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
#케이케이 (2)
그리고 그 시각. 방송국 TBN의 사장실에는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불려와 있었다.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과 TBN 음악 공개 방송 프로그램인 ‘뮤직카운터’의 PD가 차례로 앉아 있었고, 기타 음악 방송 프로그램들의 PD들도 있었다.
최근 me앱과 협업해 이루어지고 있는 케이케이의 게릴라 공연이 어마어마한 성과를 거두면서 방송사의 음악 방송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초긴장 상태였다.
원래도 국내 원탑 아이돌이었던 데다가 빌보드 신인상 수상까지 한 케이케이의 컴백은 올해 가요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였다.
그런 케이케이가 컴백을 하면서 음악 방송을 전혀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음악 방송 프로그램 담당자들은 아찔한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케이케이가 그러한 결정을 한 이면에는 오랜 기간 유착 관계를 형성해온 음악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들의 대형 기획사 편의 봐주기가 있었지만, 원래 사람은 자신의 티끌은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나무라는 법이었다.
빌보드 갔다 오더니 자기들 세상인 줄 아나 본데 방송 출연 없이 잘되나 보자는 식의 말들이 관계자들 사이에서 오갔다.
그러나 정말로 케이케이의 세상이었다.
방송 출연을 하지 않아 별다른 방송 점수가 없었음에도 케이케이는 컴백한 주간 음악 방송 프로그램의 1위의 성적을 얻었다.
너무나 독보적인 1위의 성적이었기 때문에 1위를 주지 않을 수 없었다.
화면에 케이케이 대신 음악 방송 MC들이 케이케이에게 축하 인사를 전하는 모습이 몇 번이나 방송에 나갔다.
거기에 첫 번째 공연이 거둔 성공은 그냥 두고만 볼 수준이 아니었다.
부랴부랴 출연하지 않으면 1위를 주지 않겠다고 하며 다음 주에는 다른 가수에게 1위를 줄 준비를 하는 강경한 방송사도 있었다.
여태까지 갑의 위치에만 서 있었던 방송사의 비뚤어진 자존심이었다. 물론 그런 방송사는 대형기획사들과 더 끈끈한 유착 관계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방송사에서는 음악 방송 프로그램 관계자들을 질책했다.
그들의 유착 관계가 방송사 윗선에도 이어져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실무자들만 죽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시청률이 떨어진 ‘뮤직카운터’ PD도 질책받을 것을 예상하고 온 자리라 이 자리가 가시방석 같았다.
“방송 얼마 남았습니까?”
TBN 사장이 비서를 향해 물었다.
“십 분 남았습니다.”
비서가 답하자 끄덕이며 사장이 말했다.
TBN 사장은 오늘 모인 이들과 함께 케이케이의 me앱에서 생중계될 케이케이의 두 번째 공연을 지켜볼 예정이었다.
“우리가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채널을 표방하고 있음에도 포털사이트인 프렌즈도 하는 기획을 못 했다는 건 정말로 크게 반성해야 합니다.”
사장의 말에 ‘뮤직카운터’ PD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로운 콘텐츠에 대해 제가 몇 번이나 말했습니까. 저거예요, 저거. 저게 바로 새로운 콘텐츠입니다. 새롭기만 합니까? 수익성을 보세요.”
TBN 사장이 잠시 말을 골랐다
사실 TBN은 나름대로 케이케이나 힛 엔터테인먼트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방송사였다. 물론 이전까지는 다른 방송사와 마찬가지로 아라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대형 기획사의 눈치를 봤었다. 케이블 방송사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힛 엔터테인먼트의 투자자이기도 한 태화 쪽으로부터 투자를 받게 되고, 케이케이가 성장해 나가면서 TBN은 전략적으로 힛 엔터테인먼트 쪽과의 관계 개선에도 힘썼다.
그러한 와중에 발생한 사태였다.
TBN 입장에서는 대형기획사와의 관행을 이어오던 다른 방송사와 묶인 게 억울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TBN과 힛 엔터는 박태형의 <댄싱댄싱> 출연 건으로 현재도 활발하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었으므로 아직 여지가 남아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때를 기회로 삼자는 게 TBN 사장의 생각이었다.
케이블 방송사이다 보니 대형기획사들로부터 지상파 음악 방송보다 못한 취급을 받아왔던 나름대로의 한을 풀 기회라는 계산이었다.
