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79화 (179/225)

# 179

태산이 높다 하되 (4)

중국에 진출하는 한류 스타가 많아지고, 중국 기업의 광고 모델이 되는 경우도 많아졌을 때 문제가 됐던 사건이 떠오른 탓이었다.

‘지금 광고를 되는 대로 찍는 건 서중원 본부장을 꺾고······. 이후 내 꿈을 이루기 위한 자본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중요한 걸 놓쳐서는 안 되겠지.’

도욱은 침착하게 생각했다.

돈이라는 수단을 벌기 위해서 목적을 잃거나 지켜오던 가치관을 잃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우주에서 온 연인>이 대박을 치면서 멤버들과 같은 최측근을 제외한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까지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10,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었던 이전에 비하면 이제는 정말로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길거리만 지나가도 구름떼와 같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방송 스태프들도 예전부터 도욱을 잘 대해주긴 했지만, 도욱의 어린 나이 때문에 ‘대접을 해준다.’는 느낌까지는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었다. 모두 도욱을 최고로 대우해 주었고, 어떻게든 도욱에게 잘 보이려고 난리였다.

도욱이 아무리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려고 해도 주변에서 도욱을 위로 올리지 못해 안달이었다.

그런 환경 속에서 매일 드라마 촬영과 광고 촬영, 인터뷰 등을 하다 보니 도욱도 행동을 하는 데 있어 평소보다 들뜬 감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었을지도······.’

도욱은 차분히 메시지를 다시 작성했다.

[감사합니다 팀장님! 다만 중국 제품의 경우에는 기업 연혁이나 제품 원산지 등을 잘 살펴 봐 주세요. 한국에서 민감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ㅎㅎ 부탁드리겠습니다.]

메시지를 보내고 도욱은 대기실 문 밖을 나섰다.

돌아가는 길 곧바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도욱은 당연하게도 이대형 팀장의 메시지일 거라 생각하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그러나 메시지는 정윤기에게서 온 것이었다.

[바쁘지?]

당연한 걸 물어서 미안하다는 듯한 말투였다. 멤버들끼리만 쓰는 단체방이 있었고, 매니저들이 포함된 단체방도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메시지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메시지는 정윤기 개인에게서 온 것이었다.

도욱은 의아한 마음으로 곧장 답장을 작성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형?]

[아니 얼굴 본 지 오래된 것 같아서ㅋ]

[어제까지 지방에서 촬영이 있었어요 앨범 준비는 잘돼 가시죠?]

[당연하지ㅋ 숙소엔 언제 들어와?]

[오늘 촬영 끝나면 새벽이나..]

[그럼 또 못 보겠네ㅋ]

[네 진짜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죠?]

[일은 무슨ㅋ 없어 걱정ㄴㄴ 건강 챙겨가면서 일해라]

[고마워요 형ㅎㅎ]

[울 어무이가 너한테 사인받아오라고 난리다ㅋ 너 사인할 거 산더미야ㅋㅋ]

사인을 부탁하려고 보낸 메시지였던 듯했다. 도욱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

새벽 다섯 시, 숙소에 도착해 쓰러지듯 잠이 든 도욱은 네 시간 만에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정오부터는 다시 촬영이 있었고, 메이크업부터 준비를 하려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행인지 불행인지 정오부터 있을 촬영 스케줄은 취소됐다.

계속해서 드라마 촬영과 밀려드는 인터뷰 일정까지 어떻게든 소화하던 왕희진이 감기 몸살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도욱의 단독 촬영분은 촬영이 끝난 상태였고, 오늘 촬영은 왕희진과의 촬영이었다.

비몽사몽 와중에 촬영이 취소됐다는 남다우의 연락을 받고, 도욱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

당장 오늘 쉬는 것은 좋았지만, 방송까지 밀리는 것은 아니었다. 오늘 찍지 못한 촬영분을 찍으려면 다른 날 더 고생해야 할 게 뻔했다.

아무튼 도욱은 오랜만에 여덟 시간이라는 평균 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다시 푹 자고 일어난 도욱은 대충 옷매무시를 정리하고, 힛 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 들렀다. 시간이 난 김에 이대형 팀장과 광고 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어멋! 오셨어요?”

팬-마케팅팀 사무실로 들어가자 업무를 보고 있던 남효진이 얼굴을 붉히며 인사해 왔다. 도욱은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팀장님 만나러 오신 거예요?”

“네. 팀장님 지금 계시죠?”

“네, 아. 안 그래도 도 대리님이 찾으시던데······.”

도라희 대리에게서 따로 온 연락은 없었기 때문에 도욱이 영문 모른다는 듯한 얼굴을 하자 남효진이 잠시만요, 하고는 도라희 대리에게 연락을 넣었다.

