 제휴’였다. 파인애플 뮤직 쪽과 뒷돈이 오가고 있는 것은 전략기획팀 일원이라면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어제 댄싱댄싱이라는 프로에서 이 곡에 맞춰서 발레 공연을 했어요······. 그런 거 보면 TBN에서 키우는 가수가 아닐까 싶어요. 유통사도 TBN에서 운영하는 BN 뮤직인 거 보면······.”
팀원의 설명대로였다.
Bunker21의 ‘들어보세요’는 어젯밤 TBN 인기 프로그램인 ‘댄싱댄싱’에서 방송을 타며 알려졌다.
발레리나들이 클래식이 아닌 가요를 배경으로 꾸민 스페셜 무대였다.
어쿠스틱 밴드의 반주로 이루어진 ‘들어보세요’는 경쾌한 멜로디에 씁쓸한 감성이 묻어나는 곡이었다.
한 번 들으면 계속 듣고 싶어지고, 듣고 있으면 밖으로 산책이라도 나가고 싶어지는 곡이었다.
편안한 멜로디에 입혀진 음색 또한 귀에 착 감기듯 부드러웠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익숙한 음색이면서도 독특한 창법이 더해져 개성 또한 느껴졌다.
채은호의 ‘L.U.V’가 화려한 댄스곡이라 보는 맛이 더해질 때 노래가 완벽해진다면, Bunker21의 ‘들어보세요’는 듣는 것에 최적화된 노래였다.
앞으로 오래도록 길거리나 카페 등에서 흘러나올 노래이기도 했다.
물론 좋은 노래라고 바로 1위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할 만한 인지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 듣도 보도 못한 신인가수는 ‘댄싱댄싱’이라는 인기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를 해버린 것이다.
사람들이 방금 ‘댄싱댄싱’에서 나온 곡이 뭐냐고 찾아 헤맬 때, 마침 TBN에서는 음원을 발매한 것이다.
“소속사는······.”
“유통사랑 동일하게만 적혀 있어서······. BN 뮤직에서 자체 가수를 제작한 걸까요?”
“그 정도 일을 했다면 우리가 알고 있었겠지.”
진국선 실장이 찌푸리며 답했다.
진국선 실장은 BN 뮤직의 사이트를 확인했다.
음원은 모든 사이트에 풀리지만 유통을 담당하는 사이트는 각각 달랐다.
파인애플 뮤직이 자신들을 통해 유통하는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곡들을 추천곡에 띄워놨듯, BN 뮤직 역시 자신들이 유통하는 ‘Bunker21’의 곡을 띄워놓고 있었다.
진국선 실장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잼 뮤직에 들어갔을 때였다.
“소속사 제대로 찾아놔 봐. 사재기라도 한 건지.”
“네. 알겠습니다.”
사실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앨범제작팀 내부에서는 이미 ‘Bunker21의 노래가 너무 좋아서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아라에서도 더 많은 곡을 받아야 한다. 기존 작곡가들 위주로 작업하던 보수적인 작업 방식으로는 계속 노래에서 밀릴 수 있다.’ 등 앨범 제작 과정에 대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었다.
맨투맨이 케이케이에게 밀리던 시절부터 나왔던 이야기이긴 했다.
홍보도 전략도 중요하지만, 어차피 가장 기본은 ‘곡 그 자체’라는 사실을 앨범제작팀은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앨범제작팀보단 전략기획팀의 입지가 훨씬 셌기 때문에 이러한 앨범제작팀의 의견은
전략기획팀으로서의 입장은 곡만큼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몇 번의 성공 끝에 때로는 전략으로 모든 것을 커버할 수 있다는 오만한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니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가수에게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든 진국선 실장이었다.
그때 진국선 실장의 자리로 전화가 울렸다.
순간 서중원 본부장인가 싶어 신경이 날카로워진 진국선 실장이었으나, 이내 외부 전화라는 것을 확인했다.
손짓으로 팀원을 자리에서 물린 진국선 실장이 전화를 받았다.
“네. 아라 엔터 전략기획팀 진국선입니다.”
-아. 실장님! 안녕하세요. 파인애플 뮤직······.
