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
From the Universe (3)
“곡에 무슨 문제라도······.”
도욱의 질문에 정윤기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겼다.
‘Go low, Go high’는 이미 녹음까지 완료해 앨범에 수록된 상태의 곡이었다. 따로 음원을 내는 만큼 약간의 리믹싱을 거치긴 할 테지만 후속곡이라고 생각하면 당장 안무 정도만 준비해서 나오면 되는 곡이었다. 이미 완성형이라는 이야기였다.
“니 때문 아이겠나.”
“저······. 저요?”
도욱이 자신을 가리키며 되물었다.
정확히 도욱을 지목한 정윤기에 다른 멤버들은 굳은 채 긴장했다.
‘싸움인가!’
‘내······내가 말려야 하나?’
‘도욱이 형, 윤기 형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가, 갑자기······. 사이좋게 지냈으면······.’
남은 멤버들의 머릿속에 일순 많은 생각이 스쳤다. 사실 오랜 활동 기간을 거치면서도 그 흔한 싸움 한 번 하지 않은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물론 피곤이 쌓이고 잠도 못 잔 상태에서 투닥대는 경우도 있었고, 꼭 그런 상황이 아니더라도 또래 남자들이 24시간 붙어 생활하는 만큼 티격태격대지 않을 수 없었지만, 심각한 의견 대립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
정윤기와 도욱이라는 기둥이 너무나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리더인 정윤기와 도욱의 위치는 사실 조금 겹치는 면이 없지 않아 있었음에도 정윤기는 정윤기대로 도욱은 도욱대로 서로를 존중해가며 각자의 역할을 해왔었다.
정윤기는 멤버들이 연습에 소홀하거나 게을러지는 등 행동에 문제가 있을 때면 혼낼 땐 혼내면서 리더이자 큰형다운 모습을 보였다.
도욱은 케이케이의 음악적인 면을 이끄는 이였다. 그렇다 보니 활동 계획이나 음악적 방향성에 대해서는 도욱의 의견을 전적으로 따랐던 정윤기였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도욱이 반대할 만한 의견을 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정윤기가 짚어서 도욱이 문제라고 하고 있었다.
“그래. 니. 니 말이다.”
***
다행스럽게도, 그리고 당연하게도 정윤기와 도욱이 싸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 온 정윤기는 ‘Go low, Go high’ 녹음 당시 썼던 가사가 프린트된 종이를 도욱의 방으로 들고 와서는 펜으로 파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여기.”
“네.”
“이렇게 두 줄이지.”
도욱은 끄덕였다. 자신이 불렀던 파트가 맞았다.
정윤기가 다른 멤버들의 파트도 체크하기 시작했다. ‘Go low, Go high’는 도욱이 작곡자인 정윤기와 협의를 거쳐 파트를 분배했었던 곡이기도 했다.
파트별로 정리된 가사지가 찾아보면 방에 있을 것 같은데 정윤기가 너무 진지한 얼굴로 체크 중이라 도욱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정윤기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파트에 문제가 있는 건가.’
도욱은 생각했다. 그러나 당시 어떠한 잡음도 없이 순조롭게 진행했던 기억이었다.
“이거는 전부 나랑 원이 랩 파트고······. 마, 여기는 형서랑 지훈이 파트라 안 하나.”
“네, 맞아요.”
“여기 쫌 태형이 파트 있고.”
“아······. 태형이 파트가······, 뮤직비디오 찍기에는 너무 없을까요?”
도욱이 물었다.
그제야 대충 정윤기가 말하는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감이 온 도욱이었다.
그룹 활동에서 파트 분배는 무척이나 민감한 문제 중 하나였다. 실력이나 노래에 맞는 목소리를 우선으로 하다 보면 파트가 눈에 띄게 없는 멤버가 생기기 마련이었다. 멤버들 서로는 이해한다고 해도 팬들은 아니었다.
또 멤버들 스스로도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무기력함에 빠질 수 있었다. 다른 데서 활약한다고 해도 가수는 무대에서 활약할 때 가장 빛나는 법이었다.
그걸 잘 알기에 1분, 1초까지 맞춰가며 공평하게 분배를 할 수는 없었지만,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파트가 없었던 멤버들에게도 최대한 많은 기회가 돌아갈 수 있도록 프로듀서인 도욱의 선에서 노력이 더해졌다.
타이틀곡의 경우에는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부터 시작해 회사에서도 세밀하게 파트 분배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회사 쪽에서는 아무래도 큰 그림을 그리며 그 앨범에서 띄우고자 하는 멤버나 인기 멤버 위주로 분배하길 원했다.
때문에 활동을 하지 않는 수록곡 쪽에서 도욱은 조금 더 자유롭게 평소 파트가 없던 멤버들에게도 파트를 배분해왔다.
‘Go low, Go high’의 경우에는 힙합 베이스의 곡인 만큼 당연하게 정윤기와 김원이 주가 되었다. 이례적으로 보컬 파트가 짧고 랩 파트가 길었다.
때문에 이제 와 보니 보컬 멤버들, 특히 박태형의 파트가 너무 없는 듯도 했다.
