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95화 (195/225)

# 195

#케이케이 (3)

V TV는 미국에 본사를 둔 음악 전문 채널이었다. 한국으로 따지면 TBN과 비슷한 성향이었지만, 그 크기와 규모 면에서는 TBN과 비교될 것은 아니었다.

케이케이의 공연이 회를 거듭하던 때 이대형 팀장은 두 방송국에서 연락을 받게 됐다. 한국의 TBN과 미국의 V TV였다.

TBN에서는 마지막 공연의 TV 중계권을 요청해 왔다.

마지막 공연의 경우 대형 공연장에서 공연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대관료부터 시작해 무대 연출비 등 제작비의 규모가 달랐다.

때문에 처음 공연을 기획하고 논의할 당시부터 힛 엔터테인먼트 쪽에서도 일부 제작비를 지원하기로 돼 있었다.

이러한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는지 TBN은 제작비 전액 지원이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마지막 공연이니 한 번 만에 끝날 공연이었지만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인터넷 생중계된 영상들이 계속 누적 조회수를 쌓아가듯 방송도 여러 차례 재방송이 가능했다.

더해 TBN에서 마지막 공연을 방송하게 될 경우 방송사에서 방송되는 최초이자 유일한  ‘Connection’ 무대가 될 것이었다.

TBN의 제안은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우선 TBN은 케이케이가 처음 방송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주요한 원인이 되는 방송사는 아니었다.

또 제작비 전액 지원이라는 조건은 음악 방송 출연 없이 방송사와 대형 기획사의 권력에 맞선 것에 대한 충분한 보상의 느낌이 있었다.

TBN에 최초로 출연하게 됨으로서 다른 방송사들 쪽에선 더욱 애가 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정치적 이유를 제하더라도 TBN의 제안은 솔깃한 것이었다.

무대 중계 퀄리티 면에서 여러 대형 공연을 방송 송출한 경험이 있는 TBN 측이 현재의 me앱 중계팀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me앱 쪽에서도 외부 인력을 많이 고용해 노력하고 있었지만 대형 공연장에서의 공연까지 감당하려니 부담이 큰 게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공연의 기획은 me앱의 것이었다. TV로 방송을 하게 되면 당연하게 생중계 시청자가 분산될 텐데 me앱이 그것을 수락할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e앱 쪽에서는 TBN의 방송 중계를 수락했다.

제작비 전액 지원이면 me앱의 부담도 주는 셈이었고, me앱으로서는 이미 누릴 수 있을 만큼의 광고 효과를 누렸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TV 중계를 통해 간접 광고 효과를 누릴 수도 있었다.

피해가 발생하는 일도 아니었으므로 괜한 욕심으로 잡음을 낼 것 없이 힛 엔터테인먼트의 의견을 최대한 수용하자는 판단도 들어가 있었다.

me앱의 입장에서 케이케이는 me앱이라는 새로운 인터넷 방송 플랫폼이 자리 잡게 도와준 개국공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므로 이 관계를 이번 공연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잘 유지하며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해낼 계획인 것이었다.

덕분에 힛 엔터로서는 손 안 대고 코를 푼 격이 됐다.

본래 지원하기로 했던 제작비도 지원하지 않아도 됐고, 자연스럽게 TV 방송에도 얼굴을 비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오히려 빵빵해진 지원으로 공연 퀄리티도 더 높아질 예정이었다.

마지막 공연을 하루 앞둔 연습 시간.

내일 있을 마지막 공연은 한 시간 정도만 진행됐던 다른 게릴라 공연과 달리 무려 2시간 30분짜리 공연이었다.

케이케이 단독 콘서트라고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는 공연 시간이었다.

새로 나온 앨범의 신곡 몇 곡을 제외한 뒷부분의 세트리스트는 지난 해외 투어 공연 세트리스트와 동일했기 때문에 많은 연습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완벽한 공연을 위해서는 연습이 필요했다.

“우리 V TV랑도 뭐 하는 건가?”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져 휴대폰을 하던 안형서가 도욱에게 물어왔다.

이대형 팀장과는 이런저런 일로 개인적인 연락까지 하고 있었기 때문에 도욱이라면 알지 않을까 싶어 묻는 것이었다.

“마지막 공연을 V TV에서 중계하는 건가 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라니까 궁금하네.”

“그러게요. 저도 거기까진 들은 게 없어서.”

