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6
막판 (2)
***
V TV 한국 지부가 있는 강남의 한 빌딩. 대회의장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인원이 너무 많아 회의실의 문을 닫을 수 없을 정도였다.
케이케이의 기자회견이 곧 시작될 시간이었다.
오늘 케이케이의 기자회견은 미국 시각으로는 어젯밤, 한국으로는 오늘 아침에 방송된 V TV의 ‘COME HERE’ 방송에 관련한 이야기들을 주로 풀어놓는 시간이 될 터였다.
첫 공연 당시 살해 협박을 받기도 했던 케이케이였다. 그 일이 있은 후 처음 한국에 돌아온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의 팬들과 대중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따로 사건이 있지 않았어도 관심은 높았을 것이다. 케이케이는 명실상부 한국 가요계가 낳은 최고의 아웃풋이었다.
그런 데다 케이케이가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사실 케이케이의 ‘Continue’ 활동은 기존 가수들의 활동 방식 틀을 많이 벗어난 것이었다. 음악 방송 출연을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me앱이라는 새로운 매체로 컴백을 하며 이곳저곳 게릴라 공연을 한 것부터가 그랬다.
이후에는 곧바로 미국의 각종 도시를 무대로 활동했다.
각지로 공연을 다닌 것이니 오히려 오프라인의 팬이나 대중들에게는 직접적으로 다가간 것이었고, 미국에 가서도 SNS를 통해서 팬들과는 충분히 교류를 해왔다.
그러나 한국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등은 따로 없었기 때문에 일반 방송, 언론사들의 입장에서는 케이케이와의 소통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이라는 거창한 타이틀을 힛 엔터 측에서 내건 것은 그래서였다. 이번 기자회견은 국내에서 언론사들이 느끼는 갈증을 해소하는 자리였다.
힛 엔터가 국내 언론을 소홀히 하고 있지 않다는 제스처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5분 후······. 정각에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리 조금만 정리해주세요.”
아무튼 명목상으로는 ‘COME HERE’ 프로모션 자리였고, 기자회견의 주최는 V TV였다.
V TV 한국 지부의 홍보팀 대리가 시장 바닥과 같이 시끌벅적한 장내를 조용히 시켰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이미 옆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앞두고 긴장을 하고 있는 건 멤버들이 아니라 V TV 관계자들이라고 보아도 무관했다.
오랜만에 국내 언론에 나선 것이라 대대적인 질문 세례를 받을 게 분명했음에도 케이케이 멤버들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에 이미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V TV 관계자들은 아니었다.
V TV의 미국 본사는 물론 전세계에 지부를 두고 방송을 내보내는 거대 방송국이었지만, 한국 지부는 미국에서 보내는 프로그램들의 시간대를 조정하고, 한국 수위에 맞게 편집해 내보내는 정도의 일만을 담당하고 있었다.
자체 프로그램을 론칭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큰 행사를 주최하는 것 자체가 처음있는 일은 아니었다.
“본사에서 신경도 안 쓰던 지부인데 케이케이 덕분에 대접도 받고······.”
“국내에서 채널 홍보 효과도 엄청난 것 같아요.”
“맨날 외국인 나오는 것만 보다가 한국인이 주인공인 프로 보니까 기분도 좋고 말이야.”
긴장한 것과는 별개로 V TV 관계자들의 기분은 무척이나 좋았다.
변두리에서 일하다 이제야 서울에 상경한 기분이었다.
관계자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5분이 지났다. V TV의 홍보팀 대리가 정확한 시간에 회의실 뒤쪽 문을 열고 케이케이 멤버들을 불렀다.
정장을 잘 차려 입은 멤버들이 차례대로 문을 통해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윽.”
이런 일이 처음인 홍보팀 대리는 저도 모르게 찌푸리며 작게 신음을 냈다.
그 정도로 한꺼번에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잠시 조용해졌던 장내가 다시금 시끌벅적하게 달아올랐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너무나도 능숙하게 손을 흔들며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갔다. ‘안녕하십니까!’ 하고 힘차게 자신들을 취재하러 온 이들에게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자리에 착석했음에도 여기저기 멤버들에게 웃어 달라, 손을 흔들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홍보팀 대리가 얼른 사회자 자리로 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어······. 오늘 예정된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됩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어느새 대리의 말투는 달래는 투가 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여길 보라며 소리를 지르는 카메라를 든 기자가 있었다.
