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78화 (178/225)

# 178

태산이 높다 하되 (3)

수정한 계약서를 받은 콘텐츠사업본부 부장 박만덕은 꼼꼼하게 계약서를 확인했다. 그 후에는 중국어로 된 계약서를 확인했다. 중국어로 된 계약서는 박만덕 부장이 확인한다고 해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확실하지?”

“넵.”

최종 확인자였던 법무팀 담당자가 침을 한 번 삼킨 후 답했다.

박만덕 부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갑작스러운 일 진행으로 며칠 동안 야근을 하느라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는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내일 아침 일찍 사장님이랑 제작사랑 중국 쪽이랑 도장 찍기로 했어요. 요 며칠 고생 많았고! 이번 계약은 초대박이니까! 성과급 내려올 거야. 내가 사장님한테도 잘 말할 테니까······. 이제 퇴근들 하자구!”

박만덕 부장의 말에 좀비와 같던 직원들의 표정에 그나마 생기가 돌았다. 직원들은 하나둘 일어나 겉옷을 챙겨 입었다. 성과급도 성과급이었지만 퇴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당장은 더 기쁜 듯도 했다.

박만덕 부장은 서류철에 계약서를 정리하고는 자신 역시 의자에 걸쳐 놓은 외투를 집어 들었다. 야식으로 불고기 백반을 너무 많이 먹은 탓인지 배가 어제보다 불룩하게 더 튀어나온 듯했지만 괜찮았다.

내일은 그야말로 SVS 방송사로서도, 박만덕 부장 개인의 커리어로서도 ‘초대박’을 치는 날이었다.

<우주에서 온 연인>은 제작 이전에는 방송국 내에서 우려가 많았던 작품이었다.

오영지 작가는 글을 잘 쓰기는 하지만 주로 주부층을 대상으로 한 가족 드라마에서 성적이 좋았던 작가였다. 그런 작가가 로맨스코미디를 잘 쓸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거기에 그냥 로맨스코미디도 아닌 SF 로맨스코미디였다.

그러나 왕희진이라는 초특급 스타의 복귀작이 되었으니 편성이 안 날 수가 없었다. 왕희진의 복귀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 거기에 케이케이의 강도욱이 남자 주인공으로 붙었다.

방송사에서 각종 연기력 논란에도 불구하고 아이돌들을 주조연 배우로 캐스팅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화제성. 이름 없는 조연 배우를 쓰는 것보단 아이돌 멤버를 데려다 쓰는 게 화제성이나 수익 면에서 훨씬 나았다.

그런데 도욱의 경우에는 연기력 논란도 걱정 없는 인물이었으니 방송국으로서는 ‘대박 캐스팅’이라고 부를 만했다.

거기에 도욱은 국내에서만 인기 스타인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 등을 휩쓴 한류 스타였다. 국내에서 시청률이 어떻게 됐든 일단 중국, 일본 등지에 수출은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욱이 캐스팅되었다는 기사가 나가고 얼마 후, 역시나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판매에 대한 제안이 곧장 들어왔다.

드라마에도 한류 열풍이 분 이후로 콘텐츠 수출은 광고보다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부분이었다. 국내에서 인기를 끌고 나가는 경우도 있었고, 이렇게 캐스팅에 따라서는 제작 도중 수출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사실 기대작이라고 해도 국내에서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김이 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판매할 수 있으면 판매를 하는 게 전략적으로 맞았다.

박만덕 부장은 1화 가촬영본을 미리 본 후 <우주에서 온 연인>의 성공을 어느 정도 확신했다.

박만덕 부장은 중국과 일본으로의 수출 가격 책정을 미뤘다.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위에서든 아래에서든 박만덕 부장의 선택에 의심을 가지는 이들이 많았다.

설사 방영 후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고 하더라도 평균치로는 수출할 수 있을 거라는 게 박 부장의 생각이었다.

1화 방영 이후의 반응은 엄청났다. 박만덕 부장은 반응이 더 뜨겁게 달아오르기를 기다렸다. 이미 한류 스타인 강도욱이 주연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배짱이었다.

