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
One in a Million (3)
도욱의 손에는 휴대폰이 들려 있었다. 박태형은 도욱의 손에 들린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휴대폰 화면 안에는 마이튜브 계정이 띄워져 있었고, 아이디 ‘dancing21’라는 계정에는 총 세 개의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동영상은 각각 2주 전, 1주 전, 3일 전에 올라온 것이었다.
얼마 안 된 동영상임에도 불구하고 조회수가 1만여 건을 넘기며 팔로워도 6000여 명 정도가 되었다.
물론 연예인이나 이름이 알려진 이들의 계정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이 추이대로라면 손쉽게 몇 달 안에 십만 팔로워가 될 듯싶었다.
기간이나 영상의 수는 물론이고 영상의 질을 생각하면 더욱 대단한 것이었다.
영상은 휴대폰으로 촬영된 것으로 최고 화질로 보아도 640px밖에 되지 않았다.
인적 없는 주차장을 배경으로 한 흐릿한 화면 안에는 남자는 흰색 무지 맨투맨에 회색 추리닝을 입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다.
검은색 캡을 눈 아래로 눌러 쓰고 그 위로도 후드를 한 번 더 뒤집어 쓴, 마스크까지 한 탓에 도무지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었다.
[Dance practice #1 - Jackson3, Thrill (연습)]
2주 전에 올라온 첫 번째 영상의 제목이었다.
재생 버튼을 누르자 젊은 남자가 현란하게 발을 움직이며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원래 있는 안무를 커버한 것이 아닌 창작 안무였다. 상당한 내공을 느낄 수 있는 안무였다.
짧았지만 완벽한 구성이었다. 춤의 유연함과 힘을 동시에 맛볼 수 있었다.
영상 밑으로는 상당한 수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대박 고수가 나타났네ㄷㄷ
-최근 본 댄스 영상 중에 제일 고퀄이다
-Who is that asian boy? wonderful!
-영상 더 올려주세요!
-어디 크루 출신이예요? 창작 안무 맞죠??? 쩐다 진짜
-싸롸있네!!! 근데 배경 주차장ㅋㅋ 카메라로 찍어서 제대로 올려주시면 더 좋을 듯여
-얼굴 보여 주세용^^ 얼굴도 훈남일 느낌^^***
-fantastic! i've never seen before like that!
-댄싱킹 커뮤니티로 퍼갑니다~!!
-싱킹에서 보고 왓어욧 다른 영상들도 쩌네
-지금 싱킹 댓글 백 개 넘어가고 인기 영상 됐는데.. 아시는지ㅋㅋ
-스타왕 출연 섭외 들어가면 꼭 나와주길ㅎㅎㅎㅎ 얼굴 보고 싶음ㅎㅎ
-레알 이 정도 실력이면 스타왕 가야 됨ㅋ
-아니 그런 촌스러운 프로를 왜 나가ㅋㅋㅋㅋ
-21님! 커버댄스는 안 하시나요? 케이케이 안무 한 번만.. 뭔가 태형오빠 같은 느낌이 있어서 보고 싶어요!
-이거는 그냥 아마추어 느낌 아닌데?
-프로 스멜
춤과 관련된 커뮤니티에 영상이 퍼지고 있는 상황이었고, 아마추어일 리 없다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박태형 본인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지만, 박태형과 느낌이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비슷한 게 아니었다.
영상 속 남자는 박태형이었다.
동영상을 업로드한 기간도 박태형이 울진에 내려가 있는 동안의 기간과도 겹쳤다.
도욱이 이 영상을 발견한 것은 얼마 전이었다. 박태형이 휴대폰 연락은 받지 않고, 당장 찾아갈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한 마음에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보던 때였다.
페이스노트를 주로 이용하는 다른 멤버들과 달리 박태형은 자주 마이튜브에 들어가 영상을 보던 것이 기억이 났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박태형이 개인적으로 자주 쓰는 아이디를 찾아보았다. 이전에 박태형이 결제해 놓은 사이트의 아이디를 공유한 적이 있어 알게 된 아이디였다.
정말로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아이디 ‘dancing21’의 계정이 존재했고, 심지어 그 계정에 동영상까지 올라와 있었다.
아이디를 모른 채 영상부터 봤다고 하더라도 박태형임을 알 수 있었으리란 확신이 들었다.
