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66화 (166/225)

# 166

From the Universe (4)

***

‘Go low, Go high’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

이제는 어엿한 청년이 된 여섯 명의 남자들이 최고의 명품 브랜드 Coco에서 제작한 옷을 입고 일렬로 선 모습은 박수가 절로 나올 만큼 멋졌다.

로고가 새겨진 그래픽 티셔츠에 발목까지 내려오는 팬츠를 기본으로 멤버마다 선글라스나 목걸이 브로치 등의 액세서리로 멋을 내 무척이나 화려한 모습이었다.

작은 귀걸이 하나도 Coco의 로고가 붙으면 상당한 액수가 됐다. Coco의 제품들은 모두 평범한 제품들의 열 배에서 백 배 정도의 가격이었다.

디자이너들의 고민과 제작하는 장인들의 수고와 브랜드의 역사 값이라고 한다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지갑 하나 사기 힘든 게 현실이었다.

현재 멤버들이 한 명당 착용한 Coco의 제품들의 가격만 따져도 천만 원은 훌쩍 넘어갔다. 그만큼 값을 하기도 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이 뚝뚝 묻어 나왔다.

박태형의 가슴팍에 붙은 Coco 브로치가 눈이 부실 정도로 반짝이고 있었다. 액세서리 중 이 브로치를 가장 탐내던 안형서가 부럽다는 듯 쳐다보다 과장하며 말했다.

“이야, 눈부시다 눈 부셔!”

박태형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형······, 모자도 진짜 멋있어요······.”

“까리하다 아이가. 형서 얼굴도 가려지고!"

박태형의 대답 뒤에 붙은 정윤기의 말에 안형서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뭐? 아, 저 형은 진짜. 형은 선글라스로 가린 주제에.”

“마······.”

사실이었기 때문에 할 말이 없어진 정윤기였다.

“와우, 진짜 너무 좋다. 같이 셀피 찍을 사람?”

스튜디오 한편의 전신 거울 앞에 선 김원이 외치자 안형서가 신나서 김원의 곁으로 갔다. 간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던 석지훈도 조용히 일어나 김원의 옆에 서 V자를 그리고 있었다.

옷에 따라 사람 기분이 달라지는 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인 듯했다. 자신들에게 딱 맞고 좋은 옷 덕분인지 케이케이 멤버들의 컨디션은 최상이었다.

그때 다시금 촬영 현장에 ‘Go low, Go high’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도욱의 개인 촬영 시간이었다.

흩어져 있던 멤버들이 세트 쪽으로 모여 들었다. 카메라 모니터 속에서 도욱이 자신의 파트를 립싱크 하고 있었다.

오늘 촬영장은 전에 없이 새하얗고 깔끔했다. 다른 소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CG 처리될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멤버들은 흰색 배경의 스튜디오에서 안무를 하고, 개인 촬영 때는 느낌 있는 제스처를 취하면 되는, ‘Continue' 뮤직비디오 촬영 때를 생각하면 누워서 식은 죽 먹기의 촬영이었다.

도욱이 손을 흔들며 리듬에 맞춰 파트를 부르다 마지막 부분에서 세상을 경멸하는 듯한, 악역과 같은 비웃음을 흘렸다.

평소 도욱의 이미지와는 맞지 않았지만 노래의 분위기와는 완전하게 들어맞는 표정이었다.

“다 죽여!”

그야말로 다 죽일 수 있을 듯한 표정이었고, 멤버들이 도욱의 표정을 보며 열광했다. 멤버들의 그런 환호에 도욱도 더 분위기에 취한 듯 점점 더 적극적인 포즈를 취해 보였다.

“오오, 강도욱!”

“리얼, 리얼로 잘한다. 굿잡, 브로!”

김원이 손가락을 모아 휘파람을 불었다.

도욱의 파트 본래 정윤기와 김원의 파트였으나 도욱에게로 넘어간 파트였다. 정윤기가 한 번 해보라고 해서 했더니, 당장 녹음에 들어가도 될 정도로 도욱은 완벽하게 랩 파트를 소화했다.

물론 쉬운 부분이긴 했지만, 정말 음악적으로는 못 하는 게 없다 싶은 재능이었다.

도욱의 목소리로 다시 덧입혀진 파트는 더 정확하게 가사 전달이 되는 느낌이었다. 무게감이 더해진 것이다.

“쟤는 무슨 랩까지 잘하구······.”

안형서가 부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사기캐.”

석지훈이 옆에서 덧붙였다. 다른 멤버들도 끄덕였다.

