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복마전 (2)
“Are you ready?”
“Yeah―!!!”
그 화려한 시작에 모두들 목 놓아 소리를 질렀다. 김원은 자신의 물음에 대답하는 이들을 보며 제자리에서 함성을 느끼듯 한 바퀴를 돌았다. 김원의 리액션에 맞춰 관객들은 더욱더 큰 소리를 내 주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 주실 줄 몰랐어요!”
마이크를 넘겨받은 안형서가 감격에 찬 얼굴로 말했다.
도시 중심부에 자리 잡은 센트럴파크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그럼에도 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인파로 그 센트럴파크의 여러 입구들이 마비되었을 정도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고 있는 걸까 생각했지만, 두 눈으로 확인하니 엄청났다.
입장 시 추산 결과로는 1만여 명에 달하는 대인원이었다. 그들의 함성에 센트럴파크가 쩌렁쩌렁하게 울릴 만했다.
심지어는 지금도 입구에서 케이케이를 보러 오기 위해 달려오는 이들이 많았다.
원래의 방식대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공지는 한 시간 전에 올라갔었다. 어떻게 1만의 사람들이 한 시간 만에 모일 수 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언제나 소중한 순간이었지만, 직전에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대부분이 현지의 팬들이었다. 안형서는 직접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어 ‘Thank you’라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했다.
도욱이 안형서로부터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도욱이 마이크를 잡자 관객석에서 알 수 없는 술렁임이 일었다.
미국 내에서도 도욱의 인기가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어디에서든 먹히는 얼굴인 것만은 분명했다. 거기에 노래에 춤까지. 안 되는 것이 없는 완벽한 캐릭터였다.
빌보드에서의 수상 소감이나 얼마 전 올린 도욱의 메시지들은 해외 팬들의 마음 깊은 곳을 울리며 도욱이라는 ‘사람’을 좋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LIL과의 노래를 작곡한 아티스트로서 도욱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고, ‘우주에서 온 연인’을 본 아시아계 거주자들의 열렬한 애정도 한몫했다.
“여러분.”
도욱은 한국말로 인사를 시작했다.
물론 영어로 인사를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이 자리에서만큼은 한국에서 온 가수라는 정체성을 더 드러내고 싶었다. 자신들에게 협박 메시지를 보낸 이나 다른 많은 차별주의자들로 인해 웅크리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피하지 않을 거다. 차별을 그만두어야 하는 건 너희들이다.’
그러한 생각을 의도적으로 전달하고자 했다.
동시에 이 현장에 찾아온 이들을 배려하고 이들과도 소통해야 했기에 도욱은 한국말 뒤에 영어를 덧붙였다.
스스로 통역을 하고 있는 셈이었다.
“일주일이었지만······. 너무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네요.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도욱이 영어로 말을 끝내기 무섭게 여기저기서 ‘No.’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미안할 필요 없다는 뜻이었다.
그중에는 ‘괜찮아!’ 하고 외치는 한국 팬들의 목소리도 있었다.
뉴욕에서 유학 중이거나 이민 온 한국 팬들도 있었지만, 한국에서 날아와 언제할지 모를 케이케이의 뉴욕 공연을 기다리고 있던 한국 팬들이었다.
케이케이의 팬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팬들 중 여섯 명 정도가 단체로 뉴욕에 숙소를 잡은 채 숙식을 해결하며 케이케이의 게릴라 공연 날만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도욱은 ‘괜찮아.’라고 소리친 곳으로 잠시 시선을 두었다.
만 명이 넘는 관중이었지만, 그들은 앞줄에 있었기 때문에 도욱의 시선에도 잡혔다.
현지의 팬들도 고마웠지만, 그들의 열정도 대단했기에 도욱은 그들이 들고 있는 카메라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헉.”
도욱의 미소를 정면으로 받은 팬의 카메라를 든 손이 잠시 떨렸다.
‘어떡해! 도욱이가 여기 봤어!’
너무 놀라고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자신의 목소리가 녹음되어서는 안 되기에 애써 입을 다물었다.
한국에서 이곳까지 날아와 무대 영상을 찍고 있는 팬은 나름의 사명감까지 갖고 있었다.
