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
One in a Million (4)
Con― Con―Continue!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
<미쉘의 밤> 스튜디오 무대에는 이미 케이케이의 ‘Continue’가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울려 퍼지고 있었다.
오늘 무대를 위해 특별히 Coco에서 제공한 새틴 소재의 수트를 입은 멤버들이 수백, 수천 번 연습한 ‘Continue’의 안무를 단 한 번의 흔들림 없이 춰 나갔다.
사실 활동 이후 오랜만에 서는 무대였다. 그 무대가 <미쉘의 밤> 무대가 될지는 몰랐지만, 어느 곳의 어떤 무대든 멤버들은 자신 있었다.
도욱은 커다랗게 팔을 내뻗었다. 옆에 선 김원이 땀을 흘리며 자신의 파트를 부르기 위해 마이크를 쥐는 모습이 보였다.
어제도, 그제도 이 무대에 섰던 사람들 같은 움직임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무대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고, 첫 미국 방송 진출 무대라고도 생각하기 힘들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멤버들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났다.
다양한 피부색과 머리색의 소녀들이 케이케이 멤버들의 이름을 쓴 플래카드와 키링 응원도구를 흔들며 열광했다.
멤버들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담아내려는 눈동자의 색까지도 모두 달랐다. 하지만 그들이 외치는 이름은 모두 같았다.
“아아아아악―!”
“케! 이! 케! 이!”
“꺄아아아악!”
“I LOVE YOU―!!!”
모두 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로 된 후렴구의 가사는 입을 모아 따라 불렀다.
“계속해서!”
“전―! 진―!”
엄청난 떼창이었다.
“We are still young, forever young―!”
조금 어눌하긴 해도 한국과 다름없는 떼창이었는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김원의 영어 랩까지 어렵지 않게 모두 따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랩을 하며 김원은 애드리브로 소리를 질렀다. 긴장감은 사라진 지 오래였고, 흥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해외 콘서트와는 또 다른 종류의 흥분감이었다.
뉴욕에서도 K-POP 관련 콘서트를 해 본 적 있었다. 그때도 물론 많은 미국의 팬들이 한국의 가수들에게 열광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미국 대중이라기보단 K-POP 문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에 가까웠다.
마니아층을 모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미쉘의 밤>에 출연했다는 것은 주류 시장으로 진출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해외에서 유학을 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 김원이었다.
김원도 유학 생활을 하며 마냥 편하고, 행복했던 것만은 아니었다. 다양한 문화권의 사람들이 섞여 있는 곳이라고는 해도 정도의 차이일 뿐 인종 차별은 존재했다.
특히 중학생 시절엔 눈을 찢는 모양을 하거나 원숭이 흉내를 내는 백인 학생들이 많았다.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과 높은 학업 성적 등으로 친구도 많았고, 무시를 당하는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그랬다.
아무리 오래 살았어도 이방인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이방인인 김원을 향해 야유를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김원을 향해 환호하며, 한 번이라도 더 김원의 눈빛을 받기 위해 아우성이었다.
그것에 김원은 묘한 짜릿함을 느꼈다.
“나는 언제까지나 달릴게―”
안형서가 고음으로 치고 올라가는 부분이 되자 분위기도 고조되었다.
그다음은 바로 수십 명의 댄서들이 함께하는 댄스 브레이크 구간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수십 명의 댄서가 올라오지 않았다. 원안대로 하기에는 무대가 너무 협소했다. 대신 댄스 브레이크 구간의 안무를 수정했다.
정중앙에 박태형이 섰고 멤버들이 삼각 대형으로 늘어섰다.
멤버들은 원안의 파워풀한 안무를 췄고, 박태형은 멤버들이라는 부대의 앞에 선 수장과 같았다.
박태형의 안무는 새로운 것이었다. 멤버들과 다른 안무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원래부터 하나의 안무였던 것처럼 합이 들어맞았다. 강렬하면서도 전체를 아우르는 춤이었다.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춤이었다.
박태형이 나는 듯이 뛰어오르자 모여 있던 멤버들이 흩어졌다.
“Holy shit!”
그 광경에 객설에서는 욕설과 같은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무대 옆쪽, 토크 공간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무대를 보고 있던 미쉘도 마찬가지였다.
