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69화 (169/225)

# 169

순간의 선택 (2)

***

“꺄아아악―!”

“도욱아!”

“케이케이 사랑해!”

“활동 계속해라!!!”

“태형아 여기 한 번만 봐줘라! 봐줘!”

SVS ‘인생가요’ 무대 위. 이번 정류 앨범 마지막 무대 사전녹화를 위해 무대 위에 대형을 갖춘 채 스탠바이하고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을 향해 팬들이 저마다 소리를 질렀다.

오늘 케이케이의 팬들은 ‘인생가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공개홀 600석을 모두 채운 대인원이었다.

새벽부터 줄을 선 600여 명 팬들의 인원수를 체크하고, 그들을 관리하느라 종일 진을 뺀 건 팬-마케팅팀의 도라희 대리였다.

이전처럼 도라희 대리가 직접 관리하는 것은 아니라 케이케이의 팬 매니저를 통해 관리했지만, 사람 수가 많은 만큼 무슨 사고가 날지 몰라 긴장되는 게 사실이었다. 활동 마지막에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최선을 다하는 중이었다.

“개인 멘트 하지 마세요!”

도라희 대리에게 지시를 받은 팬 매니저가 팬들을 향해 외쳤다.

무대가 시작됐는데도 응원법이 아닌 ‘누구야 여기 좀 봐 줘’ 같은 개인 멘트를 하게 되면 고스란히 케이케이의 노래에 그 목소리게 실리게 된다. 엄청난 방해였다. 케이케이의 무대는 사전녹화였어도 라이브이기 때문이었다.

멤버들도 스태프들의 눈치를 보며 팬들을 향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가만히 서 있던 도욱이 검지를 들어 입가에 가져다 대자 일순 장내가 조용해졌다.

도욱이 마이크를 들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아침부터 고생하셨을 텐데······. 저희 무대 같이 즐겨주실 거죠?”

“네에!”

“네―!”

“사랑해 도욱아!!!”

팬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고 나자 다시 시끄럽게 소리를 치는 팬이 생겼다.

“그렇게 소리치시면 목 아파요. 저희 이제 무대할 건데 응원하실 때 목 아프면 어떡해요.”

“괜찮아악!”

목이 쉬어 전설의 익룡에 가까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답하는 도욱의 열성 팬 때문에 장내에 웃음이 터졌다. 멤버들도 못 말린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저러다가는 도욱이 말해도 소용없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는 잠시였다. 곧 도욱이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다시금 입에 검지를 가져다 대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열성팬은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멈춘 듯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을 쥐어 잡은 채 입을 다물었다.

도욱의 부드러운 미소에 600명의 팬들이 녹아내리던 그때, 현주혁 PD가 소리쳤다.

“자, 갑시다!”

케이케이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무대는 ‘Continue’였다.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케이케이 멤버들이 동시에 뛰어올랐다.

“꺄아아아아아악―!!!”

귀를 찢을 듯한 함성은 ‘Continue’ 사운드의 일부와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높게 뛰어오른 멤버들은 동시에 착지하며 노래를 시작했다. 보기만 해도 숨이 찰 것 같은 무대를 케이케이 멤버들은 아무렇지 않게 소화하며 매끄럽게 노래를 이어 나갔다.

연습 때부터 지금까지 벌써 수백 번째 하는 무대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거칠 것이 없었다.

정윤기와 김원, 석지훈이 엎드린 채 몸을 웅크리자 도욱이 무대 끝에서부터 달려나가 그 위를 뛰어 넘었다.

‘Continue’의 안무는 괜히 어려운 게 아니었다. 한 편의 액션 영화가 따로 없었다. 도욱이 그 위를 뛰어 넘어 마이크를 전달하자 마이크를 받은 안형서가 시원하게 고음을 뽑아냈다.

“I’ll be always in your heart―――――!”

뒤이어 어느덧 자신의 마이크를 손에 쥔 도욱이 센터에 서고 멤버들은 삼각형의 형태로 대형을 맞춰 섰다.