전화가 걸려온 곳은 파인애플 뮤직 유통 계약 담당자였다.
유통 담당자도 아닌 계약 담당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올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진국선 실장의 머리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그리고 점점 진국선 실장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 그게 말이 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결국엔 진국선 실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숨죽이고 있던 전략기획팀 팀원들은 이제 숨을 참는 지경에 이르렀다.
진국선 실장이 이내 목소리를 가다듬고 침착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알겠습니다. 따로 협의가 필요한 부분 같군요. 네. 일단 보고를 드리고······. 네. 입장은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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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세요.”
똑똑, 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에 서중원 본부장이 답했다.
서중원 본부장의 사무실 역시 분위기는 좋지 못했다.
안 그래도 진국선 실장을 부르려고 했던 서중원 본부장이었지만, 진국선 실장에게서 먼저 사무실에 올라가도 되겠냐는 연락이 왔다.
“그래. 무슨······.”
“죄송합니다. 본부장님. 면목 없습니다.”
진국선 실장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서중원 본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서중원 본부장은 고개를 저었다.
상황이 좋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그러나 자기 사람인 진국선 실장을 벼랑에 내몰아 봐야 지금으로선 긁어 부스럼만 될 상황이라는 것 정도는 서중원 본부장도 인지하고 있었다.
어쨌든 자신을 위해 일해 줄 사람이 필요했다. 채은호 앨범까지 삐끗하게 된 상황이었다. 더욱 더 열심히 일해 줄 충견이 필요했다.
“아냐. 됐네. 진 실장은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변수까지 어떻게 진 실장이 관리하겠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서중원 본부장이 예상과 달리 위로의 말을 건넸음에도 진국선 실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서중원 본부장은 생각해둔 대책까지 직접 내놓았다.
“Bunker21인지 뭔지 하는 놈들은 어차피 은호랑 장르도 다르니까······. 어차피 이렇게 된 거 같이 언플하는 걸로 하지. 신예들이 많이 나타났고······. 거기에 소녀들에 밸런타인까지 묶어 버려.”
진국선 실장도 생각하고 있던 방법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케이케이 놈들을 후려쳐.”
“네?”
“케이케이가 돌아온다고 해도 여전할까 싶단 식으로······. 이제 세대가 바뀌고 있다. 뭔 말인지 알지?”
“아······. 그런데 그렇게 하면 너무 어그로만 끌릴 수도······.”
“그렇게라도 해서 일단 채은호나 밸런타인 관련 클릭 수를 유도해야 하지 않겠나? 어? 일단은 당장 성적을 올려야지.”
장기적인 이미지는 고려하지 않고, 이름 없는 기획사에서나 쓸 법한 수법이었다.
괜찮은 척해도 이사회를 앞둔 서중원 본부장의 속이 타들어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진국선 실장은 더 토를 달지 않고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홍보팀에 전달해서 빠르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런데 저 보고드릴 말씀이······.”
“뭔데 그러나?”
“파인애플 뮤직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유통 수수료를 높이고 싶다고······.”
“뭐?!”
“내달부터 일제히 올릴 예정이랍니다.”
“지금도 이미 음원 수익의 반을 가져가는데! 이런 날강도 같은! 다 올리면 다른 데는 가만히 있겠어? 어?”
서중원 본부장이 씩씩거렸다.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유통은 해야 하는 거고······. 이번에 파인애플뿐 아니라 BN과 잼도 올린다네요. 담합인 것 같습니다.”
수수료가 올라가면 당연히 기획사로 돌아오는 수익은 적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분위기에 악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서중원 본부장의 비서가 본부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뭐야!!!”
서중원 본부장이 날것의 목소리로 외쳤다. 금방이라도 앞에 놓인 커피 잔을 집어 던질 기세였다. 비서가 움찔하며 답했다.
“본부장님. 두 분······. 지금 보셔야 할 것 같아서. 방금 뜬 기사인데······. 난리가 났습니다.”
비서가 들고 있던 패드를 내밀었다.
비서의 패드에는 기사가 떠 있었다. 전(前) 맨투맨 멤버 서준. 그러니까 서강준 복귀에 관한 기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