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97화 (197/225)

# 197

첫 번째 승부 (1)

‘조정민?’

예상치 못했던 익숙한 인물의 등장에 도욱과 박태형 모두 눈이 커졌다.

거기에 조정민은 두 사람과 절대로 좋은 인연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도욱은 일전에 대형콘서트장 대기실에서 이미 조정민을 만난 적 있었다.

당시만 해도 조정민은 여전히 도욱이나 박태형에 대한 악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조정민도 무리의 대화 내용을 분명히 들었을 정도의 거리였다.

“뭐 하냐. 너희.”

도욱과 분명히 눈이 마주친 조정민이었지만 그는 도욱에게 인사하는 대신 무리에게 말을 건넸다.

무리가 조정민 쪽을 돌아보며 반가운 얼굴을 했다.

“어, 형!”

“형 오셨어요?”

조정민은 고개를 까딱여 무리의 인사를 받았다.

조정민과 무리는 지난 오디션 때 안면을 익힌 상태였다. 춤을 추는 장르가 비슷했기 때문에 오디션 뒤풀이 등을 통해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더군다나 조정민의 실력은 참가자들 사이에서 우승 후보로 뽑힐 정도였다. 오디션 당시 보여준 춤 실력은 그런 생각을 가지기에 충분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참가자들은 자신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이에게 경쟁심을 느끼면서도 인정하고,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 했다.

조정민을 반기는 무리의 태도는 딱 그런 것이었다.

“뭐 하고 있어?”

조정민이 조금 무뚝뚝하게 묻자 박태형을 비꼬던 참가자가 웃으며 답했다.

“하긴 뭘 하겠어요. 그냥 노가리나 까고 있었죠.”

“아아······.”

의미심장한 말투로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한 조정민이 도욱과 박태형 쪽을 돌아봤다.

자연스럽게 무리의 고개도 돌아가며 두 사람을 발견했다.

참가자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자신들이 방금 전까지 입방아를 찧어대던 박태형이 그 자리에 있었으니 당연했다.

이야기를 들었다는 게 확실하지 않으면 숨겨 보려는 노력이라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표정은 이야기를 들었다는 게 자명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닌 척 발뺌해 봐야 상황을 수습할 수는 없을 듯했다.

참가자는 표정을 잠시 찌푸리곤 중얼거렸다.

“아. 재수 없게······.”

수습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자 아예 막무가내로 나가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차피 맘에 들지 않던 박태형이었으니 이렇게 된 이상 괜히 뒤늦게 굽히는 모습으로 모양새를 구길 게 아니라 다른 팀에 가면 된다는 심산이었다.

다 들으라는 듯 중얼거리는 참가자의 말에 도욱은 기가 막혀 헛웃음을 지었다.

“저기요.”

도욱의 부름에 참가자들의 얼굴에 일순 긴장이 돌았다. 그러나 ‘재수 없다’고 한 참가자는 애써 긴장을 지우며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며 답했다.

“뭡니까.”

“지금 재수 없는 게 누군데······.”

도욱이 단도직입적으로 나오자 모두 놀란 얼굴이었다. 박태형마저 그랬다. 평소 도욱의 이미지로도 그랬고, 실생활의 언행으로는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욱도 참을 때와 참지 말아야 할 때를 알았다. 지금은 참을 이유도 없는 때였다.

중저음의 낮게 깔리는 목소리가 참가자들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

도욱이 무어라 더 말하려고 할 때였다.

“사과해.”

조정민의 말이 빨랐다.

도욱이 참가자들을 다그칠 경우 참가자들이 어떻게 말을 바꿔 인터넷에 글을 올릴지 몰랐다. 물론 도욱 정도의 스타면 그런 일 하나로 크게 이미지에 금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한 잡음이 있을 수 있었다.

연예인들이 일반인들에 비해 특혜를 받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상대적으로 약자의 입장에 놓이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걸 잘 알고 있는 조정민이었다.

조정민은 도욱이 곤란을 겪길 원치 않았다.

조정민의 의외의 말에 도욱이나 박태형은 잘못 들은 건가 하는 의심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참가자들 또한 어안이 벙벙한 듯했다.

“형······?”

