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
소녀들 (1)
그러나 그러한 사실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시상식을 두 시간 정도 앞두고 호텔 룸에서 원래부터 함께 일하던 스타일리스트팀에게 메이크업을 받았다.
“아······. 시간이 화살 같다는 게 이런 건가······.”
메이크업을 마친 안형서가 호텔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답지 않게 세상 다 산 듯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형은 안 떨려요?”
“실감이 안 나. 아예 안 나.”
석지훈의 물음에 안형서가 답했다.
도욱은 거울 앞에서 타이를 만지작거리며 뒤편에서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리는 안형서를 보며 웃었다.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시상식이 있기 이전, 후보가 발표된 한 달여 전부터 케이케이는 미국 활동에 총력을 다했다.
<미쉘의 밤> 이후 쏟아지는 미국 현지 프로그램들의 섭외는 일일이 대응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나 남미, 유럽 쪽 프로그램들의 관심까지 있었다.
그러나 빌보드 뮤직 어워드 측의 특별무대 요청까지 들어오면서 케이케이는 무대를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일정이 되었다.
어워드 이후 더 많은 섭외가 예상되었으므로 케이케이는 일단 시상식 무대 준비에 힘을 쏟았다. 스케줄이 가능했던 몇 개의 프로그램 외에 요청이 들어온 프로그램들은 시상식 이후로 스케줄을 잡았다.
와중에 원래 한국이나 중국에서 예정되어 있던 광고와 프로그램들이 있었기 때문에 멤버들은 정말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하루하루 보내다 눈 떠 보니 시상식 당일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오늘 레이나도 나오던데······.”
박태형이 도욱에게 말했다. 도욱도 이미 확인한 터라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도 오늘 보게 될 유수의 팝스타 중 가장 기대하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레이나는 세계적인 팝스타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내한을 한 적조차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레이나와 한 무대에 서게 된다니 무척이나 영광이었다.
“레이나 보면 사인, 사인 받아도 되나?”
“마, 가오 상하게 뭔 소리가. 같은 스타로서 딱! 악수도 하고!”
안형서의 말에 정윤기가 허세 넘치는 말투로 받아쳤다.
“레이나가 우리 아냐고!”
안형서가 외치자 김원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두 유 노 케이케이?”
“마······.”
정윤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렇게 멤버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며 긴장감을 풀었다. 물론 그 정도로 풀어질 만한 긴장감은 아니었다.
“오늘 우리 진짜 상 받는 거 아닌가. 빌보드시상식이라니······. 이게 꿈도 아니고 내도 어이가 없다.”
이번 신인상 후보에는 댄수 가수인 Ariana와 힙합 장르의 TOT, 그리고 케이케이가 올라 있었다.
“받을 수도 있죠. 후보에 오른 가수 보니까 작년에 비해서는 그래도······. 승산이 있는 것 같았어요.”
정윤기의 말에 석지훈이 차분하게 답했다.
대다수의 전문가들도 그러한 분석을 내놓았다. 작년이었다면 아마 긍정적인 전망만을 내놓긴 힘들었을 것이다.
작년에는 보이밴드 ‘Four direction’이 신인상의 영예를 안았다.
Four direction은 데뷔와 동시에 미국 전역의 소녀 팬들을 사로잡은 어마어마한 보이밴드로 작년 한 해 독보적인 성적을 거뒀다.
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어마어마한 인기로 ‘BOY OR MAN’ 세계를 휩쓴 미국 보이밴드 이후 명맥이 끊기는 듯했던 미국 보이밴드 역사의 계승자로 손꼽힐 정도였다.
현재 그 위세는 더 대단해져 그룹 전체뿐 아니라 멤버 개개인의 앨범도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무리 없이 안착할 정도였다.
케이케이가 신인상을 받게 되면, Four direction만큼 세계적인 스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받는 셈이었다.
역대 수상자인 LIL, Justin Bob, Taylor Sweet, Lady NANA 등의 이름만 보아도 그 무게를 짐작할 수 있었다.
***
“Do you know K.K?”
그리고 시상식 레드카펫 현장에서는 김원이 장난처럼 말했던 그 질문이 실제로 진행자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레드카펫을 밟는 스타들, 그중에서도 케이케이가 이전에 무대를 보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언급한 적 있었던 스타들과 역으로 케이케이의 무대를 보고 싶다고 언급한 적 있는 스타들에 한해서 그러한 질문들이 던져졌다.
