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첫 번째 승부 (3)
***
뉴욕 타임스퀘어 앞.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지만 타임스퀘어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였다. 낮에 비하면 훨씬 덜한 수준이라고 하니 사람이 많은 시간대에는 얼마나 많은 뉴욕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빌지 예상하기도 힘들었다.
사람도 사람이었지만 타임스퀘어 앞에 서니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 건 전광판에서 나오는 휘황찬란한 불빛들이었다.
타임스퀘어 중심부에 도착한 순간 홀린 듯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오. 진짜 화려하네요.”
“대박 크다······.”
“드디어 타임스퀘어 진출!”
가장 커다란 전광판이 보이는 곳에 서 케이케이 멤버들은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감상을 남겼다.
“눈물이 다 나네. 크흡!”
안형서가 과장되게 말하며 소매로 눈물을 닦는 시늉을 했다. 다른 멤버들은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을 둘러보기 바빴다.
세계 곳곳으로 투어를 다닌 멤버들이었지만 막상 유명한 관광지에 가 본 일은 손에 꼽았다. 말 그래도 투어를 다닌 것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공연장 주변에서 밥을 먹은 게 그 나라에서 한 일의 전부였다.
스케줄이 맞거나 촬영이 그곳에서 있을 때에만 겨우 스치듯 관광지를 관광했었다.
미국의 경우에는 LIL과 앨범 작업을 하러 온 적도 있었고, 빌보드에 상을 받으러 온 적도, TV쇼에 출연하러 온 적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타임스퀘어에 한 번 와 보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도 관광을 하러 나온 것만은 아니었다.
“와우. 댓 이즈······.”
김원이 손을 들어 전광 거대한 전광판들 속에서도 가장 큰 화면을 자랑하는 전광판을 가리켰다. 멤버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모였다.
“오오······.”
“뭔가 신기하다.”
그곳에는 한국 기업의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주변에는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관광객들이 지나며 그 광고를 보고 있었다. 낯선 땅에서 익숙한 한국 기업의 로고를 보니 어쩐지 자신들이 뿌듯한 기분이 드는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없던 애국심도 생길 것 같은······.”
석지훈의 말에 다들 피식 웃으며 동의했다.
동시에 멤버들은 케이케이 팬들이나 꼭 팬이 아니어도 한국의 대중들이 케이케이가 해외에서 많은 인기와 사랑을 얻는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는지, 조금 알 것도 같은 기분을 느꼈다.
한국 기업의 광고가 넘어간 후 다른 광고들이 몇 번 반복되었다.
도욱은 휴대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했다. 오백호 실장은 손목시계를 보고 있었다.
“15초 전이에요!”
긴장감이 조금 섞인 말투로 도욱이 외치자 멤버들이 화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10!”
도욱이 휴대폰을 보고 카운트다운을 시작했다. 멤버들 모두 마른침을 삼키며 화면을 보고 있었다.
“지금인데······!”
말하며 도욱도 고개를 들어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정확히 자정이 되자 전광판 화면에 검은 화면 위로 커다랗게 흰색의 케이케이의 로고가 떠올랐다.
‘FINALLY, K.K IN THE U.S.A’
타자기로 쓰는 듯한 효과와 함께 한 글자, 한 글자씩 문장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뒤로 케이케이의 ‘Continue’와 ‘Connection’ 뮤직비디오 영상을 짜깁기한 편집 영상이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후드 티에 청바지를 입은 평범한 차림의 동양인 청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던 이들이었지만, 전광판에 떠오른 영상의 케이케이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는 이들이 꽤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처럼 멈춰 서 전광판의 영상을 보는 소녀들도 몇 있었다.
멤버들도 처음 보는 광고였다. 오늘 자정 타임스퀘어 대형 전광판과 마이튜브 페이지, V TV 채널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광고였기 때문이었다.
숙소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지만, 멤버들은 이 특별한 순간을 공유하기 위해 타임스퀘어로 나왔다.
뮤직비디오 영상이 지나간 이후에는 Me앱에서 제공받은 한국에서의 게릴라 공연 순간들이 파노라마 형식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누구든 광고를 본다면 케이케이의 게릴라 공연을 연상시킬 수 있도록 만든 부분이었다.
