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게릴라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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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상춘재 앞.
상춘재는 청와대 내부에 있는 한옥이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목재를 사용해 지은 한옥은 아담하면서도 멋스러워 한국의 미를 압축해 담아내고 있었다. 청와대 내부에서는 유일한 전통 가옥이었기 때문에 외빈 접객 시 꼭 한 번쯤은 들르는 코스이기도 했다.
오늘 상춘재에서 있을 행사도 외빈 접객이었다.
오늘의 외빈은 그 중요도가 남달랐다.
국가마다 제 나름대로의 외교적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인접국인 데다 엄청난 인구와 자원으로 세계에서 영향력 높은 중국은 경제, 군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국가 중 하나였다.
현재 한국에는 중국의 주석 장샤오핑이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 중이었는데 주석의 부인인 리위시도 함께였다.
리위시는 연극배우 출신으로 중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하나였다. 그 위치도 위치였지만, 리위시가 장샤오핑의 아내로서만이 아닌 한국으로 치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적극적으로 문화예술 산업에 참여했기 때문이었다.
더해 연극배우 출신인 만큼 아름다운 외모와 패션 센스로 많은 중국 여성들의 귀감이 되고 있었다.
오늘 그 리위시가 상춘재에 방문해 한국의 영부인과 함께 상춘재를 둘러보고, 오찬을 즐길 예정이었다.
더해서 한국 문화예술계 주요 인사들과 만나고 공연 또한 관람하기로 돼 있었다.
무형문화재로 등재되어 있는 김한구 씨의 서예 퍼포먼스와 국립예술극단의 전통 무용 공연이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공연은 하지 않지만 주요 문화예술인이자 한류 대표주자로서 케이케이도 초청받았다.
“이제 청와대도 와 보네.”
청와대 입구에서 상춘재로 마련된 차를 타고 올라가면서 멤버들도 생각했던 것이었다.
뉴스에서만 보던 청와대에 손님의 자격으로 오게 될 줄은 몰랐다.
“백악관도 함 가야지.”
안형서의 말에 정윤기가 장난처럼 말했다.
그러나 장난처럼 말하면서도 언젠가는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정윤기는 하고 있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할 수 있다.’는 말보다 ‘할 수 없다.’는 말이 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말 하지 말아주세요. 그러다 진짜 백악관도 가겠어요······.”
석지훈이 중얼거렸다. 백악관 초청이라면 당연히 엄청난 일이었지만, 청와대도 속이 울렁거리는데 백악관이라도 가게 되면 멀미약을 귀 뒤에 붙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멤버들이 김칫국 마시는 소리를 들으면서 도욱은 긴장을 풀라는 제스처로 석지훈의 어깨를 토닥였다.
얼어붙을 수밖에 없는 마음을 도욱도 이해했다. 도욱도 행동에 있어 평소보다 신중해야 할 것임을 머릿속에 되뇌고 있었다. 오늘 같은 날은 실수를 해서는 안 되는 날이었다.
그냥 행사였다면 실수가 있어도 몇몇 개의 악플이나 충고 등을 받고 넘어가겠지만, 중요한 외교 행사이니만큼 케이케이의 행동을 지켜보는 이들의 기준은 엄격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욕을 먹고 안 먹고의 문제를 떠나서도 국가적인 행사에서 폐를 끼칠 수는 없었다.
“공연 열심히 보고······. 밥 잘 먹으면······.”
사방이 카메라이니 한시도 공연에서 눈 떼지 말고, 나온 음식도 남김없이 먹으라는 말들을 오백호 실장이 차에서 내리기 전에도 몇 번이나 했었다. 박태형은 그 말들을 되뇌고 있었다.
도욱은 그런 박태형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도욱이가 한국의 프린스라고 해도 믿겠는데?!”
옆에서 걷고 있던 김원이 말했다.
미소를 띤 채 상춘재 건물 내부로 걸어 들어가는 도욱의 모습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기 때문이었다. 왕실의 자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만큼 기품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실제 왕실의 자손도 이렇게 기품이 넘쳤을까 싶은 의문이 들 정도였다.
단정한 차림새의 안내원이 도욱을 보고는 다가와 케이케이 멤버들을 자리로 안내했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공간 뒤, 가장 큰 테이블이 있었다. 리위시와 영부인, 그리고 부처 장관들이 앉을 자리였다.