심지어는 레드카펫에서 사진을 찍던 스타들이 먼저 인터뷰 진행자에게 케이케이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백여 미터 정도 되는 레드카펫 가드라인 뒤로 수없이 많은 케이케이 팬들이 포진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하기 위해 한국에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날아온 팬들도 상당했다. 거기에 현지 팬들과 주변 도시, 주변 국가에 사는 팬들이 케이케이를 직접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몰린 것이다.
케이케이 팬들은 각종 응원도구를 이용해 자신들이 케이케이의 팬임을 피력했다. 이렇게 뜨거운 레드카펫 현장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었다.
Four direction들의 팬들도 열정적이었지만, 케이케이 팬들에게는 열정을 더해 어떠한 단합력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그 광경에 놀란 아티스트들이 먼저 케이케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선 것이다.
답 또한 단순히 알고 있다, 모른다 정도의 것이 아니었다. 케이케이를 알지 못하는 아티스트는 당연하게도 없었고, 안다고 해도 단순히 이름만 들어봤다는 수준의 것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이 케이케이의 노래를 들었거나 무대를 본 적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강렬한 에너지를 느꼈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에너지가 팬들에게도 전해진 것 같다고, 팬들까지 이렇게 에너지 넘칠 줄은 몰랐다는 말들을 남겼다.
마이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며 페이스노트에서 팔로우를 해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아티스트도 있었다.
또한 멤버인 도욱이 너무 잘생겼다면서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고 싶다는 말을 농담처럼 건넨 여성 아티스트도 있었다.
생중계를 보고 있던 한국의 팬들이 놀랄 만한 멘트였지만 그녀의 개방적인 옷차림만큼 개방적인 문화를 가진 미국에서는 놀랄 농담도 아니었다.
TOT은 심지어 같은 신인상 후보에 오른 가수였음에도 케이케이의 무대를 볼 수 있다니 너무 기대되고, 같은 후보에 올랐다는 게 영광이라는 말까지 남겼다.
탑 아티스트상 후보에 오른 것이 아니라 그저 신인상 후보에 올랐을 뿐이지만, 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가장 핫한 스타가 케이케이인 것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케이케이의 인기는 단순히 ‘인기 많은’이라는 수식어로 치부되는 것이 아니었다.
미국 현지에서도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가수가 현지의 팬들을 사로잡고,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것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렇게 점점 레드카펫의 분위기가 뜨거워질 무렵, 벤 한 대가 현장에 정차했다.
케이케이 팬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이 열리며 블랙 수트를 차려 입은 기다란 다리가 뻗어졌다.
도욱을 필두로 멤버들이 한 명씩 차에서 내리기 시작하자 레드카펫에 포진해 있던 팬들의 함성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꺄아아아아―!!!”
“도욱!!!”
“형ㅆ―!!!”
사랑한다는 고백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흔들리는 응원도구를 보며 케이케이 멤버들은 눈을 뗄 수 없었다.
펼쳐진 레드카펫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
도욱은 팬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한 걸음, 레드카펫을 밟아 나갈 때마다 지구 위를 걷는 느낌이 아니었다.
상기된 얼굴을 한 채 레드카펫을 걷는 멤버들의 얼굴 위로 기자와 파파라치들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멤버들은 양옆으로 손을 흔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이미 너무 많은 미래가 바뀌어서, 이제는 알고 있는 미래가 아님에도 도욱은 확신할 수 있었다.
올해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신인상, 그 영광의 수상자는 케이케이가 될 것이었다.
***
-뭐???????
-레알??
-대박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ㅅㅂ 한국 가수 빌보드;;;
-ㅠㅠㅠㅠㅠㅠㅠㅠ왜 내가 다 울컥하지
-국뽕 꿀꺽꿀꺽
-캬~~ 쩐다~~!!!
-ㅊㅋㅊㅋㅊ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미친
-케이케이 자랑스럽다!!!
-음악 교과서에 실릴 듯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축하합니다
.
.
케이케이의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생중계 되고 있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를 보며 채팅을 하고 있던 커뮤니티에서는 채팅창이 터져나갈 듯 수백 개의 글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다들 이루 말할 수 없는 느낌에 긴 감상은 쓰지도 못하고 짧은 축하와 날타가 넘쳐났다.
한국에서 자고 나란 한국인들로 만들어진 그룹, 그 그룹이 낸 한국어 노래, 그 노래로 저 자리에 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케이케이가 그것을 해냈다.