V TV와의 미팅 이후 이대형 팀장은 마지막 공연 이후 자세한 내용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마지막 공연 중계 건일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고 있던 멤버들은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궁금증만 커진 상태였다.

도욱도 궁금했지만 연일 몰아치는 공연 스케줄에 따로 물어보거나 할 여력은 없었다.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걸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으신 거겠지…….’

도욱은 이렇게 생각하며 스포츠 타월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공연 세트리스트를 연습하는 데에는 공연과 비슷한 정도의 엄청난 체력이 소모됐다.

오늘 종일 계속된 연습으로 이제는 주먹이 잘 쥐어지지 않을 정도로 힘이 빠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도욱이 땀을 닦아내며 웃을 수 있는 건 땀을 흘린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결과가 항상 돌아오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내일은 팬들 얼마나 올지 걱정 안 해도 돼서 좋네.”

잠시 보았던 핸드폰을 다시 연습실 구석에 밀어 넣으며 말하는 안형서에 도욱이 끄덕였다.

“매진이니까요.”

“후후. 매진. 전석 매진은 늘 짜릿하다니까! 빨리 무대 서고 싶다. 그치? 무대에서 하면 똑같은 걸 해도 연습 때보다 덜 힘든 것 같기도 하고.”

“네. 에너지가 막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맞아! 막 무슨 기가 내 몸으로 쏟아지는 것 같다니까. 그런 거에 중독이 되는 건가. 지금 우리 약간 공연 중독 상태인 듯.”

“중독…….”

안형서의 말에 도욱은 깊이 공감했다.

처음 시작은 방송 출연을 대신할 새로운 돌파구로서 마련한 게릴라 공연이었지만 이제는 그 짜릿함에 중독이 되어버린 듯했다.

설렘과 환호.

콘서트를 하면서 느끼는 짜릿한 감정들이 몇 배의 감동까지 더해져 완벽하게 케이케이 멤버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그 때문에 3일에 한 번이라는 엄청난 스케줄에도 멤버들은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심지어 내일이 마지막 공연임에 아쉬워하며 앞으로도 더 많은 공연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멤버들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Connection 한 번 가고, 해산하자!”

구석에 죽은 듯 늘어져 있던 정윤기가 약속된 쉬는 시간인 15분이 지나자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연습실 중앙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다시 대형을 갖춰 섰다.

***

그리고 상암 월드컵경기장.

폭발적인 에너지가 다른 날의 수십 배로 쏟아질 공연장이었다.

축구공이 굴러다녀야 할 잔디밭 위에는 의자가 빼곡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무대 설치를 위해 공연 관계자들은 밤새 땀 흘려가며 일해야만 했지만 근 한 달여를 함께 고생한 터라 여태까지 일해 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공연 관계자들 사이에서 이번 케이케이의 게릴라 공연에 대한 평판은 아주 좋았다. 공연 내용은 말할 필요도 없었고 관계자들에 대한 처우에 관한 것이었다.

무대 연출부터 관객 입장을 돕는 이들까지 외주 업체를 통해 고용된 이들은 대부분 일용직이었다. 공연의 건별로 계약을 하는 업계 절차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경력직 연출 정도가 아니면 휴일 없이 일함에도 불구하고 좋은 대우를 받기 힘들었다.

최저 시급만 받아도 다행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오가는 게 공연 관계자들, 특히 진행 보조를 맡는 이들의 사정이었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이번 케이케이 공연에서만큼은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최저 시급을 준수함은 물론이고 식대와 야간 수당, 휴일 수당 등까지 꼬박꼬박 챙겨 받았기 때문이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공연 보조 일을 하면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하는 만큼 제작비의 많은 부분이 쓰인다고 하더라도 관계자들의 처우에 꼼꼼하게 신경을 쓰자고 한 건 케이케이 멤버들의 의견이었다.

공연을 통해 프렌즈라는 기업이나 힛 엔터, 케이케이 멤버들이 어마어마한 수익을 낼 텐데 그 공연을 위해 일하는 대부분의 이들이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한 멤버들의 의견에 힛 엔터테인먼트도 동의했다.

무대 연출에서 과하게 화려했던 부분을 덜어내고 인건비를 대체했다.

덕분에 관계자들은 육체적으로는 피로했어도 하는 일에 대한 보람을 조금 더 느낄 수 있었다.