뒤로 수십 명의 댄서가 붙어서고 후렴구가 흘러 나왔다.

도욱이 “Con― Con― Continue!” 하고 선창하면 “우리는 계속해서 전진” 하고 멤버들이 한목소리로 노래했다.

언제 보아도 감탄이 나올 만큼 웅장한 곡이었다.

연습으로 키워진 실력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힘들지도 않은 건 아니었다. 곡의 마지막 부분이 되자 멤버들의 이마에서 구슬 같은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라이브를 하는 목소리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클라스가 다른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있던 음향 감독이 한쪽 이어폰을 빼며 옆에 있던 보조에게 말했다. 보조도 이미 넋을 잃은 채 무대를 감상하고 있었다.

“팝 가수가 내한한 수준 같아요, 무슨.”

“방송에 저대로 나가지도 못하겠어. 음향이 안 따라주네.”

그렇게 음향팀에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흘러 나왔다.

곧바로 이어서 ‘Continue’의 의상에 재킷만 걸치고 멤버들이 나왔다. 이어지는 무대는 ‘Go low, Go high’였다.

“으악!”

“아, 엄마악! 진짜 멋있다.”

팬들이 앓는 소리를 내던 그때에 ‘Go low, Go high’의 전주가 흘러나왔다. 멤버들은 각자 리듬을 타며 무대를 휘저었다.

정윤기의 빠른 랩이 폭풍처럼 쏟아지고, 이어받은 김원이 묵직하게 한 방을 날리듯 유창한 영어로 랩을 했다.

뒤이어 네 명의 보컬 멤버들이 짝을 지어 웨이브를 타며 노래를 불렀다. 반듯한 이미지가 강한 케이케이 멤버들이 표정을 풀고 리듬에 몸을 맡긴 듯 흐물어진 방탕한 모습은 무척이나 섹시했다.

춤을 추며 재킷이 반쯤 벗겨지자 석지훈은 아예 재킷을 벗어 던진 채 단추를 한 개씩 풀기 시작했다. 이번 마지막 무대를 위해서 준비한 비장의 카드 중 하나였다.

석지훈 또한 그룹 내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예의바른 막내’ 이미지는 무대 아래에서의 것이었다. 무대 위에서 조금 더 팬들과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을 만한 게 필요했다.

케이케이 멤버에게 노래나 춤은 기본이었다. 그 외의 무언가를 생각하던 석지훈은 누구보다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실행했다.

바쁜 와중에도 힛 엔터테인먼트 사옥 내 체력단련실로 가 벤치프레스에 앉아 상체 근육을 단련시켰다.

석지훈은 평소 별다른 운동을 하지 않고 단백질 섭취만으로도 근육량이 늘어나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 역시 예상대로 본격적으로 헬스를 하자 쉽게 근육이 붙었다.

단추를 세 개 정도 풀자 그 사이로 가슴 근육이 분명하게 보였다. 카메라가 기다렸다는 듯 그 부분을 클로즈업했다.

“꺄악!!!”

“헉.”

“뭐야, 대박!!!”

“지훈······. 우리 지훈이가······.”

막내 석지훈의 숨겨진 근육에 시각적 공격을 받은 팬들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케이케이도 이제 어엿한 어른 남자의 매력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You go low!”

“We go high!”

내지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멤버들이 시원하게 돌려차기를 선보였다. 높게 솟아올랐던 발끝이 내려오자 단추까지 채우고 있던 재킷을 벗어 카메라 쪽으로 던졌다.

카메라 화면이 검게 변하며 케이케이의 무대가 끝났다.

방금 막 끝난 케이케이의 무대를 본 이들은 모두 케이케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뜨거운 무대였다. 무대를 내려가는 케이케이의 모습까지도 눈에 똑똑히 담아가고 싶을 만큼 대단했다.

성공적으로 무대를 마치고 무대에서 성큼성큼 내려온 멤버들은 무대 뒤편으로 내려오자마자 그대로 다리의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았다.

