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01화 (201/225)

# 201

복마전 (1)

“맨투맨의 입지가 확실히 상당해졌군.”

“네. 케이케이······, 그쪽과도 판매량에서 격차도 좁혀졌고 톱 아이돌로서 자리매김한 건 분명합니다.”

서중원 본부장의 말에 아라 엔터테인먼트 전략기획팀 실장이 답했다. ‘케이케이’를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실장도 말을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워낙 예민한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장도 서중원 본부장이 예민한 것을 이해했다. 손대는 그룹마다 톱으로 키웠던 그였는데 맨투맨은 케이케이로 인해 만년 2등 그룹이었다.

“그래. 뭐, 됐어. 이 정도면. 맨투맨 하나로 힘들면 하나 더 치고 올라가면 되니까. 준비는 잘돼가고 있지?”

여기서 서중원 본부장이 말하는 준비라면 데뷔를 코앞에 두고 있는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여자 아이돌 그룹 ‘밸런타인’이었다.

실장이 곧바로 답했다.

“네.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서중원 본부장이 ‘좋아.’ 하고 답했다. 어차피 영향력 있는 소속 연예인을 키워 방송계를 주무를 권력만 이어 나갈 수 있다면 만사 오케이인 일이었다.

여태까진 맨투맨이 뜻대로 되지 않아 조금 고전했지만, 맨투맨이 톱 반열에 오른 상태에 밸런타인까지 성공시키면 문제없었다.

‘그 권력으로 아들이란 놈 복귀까지 시키고 말이야······.’

서중원 본부장의 뱀과 같은 눈이 희게 빛났다.

***

살해 협박으로 인한 공연 취소 사태.

케이케이 멤버들은 참담한 심정으로 숙소인 호텔방에 모여 있었다.

호텔 쪽에서는 케이케이를 위해 한 층 전부를 비웠다. 케이케이가 있는 층 엘리베이터를 비롯해 호텔방 문 앞에는 오백호 실장이 요청한 대로 사설 업체 경호원들이 깔려 있었다. 경찰도 몇 있었다.

“우리 이러다가······. 한국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겠지?······.”

침대에 걸터앉은 안형서가 어두운 표정으로 물었다.

“마,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라.”

“메이비. 진짜로 돌아가야 할지도······.”

정윤기는 고개를 저었지만, 의외로 김원도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김원도 외국에서 생활하며 인종차별을 당해 봤기 때문에 더 실제적인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범인······. 금방 잡을 수 있을 거예요.”

늘 확신을 갖고 말을 하던 도욱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도욱도 확신을 갖기 힘들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더욱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래도 범인이 금방 잡힐 것이라는 생각은 뉴욕 경찰이나 언론이 이 사안에 대해 결코 가볍게 여기지 않아서였다.

한국에서도 난리였지만, 미국 언론도 만만치 않게 난리였다.

이 일이 한국에서는 연예면으로 분류된 반면, 미국에서는 사회적 이슈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케이케이를 살해하는 방식으로 공연장 테러를 하겠다고 한 이의 협박에 대한 동기가 인종차별에 기인한 것이니 당연했다.

물론 미국에는 많은 인종차별주의자가 있었고, 인종차별을 드러나게 하진 않아도 공공연하게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어떻든 미국이라는 나라가 표방하는 가치와 인종차별은 전혀 다른 것이었고 외부적으로 자국의 시민 의식이 저평가될 수 있는 부분이 드러나는 것에 미국인들은 굉장히 민감한 편이었다.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 그냥 기분 나빠하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을 한 겁니까?’ 하고 짚어서 물으면 오히려 상대가 당황하며 ‘절대 아니다.’라고 말한다거나 주위에서도 그 사람을 질타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런데 빌보드에서 수상까지 한, 세계 어디에든 팬을 둔 가수가 동양에서 왔다는 이유로 살해 협박을 받아 공연까지 취소했으니 미국으로선 난리가 날 수밖에 없었다.

사건이 알려진 직후부터 뉴스에서는 계속해 케이케이의 이름이 언급되고 있었다.

앵커들은 하나같이 일어나서는 안 될 차별이라며 심각한 얼굴로 반복해서 인종차별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는 멘트를 반복했다.

