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4
One in a Million (5)
“이런 씨······. 이사회에서 또 난리겠군······. 후······.”
“여보, 우리 준이 저렇게 내버려두면.”
“조용히 좀 해!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강준이 그놈 새끼 나가 뒤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 그래!”
서중원 본부장의 눈에 살기가 어려 있었다. 불안으로 인한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케이케이의 성공이 맨투맨이나 아라 엔터테인먼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언제나 1등의 위치에 있던 아라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들이었다. 1등을 하면 당연하게 생각됐고, 그 아래면······.
‘아무리 성공해도 밀려난 게 되는 거지. 피라미 새끼들한테.’
서중원 본부장은 이를 갈았다.
이사회라도 열면 작은 회사에서 시작한 케이케이도 저러한 성과를 거두는데 더 큰 자본과 인재풀을 가지고 있었던 아라 엔터의 경영진과 실무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했냐는 질책을 받을 게 뻔했다.
아라 엔터 내에 다른 대체 세력이 아직까진 없었고, 맨투맨도 그 나름대로는 다시 인기를 끌어올리고 있었으므로 대표가 되는 데 큰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그래도 짜증이 치솟는 건 별수 없었다.
대표가 되는 것만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 모양새도 중요했다.
“당신!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서중원 본부장의 언사에 충격을 받은 듯 아내의 목소리가 떨렸다.
아내의 목소리에 서중원 본부장이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이 집안의 왕은 서중원 본부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무시할 순 없었다.
아내는 수도권 지역 국회의원의 고명딸이었다. 능력 외에는 가진 것 없던 서중원 본부장에게 힘을 실어준 것이 아내의 집안이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야. 몇 번이나 말했잖아. 기다리라고. 강준이 그 새끼도 엄마한테 징징대지 말고 참으라고 그래. 어? 대표가 돼야 데려와서 다시 복귀를 시키든······.”
“복귀요?”
“그래. 강준이 그놈 그렇게 썩힐 수만은 없잖아.”
서중원 본부장의 말에 굳어 있던 아내의 표정이 한결 풀어졌다.
“나는 당신이 아예 준이 생각은 안 하는 줄 알고······. 근데 그 논란 때문에 시끄러웠는데 복귀까지 할 수 있을까요? 그냥 한국에만 돌아오게······.”
“그건 시간 지나면 다 해결 돼. 괜히 중간에 들어오면 시끄러워지기만 한다고.”
서중원 본부장의 아내가 끄덕였다.
케이케이의 기사가 링크된 것 이후에 서중원 본부장에게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더는 케이케이의 기사를 막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
“빌보드 뮤직 어워드···?”
정윤기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쉘, 노······, 농담하는 거 아니죠?”
“이거 몰래카메라인가요?”
<미쉘의 밤> 스튜디오 현장. 정지 화면이 아닌가 싶은 잠시간의 침묵 뒤로 멤버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도욱의 커다란 눈이 튀어나올 듯 커져 있었다. 정윤기는 계속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 마른세수를 했고, 몰래카메라냐고 묻는 안형서는 손을 떨고 있었다.
놀란 건 멤버들뿐만이 아니었다. 객석에 있던 팬들도 기쁨에 차 있었다. 객석에 있는 팬들이 더욱 세차게 멤버들의 이름이 쓰인 플래카드를 흔들었다.
통역을 통해 몰래카메라 아니냐는 질문을 전달받은 미쉘이 객석을 보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몰래카메라라면······. 저는 오늘 집에 가지 못할 수도 있겠는데요? 키링들이 저를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아요.”
와하하, 하고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모두 놀란 채 벙 찐 상황에서 멀뚱히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건 석지훈뿐이었다.
토크쇼 도중 목이 마를 게스트를 위해 앞에 놓인 주스를 마시고 있던 석지훈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신인상 후보가 되었다는 통역의 말을 놓쳤다.
대충 ‘빌보드 뮤직 어워드’라는 단어만 들은 상태여서 그곳이 목표냐고 물은 건가 생각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주변 반응이 심상치 않아 옆에 앉은 도욱에게 물어볼 타이밍을 노리고 있었다.
석지훈이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것을 눈치챈 도욱이 석지훈에게 말했다.
“우리가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신인상 후보에 올랐대.”
도욱의 말에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더 들이켜던 석지훈이 굳었다.
그리고 그대로 들이켜던 오렌지주스가 주르륵 입 아래로 흘러내렸다.
“꺄악―!”
그 모습을 목격한 팬들이 소리 질렀다. 석지훈 쪽을 잡고 있던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석지훈을 클로즈업했다.
스튜디오 안이 다시금 시끌벅적해졌다. 멤버들도 팬들의 이목이 집중된 석지훈을 보았고, 석지훈이 놀라 오렌지주스를 질질 흘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스태프가 헐레벌떡 다가와 통역을 통해 석지훈에게 티슈를 건넸다.