참가자가 조정민을 불렀지만 조정민은 고갯짓으로 어서 사과하라는 뜻만 더욱 확고하게 밝혔다.

친분을 쌓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조정민 정도의 실력자라면 그도 자신처럼 박태형을 무시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처음 가진 술자리에서 아이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내뱉던 조정민이었다.

“너 박태형 춤 제대로 본 적 있어?”

조정민의 물음에 참가자가 우물거렸다.

워낙 난리인 터라 케이케이의 무대 정도는 한 번 스치듯 본 적 있었다. 물론 그때도 아예 못한다는 느낌은 아니었다. 다른 팀들보다 뛰어난 건 스치듯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래 봐야 아이돌 댄스라는 생각이었다.

우물거리는 참가자에 조정민이 쏘아붙이듯 말했다.

“보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말하는 거냐?”

“아니, 형. 박태형이랑 무슨 사이라도 돼요?”

보다 못한 다른 참가자가 조정민에게 반발했다.

“나? 난 여기 박태형한테 밀려서 케이케이 못 된 사람인데. 박태형 실력 인정 못 한다는 건 나도 인정 못 한다는 뜻 같아서 하는 말이야.”

조정민의 말에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조정민의 이력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현재 소속된 댄스팀에서 계속해 활동해 왔는 줄 알고 있었던 참가자들이었다.

물론 조정민이 속일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나서서 밝히지 않았을 뿐.

이미 자신의 아이돌 연습생 이력들에 대해 개인 인터뷰를 해놓은 상태라 방송이 나가면 모두 알게 될 터였다.

싸해진 분위기 속에 참가자들은 잘못 걸렸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동시에 조정민에 대해서도 얕잡아 보는 듯한 느낌이 생겨났다.

우스운 일이었다. 방금 전까지도 우승 후보라고 조정민을 떠받들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아이돌 연습생이었다는 사실을 밝히자 이렇게나 금세 얕보는 태도였다.

그들의 태도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조정민은 자신의 과거를 돌이켰다.

‘나도 저들과 똑같은 사람이었겠지······. 어차피 선입견 따위는 실력으로 깨주면 된다. 이미 인정받고 있고······.’

조정민이 그렇게 생각하며 참가자들을 속으로 비웃었다.

“사과하게 될 겁니다.”

도욱이 도망치듯 복도를 빠져 나가는 참가자들의 뒤에 대고 말했다. 그들은 흠칫하고는 다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대기실 복도에는 조정민과 박태형, 도욱 세 사람만이 남았다.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조정민의 태도는 너무나 의외였다. 박태형은 조정민을 살폈다. 연습생 시절에는 너무나 무서웠던 형이었는데 지금 보니 이전의 자신이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조정민은 평범했다.

도욱이 의심스러운 눈길로 조정민을 훑을 때였다.

“미안하다. 나도 같은 참가자로서 대신 사과할게.”

“네······ 네?”

조정민의 눈은 박태형을 직시하고 있었다. 당황한 박태형이 되묻자 조정민이 정중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과거의 일들도······. 내가 그땐 너무 어렸다. 아니 그건 변명이겠지. 그냥······. 미안하다. 네가 용서해줄진 모르겠지만······.”

조정민의 거듭된 사과에 박태형은 당황한 눈으로 도욱을 보았다. 도욱은 지그시 조정민을 응시했다.

조정민이 도욱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강도욱.”

도욱과 시선이 마주친 조정민은 도욱의 검디검은 눈동자를 보며 생각했다.

도욱의 말이 맞았다. 오늘이 될지 아니면 자신처럼 몇 년 후가 될지 몰라도 아까 전의 참가자들은 박태형에게 사과를 하거나 적어도 사과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조정민의 증오와 악으로 가득했던 마음이 바뀐 건 일 년 전쯤이었다.

새롭게 시작해 보려 들어간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 조정민은 연습생이라는 명분하에 백댄서로 착취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데뷔를 기다려도 데뷔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맨투맨의 다음 그룹은 서강준의 일로 무기한 연기 상태였다. 회사에서 맨투맨을 재정비하고 맨투맨이 자리를 잡는 데 모든 총력을 기울였기 때문이었다.

