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케이케이 (1)
“으어어!”
“와아. 바람 장난 아니네.”
천막으로 만들어진 간이 대기실에 도착한 멤버들은 바깥에서 몰아치는 바람 소리에 몸을 떨었다. 같은 바람이어도 바다에서 곧바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 위력이 달랐다.
바로 눈만 돌리면 보이는 푸른 바다 위로 넘실대는 파도의 높이도 꽤 높았다.
바람이야 어찌 됐든 이미 공지는 나간 상태였고, 공연이 코앞이었다.
멤버들은 한 번씩 얇은 천을 뚫고 들어올 듯한 바람의 기세에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분주하게 움직이며 의상을 갈아입었다.
멘트를 하는 시간을 포함해 한 시간 동안 다섯 곡이나 되는 곡을 공연하다 보니 무대 의상도 한 벌이 아니라 두 벌이었다.
의상뿐 아니라 맞춰봐야 할 무대도 있었다. 오늘 공연에서는 지난 첫 공연과는 다른 노래도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도욱이 분주한 천막 안에서 나왔다.
밖은 무대 설치 및 체크가 한창이었다. 음향기기 세팅까지는 완료된 듯 보였고, 무대 위에 설치된 작은 조명들을 고정하기 위해 스태프들이 테이프와 노끈 등을 동원하고 있었다. 안쪽의 상황만큼이나 정신없어 보이는 광경이었다.
오백호 실장이 권우찬 대리, 무대 연출 총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세 사람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었다.
도욱을 발견한 오백호 실장이 도욱에게 말을 건넸다.
“도욱아. 어디 가.”
“화장실에 좀······. 돌아서 뒤쪽 공용 화장실 가야 한다고 스태프분이 그러시던데······.”
도욱의 답에 오백호 실장이 끄덕였다.
본래 공연을 하던 곳이 아닌 장소에 무대를 설치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열악한 환경이었다. 아직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공연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아직까지는 무대가 세워지는 것과 현수막에 쓰인 홍보 문구를 보고 무슨 일이 있는가 하며 구경 나온 어르신들이 전부였다.
관객 배치를 돕기 위해 서 있는 스태프들이 서 있는 것이 뻘쭘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어그······, 공연은 진행될 수 있는 건가요?”
도욱의 질문에 오백호 실장이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말했다.
“어? 뭐. 현지분들이 조금 지나서 밤 되면 오히려 바람이 잦아질 것 같다고들 하시네.”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그니까. 바람만 불지 날은 좋아서 다행이야. 뭐, 연출팀에서도 만반의 준비하고 왔다니까 너희는 무대만 신경 써.”
“네.”
도욱이 조금 마음을 놓으며 답했다.
“그나저나 아무리 사람 없어도 그렇지 왜 혼자 가. 혹시 모르니까 철민이랑 가.”
“아니, 괜찮은······.”
“야! 철민아!”
도욱이 말리기도 전에 오백호 실장이 구철민을 불렀다. 구철민을 부르는 오백호 실장의 목소리가 사량도를 울릴 수준이었다.
아무리 한반도의 끝이라고는 해도 공연장 근처였다. 큰일이야 날 거 없겠지만 도욱이 괜히 혼자 돌아다니다 신변에 작은 문제라도 생긴다면 요즘 같은 때에 소속 연예인 관리를 어떻게 했냐며 난리가 날 터였다.
간이대기실 입구 쪽에서 코디들과 잡담을 나누고 있던 구철민이 빠르게 오백호 실장의 손짓에 따라 움직였다.
“다른 애들도 사람들 몰리기 전에 갔다 오라고 해. 다 보는 데서 화장실 가고 싶지 않으면.”
“하하. 네.”
오백호 실장의 말에 도욱이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어서 바람이 잔잔해져야 할 텐데······.”
“아까보단 나아진 것 같지 않아?”
모두 고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도욱이 말하자 구철민이 답했다. 그런가 싶어 손을 들어 바람을 느껴 보고 있을 때였다.
“거···, 여! 여봐!”
무대에서 조금 떨어진 좁은 길목이었다. 허름한 공용화장실 앞에 허리가 전부 굽은 노인이 도욱과 구철민을 부르고 서 있었다. 해가 져 어두웠지만 하얗게 다 샌 머리와 깊게 팬 주름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무슨 일이세요?”
구철민이 조금 경계하면서도 물었다. 낯선 사람을 대할 때 나오는 아주 기본적인 경계 정도였다.
“여가······, 그 케케인지 케키인지 나오는 데 맞나?”
“예? 뭐라고요?”
“네! 맞아요, 어르신.”