양옆과 뒤쪽으로 여섯 개의 테이블이 더 있었고, 정부의 주요 인사들과 문화예술 산업을 주무르는 거물들이 앉을 자리였다. 그중 하나의 테이블이 케이케이를 위한 테이블이었다.
테이블들 뒤쪽 조금 떨어진 곳에 허가증을 받은 곳에 기자들이 있었다.
오늘 스케줄 자체가 한국과 중국 사이의 부드러운 관계를 암시하고,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오찬을 즐기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사진을 찍고 기사를 작성할 수 있었다.
행사의 내용이 내용인 만큼 대부분의 기자들은 정치부 기자가 아닌 연예, 문화부 기자들이었다. 기자들은 도욱이 내부에 발을 디디는 순간부터 카메라를 들어 미친 듯이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의 등장>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시간으로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올라갔다.
중국 기자들이 특히 많았는데 중국 기자들도 단번에 도욱을 알아보고는 한국 기자들보다 더 뜨겁게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서구권에서 온 기자들은 잠시 누군가 싶어 하는 눈치였지만, 초청 명단에 있던 케이케이를 기억해냈다. 빌보드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은 슈퍼스타의 얼굴을 직접 보게 되었다는 것에 신기한 반응들이었다.
기자들의 환영 속에서 케이케이 여섯 명은 자신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는 자리에 착석했다.
장관들을 비롯한 관계자들도 속속들이 도착했다.
직책을 떠나서 이 자리에 온 이들 중 케이케이 멤버들의 나이가 가장 어렸기 때문에 케이케이 멤버들은 인사들이 올 때마다 일어나 인사를 하는 등 예의 바른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수십의 경호원들과 함께 리위시와 영부인이 등장했다.
다시금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옥색 정장을 입은 영부인의 단아한 차림과 달리 리위시는 꽤 화려한 차림새였다. 붉은색 계열의 정장 바지에 금색 브로치까지 단 모습이었다. 딱 보기에도 패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기자 쪽을 향해 리위시가 손을 흔들었다. 리위시의 기분은 제법 좋아 보였다.
리위시와 영부인이 테이블을 돌며 주요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예정된 몇몇 테이블과만 인사를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리위시가 케이케이가 있는 테이블까지 다가왔다.
실제로 예정에 없던 인사 시간이었다.
영부인은 순간적으로 당황한 듯했지만 리위시의 성격이 워낙에 적극적이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고 함께 케이케이의 자리로 와서 상냥한 미소로 인사했다.
리위시가 <우주에서 온 연인>을 시청했다는 것은 이미 청와대 쪽에서도 조사한 바 있는 정보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자리에 케이케이를 초대하기도 한 것이었다.
그러나 리위시는 그냥 드라마를 시청한 수준이 아니라 드라마, 특히 도욱의 상당한 팬이었다.
“정말 만나보고 싶었어요!”
리위시가 중국말로 하자 옆에 있던 통역관이 서둘러 통역했다.
리위시의 밝은 표정에 영부인을 비롯한 한국 측 인사들도 케이케이를 부르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표정이 밝아졌다.
갑작스럽게 중국의 제1부인과 인사를 하게 된 케이케이 멤버들은 잔뜩 굳은 채였다. 자신들의 실수가 한국의 실수가 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리위시는 한국의 대중문화 산업이 중국으로 들어오는 데 반감을 가지고 있는 반한파는 아니었다.
한국의 선진 문화는 충분히 받아들이고 흡수해 중국이 더 나아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때문에 적극적으로 한국의 방송과 인력들이 중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을 더해왔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한국의 문화가 너무 무분별하게 중국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해 제재를 가하기도 했었다.
한국 문화 산업 시장은 어느덧 내수 시장뿐 아니라 해외 시장, 특히 중국과 일본 시장에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었다. 자본의 규모가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그런 만큼 순조로운 때에는 막대한 이익을 올렸지만, 중국 쪽에서 제재에 들어가면 크게 휘청였다.
그러한 중요 인물이었으니 멤버들이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이라면 도욱은 <우주에서 온 연인> 중국 프로모션 당시 국빈 대접을 받으며 중국 방송계의 거물과도 이미 인사를 나눠본 적 있었다.