“이미 지난 일. 긴말은 않겠습니다. 오늘 생중계 같이 보면서 앞으로 우리 뮤직카운터나 기타 음악 방송 프로그램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들에 대해서도 생각해 봅시다.”
“네. 사장님.”
예능·음악 채널 본부장이 답하자 사장이 본부장 쪽을 보며 말했다.
“이번 공연 반응 보고 힛 엔터 쪽에 다시 접촉해 봐요.”
“네. 지금 여러 가지로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곧 케이케이의 사량도 공연이 생중계되었다.
통영 사량도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엄청난 인파와 생각지도 않은 그림이 연출되고 있었다. 신선하고, 어떤 점에서는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오늘 공연 반응 역시 최고일 거라는 것은 자명했다.
생중계를 시청하는 시청각실 안은 사뭇 긴장감이 돌았다.
***
밤하늘에 보이는 별처럼
We are all connected―
connected― connected― We are all―
머리에 얼굴이 가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세찬 바람이 불어왔지만, 케이케이 멤버들은 열과 성을 다해 무대를 꾸려 나갔다.
무대를 즐기는 객석의 열기도 식을 줄 몰랐다.
“어떡해! 으, 나 지금 꿈꾸고 있는 거냐. 나 좀 꼬집어 봐.”
“어? 꼬집으라고?”
“아악! 그냥 살짝 꼬집어야지!”
“야야, 도욱이. 도욱 오빠 센터!”
옆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어르신들에 비하면 열여덟이라는 인생은 너무 짧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영 소녀들은 지금 이 순간이 인생에 잊지 못할 기억이라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꺄아아악―!”
꼬집힌 볼이 발갛게 부어오르고 있는 것도 모른 채 도욱의 팬이었던 학생이 무대 앞으로 나온 도욱을 향해 소리 질렀다.
도욱의 파트 이후 간주가 시작될 때였다.
팟―!
잠잠해지려는가 싶던 바람이 다시 한번 불면서 음향기기에 이상이 생겼다. 고막을 울리던 사운드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어?”
“어!”
환호하고 있던 객석도 대형을 갖춰 다음 안무 동작을 하고 있던 멤버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떠나갈 듯 시끄러웠던 사량도에 찰나의 정적이 감돌았다.
생중계를 보고 있던 이들도 갑작스럽게 끊긴 음악에 당황해하며 방송 사고가 일어났음을 깨달았다.
중계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무대 자체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었다. 스태프들은 난리가 나 있었다. 연결된 컴퓨터에서는 계속해서 노래가 재생되고 있었는데 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으니 음향 담당이 빠르게 원인을 파악하려 스피커 쪽으로 달려갔다.
스피커를 확인할 동안 음악 재생을 잠시 멈춰 보라고 무선으로 이야기 하려던 음향 담당은 무대 위를 보고 더욱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노래가 끊겼으니 더는 안무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멤버들이 멍하니 다시 노래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멤버들은 무반주, 바람 소리만 들리는 상황에서 자신들만의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다음 안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마이크 소리도 나오지 않는 상태였고 심지어 간주였기 때문에 따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정확하게 가운데 선 도욱을 기점으로 여섯 명 멤버의 움직임이 같았다.
그대로 위에 간주만 덧입히면 될 듯했다.
화면을 보고 있는 이들 중에서는 자신의 핸드폰과 컴퓨터 스피커가 잘못된 것 아닌지 여러 번 확인한 이도 있었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놀랐던 객석도 어느덧 케이케이의 움직임에 맞춰 호응하고 있었다.
문제점을 확인한 음향 담당은 빠르게 스피커의 단자를 교체했다.
컴퓨터에서는 ‘Connection’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으므로 단자를 교체한 즉시 노래가 흘러나왔다.
간주가 끝나고 다시 석지훈의 파트가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혼자 있다고 생각될 때 뒤를 돌아봐!”
석지훈이 시원시원하게 라이브로 노래를 이었다.
무반주로 했던 안무였음에도 멤버들의 박자는 정확했다. 귀를 막고, 눈을 가려도 완벽한 무대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꺄아아악―”
“와!”
“대단······.”
“어린아들이 야무지구만, 야무져!”
무대를 보고 있었던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연 담당자들까지도 입을 벌릴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다.