여러 번 반복해서 촬영이 진행되었다. 그때마다 도욱은 다른 즉흥 안무로 흥이 난 모습을 선보였다. 전부 다 괜찮아서 뮤직비디오 감독이 고민일 정도였다. 다섯 번째 촬영이 진행되었을 때, 도욱은 입고 있던 얇은 소재의 재킷을 벗어 카메라 쪽을 향해 던졌다.

휙, 재킷이 카메라 쪽으로 날아 들어왔다.

생각지도 못한 느낌 있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감독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오케이! 좋았어요! 수고하셨어요, 도욱 씨!”

감독의 인사와 함께 도욱의 개인 촬영이 끝났다.

다음은 엔딩 컷 촬영이었다.

‘Go low, Go high’의 엔딩 안무는 여섯 명의 멤버들이 일렬로 서서 한 발짝 달려가 발차기를 하는 것이었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멤버들은 마음속으로 숫자를 새고 있었다.

“하나, 둘, 셋!”

스태프가 큰 소리로 숫자를 셌다. 구호에 맞춰 멤버들이 날듯이 뛰어올라 허공을 향해 발차기를 시전 했다.

***

[케이케이의 끝나지 않는 飛上, 세계 음원차트 장악중!]

‘Continue'의 인기를 잇기 위해 수록곡 ‘Go low, Go high’의 리믹스 버전을 발표한다.

‘Go low, Go high’는 멤버인 정윤기가 작곡하여 작곡가 겸 프로듀서로 활약 중인 강도욱 외에도 작곡 능력이 뛰어난 멤버가 있음을······ 이번 리믹스 버전은 미국의 유명 DJ Kalma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져서 세계적인 스타로서 발돋움했음을 확인 받았다. ······ 현재 ‘Continue'의 뮤직비디오는 마이튜브 기준 1000만 뷰, ‘Go low, Go high’는 30만 뷰를 넘기며 놀라운 기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뮤비 간지 좔좔임~!!!

-안무도 너무 멋있음ㅠㅠㅠㅠ 음악 방송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 일주일은 너무 짧아요~~~!

-발차기ㅋㅋㅋㅋㅋ

-태권케이! 얍얍!

-한국인은 역시 태권도다

-발차기 근데 선글라스 낀 애만 너무 낮던데ㅋㅋㅋㅋ

-윤기야~ 분발하자~! 태권케이 파이팅-ㅁ-//

-강도욱 양아치미도 있는 줄 몰랐음;

-푸른고래 보면 일찐으로 나오는데 거기서두 양아치 연기 잘함

-새로워서 좋았다,, 길에서 만나면 지릴 듯

-연기 맞지?ㄷㄷ

-다른 연예인이면 몰라도 강도욱은 건드리지 말자 인간적으루다가~

-컨티뉴랑 고로고하 무대 이어서 하는 거 음방에서 봤는데 실신하는 줄

-케이케이 체력 괜춘?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DJ Kalma랑 작업했다니..정말 대단한 겁니다. 지금 뉴욕에서는 가장 잘나가는 DJ예요.. 클럽마다 못 불러서 난리고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힙합 가수가 줄을 섰어요.. 아이돌 음악 안 듣는데 칼마랑 작업했다니 너무 놀랍네요.

-아는 척 쩔어

-케이케이도 정말 대단한 겁니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이돌이에요^^;

-우리 도욱이 랩도 하더라~ 진짜 존멋!

-I am rina from rio. uki oppa.. I love YOU!!!

-헐 한국 포털에 외국인 댓글 달려ㅋ

-아일랜드 촌에 사는 유학생인데요. 여기 진짜 촌이라 케이팝은커녕 그냥 팝도 잘 안 들리는 동넨데 오늘 마트 갔는데 라디오에서 케이케이 노래 나와서 얼마나 놀랐는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너무 뿌듯했습니다

-전 괌 여행 왔는데 라디오에서 나오더라는..

-국뽕! 크으으으으~~~!!!

-진짜 괜히 내 어깨가 들썩거림

-고로우고하이는 영어 가사도 많아서 외국인들이 더 친숙하게 느끼는 듯

-랩 씬남~

“우리 진짜 반응 좋다.”

코디에게 머리를 맡긴 채 휴대폰을 하고 있던 안형서가 옆에 앉은 석지훈에게 말했다.

“그러니까요. 아까 현주혁 피디님께서도 오셔서 막 격려하고 저희 눈치 보시는데······. 이런 걸 격세지감이라고 할까요.”

“야, 무슨 늙은이 같은 말투야.”

석지훈의 말에 안형서가 고개를 저었다.

SVS ‘인생가요’ 세트에서는 케이케이 정규 3집 앨범 굿바이 무대가 한창 준비 중이었다. 멤버들은 대기실에서 무대를 준비 중이었다.