안형서가 주저앉자 구철민이 놀라서 다가와 안형서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러나 안형서뿐만이 아니었다. 정윤기 또한 무대 뒤편에 있는 기둥을 부여잡고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팬들에게 윙크를 날리고, 사랑의 총알을 쏘고, 카리스마 넘치는 표정으로 발차기를 하던 멤버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무력한 모습이었다.

체력적인 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도욱조차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저려오는 팔다리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 있었다.

옆에 있던 댄서팀 중 한 명이 도욱의 팔을 주물러 주었다.

김원은 겨우 대기실로 가 그대로 소파 위에 몸을 뉘였다. 과호흡 증상으로 몰려오는 가슴의 압박감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박태형과 석지훈의 상태도 썩 좋지 못했다. 두 사람도 코디들이 건네주는 생수를 겨우겨우 목으로 넘겼다.

두 곡의 무대 모두 안무가 격렬했는데 그 곡을 라이브로 소화해낸 케이케이였다. 인간이 쉽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6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케이케이는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쏟아냈다. 한순간도 흔들리지 무대를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정신력으로 체력적인 벽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었다.

짧은 시간 내에 에너지를 다 쏟았으니 그 후폭풍은 어마어마한 것이었다.

꼭 죽을 것만 같았다.

무대 뒤의 이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길지는 않았지만 잠깐의 순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수십 번 스쳐 지나가곤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또 한 번 해냈다.’

도욱은 숨을 몰아쉬며 생각했다.

성공적인 무대였다. 사람들은 환호했고, 개인적으로도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무대였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을 모든 힘을 다해 보여줄 수도 있었다.

무대 위에서 느꼈던 짜릿한 쾌감으로 멤버들은 힘든 시간을 버텨냈다.

***

소소하게 삼겹살 30인분을 깨끗하게 클리어하는 저녁 회식으로 케이케이는 정규 앨범 3집 활동을 마무리했다.

숙소에 돌아오자 그곳에는 오백호 실장이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했다는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오늘 방송의 반응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또 한 번의 ‘레전드 무대’가 탄생했다고 모두 좋아했다. 석지훈이 보여준 약간의 상반신 탈의도 여기저기 캡쳐되어 퍼지고 있었다. 석지훈이 기분 좋게 웃었다.

“다들 정말 수고 많았다. 이번 활동. 고생했어. 특히 형서······. 앞으로는 컨디션 관리 잘하고.”

“당연하죠. 멤버들 다 고맙다.”

“뭘 또 새삼.”

서로 훈훈한 말을 주고받으며 멤버들은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모레까지는 아무도 아무런 스케줄이 없었다. 이번 활동은 확실히 체력 소모가 상당했다. 지금 잠들어서 모레 깨어나고 싶다는 게 멤버들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렇게 멤버들이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고, 오백호 실장은 도욱에게 할 말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도욱과 거실에 남았다.

“너도 피곤하지. 얘기할 게 별건 아니고······. 이강연 선생이랑 얘기해 봤는데 너 차기작은 ‘백설공주 언니’ 그거 하기로 했다고.”

“아······. 네.”

도욱도 이미 ‘백설공주 언니’의 대본을 보고 작품이 좋다고 한 상태였다. 그대로 가는구나, 싶어서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도욱이 알기로 ‘백설공주 언니’의 경우 대박 드라마라고 하긴 어려웠지만 나름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평가받던 드라마였다.

“이 선생이 추가로 대본 보내주긴 했는데 무슨 외계인이 나오고······. 재미있는 것 같다가도 황당해가지고······.”

“네? 외계인이요?”

“그래. SF 드라마도 아니고 외계인이랑 무슨 사랑을······. E.T인가. 넌 따로 볼 필요 없겠지?”

도욱이 놀라 되묻자 오백호 실장이 정말 기상천외한 드라마 아니냐고, 너털웃음을 지으며 여상하지 않은 말투로 물었다. 도욱과도 같이 웃고 싶어서 꺼낸 말이었다.