경찰은 대대적인 인력을 동원해 빠르게 메시지를 보낸 이를 추적하고 있었다.

‘범인이 나오면 그 뒤에나 다시 공연을 재개할 수 있겠지······.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선 안 될 텐데.’

도욱은 생각하며 리모컨으로 TV의 볼륨을 조금 줄였다. 호텔 방 안의 TV는 뉴스 보도 채널인 CNM이 나오고 있었다. 혹시 더 빠르게 범인 관련한 소식을 알 수 있을까 싶어서 틀어놓은 것이었다.

“범인이 잡혀서 공연을 한다고 해도······. 무서울 것 같긴 해요.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르는 거잖아요. 제가 영화를 너무 많이 봤나 봐요.”

석지훈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무대 위에서 죽으면 영광이라고 생각해야지 뭐.”

안형서의 답에 정윤기가 질색을 하며 안형서의 어깨를 쳤다.

“마, 씨. 끔찍한 얘기하지 마라.”

“뭐래. 근데 진심이야. 어차피 무대는 계속 설 거고······. 그냥 길을 가다가도 사망! 젤리를 먹다가도 사망······!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건데······. 무대에서 죽으면 의미 있지······.”

정윤기는 아무도 안 죽으니 제발 끔찍한 소리하지 말라며 귀를 막으려 들었다. 무거운 분위기를 환기하려 약간의 장난도 섞여 있는 대화였다.

그러나 새삼 시기가 시기였기에 안형서의 무대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 일 없을 거야.”

도욱이 말하며 창백해진 석지훈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때 링컨센터에서 상황을 보고 온 오백호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 형!”

“팬들은요······?”

오백호 실장이 들어오기 무섭게 멤버들이 물었다.

“링컨센터 앞 경찰은 최소한만 남고 돌아갔어. 일단 너희가 없으니 나타날 이유는 없고······. 그런데 일부 팬들이 돌아가라고 해도 돌아가지 않고 주변에 남아 있어.”

“아직까지요?”

공연 시간에서 이제 두 시간 정도가 지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공연을 끝내고 다음 공연 장소로 향할 때였다.

그런데 팬들이 이미 공연이 취소된 공연장 앞에 남아 있다고 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 시위라도 할 기세더라고······. 아무튼 남은 경찰들이 정리한다고 하니 너무 걱정은 하지 말고.”

“네에······.”

기운 빠진 목소리로 멤버들이 답했다.

팬들이 걱정이 됐지만 링컨센터로 가 성난 팬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팬들이 화가 난 대상은 케이케이가 아닌 살해 협박을 한 자였다.

한국의 팬들은 팬들대로 케이케이가 미국에서 그런 위협을 느끼며 활동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한국으로 돌아오라고 성화였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와 중동과 남미 등. 비서구권이라 불리는 곳의 팬들은 마치 자신이 인종차별을 당한 것처럼 분노했다.

김원과 마찬가지로 한 번쯤은 크고 작은 인종차별을 당해본 이들이 많았다. 그러한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아는데 심지어 자신이 경외해 마지않는 아이돌이 그런 일을 당했다고 하니 당장에라도 자신들이 테러를 일으킬 듯한 분노였다.

꼭 케이케이의 팬이 아니어도 케이케이 멤버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쓰는 이들도 많았다.

서구권들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지금과 같은 시대에도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식의 글을 올렸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상처받았을 것에 대해 너무나 걱정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입의 대상은 달랐지만, 결과적으로는 같은 마음이었다.

걱정과 분노, 부끄러움을 동시에 느끼고 있는 게 현지의 팬들이었다.

심지어 공연장 앞에서 케이케이를 기다리고 있었던 팬들의 심정은 더욱 그러했다. 때문에 공연장 주변에 모여 범인이 잡히고, 케이케이 공연 재개 소식이 들려오기만을 바라고 있는 것이었다.

케이케이가 무사히 활동할 수 있도록 안전을 최우선시 하겠다는 V TV의 입장 발표에도 협박범에 대한 분노로 인한 항의는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인터넷상에서는 이미 현지 팬들이 인종차별반대 시위를 할 기세로 의견을 모으고 있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나비효과였다.