그 위치는 다르지만, 어쨌든 그러한 경험들이 도욱에게는 리위시와 인사를 나누는 데에도 도움이 될 듯했다.
멤버들 또한 중국 활동 경험이 있었으므로 어느 정도 중국어는 가능했다. 멤버들이 고개 숙이며 중국어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영광입니다.”
도욱 또한 중국어로 답하자 리위시가 악수를 청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로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한국에는 이러한 보석과도 같은 인재가 많은 것 같네요.”
“중국에도 좋은 배우들이 많지 않습니까?”
리위시의 칭찬에 영부인이 뿌듯한 미소를 감추지 않으며 답했다.
“부인이 좋아할 만한 배우도 있습니까?”
리위시가 영부인에게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이었지만 영부인은 즉시 중국 배우의 이름을 두어 명 말했다. 도욱이나 멤버들도 들어본 적 있는 중국의 유명 여배우들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리위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들도 좋은 배우였지요. 하지만 도욱 씨처럼 내일을 이끌어 갈 이들은 아니지요.”
영부인이 말한 여배우들은 충분히 중국에서도 인기가 많은 배우들이었지만 모두 40대 중반을 넘긴 배우들이었다. 리위시는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부인으로서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부인이 침착하게 중국의 배우들에 대해 리위시에게 소개를 부탁하는 답변을 하려할 때, 도욱이 답했다.
“곽카이 같은 배우도 있지 않습니까.”
도욱의 말에 리위시가 눈을 빛냈다.
“곽카이 씨 말입니까?”
“네. 얼마 전에 한국에 중국의 드라마 ‘한월지연’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덕분에 주연 배우셨던 곽카이 씨가 한국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아요.”
‘한월지연’은 한나라 역사를 다룬 드라마로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정책과 궤를 함께하는 드라마였다. 리위시가 기분 좋게 웃었다.
“곽카이라면 그럴 만도 하죠. 제가 보아도 잘생겼습니다. 도욱 씨만큼요.”
“하하. 과찬이십니다.”
“나중에 꼭 저희 쪽 초청에도 응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리위시의 말에 도욱이 당연하다는 듯 인사했다.
리위시가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영부인이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도욱에게 눈짓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도욱 덕분에 분위기가 더 화기애애해진 것만은 확실했다.
***
중국 주석 내외의 방한 일정은 무사히 끝났다.
한국에서는 정치, 군사적으로는 물론이고 문화적 면에서도 많은 쾌거를 얻었다. 한국 쪽에서 내어준 것도 있었지만, 중국 쪽에서 흔쾌히 당분간 문화 산업의 문을 더욱 낮추고, 한국 문화가 더 많이 유입될 수 있게 문을 개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케이케이의 청와대에서의 모습은 또 한 번 국민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어디 내놓아도 빛이 날 듯한 멀끔한 외모의 청년들이 리위시와 대화하는 모습은 사진으로 남았고, 리위시가 케이케이의 팬임을 밝혔던 일은 기사화되었다.
중국이 상대적으로 강대국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한국이 앞서 있음을 느끼며 국민들이 자부심을 느끼기 충분했다.
청와대에서 돌아온 이후, 청와대 미디어팀에게 힛 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이대형 팀장은 요청 공문을 메일로 받았다.
“전 세계 각지에 나갈 대한민국 정부 홍보 영상에 케이케이 뮤직비디오 일부를 쓸 수 있겠냐고······. 물론 협의 끝에 수락했습니다.”
“와······.”
“약간 우리 한국 대표? 그런 느낌?”
김원이 입을 벌렸고, 안형서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아마 다음 달부터 뉴욕 타임스퀘어를 시작으로 세계 전역에 홍보가 될 거예요.”
도욱도 기분 좋게 웃었다.
새로운 앨범이 나오기 하루 전이었다. 오늘은 마지막 점검을 위해 케이케이 멤버들은 물론이고 힛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는 물론이고 전 사원이 모이는 자리였다.
이대형 팀장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회의실 벽면에 커다란 PPT 화면을 띄웠다.
“흠. 그럼 우선 오늘 자정에 공개될 뮤직비디오를 먼저 보여드리겠습니다. 이후에 내일부터 있을 게릴라전에 대해 설명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