어쩔 줄 몰라 하며 감격에 젖어 있는 케이케이의 모습이 화면이 잡혔다.
너무 기쁜 나머지 무릎에 힘이 풀린 듯 안형서가 잠시 주저앉을 듯하다가 도욱이 팔목을 잡아 일으키는 모습도 잡혔다.
팬이 아닌 이들이 보기에도 어쩐지 코끝이 찡해지는 장면이었다.
“케이케이!”
“케이케이―!”
시상식장에 있는 팬들이 케이케이의 이름을 연호했다. 그 힘찬 연호 속에서 그저 화면 속에서만 보던 팝 아티스트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케이케이를 축하해 주고 있었다.
시상대 위로 올라서는 멤버들의 얼굴에 많은 표정이 스쳤다.
한국에서 신인상을 받을 때도 생각났다. 그때는 ‘데뷔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시절에 대한 단상들과 데뷔를 하기 위해 흘렸던 땀들이 케이케이의 멤버들을 울렸었다.
한국에서는 대상까지 받았었던 케이케이였다. 찰나에 느꼈던 이제 내려갈 일만 있는 건가 싶었던 불안과 허무함. 잠도 줄여가며 했던 연습들. 응원해주던 팬들. 꿈도 꿔 보지 않은 자리였기 때문에 너무 많은 것들이 뒤섞였다.
트로피를 받은 후, 떨리는 목소리로 리더인 정윤기가 한국어로 수상 소감을 말했다.
“어······. 감사···, 너무 감사하네요. 이곳에 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모두 케이케이를 사랑해주신 팬 여러분 덕분입니다. 그리고 이제 저희는 더 높은 곳을 보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상당한 포부가 느껴지는 수상 소감이었다. 거기에 당당히 소감을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에 다시 한번 한국의 팬들은 전율을 느꼈다.
이어서 김원이 짧게 소감을 말하고, 도욱 또한 영어로 소감을 전했다.
도욱은 마이크 앞에 서 객석을 향해 조용히 미소를 보냈다. 그 미소가 화면 가득히 잡히자 팬들이 그야말로 앓는 소리를 냈다.
다듬어지고 성숙해져 더욱 물이 오른 도욱의 외모는 세계인을 사로잡을 만한 것이었다.
서강준에 대한 복수심과 자신의 작은 꿈이 여기까지 와 있었다.
도욱은 감사의 말과 함께 미국인이 사랑하는 링컨 대통령의 명언을 인용했다.
“······I am a slow walker, but I never walk back.”
나는 느리게 가는 사람이지만, 절대 뒷걸음치지는 않는다.
도욱은 말하고 싶었다. 그때가 언제가 될지 몰라도 원하는 바를 위해 끝까지 걸어 나갈 것이라고.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도욱이 생각지도 못한 꿈같은 일들이 현실이 되어 있으리라 도욱은 생각했다.
작은 중소 기획사에서 시작해 빌보드 시상식에 오른 도욱이었다. 그러한 도욱이 말했기 때문에 도욱의 수상 소감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박혔다.
감동의 물결이 진해졌다.
동시에 커뮤니티에는 불안에 떠는 글이 다시금 올라왔다.
정윤기나 도욱의 수상 소감만 보아도 앞으로 더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해 미국 활동에 전력을 다할 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석지훈의 ‘캠핑 48시간’ 하차가 확정되었으며, 마지막 녹화까지 마쳤다는 기사가 보도된 상태였다.
[나 케이케이 팬인데 축제 분위기에 찬물 미안한데.. 한국 활동 안 할 건가 보네..]
-아.. 진짜 이제 한국 앨범 안 내는 거 아냐?
-우리 팝스타 좋아하는 거냐ㅠ
-내한 기다려야 하냐고..ㅠㅠ
-내한 하긴 함?
-한국에서 무대한 지 벌써 반년 된 듯..
-맨투맨으로 갈아타야 되나
-분란ㄴㄴ
-ㅠㅠㅠㅠㅠㅠ너무 기쁜데 너무 멀어진 것 같아서 슬픔..
-축하만 해도 넘치는 자리인데 꼭 이런 부정적인 글 써야 할까?
-아직 확실한 거 없잖아 한국 활동 안 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다음 앨범 예정 아직 없지?ㅠㅠㅠ
-ㅇㅇ 있던 것도 취소됨
-이러다 원맨처럼 되는 거 아냐?
-케이케이 팬이면 이런 글은 안 올릴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