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96화 (196/225)

# 196

#케이케이 (4)

V TV에서 제안한 건 미국 게릴라 공연이었다.

한국에서의 게릴라 공연과 큰 틀은 같았지만, me앱과의 기획이란 걸 염두엔 둔 듯 세부 포맷이 조금 달랐다.

일주일에 하루, 한 도시에서 공연을 한다.

도시는 한 곳이지만 장소는 여러 곳. 4시간에 한 곳씩 장소를 옮겨 총 세 번의 공연을 한다. 대신 세트리스트는 두 곡 정도로 짧게 간다.

그렇게 한 달 동안 서부와 동부를 가리지 않고 미국 전체를 일주한다는 계획이었다.

V TV에서는 방송 또한 생방송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 한 달 동안 공연을 하는 모습들을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으로 제작해 전 세계에 내보내고 싶다고 했다.

4시간에 한 번씩 장소를 옮기면서, 공지는 한 시간 전에 SNS 올리는 게 전부였다. 진정한 의미의 게릴라 공연일 수 있었다.

거기에 이미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고 있던 한국이 아닌 미국.

공연마다 흥행한다는 보장이 확실히 떨어졌다.

생방송이 아닌 다큐 형식의 프로그램을 선택한 것도 아마 이를 고려한 기획이었을 것이다.

‘성공하는 모습도, 실망하는 모습도 모두 담아내겠다는 거겠지······.’

힛 엔터테인먼트 내부에서는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일지 아닐지에 대해 여러 날 고민했다.

위험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총 12번의 공연. 그중에서 8번 정도 흥행에 성공하고, 4번 정도의 공연에서만 관객 동원에 실망스러운 성적을 낸다면 대체로는 프로그램의 취지와 맞아떨어질 것이었다.

그 정도는 아직 세계 정상급의 가수는 아닌 케이케이로서도 얻는 게 많았다. 8번의 성공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만약 확률이 반도 되지 않는다면······.’

이미 한국에서는 일주일 전 갑작스러운 공연 소식에도 불구하고 7만여 명의 대인원을 동원하는 톱스타였다.

해외에서의 인기도 한국 가수 중에서는 최고였다.

‘Connection’도 무사히 빌보드 차트에 안착하며 ‘Continue’만큼의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다.

그런 케이케이 굳이 이런 도박에 가까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게 맞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괜히 미국에서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미미한 성적을 거둔다면 한국에서의 위상조차 깎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톱스타가 미국에서의 실패로 한국의 인기까지 잃게 된 전례가 이미 존재하기도 했다.

어쨌든 멤버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회사로서 물론 최종 결정은 케이케이 멤버들이 하게 될 것이었다.

그렇지만 힛 엔터테인먼트는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회사의 입장에서 케이케이라는 그룹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여러 가지 장단점을 미리 파악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때문에 V TV의 제안에 관한 건을 멤버들에게 말하는 시기도 늦춰진 상태였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괜히 멤버들의 심기를 어지럽히고 싶지 않아서였다.

힛 엔터 임원진들의 의견이 갈리는 가운데 이대형 팀장은 정확하게 중립의 입장이었다.

#KK_please_come_here

마지막 공연을 기점으로 폭발적으로 늘어난 메시지에 달린 해시태그였다.

엄청난 양의 메시지였다.

페이스노트가 내부에서 집계하는 해외 전역 실시간 트렌드에 ‘#KK_please_come_here’가 올라와 있을 정도였다.

지역별로 살펴보면 확실히 아시아권과 미국에서 뚜렷하게 높은 숫자를 자랑했다.

페이스노트 실시간 트렌드뿐만이 아니었다. 미국에서는 프렌즈만큼 유명한 포털사이트의 주요 검색어에도 하루에 몇 번씩 케이케이가 올라왔다.

빌보드 시상식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미국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갈 정도라면 V TV에서 ‘케이케이의 미국 내 인기는 힛 엔터가 분석한 것 이상일 것이다.’라는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생각해 보면 미국에서의 음반 판매량도 상당한 것이었다.

이대형 팀장이 집중하며 페이스노트의 실시간 트렌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KK_please_come_here’가 미국 내 실시간 트렌드 2위였다.