마침 외부에 나갔던 도라희 대리가 들어오며 도욱을 발견했다.

“도욱 씨!”

“대리님, 오랜만이에요.”

“얼굴 보기 힘드네요! 드라마로 보고 있긴 하지만.”

“하하. 찾으셨다고······.”

도라희 대리가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 안쪽으로 도욱을 안내했다.

사무실 안쪽 비품을 쌓아두는 곳으로 가자 그곳에는 도욱의 앞으로 도착한 선물들이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사무실로 도착하는 팬들의 선물들은 오백호 실장을 통해 숙소로 보내지기 마련이었는데, 개인 선물이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오백호 실장조차 고개를 저었을 정도였다.

숙소로 곧바로 다 옮기는 건 무리인 것 같다는 판단하에 사무실에 쌓아만 두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 이게 백호 형이 말한······.”

도욱은 입을 벌린 채 산처럼 쌓인 선물들을 보았다.

“드라마 팬들까지 생기면서 선물 양이, 말도 못 해요. 일주일에 한 번씩 오 실장님이 옮긴다고는 하셨는데······. 일단은 도욱 씨도 확인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네. 감사합니다.”

도욱은 끄덕이며 선물들을 하나씩 확인했다. 드라마에 나온 장면들을 캡처해서 만든 포토북도 있었고, 캔버스에 직접 도욱의 모습을 그린 것도 있었다. 건강식품부터 옷, 액세서리, 신발은 물론이고 게임기기, 구하기 힘든 옛 가수들의 CD, 기계식 키보드, 믹싱 기계까지······. 품목도 다양했다.

심지어 도욱이 쓰는 노트북 회사의 최신형 노트북은 세 대나 들어와 있는 상태였다. 휴대폰도 같은 품목이 다섯 대가 있었다.

팬들의 마음을 알기에 받은 선물은 도욱 자신이 쓰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에게 넘기는 법은 없었던 도욱이었다. 그러나 같은 선물이 너무 많아지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도욱도 난감했다.

“어······. 일단 편지들은 부피도 작고 하니까 우선적으로 보내주시면 좋겠는데······.”

도욱의 말에 도라희 대리가 끄덕였다.

편지부터 챙기는 도욱의 모습에 옆에 서 있던 남효진이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 채 입꼬리를 올렸다.

‘역시 강도욱! 꺄아―!’

입 밖으로 지르지는 못하지만 속으로는 벌써 소리를 지르고 있는 남효진이었다.

“지금은 진짜 예전이랑 비교가 불가한 것 같아요. 중국 팬들이 진짜 대단들 하더라고요.”

도라희 대리가 입이 안 다물어진다는 듯 감탄하듯 말했다. 옆에 있던 남효진도 얼른 덧붙였다.

“팬들이 모금해서 중국에 도욱 씨 이름 딴 숲이 생긴다던데 들으셨어요?”

“그것까진 아직······.”

도욱도 처음 듣는 소식이었다. 자신의 인기에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였다.

“효진 씨가 모니터링 진짜 열심히 하나 보네.”

도라희 대리의 칭찬에 남효진이 기분 좋게 웃었다. 업무적으로 말하자면 모니터링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하던 ‘덕질’을 돈 받고 하고 있는 셈이었다.

두 직원들과 짧은 대화를 마치고 도욱은 이대형 팀장의 팀장실로 들어왔다. 팀장실에 있던 이대형 팀장이 도욱을 반겼다.

그사이 남효진은 직접 도욱에게 부탁한 녹차를 가져다주었다.

“아, 도욱 씨. 간만에 쉬는 날인데 사무실로 나오게 해서 미안해요.”

이대형 팀장이 자리에 앉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아닙니다. 제 일인데요.”

“그 광고 건······. 도욱 씨 메시지를 받고 원래 하던 것보다 더 꼼꼼하게 검토했는데요. 제품이나.”

“네. 문제되는 게 있었습니까?”

“글쎄요. 문제라면 문제인데······. 다른 건 별 이상 없었고요. 千歲山 건강주스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네요.”

“어떤 부분이······.”

이대형 팀장이 가지고 있던 페이퍼를 도욱 쪽으로 내밀었다. 페이퍼에는 千歲山 건강주스에 대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千歲山 쪽에서 제공하는 주스의 뛰어난 맛과 효능은 물론이고 千歲山에 대한 현지 여론까지도 정리되어 있었다.

그것만 보아서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오히려 음료 업계에서는 1, 2위를 다투는 탄탄한 기업이며 이미지도 무척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여기 제조원 보시면요······.”

“아······.”

“그리고 여기서 千歲山에서 판매하는 생수 중에는 아예 ‘장백산’이라는 이름을 가진 생수가 있거든요.”