그러나 도욱이 놀란 건 ‘외계인’이라는 인외존재가 드라마에 나오고, 심지어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외계인이 나오는 로맨스 드라마라고 하면 하나뿐이었다. 그런데 그 드라마의 대본이 자신에게 왔다는 사실에 놀랐던 것이었다.

“아, 아뇨. 저! 저, 보고 싶어요.”

피곤한 기색이 가득했던 도욱의 눈이 다시 빛나고 있었다. 예상외의 반응에 오백호 실장이 조금 멍해져서는 되물었다.

“보고 싶다고?”

“네. 그거. 아뇨. 안 봐도 될 것 같아요. 저 그거 하고 싶은데요. 외계인. 네.”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기회였다. 도욱은 자신이 성급해 보일 것을 알면서도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빠르게 말했다.

오백호 실장은 얼떨떨한 얼굴로 도욱을 보았다.

이강연 선생이 건넨 대본이니만큼 오백호 실장도 나름 작품에 대해 업계 소문을 알아보았었다.

알아보니 도욱에게 ‘외계에서 온 남친’의 대본이 들어오게 된 건 이유가 있었다.

작가가 본래 원했던 30대 초반의 톱스타가 그 대본을 거절했기 때문이었다. ‘외계인’이라는 소재에 거부감을 가지는 건 오백호 실장만이 아니었다. 웬만한 매니지먼트사들이 소재에 대한 거부감으로 대본을 거절했다.

‘저런 게 먹힐 리 없다.’는 게 업계의 평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대를 낮춰 도욱에게까지 대본이 오게 된 것이었다. 때문에 오백호 실장은 더욱 마음 편하게 대본을 거절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욱이 이렇게 열띤 반응을 보이니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백설공주 언니’ 쪽에는 확답을 하기 전이었고, 이강연 선생과 통화를 한 게 몇 시간 전이니 아직은 결정을 번복할 순 있었다.

“어······. 그, 그래. 일단 대본부터 봐. 네가 생각하는 그 외계인이 맞는지······.”

***

당연하게도 도욱이 생각했던 ‘그 외계인’이 맞았다.

‘시청률이 40퍼센트까지 나왔었던가······. 열풍이라 불릴 만한 엄청난 드라마였다. 이런 기회가 나에게 오다니.’

도욱은 손을 꽉 쥐었다. 도욱도 미래를 몰랐다면 소재만 보고 눈살을 찌푸렸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시놉시스와 대본을 보는 순간 다시금 확신이 들었다.

‘재밌다.’

조금만 편견을 깨고 제대로 대본을 읽어 보면 그 안에 충분히 재미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대본을 가지고 실패하려면 정말 E.T와 같은 분장을 남자주인공이 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그러나 그런 분장을 할 리 없었고, 말만 외계인이지 ‘능력 있는 잘생긴 남자’ 역할이었다.

이강연 선생은 그런 지점을 알아본 도욱에게 또 한 번 감탄했다.

이강연 선생도 그러한 점을 분명히 알고는 있었지만, 업계에서 안 될 거라는 평이 자자한 드라마에 대해 힛 엔터 쪽까지 설득할 자신은 없었다. 가능성이란 건 언제나 불확실성을 동반하니 이강연 선생으로선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도욱은 달랐다. 도욱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도욱은 오백호 실장과 회사를 설득했다. 어차피 최종 출연 결정은 도욱이 하기로 되어 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도욱은 ‘외계에서 온 남친’의 남자 주인공 역할을 수락했다.

남은 건 ‘외계에서 온 남친’의 작가와 미팅을 갖고 확정을 짓는 일이었다.

도욱은 작가의 작업실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오백호 실장과 함께 작업실 앞으로 가 벨을 누르려던 도욱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무언가에 놀라 멈춰 섰다.

“저게······.”

무언가 묵직한 게 추락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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