건성으로 들은 탓에 알아듣지 못한 구철민 대신 도욱이 친절하게 답했다.
“근데 저쪽으로 더 가셔야 해요.”
도욱이 무대 쪽을 가리키자 노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두드리며 주절주절 넋두리를 했다. “하이고···, 손녀 딸래미가 하도 거기 보러 가야 한다고 난리를 부려 싸서 오긴 왔는데······. 뭔 사진을 찍어오라카노······. 내는 사진 찍는 법도 모른다 아이가. 우짜노.”
노인의 오른손에는 이제는 찾아보기도 힘든 구형 폴더폰을 손에 쥐어져 있었다. 객석에서 무대 사진을 찍어 봐야 찍히지도 않을 듯했다.
넋두리를 듣던 구철민이 노인을 보내려는 듯 대충 고갯짓으로 인사하며 대화를 끊으려 할 때였다.
“손녀분은 오시기 힘들대요?”
도욱이 물었다.
“어? 딸래미는 서울에 있는 학교 다닌다. 벌써 국민학생인데 학상이 공부는 안 하고 무슨 케키를 찍어오라고. 하이고, 다리야. 내 나이가 진작 팔습이 넘었는데······.”
짧은 질문에도 노인은 주저리를 늘어놓았다.
대충 들어 보니 알 것도 같았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어린 손녀가 케이케이의 팬인 모양이었다. 통영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에 통영 사는 할머니라도 가라고 재촉을 한 게 분명했다. 자신이 못 가니 자신이 아는 누구라도 갔으면 싶은 간절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어린 나이의 손녀가 간과한 부분이 있다면 노인이 가진 핸드폰으로는 사진을 찍느니 컴퓨터로 생중계를 보는 게 낫다는 것이었다.
마침 노인이 쥐고 있던 폴더폰의 벨이 우렁차게 울렸다.
잘됐다는 듯 구철민이 이제 그만 가자는 신호를 보냈지만, 도욱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거리를 지나던 이들 모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공연을 보고 즐기길 원하는 마음에 이곳 통영까지 내려온 것이었지만 집에서 쉬어야 할 노인이 애써 이곳까지 와 고생하길 바라는 마음은 아니었다.
“거 왔는데.”
-진짜? 진짜로 갔어? 할머니?
“맞나. 정으이 네가 가라 안 했나.”
최대 음량으로 해놓은 폴더폰에서는 손녀의 놀란 목소리가 그대로 흘러나왔다. 도욱의 예상대로 초등학교 저학년인 듯 무척이나 어린 목소리이기도 했다.
“어르신.”
도욱이 노인을 불렀다. 전화를 받고 있던 노인이 무슨 일이냐는 듯 놀란 눈으로 도욱을 쳐다 보았다.
이대로 노인을 보내면 노인은 케이케이의 공연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손녀를 위해 공연을 관람한 보람도 없이 얼굴도 제대로 찍히지 않는 사진만 얻게 될 것이고, 그럼 손녀도 무척이나 실망하게 될 터였다.
손녀의 실망은 곧 손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공연장에 온 노인의 실망이었다.
자신의 작은 행동이면 실망 대신 기쁨을 줄 수 있었다.
“여 잘상긴 학상이 잠깐 바꿔보라 하네.”
-응? 누구?
노인이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폴더폰을 도욱에게 넘겼다.
“안녕하세요. 정은 양.”
-아, 네! 안녕하세요! 그런데 누구세요?
해맑은 목소리에 도욱이 작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저 케이케이 강도욱인데요.”
-네?!······. 헐. 진짜요? 진짜 도욱 오빠예요?
“네. 할머니께서 여기 공연장 앞에서 저를 만났어요. 정은 양. 저희 공연 사진 찍어달라고 할머니한테 부탁하셨어요?”
-네! 네! 오빠 저 키링이에요! 카페에도 가입했어요!
“하하. 고마워요. 그런데 할머니 핸드폰이 너무 옛날 거라서 사진이 안 찍힐 것 같아요.”
-아···. 진짜요?
어린 학생은 금세 들떴다가 금세 실망이 고스란히 전해질 만큼 안타까운 목소리를 냈다.
“네. 제 핸드폰 셀카로 대신해도 될까요?”
-네에?!!!
“대신 할머님은 집에 가셔도 돼요? 다리도 아프시다는데······.”
-헐. 네! 네! 당연하죠! 오빠 진짜! 진짜 좋아해요!
까랑까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도욱의 미소가 짙어졌다.
전화를 다시 노인에게 넘기자 흥분된 목소리의 손녀가 할머니에게 고맙다, 사랑한다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 얼른 집에 들어가시라는 소리까지 나오고서 통화가 끝났다.