티슈로 입가와 턱을 닦으면서 석지훈은 민망함보다는 놀람과 기쁨에 젖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김원이 소리쳤고, 정윤기가 석지훈의 우스운 꼴을 보며 손가락질하며 웃었다.
그러나 낄낄대는 정윤기의 눈가는 벌건 상태였다. 웃으면서도 코끝이 찡해지는지 자꾸만 코를 찡긋거렸다.
‘상을 받을 수 있을지까진 모르지만······. 후보만으로도 이미 한국 최초다.’
도욱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눌렀다.
어찌 보면 엉망이었지만, 그만큼 케이케이 멤버들이 예상 못한 일에 놀라고 기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쉘의 입가에 훈훈한 미소가 감돌았다.
“정말 순수한 청년들이네요. 이런 매력을 다들 알아본 거로군요. 저도 팬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 것도요. 오늘은 기쁜 일이 두 개나 있네요.”
도욱의 답에 미쉘이 웃었다.
“자, 그럼 이제 본격적인 토크를 시작해볼까요?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가 됐는데······.”
미쉘을 향해 진행 보조가 사인을 보냈다.
“아, 오늘 원래는 케이케이와 토크는 10분 정도만 진행하기로 됐었는데요. 시간을 늘이기로 했답니다. 지금 인터넷 반응이 터질 것 같대요. 스트리밍 사이트는 마비가 됐다는군요. 놀랍네요!”
미쉘의 말에 객석이 환호했다.
케이케이 멤버들도 진심을 다해 웃었다. 의자가 아니라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미쉘은 예정되었던 대로 ‘Continue’라는 곡에 대한 설명, 케이케이라는 그룹에 대한 이야기, 음악 색깔, 직접 작사와 작곡까지 하는 이야기 등을 물어왔다.
주로 도욱과 김원이 매끄러운 영어로 그것들에 대해 답했다.
다른 멤버들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토크에 집중했다. 그렇게 <미쉘의 밤> 생방송 촬영이 끝나가고 있었다.
***
[케이케이, 한국 최초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신인상 후보에 올라...]
[美도 삼켰다! 미쉘의 밤 올해 가장 높은 시청률, 케이케이 인기 어디까지?]
[생방송 도중 방송 사고? 기쁨 주체 못한 케이케이!]
[현지 반응 최고조! 한국이 낳은 월드스타 케이케이 활약상 모음]
[케이케이 출연한 <미쉘의 밤>은 어떤 프로? 미국 최고...]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신인상 수상 가능성은?]
[빌보드 차트 순위 역주행 중! 신인상, 가능성 있다!]
[마이튜브 기록 또 깨졌다! 고공행진 케이케이, 케이케이의 인기는 ‘Continue’]
[화끈한 무대에 반했다! 미 일간지들 케이케이 보도..“전설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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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케이 멤버들이 미국 숙소에 돌아왔을 때, 한국에서는 이미 기사가 쏟아지고 있었다. 미국은 늦은 밤이었지만, 한국은 낮이었기 때문에 기사는 더욱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샴페인이라도 따자는 이야기가 나왔지만, 수상을 하게 되면 축하파티를 하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대신 멤버들은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는 걸 우선으로 하기로 했다.
어차피 엔돌핀이 너무 돌아서 잠이 쉽게 올 것 같지도 않았다.
때문에 멤버들은 첫 미국 생방송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낸 후, 긴장과 피로에 절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두 호텔의 컨퍼런스 룸으로 모였다.
본래 케이케이의 활동 계획은 오케이의 앨범과 이어서 도욱의 솔로 앨범을 내는 일정이었지만 방향에 수정이 필요할 듯싶었다.
오늘 1차적으로 이야기를 나눠 보고, 한국에 돌아가 심준 제작팀장과도 일정을 조율할 생각이었다.
멤버들은 이대형 팀장과 오백호 실장이 준비를 끝마치고 오길 기다리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는 물론이고 기사들이 모두 케이케이의 이름으로 도배되어 있었으니 휴대폰을 놓기 쉽지 않았다.
기사를 확인하는 멤버들의 표정이 밝았다.
물론 밝지만은 않은 멤버도 있었다. 석지훈이었다.
“으악, 이렇게까지 많이 흘렸단 말이에요?”
석지훈의 오렌지주스 영상은 벌써 마이튜브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자랑하고 있었다. 동영상을 확인한 석지훈이 머리를 쥐어뜯는 시늉을 하며 책상에 엎어졌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 도욱에게 말했다.
“형, 갑자기 그런 소식을 알려주시면 어떡해요.”
돌이킬 수 없으니 아무에게나라도 덮어씌우자는 식이었다.
“야, 우리도 다 갑자기 들었거든?”
도욱은 어색하게 미소 지었고, 정윤기가 어이없다는 듯 되받아쳤다.
안형서가 낄낄대며 말했다.