이러한 움직임을 포착한 미국의 언론에서도 ‘세계가 사랑하는 보이밴드에 대한 경고 한 줄이 모두를 분노하게 했다.’고 말하며 ‘신속히 공연을 취소해 안전을 확보한 일은 다행이지만, 상처받은 케이케이 멤버들과 팬들의 마음도 안전하게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CNM에서 흘러나오는 앵커의 멘트를 들으며 도욱은 쥐고 있던 리모컨을 놓았다.

“······우리는 괜찮다고 메시지를 올리는 게 좋겠어요.”

도욱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

[우리는 괜찮습니다. 부득이하게 공연 약속 지키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리는 돌아와서 정리하고 잘 쉬고 있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놀란 건 사실이지만 상처받진 않았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너무 분노하지 마세요. 누군가 분노하길 원한다고 해도 말이지요. 사랑하기에도 아까운 시간입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세계에 더 많은 사랑이 퍼질 때까지 노래하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도욱이 케이케이 페이스노트 공식 계정에 올린 메시지는 순식간에 전 세계에 퍼져나갔다.

케이케이는 하루아침에 사랑과 평화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그저 케이케이를 좋아하는 팬들의 축제 느낌이었던 미국에서의 게릴라 공연은 이제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공연이 됐다.

케이케이의 공연 성공이 마치 평화의 상징처럼 된 것이다.

거기에 뉴욕의 일부 시민 및 관계자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케이케이의 공연이 성황리에 성사되기만을 바랐다. 마음으로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케이케이의 공연을 돕고자 했다.

뉴욕을 근거로 한 유명 생수 회사에서 케이케이를 후원하고 나섰다.

공연장에서 마실 물과 음료 등을 모두 제공하겠다고 했다.

이미 ‘COME HERE’ 프로그램에는 한국의 다국적 기업들과 케이케이가 모델로 활동하고 있는 회사 등이 협찬사로서 많은 제작 지원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생수 회사뿐 아니라 이런 저런 기업 등에서 연락이 오는 바람에 더는 후원을 받으려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V TV 관계자들은 이 일에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색을 표했다.

다른 후원들도 감사한 일이었지만, 무엇보다도 공연 장소를 빌리는 문제가 해결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공연 일자가 밀리면서 빌려 놓았던 장소들이 모두 캔슬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관처 쪽에서 케이케이의 공연이라면 언제든 어떻게든 무대를 내놓겠다고 밝혔다.

덕분에 케이케이는 범인이 바로 잡힌 다음 날 공연 재개 공지를 띄울 수 있었다.

범인은 이틀 만에 색출되었다.

그는 유색 인종을 미국 땅에서 몰살시키고자 하는 비밀 단체에 가입된 고등학생이었다. 인터넷상에서 클럽처럼 만들어진 미스터리 동호회 수준의 클럽이었다.

모두들 키보드 워리어처럼 인터넷상에서만 유색 인종을 도살하겠다는 식의 메시지를 주고받았지 실제로는 평범한 직장인이거나, 패스트푸드점 매니저, 대학원생 등이었다.

평소 과대망상 증세가 있었던 이 고등학생만이 인터넷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실행하려 든 것이었다.

실제로 일 년 전에 중국인 마트에 수제폭탄을 설치하려고 했던 전적도 있었다. 물론 그때는 폭탄을 설치하기도 전에 물건을 훔치려는 도둑으로 몰려 절도범이 되었던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리고 살해 협박 메시지를 받은 지 일주일이 되던 토요일.

저녁 6시 59분. 센트럴파크 한가운데 설치된 야외 특설 무대 위에 케이케이가 서 있었다.

케이케이 여섯 명 모두는 서로의 손을 연결해 잡은 채였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무대 위에 세워진 거대한 디지털시계의 초침이 50을 향했다.

팬들이 하나된 목소리로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10!!!”

“9!!!”

.

.

7시 정각이 되자 센트럴파크에 운집한 대인원이 소리쳤다.

“꺄아아아아악―!!!”

“!!!”

“!!!”

팟―! 펑―!

거대한 함성과 함께 하늘 위에서 색색의 폭죽이 터졌다.

미국 게릴라 공연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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