“딸래미가 기차 화통을 삶아 먹었나.”
영문을 알기 힘들다는 목소리로 노인이 중얼거렸다. 그럼에도 손녀의 기쁜 목소리와 사랑 고백에 뿌듯해졌는지 웃음기가 가득한 얼굴이었다.
도욱의 마음속에도 진한 뿌듯함이 퍼져 나갔다.
‘그래, 꼭 엄청난 일을 해내지 않더라도······. 스타가 됨으로서 이런 작은 기쁨들을 누군가의 삶에 선사할 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다······.’
도욱은 생각하며 전화를 끊은 노인의 폴더폰으로 여러 장의 셀카를 찍었다.
공용화장실 앞의 볼품없는 가로등이 조명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멋진 조명은 필요 없었다. 사진 속 도욱의 얼굴에서는 은은한 광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가자, 케이케이!”
다시금 구호를 외치고 무대 위로 올라선 케이케이 멤버들은 눈을 비볐다.
“대박.”
“와······.”
입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공지가 막 올라가던 시간의 무대 주변 풍경을 이미 봤기 때문에 더욱 놀랐다. 평화롭고 한적하기 그지없었던 무대 주변은 2천여 명이 넘는 팬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접근성이 좋지 않은 섬에 세 시간 만에 2천여 명의 관객. 어떻게 생각해도 놀라웠다.
예상 인원을 넉넉하게 잡아 천여 명 정도로 잡고 객석을 준비했던 공연담당자들이 공연 직전 몰리는 인파에 놀라서 허겁지겁 추가 객석 설치에 열을 올릴 만했다.
“꺄아아악!”
“케이케이!”
무대에 등장한 케이케이를 보며 팬들은 이번에도 거침없는 환호를 보냈다.
통영에 사는 이들은 물론이고, 거제도와 부산, 심지어는 여수에서까지 소식을 접하자마자 차편을 예매해 달려온 이들이 많았다.
거제와 부산에서 통영으로 오는 여섯 시 이후 차편은 이미 전석 매진이었다.
팬 커뮤니티에서는 개인 차량이 있는 팬들이 나서서 주변 팬들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삼삼오오 모여들다 보니 어느덧 이렇게나 많은 팬들이 모이게 된 것이었다.
현장 인원도 인원이었지만, 생중계를 보는 이들의 숫자는 더욱 기함할 만한 것이었다.
여건상 팬들이 많이 현장에 오지 못한 데다 지난 첫 공연이 입소문을 탄 것이 주요했다.
이미 서버를 증설해 놓은 me앱이었지만, 동시 접속 인원 80만이라는 숫자에는 기가 막히는 수준이었다.
세계의 시간이 모두 다른 것을 감안하면 더욱 어마어마한 기록이었다.
휴대폰으로 계속해서 올라가는 접속 인원을 확인하며 무대 아래의 오백호 실장과 권우찬 대리, 구철민 등 모든 관계자들이 고개를 저었다.
지금의 케이케이를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 같았다.
첫 공연과 달리 오늘 공연의 첫 곡은 ‘푸른 하늘’이었다. 상대적으로 연령대가 높아질 것을 감안한 곡 선택이었다.
케이케이가 ‘푸른 하늘’을 열창하기 시작하자 객석에선 한 목소리로 ‘푸른 하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라이브를 바람 소리가 잡음처럼 섞여 들었지만, 다른 야외공연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거기에 파도 소리가 간간이 깔리면서 오히려 어떤 운치가 생겨났다.
등산복을 입은 중장년층이나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은 노인들까지 어깨를 들썩거리며 좋아했다
“거 정신 사납긴 해도 볼만하구만!”
이미 점심부터 반주를 한 탓에 얼굴이 붉어진 장년 한 명이 외쳤다. 무대 근처 동네에 사는 주민이었다. 주변 주민들이 깔깔대며 끄덕였다.
‘전국민 노래자랑’이 5년 전에 한 번 왔다 가고는 이후에 행사라는 게 없던 조용한 곳이었다. 주민들은 모두 나와 시끌벅적한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원하는 그림이었다.
거기에 무대 아래에는 아까 전 도욱이 돌려보낸 어르신도 와 어설프지만 박수를 치며 웃고 있었다.
이왕 온 김에 공연을 보고 가겠다고 마음먹었던 것이다.
객석의 어르신을 확인한 도욱의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이어서 두 번째 곡인 ‘Connection’이었다.
전주와 함께 순조롭게 무대가 진행되던 그때, 바람이 세차게 불기 시작했다.
***
그리고 그 시각. 방송국 TBN의 사장실에는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불려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