객석 맨 뒤편에 서 케이케이를 지켜보고 있던 오백호 실장 정도만이 놀라지 않았다.
바쁘고, 시간이 없고······. 그러한 말들은 케이케이 멤버들에게는 그저 변명에 불과한 말들이었다.
미국 활동까지 하며 짧은 시간 준비한 앨범이었지만, 멤버들은 시간을 쪼개가면서까지 연습했다.
데뷔 때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는 연습량이었다. 거기에 노련함까지 붙었으니 그 시너지는 폭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완벽한 무대를 선보일 수 있는 건 멤버들이 흘린 땀 때문이었다.
두 곡을 이어 하고 케이케이가 무대에서 내려와 의상을 갈아입는 사이 초청 MC가 등장해 화려한 멘트로 객석을 사로잡았다.
본래에는 멤버들인 셋, 셋 팀을 이뤄 다른 팀이 옷을 갈아입는 사이 다른 팀이 멘트를 하는 식이었지만 오늘 공연에는 특별 MC가 있었다.
바로 국민 MC 강천호였다. 그는 공연 직전 도착해 이 시간을 준비했다.
그를 부르자고 제안한 건 석지훈이었다. 통영 공연의 연령층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때문에 구경 올 중장년층을 위한 깜짝 선물로 국민 MC인 강천호를 섭외한 것이다.
강천호는 ‘캠핑 48시간’으로 석지훈과 인연이 깊었다. 5분도 안 되는 MC 타임이었지만 강천호는 세계적인 그룹이 된 케이케이와 석지훈을 위해서 선뜻 통영까지 내려와 주었다.
물론 이번 주 ‘캠핑 48시간’ 촬영이 그 근처였던 것도 한몫했다.
“와아아아아!”
케이케이가 올라왔을 때는 다른 종류의 함성이 강천호를 향해 쏟아졌다.
“와, 함성 장난 아닌데? 우리보다 인기 있는 거 아이가.”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며 정윤기가 하는 말에 안형서도 그런 것 아니냐며 맞장구를 쳤다.
그때 멤버들 사이로 무대 연출 담당자가 다가와 말했다.
“사고······. 죄송합니다. 정비를 했으니까 이제 안 그럴 겁니다.”
담당자의 말에 도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바람이 많이 불어서······. 금방 복구됐으니까요.”
도욱의 말에 정윤기와 안형서도 끄덕였다. 그리곤 정윤기가 도욱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도욱이가 앞에서 정확하게 박자 맞춰줘서 사고 난 것 같지도 않다, 마.”
짧은 대화 후,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케이케이 멤버들은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
그렇게 통영 사량도에서의 색달랐던 공연도 끝이 났다.
‘바람도 막을 수 없는 케이케이’라는 새로운 타이틀이 따라 붙은 공연이었다. 편집된 영상은 마이튜브에서 엄청난 화제를 모으며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이제는 외국 언론에서까지 기사화해 연예면을 장식했다.
이후 케이케이의 공연은 대구, 부산, 목포, 전주, 청주, 강원도에 제주도까지 이어졌다. 그야말로 종횡무진이었다.
‘광개토케이 공연지도’가 인터넷에서 유머짤로 돌아다닐 정도였다. 케이케이가 공연한 곳은 관광청의 의도대로 관광지가 되기도 했다.
공연이 거듭될수록 기록이 세워졌다. 지난 전주 공연 당시 주말에 외국 시간과도 잘 맞았는지 동시 접속 인원이 200만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공연 내용은 말할 것도 없었다.
매일매일이 화제였다.
3일에 한 번꼴로 포털사이트 메인과 실시간 검색어를 장식하니 연예계에서는 ‘피할 날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자신들이 화제를 끌어 보려고 해도 금세 케이케이에게 묻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케이케이의 게릴라 공연에도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마지막 공연은 특별히 일주일 전 공지되었다. 그런 만큼 선착순 입장도 아닌 지정좌석제였고, 예매도 가능했다.
마지막 공연인 만큼 최고로 많은 인원을 수용하겠다는 뜻이었다.
동시에 더 많은 이들이 공연을 시청할 수 있게 할 만반의 준비가 갖춰진 상태였다.
점점 스케일이 커지고 있었다.
이대형 팬-마케팅 팀장은 잠시 미국 출장까지 다녀온 상황이었다. 세계적인 음악 채널 ‘V TV’와의 계약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