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200화 (200/225)

# 200

첫 번째 승부 (4)

***

링컨 센터 앞.

케이케이의 로고와 멤버들의 이름이 새겨진 온갖 종류의 응원도구를 온몸에 두른 소녀 팬들이 이미 상당수 운집해 있었다.

팬들은 삼삼오오 무리지어 계속해서 몰려들고 있었다.

방금 전 공지를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숫자의 팬들이었다.

타임스퀘어 광고가 나간 이후 뉴욕에 거주하는 케이케이의 팬들은 내내 응원도구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언제 찾아올지 기회를 노리던 중이었다. 그게 곧바로 오늘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이다.

케이케이의 공연 플래카드가 무대 앞에 걸리면서 링컨 센터 주변을 지나던 이들이 관심을 가지고 무대 앞을 찾은 것도 빠르게 관객이 모인 것에 한몫했다.

평범하게 길을 지나가던 이들 중에서도 케이케이의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다수의 경호원들이 주변의 질서를 정리했다.

무대 주변으로는 카메라 세팅도 완료된 상태였다.

‘COME HERE’의 연출진들은 무대를 점검하고, 녹화를 준비했다. 모든 것이 ‘이상 무’ 상태였다.

그러나 기분 좋은 흥분으로 채워지던 링컨 센터의 공기가 심상찮게 변한 건 담당 PD에게 도착한 메시지 때문이었다.

‘I KILL YOU ALL’로 시작하는 메시지는 분명하게 테러를 예고하고 있었다.

메시지를 보낸 이는 명백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하등한 동양 남성들로 이루어진 보이 그룹에게 백인 소녀들이 농락당하고 있다는 내용이 메시지에 들어 있었다.

진심으로 참을 수 없다는 듯 단어마다 분노가 펄펄 끓고 있었다.

테러 동기 역시 명확했다. 뉴욕 한복판에서 아시아인들이 설치는 꼴을 두 눈 뜨고 볼 수 없다는 것.

공연을 취소하지 않으면 공연 도중 총으로 케이케이 멤버들의 머리를 날려 버리겠다는 경고와 협박.

메시지를 읽은 PD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심각한 사고가 될 수 있었다. PD는 그 길로 연출진들을 소집했다. 그리고 곧바로 케이케이 쪽에도 이 사실을 알렸다.

연락을 받은 후, 케이케이가 탄 벤은 링컨 센터 뒤쪽 도로에 대기 중이었다. 공연 시간 직전 무대 쪽에 차를 대고 멤버들이 빠져 나가 곧바로 무대를 펼칠 예정이었다.

공연 전의 흥분과 긴장으로 들떠 있어야 할 벤 안의 분위기는 무겁기 그지없었다.

전달받은 메시지의 전문을 본 멤버들 중 누구 하나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너무 놀라면 어떠한 감탄사조차 나오지 않는 게 분명했다.

굳어 버린 멤버들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깨고 오백호 실장이 입을 열었다.

“이거 참······. 하아······.”

그러나 이내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케이케이 쪽 관계자들 중 가장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로운 이대형 팀장이 담당 PD와의 전화 통화를 끝내고는 물었다.

“일단 경찰에 신고를 접수했다고 하네요. 외부에는 아직 안 알렸고······. 일단 우리 쪽 의견을 전달해줘야 할 것 같은데요.”

“우리 의견 말입니까?”

오백호 실장이 한숨과 함께 되물었다. 이대형 팀장이 멤버들의 어두운 안색을 살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 의견은 어떻답니까.”

“뭐······. 아무래도 오늘 공연 진행하긴 어려울 것 같다고······.”

미국은 보안 쪽으로 굉장히 민감했고, 민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연을 진행하고 피해가 나게 되면 수습할 수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니 연출진들로서는 재고 따질 것도 없이 스톱 사인을 보낸 것이다.