도욱은 끄덕였다.

중국의 제품이니 중국 쪽에서야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표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과연 그것이 한국에서도 당연한 일로 여겨질지는 의문이었다. 중국 상품이고, 중국 현지에서 송출될 광고를 찍는 것이지만 도욱은 한국인이었다.

“이런 부분까지 신경을 쓸까 싶긴 한데······.”

이대형 팀장이 말끝을 흐렸다. 애초에 이런 것까지 확인하는 경우는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도욱에게 이야기를 꺼낼 만한 일인지조차 확실하지 않았다. 다만 경우의 수를 최대한 많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도욱을 알았기 때문에 이대형 팀장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도욱은 수많은 연예인들이 말도 안 되는 곳에서 이미지를 실추하고 무너지는 모습을 봐왔다. 모든 요인을 차단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데까진 하자는 게 도욱의 생각이었다.

높이 올라 있을수록,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을수록 더 조심해야 했다.

“흐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이 건은 거절하죠. 어차피 한국에서 음료 광고 하고 있기도 하고요.”

도욱의 빠른 결정에 이대형 팀장이 조금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이미 도욱에겐 광고의 단가도 전달한 상태였다.

“근데 거절하기엔 사실 단가가, 보셨겠지만······.”

중국 쪽 광고는 단가가 한국과는 차원이 달랐다. 국내에서도 모델비 5위 안에 드는 도욱이었지만, 중국에서는 최소 5억에서 15억 원 정도의 모델비가 책정되고 있었다.

千歲山에서 제시한 모델료는 10억이었다. 이틀 촬영, 6개월 모델에 10억이었다. ‘혹시’ 하는 걱정 때문에 쉽게 거절할 수 있는 액수가 아니었다.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또 다른 광고도 들어오지 않겠어요?”

도욱의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대답이었다. 이대형 팀장은 자신이 다 안타까웠지만, 이미지라는 것은 돈과는 바꿀 수 없는 것임을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더군다나 도욱은 이제 시작이었다.

도욱의 말대로 오늘도 새로운 광고 제의가 들어온 바 있었다.

“아, 그러면 들른 김에······.”

도욱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이대형 팀장의 말에 집중했다.

***

이대형 팀장과의 미팅을 마치고 숙소로 다시 돌아온 도욱은 오랜만에 숙소에서 멤버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대형 팀장에게 들은 소식을 멤버들에게 전할 생각을 하니 일할 땐 묵묵하게 조용하기로 소문난 도욱조차 입이 근질거릴 정도였다.

거실에는 이미 멤버들이 박태형을 제외하고 모두 모여 있었다.

현관 중문을 열자마자 멤버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이내 도욱인 것을 확인하고는 도욱의 이름을 다급하게 외쳤다.

“도욱아!”

“도욱이 왔나!”

득달같은 반응에 도욱이 얼떨떨한 채 답했다.

“어···, 다들 무슨······. 저도 할 말 있는데······.”

“도욱아. 오늘 쉰다고 했지. 와서 앉아 봐봐. 요 며칠 우리가 너한테는 말을 못 했는데······.”

정윤기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욱은 안 좋은 예감에 눈썹을 찌푸렸다.

“일단 네 할 말 해봐라.”

도욱은 어서 정윤기가 말하는 것을 듣고 싶었다. 주저하는 정윤기를 보며 자신의 말이라도 빠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 진짜 기쁜 소식인데······.”

“그래?”

김원이 찌푸리지도 웃지도 못하는 이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저희가 미국 TV쇼에 나갈지도 모른다고······.”

“뭐?”

멤버들의 눈이 모두 커다랗게 떠졌다. 활동기도 아닌 때에 다들 생각지도 못한 소식이었던 것이다. 도욱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현재는 촬영일자 논의 중이며 도욱의 드라마 촬영이 끝나는 대로 스케줄이 잡힐 것이라고 이대형 팀장이 도욱에게 귀띔해준 소식이었다.

빌보드 차트 진입 이후 8주 정도 케이케이의 노래가 차트에 있었다. 케이케이의 세계적인 인기가 괄목할 만한 것임을 파악한 방송사 쪽에서 먼저 제안이 왔다고 했다.

다들 놀라움을 주체하지 못하고 입으로 손을 틀어막는가 하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도 했다. 진짜 케이케이의 노래로 ‘미국 진출’이 시작되는 셈이었다.

그런데 잠시간 기뻐하던 멤버들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도욱이 정윤기를 재촉했다.

“형. 무슨 일이신데 그러세요.”

“그게······. 너 요즘 태형이랑 연락해 봤나.”

정윤기의 안색이 무척이나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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