그 후에 V TV 스튜디오에서 미리 촬영해둔 프로그램 스냅 포토가 멤버별로 멤버의 이름과 함께 나왔다.
여섯 명의 멤버를 소개한 이후 화면에는 커다랗게 V TV에서 기획한 리얼리티 프로그램 [COME HERE]의 로고가 떠올랐다.
‘They are coming to see you soon.’
마지막 문구였다.
그들이 곧 너를 찾아 갈 거다. 문구 그대로였다. 케이케이의 미국 게릴라 공연, 그 첫 번째 도시인 뉴욕에서의 공연이 바로 내일이었다.
수많은 도시 중 뉴욕이 첫 공연지가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 문화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거기에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도시였으므로 케이케이 입장에서도 심리적인 부담감이 덜했다.
첫 번째 광고가 나간 이후에는 다른 광고들과 섞여 순서가 되면 케이케이의 프로그램 광고가 나왔다.
“지금이다! 또 나온다!”
멤버들은 상기된 표정으로 전광판 앞에 모여들어 재킷 단체 사진을 찍을 때처럼 대형을 맞춰 섰다.
“형! 우리 다 나오죠?!”
“제대로 찍어야 해요!”
“인마, 대충 찍음 된다. 잔말 말고 빨리 제대로 서기나 해! 광고 넘어간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백호 실장은 최대한 전광판까지 다 나오게 하기 위해 멀찍이 떨어진 곳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리고 바닥에 앉아가며 열정적으로 휴대폰 사진을 찍었다.
멤버들은 각자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거나 하트를 그려가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차 안.
방금 전 찍은 사진을 올리려고 안형서가 휴대폰을 쥔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뉴욕에 왔습니다······. 기쁜 소식······. 다들 보셨나요······? 타임스퀘어에도 뜬 광고는 저희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왔습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글씨를 쓰는 대로 입으로 말하던 안형서가 잠시 자세를 고치며 물었다.
“바로 내일 찾아가겠다고 하면 안 되겠지?”
“마, 당연한 걸 물어라.”
“진짜······ 진짜로 빨리 찾아뵙겠다······. 이 정도는 써도 될까?”
단칼에 안형서를 차단하던 정윤기도 그 부분에서는 애매한 표정이 되었다.
게릴라 공연에 관해서 어떤 단서도 흘리지 않기로 했지만, 정윤기로서도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던 것이다.
두 형들이 골똘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을 보던 도욱이 말했다.
“괜찮지 않을까요?”
“오, 좋아!”
도욱의 한마디에 안형서가 더는 고민도 하지 않고 그대로 글을 작성했다.
“올렸다!”
안형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페이스노트에 무섭게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한국 팬들도 많았지만 미국에 사는 이들의 댓글이 특히나 많았다.
이미 타임스퀘어의 광고와 케이케이 공식 계정, V TV 공식 계정 등을 통해 새로운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식을 알게 된 팬들이었다.
거기에 V TV에서는 광고와 함께 정식으로 공연에 대한 설명을 공지로 올려놓은 상태였다. 그냥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게 아닌 미국에서의 게릴라 공연을 담은 방송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특히 미국 팬들이 광분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한 도시에서 연달아 세 번이나 이어지는 공연.
해시태그를 달아 수만의 메시지를 보낼 만큼 간절했던 해외의 팬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꿈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소식을 알았어도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공연을 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에게 커다란 행운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뉴욕의 어딘가’ 정도로는 한정되어 있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알 수 없어 너무 떨리지만, 곧 케이케이의 무대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와 희망만으로도 너무나 행복하다는 팬들의 댓글이 영어로 수백 개씩 달렸다.
“우리를 진짜 많이 기다렸나 봐······.”
안형서가 댓글들을 보며 말했다. 다른 멤버들도 이미 안형서의 글을 확인하고 있는 중이었다.
빌보드 신인상 수상 이후 미국에서도 아주 짧은 활동을 하긴 했었지만 미국의 팬들에게는 턱없이 부족한 활동이었다.