만약 미국 현지에서의 게릴라 공연이 성공하고, 프로그램까지 좋은 시청률을 보인다면 케이케이는 미국 시장에 완벽히 정착하게 되는 것이었다.

***

월드컵경기장에서의 꿈같았던 마지막 공연 후, 멤버들에게는 5일간의 휴식이 주어졌다.

한 달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게릴라 공연과 연습을 반복하며 달려온 멤버들에게는 정말로 소중한 휴식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밀린 약속들도 나가고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냈을 멤버들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의 휴식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말이 숙소지 잠만 자고 가는 여관 취급을 받았던 숙소는 24시간 멤버들로 북적였다. 처음 며칠간은 내리 잠만 자며 체력을 보충했고, 이후에야 게임이나 운동 등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한 와중에도 박태형에게는 걱정이 있었다.

가뭄에 단비와도 같았던 휴일이 끝나면 곧바로 <댄싱댄싱>의 촬영이었다.

첫 단독 스케줄이었기 때문에 박태형의 긴장감은 남달랐다.

거기에 자신이 누군가를 ‘지도’한다고 생각하니 더욱 긴장됐다.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숙소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도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들었다.

물론 예전이었으면 그런 고민에 파묻혀 잠도 이루지 못하고 벌벌 떨었을 박태형이었다.

그러나 이제 긴장은 하더라도 그 긴강감에 압도되지는 않았다.

출발선 앞 준비 자세에 선 걱정과 불안을 이겨내고 힘차게 달려 나가는 방법을 케이케이 활동을 통해 몸으로 충분히 익혔기 때문이었다.

케이케이는 언제나 넘어지지 않고 결승선에 1등으로 도착하는 그룹이었다. 케이케이의 멤버라는 것만으로도 어디에서든 결승선에 도착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었다.

거기에 <댄싱댄싱>의 첫 촬영만큼은 박태형 혼자가 아니었다.

<댄싱댄싱>의 심사위원이자 한 팀을 이끌 리더로 출연하는 박태형을 위해 케이케이 멤버들이 지원 사격을 나가게 되었다.

일산 TBN 제작센터.

공개 방송 등 무대용 방송을 위해 지어진 거대한 단층 건물이 <댄싱댄싱> 촬영장이었다.

춤이 방송의 주제인 만큼 넓은 무대를 확보하기 위해서 객석을 뒤쪽으로 물리고 무대를 넓힌 형태로 세트장을 세운 모습이었다.

“와우······! 태형이! 태형이!”

세트장에 들어서자마자 김원이 세트장 천장 쪽을 가리키며 외쳤다.

<댄싱댄싱>이라는 거대한 현수막과 함께 박태형의 얼굴이 당당히 다른 심사위원들의 얼굴과 함께 박혀 있었다.

“오오······.”

“까리한데?”

멤버들이 감탄하자 박태형의 얼굴이 붉어졌다.

<댄싱댄싱>의 심사위원은 박태형을 비롯해 최고의 댄스스포츠 선수와 발레리나, 스트릿 댄서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춤에 대한 열정으로 뭉친 참가자들을 이끌 예정이었다.

네 명의 심사위원 가운데에서도 박태형은 단연 눈에 띄는 존재였다. 모두 그 분야의 톱이었지만, 케이케이만큼 전 국민이 아는 이는 사실 없었다.

박태형에게 화제성이 쏠릴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만큼 박태형이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고 <댄싱댄싱>의 조연출이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아, 오셨어요!”

“네. 안녕하세요.”

멤버들을 데리고 온 구철민이 조연출에게 꾸벅 인사했다. 뒤에 서 있던 멤버들도 조연출을 향해 깍듯이 인사했다. 오히려 조연출이 송구스럽다는 듯 더욱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방송 중반부부터는 참가자들의 매력, 토너먼트 프로그램이라는 긴장감, 화려한 공연 등으로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게 되겠지만 우선 방송을 보게 만들려면 어떤 화제성이 필요했다.

그런 의미에서 <댄싱댄싱> 연출진들에게 케이케이와 박태형은 자신들의 프로그램을 이끌어줄 견인차나 다름없었다.

신생 프로그램의 조연출로서는 상전을 모시듯 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로 오세요! 저쪽 대기실에서 준비해 주시면 됩니다.”