수년간 함께 연습해 오며 보았던 박태형의 움직임이었다.
‘연락도 받지 않으면서 혼자 춤을 연습하고 동영상을 올린다라······.’
박태형의 마음이 도욱에게 와 닿았다.
화면을 확인한 박태형이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론 박태형이 생각했던 것보다 동영상의 인기가 많긴 했지만, 그렇다고 멤버인 도욱이 찾아낼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 네가 가진 능력을······. 그렇기 때문에 올린 거 아냐?”
“그건······.”
박태형은 케이케이 내에서 존재감도 무엇도 없는 듯한 자신을 탓하기만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나름대로 고민을 해결할 방향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해답은 역시 춤이란 것을, 박태형 스스로도 알았다.
때문에 춤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박태형은 생각했고, 일단은 창작 안무를 인터넷에 올려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었다.
케이케이의 멤버가 아닌 무명의 인물로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실력이라면, 스스로도 더 자신감을 가지고 무언가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차츰 그렇게 박태형이 자신감을 회복하던 때였다.
“박태형. 너는 충분히 네 몫을 하고 있었어.”
“도욱아······.”
“더 많은 걸 할 수 있었는데 그걸 사람들이 몰랐던 것뿐이야.”
도욱의 말에 박태형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너는 더 잘할 수 있어.”
겨울의 시린 바람도 뜨거워지는 박태형의 눈가를 식히지 못했다.
사실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너도 더 할 수 있다.’는 말.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했다. 박태형도 도욱처럼, 멤버들처럼 발전하고 싶었다.
도욱은 박태형을 다독였다.
사람의 성향은 다양했다. 누구나 다 도욱이나 다른 멤버들처럼 능동적으로 자신이 할 일을 찾아내고,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발견해 주어야 그 재능을 꽃피울 수 있는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도욱은 ‘김보명’이던 시절의 자신을 떠올렸다. 처음 연습생이던 박태형을 보았을 때 도욱은 박태형이 김보명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는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시점, 바보 같은 고민을 한다고 박태형을 몰아세울 수 있었지만 도욱은 아니었다.
자신감을 잃고, 자존감도 상당히 떨어졌을 것이다. 형제와 같은 멤버들이지만, 비교 대상이기도 한 이들이 주변에 항상 있다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박태형은 좌절했지만, 발견해 주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발견하려,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려고 발버둥치고 있었다. 박태형이 올린 동영상들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우리를 걱정하게 한 건 여전히 화나지만.”
“미안해······. 너한테도······, 형들한테도······. 그러려고 한 건 아닌데······.”
“지훈이한테는 안 미안한가 봐?”
“아······. 지훈이도!”
박태형이 실수했다는 듯 덧붙이자 도욱이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리고 도욱은 주머니에 곱게 접어두었던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이게······.”
“너한테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박태형은 접힌 종이를 펼쳤다. 펼치니 제법 커다란 크기의 종이는 포스터였다.
《댄싱댄싱! 시즌1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댄싱댄싱···?”
박태형은 포스터 내용을 읽어 내려갔다.
<댄싱댄싱>는 본래 미국의 인기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아메리칸 싱어>와 더불어 굉장한 화제와 인기를 불러 모은 프로그램으로 <아메리칸 싱어>가 가창 경연대회라면 <댄싱댄싱>는 춤 경연대회였다.
<댄싱댄싱>의 포맷은 장르 불문, 경력 불문의 댄서들이 나와 미션을 소화해 나가는 것이었다. 두 개의 팀으로 나뉘어 경합을 벌이며 심사위원 점수와 온라인, 생방송 투표로 참가자를 탈락시키는 방식이었다.
워낙 인기가 많았던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댄싱댄싱>의 포맷을 사와 한국에서도 프로그램으로 런칭하게 된 것이었다.
<아메리칸 싱어>의 포맷을 따 런칭했던 프로그램이 초대박을 내며 허건과 같은 인기 스타를 배출한 일을 생각하면 <댄싱댄싱> 역시 어느 정도 성공은 보장받은 셈이었다.
“참가자가 아니라 심사위원 자격이야.”
“시······, 심사위원?”
박태형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댄싱댄싱>의 심사위원은 심사 외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팀 대결 시 지도의 역할도 하고 있었다. 안무 구성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끼쳤다. 심사위원의 역량에 따라 출연자의 순위가 결정될 때도 있었다.