이대형 팀장의 말에 멤버들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어떤 무대가 안 그렇겠냐만 이번 무대는 케이케이 멤버들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도전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낸 상태였지만, 이러한 테러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야 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메시지 자체가 이미 강력한 인종차별이었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분노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멤버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총으로 머리를 맞는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일이어서 현실감이 나지 않기도 했지만 팬들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아찔했다.

자신들을 보러온 이들이 조금 전 듣기로만 삼백여 명이었다.

자신들의 팬들, 자신들의 프로를 위해 일하는 관계자들, 거리의 시민들까지. 자신들 때문에 테러의 공포를 느껴야 한다는 게 멤버들에게는 또 다른 공포였다.

실제로 사건이 일어날 경우, 정말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었다.

“흠······.”

멤버들이 골똘한 생각에 빠진 듯 침묵이 지속되자 이대형 팀장이 환기를 시키듯 헛기침을 했다.

물론 케이케이 멤버들이 공연을 하겠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공연이 진행될 것 같진 않았다.

신고를 받았으니 경찰 쪽에서 제재가 들어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의견을 모아 공식 입장을 분명히 전달할 필요는 있었다. 팬-마케팅 팀장으로서 이러 한 상황에서도 언론에 나갈 기사를 생각하는 자신이 멤버들에게 가혹하게 느껴질 수 있었지만, 일은 일이었다.

이대형 팀장의 시선이 도욱 쪽을 향했다.

이런 때에 멤버들 중 그나마 가장 빠르게 무언가 의견을 말할 수 있는 멤버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욱은 이대형 팀장의 시선을 느끼곤 휴대폰 화면의 시간을 확인했다. 공연 이십 분 전이었다.

“아······. 아무래도 빨리 의견을 모아야겠네요.”

도욱이 입을 열자 멤버들의 시선이 도욱 쪽으로 쏠렸다.

사실 한국에서는 이러한 개인 테러 위협이 실제적인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을 때가 많았다.

장난일 수도 있었고, 진심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미국이었다. 절대로 그냥 넘길 수 없는 메시지였다.

미국은 총기 소지가 가능한 나라였다. 덕분에 크고 작은 총기 사고도 번번이 일어났다. 게다가 인종차별주의자.

인종차별주의자들의 과격함을 생각하면 21세기에도 이러한 사고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었다.

‘어떠한 생각을 신념이라고 믿고 맹신하는 자들의 눈에는 보이는 게 없다······.’

도욱은 입안이 쓴 것을 느끼며 생각했다.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야외 공연장. 단순히 사설 경호업체의 보안을 강화한다고 될 일도 아니었다.

‘취소해야겠지. 다른 수가 없다. 메시지를 보낸 이를 단시간에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닐 테고······.’

다만 도욱이 걱정되는 것은 당장의 공연 취소가 아니었다.

첫 공연이 취소된 후, 메시지를 보낸 이가 잡힐 때까지 모든 공연의 여부가 불투명해질 수 있었다.

‘한 명의 테러 협박범이 잡힌다고 해도······. 이런 생각을 가진 이가 한둘은 아닐 텐데······. 유사한 일이 반복될 수도 있다. 이 일이 알려지면 불안한 마음에 공연장을 찾지 못하게 될 수도 있고······.’

그렇게 되면 아예 미국에서의 게릴라 공연 자체가 불가능해질 수 있었다. 프로그램 무산이라는 사태까지 가는 것이다.

이내 도욱은 고개를 저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고민해 봐야 답이 나올 턱이 없었다.

일단은 당장 이십 분 후에 있을 공연을 취소하는 게 급선무였다.

“제 생각도 공연은 힘들 것 같아요.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요. 장난이라고 해도 이런 메시지를 받고서 공연을 진행했다는 게 알려지면 그건 그거대로 문제가 될 거고요.”

빠르게 생각을 정리해 말하는 도욱을 보며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견이라 봐야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의견이라기보단 확인 절차에 가까웠다.

“이번 공연 취소하고 나면······. 다음 공연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낙담에 가득 찬 얼굴을 한 안형서가 물었다.