무례하기 짝이 없는 외침이었지만 케이케이 멤버들은 얼굴을 찌푸리는 대신 작게 웃음 지었다.
“자, 기자님들! 질문부터 받을게요. 이따가 끝나고 가기 전에 포토타임 갖겠습니다!”
안형서가 장난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안형서의 센스 있는 대처에 V TV 대리도 얼른 말을 덧붙였다.
“네. 어······. 정해진 순서대로 가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자는 기민일보 기자였다.
“우선 미국에서 어젯밤 방송된 ‘COME HERE’ 첫 방송에 대한 소감 묻고 싶습니다.”
정윤기가 마이크를 쥐고는 너스레를 떨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에서는 아직 방송 전이긴 한데요. 미국에서 첫 방송 반응이 상당히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V TV오니까 관계자분들이 저희를 어찌나 환영해 주시는지······. 하하. 기분 좋죠. 너무 좋습니다. 미국에 저희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부터가 영광이면서 동시에 부담이었는데······. 아직 시작이지만 그 결과가 좋다고 하니······. 거, 약간 짐을 내려놓은 것 같고, 날아갈 듯합니다. 기분이.”
정윤기의 답변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만면에 미소를 띠웠다.
미국 현지 리얼타임 시청률이 9퍼센트 나왔다는 것은 케이케이 멤버들도 기자회견장에 도착해서야 V TV 관계자들에게 들은 사실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인기 있는 오디션 예능 프로그램의 시청률이 10퍼센트 초반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기록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오늘, 내일 V TV 채널을 통해 전세계에 동시다발적으로 방송될 것을 생각하면 앞으로는 더욱 더 기대가 되는 방송이었다.
이어서 기자들은 ‘COME HERE’ 공연 당시 어려웠던 점, 에피소드, 살해 협박 시 심정 등을 물어왔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돌아가며 질문에 답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 연예부 기자에게서 새로운 질문이 나왔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많은 팬들이 다음 활동 또한 기대하고 있는데요.”
“정규 앨범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해서 활발히 개인 활동을 할 예정이에요. 태형이는 아시다시피 댄싱댄싱에 출연 중이고······. 미국 V TV에서 우리 김원 씨가 MC로 활약하는 모습을 보실 수도 있고요.”
술술 나오는 안형서의 답에 기자들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김원의 MC 소식은 새로운 소식이기도 했다. 김원 쪽을 향해 터지는 플래시 세례에 김원이 손가락으로 ‘V’ 자를 그리며 개구지게 웃었다.
안형서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솔로나 유닛 음원도 곧 나올 예정입니다. 정말로 곧이요! 또 지훈이와 저 안형서의 활동 계획도 있으니까 기대 많이 해주세요!”
안형서의 말에 취재석에서 약간의 실소가 터져 나왔다.
단체 활동만 잠시 쉬어가는 것일 뿐, 개개인으로서의 휴식 계획은 없다는 이야기를 즐겁게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달에 저희 팬미팅이 있습니다. 한국에 계신 팬분들을 위한 팬미팅이에요. 형서 형이 가장 중요한 걸 말을 안 했네요.”
석지훈의 발표 및 디스에 안형서가 눈을 흘겼다. 팬미팅 소식은 팬들이 가장 기뻐할 만한 소식 중 하나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질문을 했던 기자가 되물었다. 실제로 묻고 싶었던 건 활동 계획이 아니었던 듯했다.
“그런데 앞으로의 활동들도 국내 방송 활동은 배제되는 건가요? 특정 방송사를 제외하고는 전혀 출연하고 있지 않아서······. 갈등이 있는 것 아닌가, 여러모로 말들이 많은데요······.”
무척이나 민감한 질문이었다.