“그런 걸 내가······.”
“참가자로 나가면 너무 1등할 게 뻔하잖아.”
도욱의 말에 박태형은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지만, 도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연습생 때부터 이미 춤에 관해서는 재능이 넘치는 박태형이었다.
거기에 데뷔 후 부단한 연습으로 이미 박태형의 실력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것이었다.
박태형은 케이케이라는 이름 아래 자신이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돌이고 팀이라는 벽 때문에 오히려 박태형의 실력은 평가절하가 된 부분이 있었다.
<댄싱댄싱>의 심사위원이 된다면, 대중들에게 가려져 있던 박태형의 뛰어난 실력은 물론이고 팬들조차 잘 알지 못했던 안무 창작 능력까지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었다.
도욱은 박태형의 표정을 살폈다.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이 꼭 박태형에게 맞을 거라고 확신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심사위원을?”
“응.”
“할 수 있을까?”
박태형도 도전해 보고 싶은 게 분명했다. 파도가 바위에 부딪히며 내는 철썩 소리가 무척이나 힘찼다.
도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오기 전에 이대형 팀장님께 물어봤는데 네가 나간다고만 하면 프로그램 쪽에서는 좋아서 춤이라도 출 거라고 하시더라.”
박태형에게 개인적인 섭외가 없었던 건 박태형이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현재 프로그램들이 대체로 말주변이 좋아야 하는 프로그램들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개인을 알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었다.
“너만 결정하면 돼.”
도욱의 말에 박태형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은 이미 박태형의 결정을 알 듯했다.
“일단은 미국 방송부터 준비해야지.”
“아, 어! 응!”
박태형이 결연했던 표정을 바꾸며 빠르게 대답했다.
“어서 올라가자. 다들 기다리겠다.”
***
미국 NVC 방송국.
케이케이가 초대받은 TV쇼는 다름 아닌 <미쉘의 밤>이었다.
미쉘은 NVC 드라마 출신 여배우로 여러 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뛰어난 배우였지만, 현재는 배우보다 토크쇼 진행자로 더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여인이었다.
미쉘이 진행하는 <미쉘의 밤>은 미국 토크쇼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며 세계적인 스타들이 출연하는 쇼였다.
<미쉘의 밤>에 초대받는 이들은 이름만 들어도 누구든 알 만한 스타이거나, 세계적으로 큰 화제가 되고 있는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케이케이도 이제 <미쉘의 밤> 게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었다.
마이튜브에서 ‘Continue’ 뮤직비디오의 조회수는 이미 한국 내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운 상태였다. 세계 마이튜브 동영상 중에서도 10위권 내에 진입하면서 케이케이의 위엄은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빌보드 차트에도 계속해서 진입 상태였다.
도욱이 <우주에서 온 연인>을 통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대륙인들을 완전히 사로잡으면서 케이케이의 팬수는 어마어마한 수가 되어 있었다.
미국 현지에서의 인기 또한 <미쉘의 밤>에 초대된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쇼 호스트인 미쉘이 케이케이를 소개했다.
“지금 한국과 일본, 중국, 아시아를 넘어 중동과 이제는 미국까지······. 와우, 함성이 벌써부터 어마어마하네요. 제가 녹화를 진행한 이래로 이렇게 스튜디오가 더웠던 적이 있었다 싶을 정도예요.”
스튜디오 현장에는 수많은 케이케이의 미국 팬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케이케이를 직접 마주한다는 사실에 미쉘의 한마디, 한마디에 소리를 질러댔다.
“오늘 게스트는 현재 전세계에서 가장 인기 많은 보이밴드인데요. 이 소년들 중에는 외계인도 있다고 하는데요? 아마 초능력으로 이 소녀들을 사로잡은 것이 아닌지······.”
농담조로 말하던 미쉘이 웃으며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다는 듯 케이케이를 호명했다.
“소개합니다. 케이케이!”
곧장 함성이 쏟아졌다.
스튜디오를 가득 채운 함성에 케이케이 멤버들은 이미 리허설을 마치고 있었음에도 긴장감에 손을 꼭 쥐었다.
토크로 넘어가기 전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Continue’ 전주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무대 앞쪽, 스태프들과 섞여 케이케이의 무대를 기다리고 있던 이대형 팀장은 방금 전 <미쉘의 밤> 스태프가 전해 온 소식에 놀라 굳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