오백호 실장이 쓴 얼굴로 답했다.

“오늘 아예 공연 접어야 되지 않겠냐.”

“아아······.”

이대형 팀장도 난감하다는 듯 말했다.

“곧 대책 회의를 하긴 하겠지만, 당장 언제 공연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멤버들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 나왔다.

“이 사실 알려지면······. 팬들도······. 걱정되네요······.”

박태형이 말했다. 사실이 알려지면 팬들도 불안에 떨 게 분명했다.

오백호 실장은 이 사실을 한국에 있는 권흥조 이사와 조애니 부장에게 보고한 뒤, 빠르게 연계한 사설 경호 업체에도 연락을 넣고 있었다.

팬들을 걱정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위협의 직접적인 대상은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공연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 무사히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해야 할지도 몰랐다.

괜찮을 거라고 멤버들을 위로한 이대형 팀장이 벤 밖으로 나갔다.

공연장에 있을 연출진들에게 케이케이의 입장을 전하고 앞으로의 일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링컨 센터 앞은 이미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을 보며 아무것도 모르는 팬들이 왜 저렇게 많은 경찰차가 와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케이케이의 뉴욕 첫 게릴라 공연은 테러 위협으로 인해 돌연 취소되었다.

***

[케이케이, 美 활동 비상! 테러 위협받았다?]

[뉴욕 게릴라 공연 실패한 케이케이, 참담한 심정 밝혀...]

[총기 테러 위협? 케이케이 팬들 충격 휩싸여]

[뿌리 깊은 인종차별... 케이케이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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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취소와 함께 미국 현지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곧바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한국에서도 케이케이의 뉴욕 공연에 대한 기대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연예면 기사 헤드라인을 대충 훑어본 서중원 본부장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걸렸다.

“테러범까지 도와가며 이슈몰이는 확실히 하는군.”

서중원 본부장은 더는 관심 없다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페이지를 넘겼다.

페이지를 넘기자 맨투맨의 일본 진출 성공기에 대한 특집 기사가 떠 있었다.

케이케이가 미국 공연 준비와 함께 뉴욕으로 떠나게 되면서 한국의 가요계에는 케이케이가 없는 기간을 노린 남자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쏟아져 나왔다.

케이케이와 활동 기간이 겹치게 되면 아무런 빛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 기간을 피해 나온 아이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똑같은 음악 방송 1위여도 케이케이와 같은 1위가 아니었다.

케이케이가 첫 주에 음반판매량 50만 장과 음원 환산 점수 130점으로 1위를 했던 것에 비하면 다른 그룹들의 1위 점수는 음원 환산 점수만 보아도 80점대로 훅 떨어지는 걸 볼 수 있었다.

남자 아이돌 그룹 중에서 케이케이와 비교할 만한 상대가 없다는 게 맞았다.

그나마 케이케이가 없는 한국에서 케이케이와 비교 대상이라도 되는 게 맨투맨이었다. 데뷔 때부터 꾸준히 비교 대상이 되어 왔기 때문에 맨투맨 멤버들이나 팬으로서도 상당히 피곤한 일이었지만, 서강준이 있을 당시 비교도 안 되던 수준보다는 훨씬 치고 올라온 게 맞았다.

맨투맨이 한국과 일본에서의 활동 병행이라는 강행군을 선택하면서 올해 대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였다.

예전부터 일본에서 좋은 성적을 내왔던 아라 엔터테인먼트였던 만큼 맨투맨의 일본 성적도 오리콘 차트에서 위클리 1위를 하는 등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기록적으로는 케이케이가 있는 이상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케이가 방송 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맨투맨이 대상에 더 부합한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물론 아라 엔터테인먼트 쪽에서 맨투맨을 띄우기 위해 교묘하게 흘린 이야기들이었다.

케이케이의 승승장구가 불편한 소수의 안티 팬들이 그것을 신나게 퍼다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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