주최 측이자 공연의 주인공인 케이케이가 자신들을 배려한다는 느낌을 충분히 받았기 때문이었다.

관계자 처우 개선에 대한 결정은 관계자들만 좋은 게 아니었다. 결국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다. 이들은 케이케이의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일했고, 덕분에 공연 진행은 언제 어디서나 순조로운 편이었다.

다른 공연에서는 종종 있는, 관객들과 공연 진행자가 얼굴을 붉히는 일도 거의 없었다.

때문에 마지막 공연이 아쉬운 건 케이케이뿐만이 아니었다.

마지막 관객 입장을 준비하는 진행 보조들의 얼굴에도 시원섭섭함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그러한 여러 사람들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me앱은 물론 TBN 방송을 통해 생중계되는 마지막 게릴라 공연이었다.

첫 곡인 ‘Connection’ 무대를 마치고, 무대 위에 선 멤버들의 얼굴에는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이 번지고 있었다.

무대를 하면서도 설마 싶었지만, 눈을 찌르는 화려한 조명 때문에 완벽하게는 보이지 않던 객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몇십 초 동안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멤버들은 그 자리에 굳은 것처럼 서 있었다. 고막을 울리는 함성은 멤버들이 인사를 할 틈도 주지 않고 이어졌다.

“마, 인사해야지!”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정윤기가 리더답게 인사를 하자고 외쳤다.

정윤기의 말 한마디에도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다.

6만 9천여 명.

‘아니, 그냥 7만 명이라도 해도 좋을 만큼…….’

도욱은 고개를 돌려 관객석을 올려다보았다. 의연하려고 노력해져도 7만에 가까운 관중 앞에서 의연할 수 있는 가수는 없었다.

돔 공연도 해 본 케이케이였지만 7만 관중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압도당한다는 느낌이었다.

케이케이의 마지막 게릴라 공연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me앱에 동시 접속한 인원이 80만이었다. TV로 시청하고 있을 한국의 팬들도 엄청날 게 분명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이 케이케이의 손짓, 발짓 하나하나를 모두 주시하고 있었다.

정윤기의 말에 정신을 차린 멤버들이 구호에 맞춰 인사했다.

“케이케이입니다!”

“꺄아아악―!”

“케이케이!”

“사랑해!”

인사를 한 뒤에도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자신들을 보러 온 어마어마한 인파에 감동을 받은 멤버들이 먹먹해진 감정을 정리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마이크를 고쳐 쥔 도욱이 말했다.

“감사합니다.”

월드컵경기장 전면에 달린 거대한 모니터 화면에 도욱의 얼굴이 잡혔다. 방금 무대를 끝난 터라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도욱의 눈가가 촉촉했다.

“이렇게 많은 분들 앞에서 공연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어떠한 순간에도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데 막힘없던 도욱이 말을 잇지 못했다.

멤버들이 도욱 쪽을 보며 웃었다. 그러는 멤버들의 눈가도 촉촉했다. 이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기 때문이었다.

“도욱이 형, 행복하다는 거죠?”

막내인 석지훈이 도욱을 도왔다. 말을 잇지 못해 석지훈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우스워져 피식 웃으며 도욱이 끄덕였다.

“네. 행복합니다.”

행복하다는 도욱의 말에 그 장면을 보고 있던 모두가 행복해지는 기분이었다.

오늘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수많은 이들은 모두 도욱 덕분에 많은 즐거움을 누린 이들이었고, 그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들이었다.

“Are you guys ready for tonight?!”

멤버들이 한마디씩 하고 나자 흥분을 주체하지 못한 김원이 소리치자 팬들도 나서서 소리쳤다. 7만여 관객이 하나 되어 소리를 질렀다.

하늘 위로 어마어마한 함성이 퍼져 나갔다.

***

케이케이의 마지막 공연은 그야말로 대성공이었다.

TBN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다. ‘준비하라 1999’의 최고 시청률을 처음으로 넘어선 것이었다.

케이블 방송사로선 어마 무시한 기록이었다.

다른 방송사들이 앞다투어 힛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 시각 페이스노트에서는 해외의 팬들이 간절한 마음을 담아 해시태그를 단 채 케이케이를 향해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다.

이대형 팀장에게 V TV 담당자가 말했던 그대로였다.

엄청난 기세로 밀려드는 메시지를 보며 이대형 팀장은 생각했다.

‘정말로 승산이 있을 수도 있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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