아니었더라도 조정민이 데뷔를 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맨투맨 백댄서로 얼마간을 보낸 후에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은근히 조정민을 괄시하며 결국 조정민 스스로 회사를 나가게 만들었으니 더 말할 게 없었다. 소위 말하는 ‘팽 당한’ 것이다.

아라 엔터에 들어갈 때 어떻게든 박태형과 도욱보다 잘되리라 이를 악물었었다. 때문에 노골적인 괄시에도 버텨보려 했었다.

그러나 소용없었고, 아라 엔터를 나오며 조정민은 제 삶을 돌아봐야만 했다.

초라하게 무너진 자신과 달리 케이케이는 자신들만의 길을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꿋꿋하게.

빌보드에서의 수상 장면을 보는 순간, 조정민의 자아는 완전히 무너졌다. 동시에 새로 재구성되기도 했다.

힛 엔터테인먼트를 나간 건 자신의 선택이었다. 박태형에게 밀린 것에 자존심이 상했어도 힛 엔터테인먼트에서의 기회를 그런 식으로 날려서는 안 됐다.

자만에 빠져 남을 괴롭히고, 불성실하게 굴었던 것들. 하나하나의 행동들이 얼마나 바보 같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단 하나, 여태 쌓아온 춤에 대한 열정만은 진심이었다.

이번 <댄싱댄싱>은 그 깨달음 가운데 정말 초심으로 돌아가 새로운 미래를 그려 나가보려 도전한 프로그램이었다.

심사위원에 박태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역시나 말도 못 하게 자존심이 상했지만 이제는 인정해야만 했다. 박태형과 자신의 위치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오히려 좋은 기회일 수 있었다. 과거를 반성하고 앞으로 나아갈.

“고맙다. 네가 내게 화를 내지 않았다면, 난 평생을 오만한 쓰레기로 살았겠지. 마치 서강준처럼······.”

옆에서 서강준을 지켜봐 왔던 조정민이었기 때문에 서강준의 몰락은 도욱과 대비되어 조정민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너희가 싫을 수도 있겠지만······. 난 이 프로그램 통해서 새롭게 시작해 보려고. 춤만을 바라보던 순수했던 시절로 완전히 돌아갈 순 없겠지만, 그때의 느낌으로······. 그러다 보면 내 인생도 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싶어서······.”

조정민의 말대로라면 잘된 일이었다. 도욱이 싫고 말고 할 일이 아니었다. 도욱은 박태형을 보았다. 조정민에게 괴롭힘을 당했던 건 박태형이었다.

“형······.”

박태형이 어렵사리 입을 뗐다. 조정민은 처분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박태형의 말을 기다렸다.

“형은 잘할 거예요. 형 때문에 괴로웠던 건 사실이지만······. 형이 춤을 잘 춘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요.”

“미안하다. 네가 내가 보는 게 괴롭다면 이 프로에서도 나갈게. 내가 예전엔 정말 정신이 나갔었는지······. 후회되는 일들이 너무 많아.”

조정민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

“아니에요. 사과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태형의 의연한 모습에 도욱은 박태형의 성장을 새삼 느꼈다. 박태형에게 조정민의 일은 이미 과거일 뿐이었다.

도욱으로 인해 두 사람의 삶은 달라져 있었다.

***

대기실로 다시 돌아온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늦게 돌아왔냐는 멤버들의 핀잔을 들으며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도욱이 조정민의 출연 사실을 알리자 멤버들 모두 놀라면서도 동시에 불편한 기색을 표했다.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동료로서 안형서나 정윤기는 잠시나마 안쓰러운 마음도 느꼈을 것이었다. 동시에 박태형을 걱정하는 마음도 컸다.

그러나 조정민이 박태형에게 사과를 했으며, 박태형도 괜찮다고 답하자 굉장히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행스럽다는 반응들이었다.

“그리고······.”

깨끗이 비운 도시락을 정리하던 때 박태형이 말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요.”

박태형의 말에 모두 말해보라는 듯 시선을 모았다. 먼저 도욱에게 의견을 물은 상태였으므로 박태형이 무슨 말을 할지 아는 도욱만이 빙긋 미소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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