이후에 ‘COME HERE’ 방송으로 나갈 공연들이었기 때문에 생중계가 따로 없는 공연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시간으로 볼 수 없으니 방송이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할 수많은 팬들에게 일부라도 함께 공유하며 케이케이를 직접 보지 못하는 섭섭함을 달래고 싶었다.
무대를 찍고 있는 건 팬들만이 아니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유력 매체들과 한국의 몇몇 언론들이 취재를 나와 있었다.
테러 협박을 받은 이후 첫 공연이었기 때문에 주목도가 어마어마했다. 공연의 성공 여부는 뉴스에 나가게 될 것이었다.
그 화제성 덕분에 K-POP이 무엇인지, 케이케이가 누군지도 잘 몰랐던 미국의 평범한 시민들까지 센트럴파크로 향하는 대인원의 행렬에 동참한 것이기도 했다.
미국 백인 젊은이들과 중년층들에겐 케이케이의 공연에 가는 것이 마치 ‘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상징성을 가진 행동이 된 것이다.
물론 케이케이는 그러한 이들까지 오늘의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팬으로 만들 만한 매력이 있는 그룹이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준비한 공연은 그러기에 충분했다.
“그런 만큼 후회 없는 공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같이 즐기셨으면 좋겠어요!”
도욱이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멘트가 마무리되어 가고 노래가 나올 시간이 되자 도욱의 심장도 빠르게 뛰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받은 정윤기가 ‘갑시다!’ 하고 시원하게 외쳤다.
정윤기의 사인과 함께 ‘Connection’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빠르게 무대 위에서 대형을 잡았다.
“Oh, my gosh!”
“와아아아―!!!”
“꺄아아아아악―!!!”
다시금 자유의 여신상까지 들릴 법한 엄청난 함성이 쏟아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
마치 노래의 가사처럼 관객 입장은 노래가 시작된 지금까지 입구에서부터 계속되고 있었다. 노래가 시작되자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욱 더 다급해졌다.
뒷줄에서는 이제 무대가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음에도 사람들은 끝없이 몰려들었다.
무대 외곽 쪽에 마련된 관계자석의 오백호 실장과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은 현장을 지켜보며 저들끼리의 감회를 나눴다.
“거참······. 피리 부는 사나이들이 따로 없네.”
입구 쪽을 보며 오백호 실장이 먼저 말하자 심준 팀장이 답했다.
“이제 우리가 키웠다고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어요. 부담스러워서.”
“알아서 컸다고 합시다.”
“하하. 그게 좋겠네요.”
두 사람은 뭉클해지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무대를 보았다.
“We go on, We go―!”
춤을 추는 멤버들의 표정은 무척이나 밝았다.
끝없이 밀려드는 관객들, 호응해주는 목소리,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음악 속에서 행복해 보였다.
***
“대표님 건강 더 안 좋아지셨다며.”
“그럼 서 본부장이 다음 달 주총 끝나고 대표로 선임된다는 게 뜬소문이 아닌가 봐.”
아라 엔터테인먼트 사옥 7층 직원 휴게실.
나른한 오후 시간.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회계팀 사원들은 저들끼리 속닥이고 있었다.
이들은 회계팀 팀장의 전화 내용을 통해 현재 아라 엔터의 이름뿐인 대표의 건강이 더욱 안 좋아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회사 내에서는 이미 서중원 본부장을 대표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팀장님 좋겠네. 팀장님도 그 서 본부장 라인 아냐?”
“그치. 아 그럼 우리 팀에도 콩고물 떨어지는 거 있을라나.”
“우리야, 뭐. 숫자나 잘 계산하면 되는 거고. 기획팀 쪽에 서 본부장이랑 사이 안 좋은 팀장 있지 않아? 거기가 머 됐네.”
“아, 어. 그······. 강골인 사람. 그 사람은 서 본부장이랑은 안 맞지. 서본은 좀······. 유들유들한 사람 좋아하잖아. 정 이사도 서 본부장이랑 안 맞아서 거의 힘 못 쓰잖아 요즘.”
“대놓고 빨아주는 거 좋아하는 거지, 뭐. 심기 거스르면 찍어 누르고.”
“김 대리 너 회사 그만두고 싶냐?”
“아니······. 그냥 너무 한 사람 말에 좌지우지 되니까 시스템이고 뭐고.”