일순 기자회견장 내에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예상했던 질문이기도 했기 때문에 도욱이 마이크를 잡았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홍보 전략이나 스케줄상······. ‘Continue’ 활동 때에 다른 때보다 방송 활동을 하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갈등이나······. 그런 것은 전혀 없습니다. 저희는 불러주시는 곳들에 모두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대형기획사들의 압박으로 방송사들이 케이케이에게 제대로 된 대우를 하지 않아 케이케이가 반발했던 사실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이미 me앱 공연 등의 큰 성공으로 방송국에서 백기를 든 상태였다.
다음 활동 때에는 케이케이의 무대를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하겠다는 이야기를 방송사 간부들로부터 듣느라 권흥조 제작이사는 귀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한동안 매일같이 접대 자리가 있었다.
방송사들은 이제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눈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힛 엔터 쪽에도 손을 잡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러니 케이케이 쪽에서도 이제 한 수 접고 들어가는 것이었다. 언제까지 방송사와 척을 질 수도 없기 때문이었다.
도욱의 대답에 연예 전문 프로그램에서 나온 리포터가 손을 들고 물었다.
“저희 생생가중계에도 나와 주실 건가욧?!”
리포터의 까랑까랑한 목소리에 도욱이 웃으며 답했다.
“물론입니다. 언제든 불러만 주세요.”
그 뒤로는 또 무난한 질문들이 계속되었다.
기자들도 케이케이를 공격하거나 자극적인 기사를 쓰려고 무리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케이케이는 그야말로 스포츠 스타들에 버금가는 대한민국을 빛낸 영웅이 되어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에선 흠집 내는 기사를 써 봐야 욕만 먹을 뿐이었다.
무사히 질문 시간을 마친 케이케이 멤버들은 약속대로 기자들의 앞에서 포토타임을 가졌다.
편안해 보였지만, 사실 멤버들도 말실수를 할까 약간씩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도욱은 카메라 앞에 서 그린 듯한 얼굴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하며 생각했다.
잠시 집중했던 기자회견이 끝나자 어제부터 내내 도욱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생각들이 다시 떠오른 것이다.
‘한 번에······. 한 번에 보내야 한다. 이 기회를 어설프게 날려버릴 순 없어.’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단번에 서중원 본부장이 다시는 이 바닥에 발을 디딜 수 없게 보내버릴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터지는 플래시와 함께, 빠르게 그 방법들이 스쳐 지나갔다.
***
서중원 본부장이 밸런타인을 위해 낸 수는 맨투맨의 채은호였다.
맨투맨의 주가가 가장 뛴 지금,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은 채은호를 솔로로 내세울 계획은 아라 엔터의 연간 계획에도 들어가 있던 것이다.
물론 채은호의 솔로활동에 밸런타인이 함께하는 것도 기존에 아라 엔터테인먼트가 전략적으로 해오던 ‘신인 끼워 팔기’의 일환이었다.
원래는 밸런타인이 2번째 싱글을 낼 때를 시기로 잡았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었다. 이대로면 소녀들에게 밸런타인이 완전히 잡아먹힐 수 있었다.
그렇게 될 경우 서중원 본부장은 맨투맨에 이어 밸런타인까지, 두 번이나 중소기획사에 밀리는 기획을 한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서중원 본부장은 채은호의 솔로 음반 발매를 앞당겼다.
채은호가 출연하게 될 많은 음악 방송과 예능 프로그램에 밸런타인도 출연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했다.
밸런타인이 2번째 싱글을 내기 전에 인지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생각이었다.
그런 상태에서 2번째 싱글을 낸다면, 어떻게든 소녀들과의 전적을 뒤집을 수 있을 거라는 판단이었다.
그렇게 앞당겨진 채은호의 음원발매일.
me앱에서 생중계되는 채은호의 컴백쇼에는 밸런타인의 무대도 준비되어 있었다.
도욱은 그러한 플랜들을 이미 파악해 놓은 상태였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에 지인을 둔 이대형 팀장이 빠르게 일정을 파악해 주었다.
케이케이 숙소 내, 도욱의 방 안.
음원사이트에 들어간 도욱은 음원 순위를 확인했다.
1 - L.U.V, 채은호
2 - 우리들의 시간, 소녀들
.
.
채은호의 솔로 앨범은 음원 발매와 함께 음원 차트 1위를 차지했다.
도욱은 시간을 확인했다. 곧 박태형이 출연하는 <댄싱댄싱>의 방송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