가사의 내용도 알 수 없는 한국어를 따라 부르는 소녀 팬들을 보며 지켜보던 미쉘도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태껏 수많은 스타들을 초대했고 만나 왔던 미쉘이었다. 그중에는 물론 미국의 스타뿐 아니라 화제를 모으는 다른 나라의 스타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보는 미국인들의 반응은 대체로 호기심이었다. 이런 열광적인 반응은 보기 힘든 것이었다. 심지어는 미국의 팝스타가 나왔을 때도 이렇게 뜨거웠나 싶을 정도였다.
동시에 미쉘은 왜 저 수많은 미국의 소녀들이 케이케이라는 한국의 보이밴드에게 열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리허설 때부터 생각했지만, 확실히 본무대에 들어가니 상상 이상이었다.
새로웠고, 무엇보다도 잘했다.
미쉘은 음악전문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팝을 즐겨듣는 편이었다. 최근 미국에서 발매된 어떤 팝 노래에도 뒤지지 않을 트렌디함이 케이케이의 노래에는 있었다.
거기에 미국의 보이밴드들이 보여주는 에너지와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저렇게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라이브를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이미 박수를 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박태형을 선두로 한 군무에서는 미쉘의 입이 벌어졌다.
사전 조사를 통해 케이케이의 풀네임이 King’s Key라는 것을 알았다. 그야말로 왕이 쥐고 있는 열쇠와 같았다.
어디로든 통하는 문과 같은 무대였다. 그리고 문을 열면 황홀함을 비롯한 수천, 수만 개의 감각들이 쏟아져 나올 듯했다.
넋을 놓고 있는 미쉘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다.
미쉘이 돌아보자 그곳에는 오랫동안 함께해 온 진행 보조가 헤드셋을 귀에 낀 채 메모지를 들고 있었다.
“미쉘, 무대 감상을 방해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갑자기 들어온 소식이 있어서요. 이 소식을 토크쇼 도중 미쉘이 전해줘야 할 것 같아요.”
“무슨 일이에요?”
미쉘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지금 막 빌보드 뮤직 어워즈 부문별 후보자가 발표됐어요. 케이케이가 신인상 후보에 노미네이트되었다고 해요.”
“세상에······. 저 친구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건가요?”
“네. 지금 발표된 거라······. 꿈에도 모를 거라고 저 친구들의 담당자가 그러던데요. 아무렇지 않게 인사하고, 대본대로 가다가 이름 소개 후에 소식을 전달해 주면 될 것 같아요.”
미쉘이 호쾌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상당히 놀랄 게 분명했고, 좋은 서프라이즈 방송거리였다.
케이케이로서도, <미쉘의 밤> 제작진으로서도 호재가 아닐 수 없었다.
때마침 케이케이의 오래도록 회자될 만한 멋진 무대가 끝이 났다.
박수와 휘파람 소리 속에서 멤버들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언제 해도 ‘Continue’는 한 번 무대를 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지는 곡이었다.
<미쉘의 밤>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카메라는 옆 스튜디오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미쉘은 준비된 포즈로 앉아 늘 해오던 대로 멘트를 이어 나갔다.
“정말로 멋진 무대였습니다. 정말······. 왜 이 많은 소녀들이 열광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네요.”
물론 <미쉘의 밤>에도 기본적인 뼈대라고 할 수 있는 대본은 있었지만, 미쉘은 대본에 의존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곤 했다. 그러한 미쉘의 진솔한 방식이 오랜 시간 <미쉘의 밤>이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미쉘이 진심 어린 멘트를 하는 동안 케이케이 멤버들은 빠르게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메이크업을 손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의 손은 바람보다도 빨랐다.
준비가 다 된 것을 확인한 미쉘이 다시금 케이케이를 소개했다.
“그럼 이제 이 자리로 케이케이를 불러보죠. 도대체 어떻게, 얼마나 연습하면 이런 멋진 무대를 할 수 있는지 저도 빨리 물어보고 싶네요. 도욱이 정말 외계인인지도요!”
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동시에 케이케이 멤버들이 스튜디오 안으로 입장했다.
“반가워요!”
인사하는 미쉘과 멤버들이 차례로 인사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게스트석에 일렬로 나란히 앉았다. 더해서 <미쉘의 밤> 제작진 쪽에서 데리고 온 통역사도 함께였다.