역시나 애가 타는 건 SVS 쪽이 아닌 중국 쪽이었다. 도욱의 출연 외에도 <우주에서 온 연인> 내용 자체가 중국인들의 흥미를 돋웠던 것이다.

박만덕 부장은 제작사와 협의 끝에 회당 7천만 원이라는 수출 가격을 책정했다. 이전에 중국에서 제안해 왔던 3천 5백만보다도 두 배가량 높은 금액이었다.

중국 쪽에서는 무조건 오케이였다.

계약서의 금액 및 계약 조건 등을 며칠 동안 수정했다. 여러 가지 저작권과 이권에 대해 오영지 작가와 드라마 제작사, SVS 방송국, 중국 방송사 측의 입장을 정리했다.

내일 계약서에 도장만 찍으면 끝이었다.

국내 최고가 수출이었다.

***

SVS 방송국 파주 세트장.

촬영 현장 분위기는 대체로 화기애애한 편이었다. 일정에 쫓겨 잠을 못 자는 일도 다반사였지만, 외부 반응이 워낙 좋으니 힘든 것마저 잊게 되는 것이었다.

세트장 소파에 왕희진과 도욱이 나란히 앉아 대본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 또 있네요, 떡볶이 먹는 씬.”

12화 대본을 확인한 왕희진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푸념했다. 12화 대본의 경우에는 오영지 작가가 애를 먹은 대본이었다. 촬영 일정 때문에 앞부분을 먼저 보내고 완 대본은 이제 막 도착한 것이었다.

“그게 반응이 좋잖아. PPL도 빵빵하게 들어온 거 알면서 왜 그래?”

안철환 감독이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먹는 연기하다가 내가 살찔 것 같으니까 그러죠.”

왕희진이 새침하게 말했다. 도욱이 웃으며 답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그러게. 도욱 씨 말이 맞아. 지금 다들 희진 씨 미모에 물올랐다고 칭찬만 가득하구만. 떡볶이 먹는 거까지 그렇게 완벽하면 어떡해. 나도 아까 인터넷에 뜬 캡처 봤는데, 왜 다들 난리인지 새삼 알겠더만.”

안철환 감독의 말대로 왕희진이 눈물의 떡볶이를 먹는 장면은 ‘짤’로 만들어져 인터넷상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다.

<우주에서 온 연인>만 보면 떡볶이가 먹고 싶어서 미치겠다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저희 멤버들도 드라마 보다가 떡볶이 시켜 먹었어요.”

“아, 정말?”

도욱의 말에 왕희진이 재미있다는 듯 반문했다. 도욱이 끄덕였다.

그러한 반응은 한국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우주에서 온 연인>은 현재 중국 인터넷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되다시피 하고 있었는데 그 반응이 엄청 났다. 인구수의 스케일이 큰 만큼 시청자수도 억 단위를 순식간에 돌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중국에서 역시 왕희진이 떡볶이 먹는 장면을 보면 한국의 음식인 떡볶이가 궁금하고 먹고 싶다는 반응들이었다.

떡볶이를 협찬해 주었던 업체의 중국 지사에서는 난리가 난 상태였다. 물론 홍보 효과를 노리고 드라마에 협찬을 한 것이었지만, 중국에서 이렇게까지 ‘떡볶이 열풍’이 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더해서 중국 내 한식당을 운영 중인 이들도 쾌재를 불렀다. 코리안 바비큐 가게에까지 떡볶이 메뉴가 생길 정도였다.

극중에서 가끔씩 먹는 떡볶이가 그 정도였으니 왕희진이나 도욱이 입고 쓰는 옷, 액세서리도 언제나 완판을 기록했다.

한송희 립스틱, 한송희 귀걸이, 천민준 코트, 천민준 선글라스 등······. 수없이 많은 아이템들이 팔려 나가고 있었다.

광고 효과가 이 정도이니 회가 거듭될수록 더 많은 광고가 붙었다. 오영지 작가가 PPL 장면을 쓰기 힘드니 제발 그만 받아오라고 할 정도였다.

두 주연 배우만이 아니라 정이욱과 주민아의 인기까지 높아졌다. 주민아는 악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귀여운 악역’이라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최근 주민아가 새로 찍은 광고만 2개였다.