구철민이 끄덕이며 멤버들을 이끌고 조연출을 따라갔다.

박태형에게는 첫 촬영이었지만 <댄싱댄싱>은 이미 몇 번의 촬영이 있었다.

박태형은 게릴라 공연 스케줄로 인해 불참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촬영 동안 다른 세 명의 심사위원들이 최종 참가자 스무 명을 뽑아 놓아놓았고, 오늘은 팀 결정을 하는 날이었다.

박태형은 국립발레원 수석 발레리나와 한 팀이 되어 자신의 팀을 꾸려야 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패널로서 자리를 채우고, 오늘 촬영의 엔딩 무대를 장식할 예정이었다.

대기실에 도착한 케이케이 멤버들은 메이크업 수정을 받으며 녹화 시간을 기다렸다.

우선은 패널로서만 참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멤버들의 복장은 오랜만에 무대 의상이 아니었다. 지루한 대기시간일 수 있었지만 멤버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멋을 부리고 온 터라 신이 나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녹화에 들어가기 전, 점심으로 팬들이 보내 온 스테이크 도시락을 먹으려고 할 때였다.

박태형 첫 단독 스케줄인 <댄싱댄싱> 촬영날인 것을 안 박태형의 팬 사이트에서 보내 온 도시락이었다.

이미 심사위원과 참가자들은 물론이고 전 스태프들에게 스테이크 도시락이 배달된 상태였다.

괜히 방송 관계자들이 케이케이와 방송을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었다. 화제성 및 시청률 보장은 물론이고 근무 환경까지 좋아지는 것이었다.

“이거 태형이가 인증샷 찍어야지. 태형이 어디 갔어?”

안형서가 자리에 없는 박태형을 찾았다.

박태형은 자신과 함께 팀을 꾸려나갈 발레리나에게 인사를 하고, 방송에 대한 논의를 하러 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연출진들과 함께 나간 구철민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아직까지 얘기가 안 끝났나?”

정윤기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가 보고 올게요.”

도욱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어차피 바로 옆 대기실이었고, 괜히 전화를 해 이야기의 흐름을 끊는 것보단 슬쩍 대기실 상황을 살펴보고 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대기실 문을 열고 나서자 복도에는 참가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제각각 가슴에 커다란 번호표를 붙이고는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온 도욱을 발견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바로 앞에 있던 무리는 스트릿 댄서 팀인 듯했다. 차림새만 보아도 무슨 춤을 추는지 대체로 짐작할 수 있었다.

“박태형 팀 가면 일단 팀전에서는 100퍼센트 이기는 거 아냐?”

“당빠. 빠순이들이 생방송 투표는 책임져 줄걸.”

“근데 전문가 점수 따로 있잖아. 그리고 팀 내부에서도 또 경쟁해야 되니까······. 오히려 불리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우선은 참가자가 팀을 지원할 수 있었다. 지원한 참가자 중에서 심사위원들이 선택하거나, 다른 팀에서 승부수를 던져 데리고 오거나 하는 식이었다.

참가자로서는 어떤 팀을 고르게 되는가도 중요한 문제였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불량한 언사가 귀에 거슬리긴 했지만, 도욱은 수긍하려고 했다.

“야, 근데 박태형은 씨······. 참가자로 나왔어야 하는 거 아님? 지가 뭔데 심사위원.”

“왜. 춤 잘 추지 않나? 뭐 영상 본 것 같은데······.”

“날고 기어도 아이돌인데 잘 춰 봤자.”

찢어진 청재킷을 걸친 남자 참가자가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선 말했다. 나름 춤으로 이름을 날린 적 있는 참가자들이었다. 그런 만큼 자존심이 무척 셌다. 좋게 말해 자존심이지 다시 말하면 오만함이었다.

“형! 조용히 말해요. 요즘 케이케이가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데.”

“인기 많아서 춤 잘 추면 나재석 같은 개그맨은 팝핀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뭐요? 하하.”

으스대며 하는 우스갯소리에 남은 두 명의 참가자들에게서 웃음이 터졌다.

반대로 도욱의 인상은 구겨졌다. 헛기침을 해 인기척을 내려고 할 때였다. 옆 대기실에서 나와 있던 박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 뒤, 조정민이 무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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