“아, 네 대학 동기가 기획2팀이라고 했지? 그쪽에선 불만 많겠네.”
“그렇지, 뭐. 아예 대표까지 되면······. 진짜 될까?”
“이미 거의 대표 아니냐. 거기에 이번 새 그룹 잘되면 확정이지.”
“잘 안 되면?”
“안 되면? 글쎄 맨투맨 때 한 번 삐끗한 거라······. 정 이사 쪽에서 물고 늘어질 건덕지가 생기는 거지.”
김 대리라는 이가 ‘그렇게 되길 바란다.’는 얼굴을 하고 있자 상대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야, 직원이면 그냥 회사가 잘되기나 바라자. 어? 그리고 어디 가서 서 본 맘에 안 드는 티 내지 말고.”
“안 내. 그럴 데도 없어. 옥상 가서 담배나 한 대 때리자.”
“콜이지. 실내 흡연 안 되니까 휴게실도 소용이 없네······.”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며 두 사람이 휴게실을 나설 때였다.
때마침 서중원 본부장과 그의 비서가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좋은 얘기든 나쁜 얘기든 그의 얘기를 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조금 당황한 두 사람이었지만, 두 사람은 얼른 고개를 숙여 서중원 본부장에게 인사했다.
서중원 본부장은 얼굴에 느끼한 미소를 띠며 수고들 하라는 말을 전하고는 복도를 지났다.
“기분 되게 좋아 보이네······.”
“그러게.”
두 사람은 조금 찝찝한 표정으로 서중원 본부장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서중원 본부장의 기분은 당연히 좋을 수밖에 없었다.
‘밸런타인’의 데뷔가 당장 내일이었다. 그리고 대표 선임 건에 관련한 이사회 소집 날짜가 정해졌다. 다음 달이었다.
데뷔 후 한 달이면 굉장히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신인들은 한 달 안에 어느 정도 성과를 들고 왔었다.
맨투맨도 한 달 만에 신인으로서는 대단한 판매고를 올렸었다. 물론 케이케이에 의해 그러한 성과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렸지만 말이다.
주변 대형 기획사들 중 여자 아이돌 그룹의 데뷔나 컴백 일정이 당분간 없었고, 현재 여자 아이돌 팬덤은 대형 팬덤 없이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형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1등 그룹을 탄생시키기 아주 적절한 시기였다.
‘대표. 이 자리까지 올라오는 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어. 더러운 꼴도 많이 보고.’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서중원 본부장은 생각했다.
자신이 본 더러운 꼴보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선사한 더러운 꼴이 더 많다는 걸 알 리 없는 그였다.
***
다음 날.
밸런타인의 멤버들은 데뷔 무대를 앞두고 대기실에 모여 있었다.
다른 신인들이 여러 그룹 한데 모여 대기실을 쓰고 있는 것과는 달리 오늘 처음 방송국에 온 밸런타인의 대기실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현재 ‘인생가요’ MC를 맡고 있는 맨투맨의 오빈, 한 명과 대기실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마저도 오빈은 MC 리허설을 하고, 다른 동료 가수들의 대기실에 놀러 가 있느라 계속해서 자리를 비우고 있었다.
“언니! 여기 옷에 주름 가 있잖아!”
밸런타인 멤버들과 스태프만 남아 있는 대기실. 밸런타인의 리더 한예리의 목소리가 앙칼지게 울려 퍼졌다.
“어?”
코디가 달려가 한예리가 흔드는 옷을 확인했다. 소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자연스러운 주름이었다.
“옷 관리 이따위로 하면 어떡해.”
“아, 미안, 미안. 다려줄게.”
“응. 얼른 해줘.”
한예리를 비롯한 밸런타인 멤버들은 모두 열아홉, 스무 살로 스물 셋인 코디보다 어렸지만 전혀 어려움 없이 코디를 대하고 있었다.
그때 대기실 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밸런타인의 매니저가 대답하자 대기실 문이 열리며 밸런타인의 또래로 보이는 소녀가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저, 선배님께 인사드리러 왔는데······.”
맨투맨의 오빈에게 인사를 드리러 온 이들이었다.
오늘 밸런타인과 함께 데뷔무대를 가질 ‘소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