인기도 상당한 데다 연차도 쌓였으니 당연한 것이기도 했지만, 케이케이의 대우는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고 커다랗게 쓰인 A4 종이가 대기실 중 가장 큰 방에 붙어 있었다. 대기실 하나를 여러 가수들이 나눠 쓰던 때를  생각하면 현재는 수십여 명의 댄스팀원들까지도 나름 편하게 대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간의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시간적 여유까지 생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무대 두 개를 연달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의상이며 헤어며 체크할 게 많았다.

오늘 방송은 사전녹화로 진행되었고, 케이케이는 ‘Continue'와 ‘Go low, Go high’ 두 곡을 모두 풀 버전으로 준비했다.

코디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멤버들에게 의상을 입혀보았다.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멤버는 팬들이 서포트로 보내 준 도시락과 간식을 먹고 있었다.

케이케이의 사진이 프린트 된 엄청난 크기의 케이크가 도착해 있었지만, 정작 음식 조절을 하고 있는 멤버들이 먹을 수 있는 양은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양이었다.

그렇게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서 케이케이 대기실 문이 열렸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 열린 대기실 문이었다. 멤버들의 문이 또 한 번 문 쪽으로 향했다.

“오······.”

김원이 문을 열고 줄줄이 들어오는 이들을 보며 작게 환호했다. 흰색 미니 드레스를 입고 꽃 장식을 단 의상을 보니 이번 활동 때 보았던 팀이었단 걸 알 수 있었다. 이제 갓 데뷔한 ‘Cherry Girl’이었다.

“안녕하세요! 체리걸입니다~!”

“안녕하세요, 케이케이 선배님들!”

남자 멤버들만 있던 대기실에 소녀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배 그룹들이 줄줄이 케이케이의 대기실로 인사를 오고 있었다. 각자 할 일을 하고 있던 멤버들은 아무리 반복돼도 이런 인사들이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듯 쭈뼛거리며 일어섰다.

신인 때 자신들도 수없이 했던 인사였기 때문에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얼마나 민망할지도 잘 알고 있었다. 멤버들은 최대한 따듯하게 인사를 오는 신인 가수들과 인사를 나눴다.

“여기 저희 앨범이에요!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넵. 감삼다.”

물론 쑥스러움과 어색함에 더 무뚝뚝해져 버리는 정윤기의 말투까진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신인 그룹들이 그랬던 것처럼 멤버들이 싸인 CD를 건네고는 한 명씩 자기소개를 했다.

“저는 진······.”

“진짜 예쁜 진나은 씨!”

체리걸의 멤버 진나은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멈칫했다. 김원이 소개도 전에 자신의 이름을 말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진짜 예쁜’이란 수식어는 진나은의 팬들이 붙이기 시작한 수식어로 막 인터넷에 떠오르는 중이었다.

김원은 뿌듯한 표정으로 반가움을 표했다. 진나은이 수줍게 웃으며 고맙다고 인사했고 체리걸 멤버들은 케이케이 김원이 알아봐주는 진나은을 쳐다 보며 부러운 표정을 했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김원이 어떻게 이제 갓 데뷔한 진나은의 이름까지 아는지 신기해하며 쳐다보았다.

사실 김원의 높은 지능 지수는 걸그룹에 관한 정보를 모을 때 더욱 진가를 발휘하곤 했다. 김원이 걸그룹에 관심도 많고 잘 아는 것도 알았지만, 이제 데뷔한 지 한 달 된 걸그룹의 별명까지 아는지는 몰랐다.

김원의 활약 아닌 활약으로 알아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며 체리걸은 활기찬 발걸음으로 케이케이의 대기실을 나설 수 있었다.

“형. 진짜 걸그룹 너무 좋아하면 안 된다!”

“맞아요. 팬들······.”

체리걸이 나간 후 안형서가 일침을 날리자 석지훈도 거들었다. 김원이 손을 저었다.

“노! 노! 그런 관심 아냐. 진짜 나는 리스펙트.”

“남자 그룹은 리스펙트 안 하시는 건가요.”

“와오······.”

도욱이 조용히 날린 한 방에 김원은 당황하며 입을 다물었다. 박태형도 조용히 김원에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정윤기가 낄낄대며 고개를 저었다.

사실 이렇게 장난을 칠 수 있는 것도 김원이 걸그룹의 무대와 정보에는 관심이 많아도 실제로 비즈니스적인 관계 외에 친분을 쌓지는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다.

젊은 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케이케이는 자신으로 인해 팀에 피해가 가지 않기 위해서 철저히 사생활 관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또 한 번 대기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무대 시간 얼마 안 남았는데······.”

시간을 확인한 구철민이 조금 궁시렁 댔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건 맨투맨이었다. 맨투맨의 채은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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