“그럼 소개부터 먼저 하죠. 몰라서는 안 되는 보이밴드지만, 당신들을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미쉘이 말에 김원부터 소개를 시작했다. 김원이 유창한 영어로 인사하자, 생방송인 데다 영어로 말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던 멤버들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차례로 멤버들이 간단하게 인사하고는 자신의 이름을 소개했다.
박태형이 ‘아······, 아이 엠 태형······.’ 하고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채 정직한 발음으로 말하자 미쉘이 웃으며 받아쳤다.
“무대 위에서와는 달리 아주 수줍은 모습이네요. 혼자서 춤을 추는 부분이 무척 인상 깊었어요.”
통역이 전달해준 미쉘의 말에 얼어 있던 박태형도 웃으며 끄덕였다.
“강도욱입니다. 이 자리에 오게 돼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여러분을 만나게 된 것도요.”
마지막으로 도욱이 인사하며 카메라를 향해 인사했다.
자연스러운 모습에 미쉘도 답했다.
“아, 이 사람이 그 사람이죠. 아니 사람이 아니라······. 외계인······. 정말입니까?”
미쉘이 장난기 어린 말투로 물었다. 도욱이 곧바로 답했다.
“어떤 것 같으세요?”
여유 넘치는 도욱의 답에 미쉘이 웃었다.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력이 아닌 것만은 확실한네요.”
미쉘의 칭찬에 도욱이 감사하다고 답했다. 미쉘은 이어서 설명했다.
“모르실 수도 있어 설명하자면 도욱은 연기도 하고 있어요. 유명한 배우이기도 한 거죠. 예술영화에 출연해 무려 칸에 초청된 적도 있고, 최근 도욱이 찍은 드라마는 그야말로 신드롬을 일으켰죠. 드라마 속에서 외계인이었어요. 초능력을 쓰는 장면이 멋있어서 따라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친절한 설명과 함께 미쉘이 조금 뜸을 들이며 말을 이었다.
“음······. 그러면 여기서 준비한 선물을 공개해야겠는데요.”
원래대로라면 방금 무대를 마친 ‘Continue’라는 곡을 소개할 차례였다. 미쉘의 말이 통역되자 멤버들 모두 예상치 못한 이야기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선물이요?”
김원이 묻자 미쉘이 답했다.
“아, 저희가 준비한 선물은 사실 아니에요. 굳이 따지자면 여기 있는 케이케이의 팬들이 준비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미쉘의 말에 멤버들은 궁금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도욱조차도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신들이 무대를 하고 있을 때 도착한 소식인데요. 흐음······.”
“미쉘, 어서 말해주세요!”
성격이 급한 편인 김원이 애가 닳아 보채자 그 모습이 또 한 번 웃음을 자아냈다.
“빌보드 뮤직 어워즈 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하네요!”
미쉘의 말에 도욱과 김원의 표정이 모두 굳었다.
통역을 통해 뒤늦게 이야기를 전해 들은 멤버들 역시 아무런 반응도 하지 못한 채였다. 미쉘이 능숙하게 멘트를 이었다.
“어, 방송 사고인가요? 지금 정지화면 아닙니다. 채널 돌리지 말아주세요!”
***
한남동 서중원 본부장의 집.
업무를 마치고 들어온 서중원 본부장을 맞이한 아내는 오늘도 서중원 본부장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아들인 서강준이 유배를 가듯 해외로 떠난 지가 벌써 꽤 되었다.
그동안 서중원 본부장은 바쁜 일정 탓에 서강준을 보러간 적이 없었다. 그나마 서중원의 아내가 서강준을 보러 다녀왔었는데, 일주일 전 서강준을 보러 다녀오더니 내내 저런 상태였다.
서강준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더욱 망가져 가고 있었다. 매일 술로 파티를 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려한 연예인 생활을 하다 하루아침에 아무런 관심도 받지 못하는 곳에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당장 한국에 다시 데리고 오자는 아내의 말을 서중원 본부장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다 때가 있는 거라고······.”
“그런 때 기다리다가 애 인생 다 망치겠어요!”
“자기가 말아먹은 걸 나보고 어쩌라고. 좀 기다려 보라니까!”
점점 언성이 높아지던 그때 서중원 본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한 서중원 본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비서에게서 도착한 메시지에는 기사가 링크되어 있었다.
[케이케이, 한국 최초 빌보드 뮤직 어워즈 신인상 후보 노미네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