당시의 활동은 ‘Connection’ 발표 전 활동이었다. 현재의 분위기는 또 달랐다.
‘Continue’ 때보다 훨씬 더 고조되어 있는 상태였다.
‘Connection’은 ’Continue‘의 좋았던 분위기를 완벽하게 이어받았다.
발표 직후부터 지금까지, 그러니까 13주가 넘는 시간 동안 빌보드 차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만 해도 그랬다. 그냥 차트 안에만 든 것이 아니라 30위 안팎을 유지하는 수준이었다.
전 세계에서 팝을 트는 방송국이나 라디오 어디서든 케이케이의 ‘Connection’을 들을 수 있었고, 길거리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케이케이의 노래는 세계 팝 시장의 일부로 편입되어 있었다.
케이케이는 노래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보이밴드로서 소비되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케이라는 그룹 자체를 사랑하는 팬이 많아졌다는 뜻이기도 했다.
‘Connection’이라는 노래가 사랑받으면서 팬이 많아지고, 팬이 많아지면서 앨범 판매량이나 스트리밍 횟수가 올라가는······ 선순환이 계속되고 있었다.
기존 팬들뿐 아니라 유입된 팬들이 상당했으니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해외 팬들은 한국에서의 게릴라 공연을 보며 한국 팬들이 누리는 기쁨을 자신들도 누리고 싶어 했다.
기회가 적은 게 당연했기 때문에 더 간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내일 많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러게요. 그리고 세 번이나 하니까······ 한 곳 정도는 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까?”
도욱과 안형서가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너희 호텔 들어가면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자라. 내일만 공연 세 갠 거 다들 알지?”
“당연하죠!”
“Yes, Sir!"
멤버들이 힘차게 답했다.
자신들을 보고 싶어 하는 이들이라면 한 명이라도 좋으니 그에게 멋진 무대를 선사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
다음 날인 토요일 오후 2시 30분.
케이케이는 호텔에서 준비를 마친 후, 벤을 타고 공연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공연의 특성상 리허설은 전혀 해볼 수 없었지만, 이미 많은 게릴라 공연을 통해 어떠한 돌발 상황이 닥치더라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멤버들이었다.
첫 공연 시간은 3시.
이제 겨우 30분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기존의 V TV의 기획은 4시간에 한 번씩 장소를 이동하며 공연을 하는 것이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을 고려한 끝에 시간에 더 제약을 두게 되었다.
주말인 토요일 오후 3시, 6시, 9시. 그렇게 공연은 3시간에 한 번씩 진행하게 되었다.
첫 번째 공연을 앞두고 오후 2시에 공연 장소 공지가 페이스노트 케이케이 계정과 타임스퀘어 전광판을 통해 공지되었다.
[COME HERE -Lincoln Center –3PM EST]
공연 장소와 시간이 공지되자마자 케이케이 팬들이 들끓었다.
어제보다 더 심하게 인터넷이 뒤집어졌다. 벌써 링컨 센터로 미국의 십 대 소녀들이 몰려가고 있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보였다.
갑자기 몰리는 인파에 어리둥절해 무슨 일이냐는 질문과 함께 개인 영상을 찍어 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이거······.”
도욱이 난리가 난 팬들의 반응을 보며 중얼거렸다. 관객수에 대한 걱정은 적어도 인터넷 반응상으로는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다들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차가 어서 달려 링컨 센터 앞에 도착하길 바랄 때였다.
공연을 담아내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탄 벤 안에는 카메라맨 한 명이 동승한 상태였다.
차 안에도 여러 대의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무언가 연락을 받은 카메라맨이 무척이나 암담한 얼굴이 되어서는 도욱을 불렀다.
이번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도욱과 김원이 그 몫을 다하기로 되어 있었다.
도욱이 돌아보자 카메라를 잠시 내려놓은 카메라맨이 담당 PD로부터 급하게 전해 들은 소식을 말했다.
담당 PD의 페이스노트 개인 계정으로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다는 것이다.
‘I KILL YOU ALL.’
메시지의 첫 문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