“역시 예능멤버래 지훈아! 월드와이드 예능 멤버가 된 걸 축하한다!”
“오륀지 보이, 라는 새로운 닉네임이 생겼네~! 오륀지 보이~!”
김원이 흥얼거리며 말했다. 안형서가 합창하듯 ‘오륀지 보이’ 하고 외쳤다. 귀가 울릴 정도로 반복되는 ‘오륀지 보이’에 석지훈은 다시 좌절한 듯 엎드렸다.
“아······.”
박태형이 그런 석지훈의 등을 토닥였다. 하지만 박태형조차 이미 ‘움짤’로 만들어진 영상 속 석지훈을 보며 웃음을 참을 수 없는 게 사실이었다.
“······근데 진짜 팬들도 많이 기쁜가 봐요.”
팬카페에 들어가 오랜만에 글 작성을 하고 있던 도욱이 말했다. 김원이 ‘Of course.’ 하고 답했다. <미쉘의 밤>을 통해 소식을 접한 건 멤버들뿐만이 아닌 생방송을 보고 있던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는 팬들의 응원메시지를 보고 있자니 도욱의 마음도 무척이나 뿌듯했다.
그때 문을 열고 이대형 팀장과 오백호 실장이 들어왔다.
“다시 한번 축하드려요.”
이대형 팀장이 축하 인사를 하자 오백호 실장이 말했다.
“아직 축하받기는 이르죠. 상 타고 제대로 축하받아야지. 안 그러냐?”
살아있는 당근과 채찍이 따로 없었다. 멤버들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미국에서의 활동은 <미쉘의 밤> 출연 섭외가 들어왔을 때 이대형 팀장이 내심 생각해두고 있었던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빌보드 뮤직 어워드 후보에까지 올랐으니 박차를 가해야 할 때라는 확신이 이대형 팀장에게는 있었다.
이대형 팀장은 케이케이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더는 가능성만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그래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미국에서의 팬층이 정말로 상당해요. 괜히 섭외 요청이 들어왔던 게 아니죠.”
이대형 팀장의 설명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미국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려면 일본에서 나카모토사에게 외주 형태의 계약을 맺었듯이 미국 현지와도 계약을 해야 할 테지만······. 사실 이미 얘기가 오가는 곳이 있어서 어렵지 않을 것 같고요. 그 부분은.”
도욱은 이대형 팀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어떻게든 잡아두어야 할 인재였다. 이대형 팀장이 도욱에게 긍정적인 미래를 보았듯, 도욱 역시 이대형 팀장이 더욱 큰사람이 될 거라 확신했다.
“어워드에서 상을 받게 되든 아니든, 지금 시류를 탄 건 확실하고. 미국 활동을 하려면 지금인 것 같거든요.”
물로 목을 한 번 축이고는 이대형 팀장이 말을 이었다.
“그러려면 오케이 유닛 앨범이나, 도욱 씨 솔로 앨범은 미뤄져야 하지 않나 싶은데······.”
“마, 저는 괜찮습니다. 우선순위가 있는 거니까.”
정윤기가 답했다.
사실 가장 미루기 힘든 게 오케이의 유닛 앨범이었다. 일정 내에 앨범을 내기 위해 고생했던 김원과 정윤기였다. 그런데 정윤기가 흔쾌히 답하자 이대형 팀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저도요. 미국이라니······. 믿지기 않지만 지금은 최선을 다해야죠. 여기에.”
김원도 덧붙였다. 조금 생각하던 도욱이 물었다.
“중국 프로모션 일정에는 문제없겠죠?”
“이미 잡힌 것들이 있으니 문제없게 해야죠.”
<우주에서 온 연인> 때문에 잡힌 것들이었다. 미국 활동 때문에 중국 팬들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도욱에게 밀려드는 섭외 문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지만, 도욱 또한 케이케이의 활동에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케이케이는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도욱의 마음속에는 개인의 인기를 떠나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는 강한 의지만이 불타고 있었다.
이대형 팀장은 멤버들의 뜻은 잘 알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회사에 돌아가 더 회의를 거쳐야 될 듯싶다는 말로 이야기를 정리했다.
컨퍼런스 룸을 나서며 이대형 팀장이 도욱에게 말했다.
“예상을 하기는 했지만, 진짜로 이렇게 되니 신기하네요······.”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매일매일이 새롭고, 신기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팀장님.”
“저도요. 이미 정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고 보니 갈 길이 머네요.”
이대형 팀장의 말에 도욱이 미소 지었다.
***
그리고 빌보드 뮤직 어워드 시상식 당일.
시상식 참여를 앞두고 케이케이 멤버들은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더욱이 시상 여부와는 상관 없이 케이케이는 빌보드 뮤직 어워드의 특별무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특별무대에 선다는 것은 가장 핫한 스타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렇게 모두가 들뜬 그때, 한국 내 커뮤니티에는 우려의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