도욱에게 들어오는 광고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이미 케이케이일 때도 케이케이 팀 전체 광고는 물론이고, 도욱에게 따로 들어오는 광고가 꽤 있었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로 도욱의 스타성과 광고 모델로서의 수익성이 완벽하게 입증되었으니 들어오는 제안만 검토하기에도 하루가 빠듯할 정도였다.

거기에 국내 광고뿐 아니라 중국 쪽 광고도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었다.

힛 엔터테인먼트 팬-마케팅팀에서는 중국어 가능 직원을 한 명 더 채용할 예정이기도 했다.

12화 대본 검토를 마친 후, 왕희진이 먼저 촬영에 들어가기로 하고, 도욱은 세트장 밖으로 나왔다.

왕희진이 집에서 혼자 도욱과의 데이트를 기대하며 옷을 여러 번 갈아입는 장면이었다. 이후에는 도욱이 집으로 찾아오는 장면이 이어졌다.

도욱은 다음 장면 자신의 대사들을 체크했다.

옆에 있던 남다우가 전화를 받다가 도욱을 불렀다.

“형, 지금 통화 괜찮으세요?”

“누구?”

“이대형 팀장님이요.”

“아······.”

도욱은 세트장 안을 보았다. 촬영은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이제 두 번째 옷을 갈아입은 상황이었다. 십 분 내로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무슨 일이시지······. ”

도욱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기실 쪽으로 향했다.

대기실 안으로 들어와 도욱은 남다우에게 전화를 건네받았다.

“네. 팀장님. 강도욱입니다.”

-아, 도욱 씨! 일하는데 방해해서 미안해요. 요즘 도욱 씨가 사무실에 들어오는 날이 없어서······.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더 미룰 수가 없어서요.

“아니에요, 팀장님. 괜찮습니다. 요즘 막바지라 좀 빠듯하네요. 무슨 일이세요?”

-광고가 또 들어왔어요······.

이대형 팀장의 말투에는 기쁨과 한숨이 섞여 있었다. 광고가 들어온 건 좋은 일이었지만, 일이 너무 많아진 것도 사실이었다.

케이케이 다른 멤버들이나 전체 광고의 경우에는 오백호 실장을 통해서 일을 진행했지만, 도욱에게 들어오는 개인 광고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드라마 출연 이후에는 이대형 팀장과 도욱이 다이렉트로 일을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의 열풍과도 같은 인기는 기회였다. 도욱은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 없었다. 몸이 다섯 개라도 모자랄 상황이었지만, 들어오는 광고는 웬만하면 찍을 수 있는 대로 다 찍겠다는 게 도욱의 생각이었다.

서중원 본부장이 쥔 돈과 권력······. 그것들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도욱에게도 그것이 있어야 했다.

이전까지는 정말 필요한, 굵직한 광고만 해왔었고 물욕이 딱히 없어 보였던 도욱이었기 때문에 이대형 팀장은 이번 도욱의 판단에 대해 의아해했지만, 어쨌든 도욱 본인의 선택이었다.

“아······. 말씀드렸지만 저는 웬만하면 다 하려고요. 보시고 너무 저랑 안 맞는 것만 아니면······. 팀장님이 추천하신 대로 갈게요.”

-그렇게 해도 될까요?

“네.”

도욱은 이대형 팀장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이대형 팀장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정리한 리스트 도욱 씨한테 메시지로 보낼게요. 업체명이랑 제품만 확인해주세요.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자, 곧바로 이대형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일단 가격 맞고 지금 하고 있는 광고들이랑 상품 안 겹치는 것들만 추렸어요. 업체나 제품 신뢰도는 한 번 더 체크할 거긴 한데 도욱 씨 확인 먼저 부탁드려요.

-HOTEL HOTEL (호텔 가격 비교 사이트)(중)

-千歲山 (건강 주스)(중)

-ABA (신발 편집매장)(한)

-츄츄 (빙긋제과 신제품 풍선껌)(한)]

ABA나 빙긋제과는 한국 회사였기 때문에 도욱도 아는 곳이었지만, 중국에서 제안이 온 곳들은 도욱도 잘 모르는 곳이었다.

‘확인했습’까지 쓴 도욱이 잠시 손가락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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