스페셜 음원인 만큼 음악 방송도 후속곡의 개념보다도 짧게 치고 빠질 예정이었지만, 리더인 정윤기의 마음에 충분히 걸릴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욱은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지적해 준 정윤기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아니.”
“네?”
“마, 태형이도 태형이지만 너가 너어무! 없지 않나.”
“아, 저는······.”
도욱은 타이틀곡에서 항상 안형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파트가 많은 멤버 중 하나였다. 때문에 ‘Go low, Go high’ 파트 분배 당시 보컬 파트 중 대부분을 안형서와 석지훈에게 넘겼다.
굉장히 리드미컬한 곡이라 두 사람의 목소리가 이 곡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 부분도 있었다.
당시 정윤기는 도욱의 의견에 동의했었지만, 이 곡으로 활동을 하지 않을 때의 얘기였다.
이 팀의 메인은 도욱이라고 정윤기는 확고하게 생각했다.
도욱이 케이케이의 얼굴이고, 중심이었다. 그런 도욱의 파트가 3분 남짓한 곡에서 10초 정도밖에 없는 곡으로 활동할 수는 없다는 게 정윤기의 생각이었다.
“저는 괜찮은데요. 그보다 태형이 파트 조금이지만 간주에 태형이 센터에 서서 안무 파트 들어가면 어떻게······.”
“아니, 내가 안 괜찮다. 리믹스 버전으로 편곡할 때 랩 파트 조금 줄여서라도 도욱이 니 파트 만들든가 해야지.”
도욱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 곡의 핵심은 랩 파트였다.
“이 곡은 랩이 중심이 되는 곡인데 랩 파트를 줄이면······.”
“랩 너무 많다 아이가. 거의 진성 힙합 곡인데, 그래, 파트 떠나서 대중들한테 괜찮겠냐 이거지.”
“훅이랑 보컬 부분으로 저는 괜찮을 거 같은데······. 그리고 사실 요즘 힙합 많이 들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정윤기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한다는 듯 끄덕였다.
“물론 모든 케이케이의 곡들이 다 우리들이 주인공인 곡들이지만 더 돋보이는 멤버가 있는 건 사실이잖아요. 곡마다. 이번엔 그게 래퍼들이 되는 것뿐이에요.”
랩 파트를 전혀 줄일 생각이 없다는 뜻을 도욱이 확실하게 밝혔다.
도욱이 이 곡을 선택했을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라는 걸 정윤기도 알았다. 정윤기 자신보다 더 많은 고민 후에 선택했을 것이다. 때문에 정윤기가 도욱을 논리적으로 이기기는 무척 어려웠다.
댄스만 아니라 힙합 장르로도 케이케이가 얼마나 잘하고 뛰어난지 보여주겠다는 도욱의 의도가 좋은 건 정윤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건 아니었다.
물론 한 곡 정도 도욱의 파트가 적을 수도 있었다.
“컨티뉴 활동 시너지 주고 싶은 거라고 안 했나.”
정윤기가 물었다. 도욱이 없었던, 케이케이의 유닛인 오케이의 성공을 생각하고 내린 결정이기도 할 터였다. 그러나 현재 도욱이나 멤버들이 바라보고 있는 건 유닛 오케이 정도의 성공이 아니었다.
그 점을 정윤기는 도욱에게 정확하게 짚어주고 싶었다.
“네, 그렇죠.”
“국내든 해외든 케이케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 멤버도 너고, 제일 알려진 멤버도 넌데 도욱이 니가 스치듯 나오기만 하는 게 말이 되냐는 거지. 어? 그래 한국에서는 다른 멤버들두 유명하다 하자. 해외에서는 니가 영화니 드라마니 해서 넘사잖아.”
정윤기는 툭 까놓고 말했다. 굳이 1등이 누구다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게 그냥 사실이었다. 데뷔할 때부터 그랬으니 이제 자존심이 걸릴 문제도 아니었다.
“마, 그래, 우리 팀이라 다 같이 하는 거고. 니가 멤버들 믿고 맡기려고 하는 건 나두 좋고, 고마운데. 도욱아.”
“네······.”
“네 말대로 지금 더 치고 나갈 때라면 나는 굳이 있는 자원 아끼는 건 아니라고 본다. 너가 이 팀의 제일 가는 자원인데.”
도욱도 정윤기가 이렇게 말을 하니 더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정윤기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도욱이 ‘Go low, Go high’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건 래퍼들의 실력과 케이케이가 가진 힙합적음악 색깔이었다.
그것만 생각하다 보니, 또 프로듀서로서 다른 멤버들을 위주로 생각하다 보니 정작 자신이라는 중요한 멤버는 잊어버렸던 듯싶었다.
“그렇지만 랩 파트를 줄일 수는······.”
도욱이 말을 흐렸다. 그렇다고 다른 보컬 파트가 많은 것도 아니라 다른 멤버의 파트를 가져올 수도 없었다.
‘곡 길이가 긴 편은 아니니 조금 늘려야 하나······. 아니야, 그러면 곡 전체의 밸런스가 무너질 수 있어.’
고심하는 도욱에 정윤기 역시 고민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흐음······.”
잠시 도욱의 방이 정적으로 메워졌다. 그러다 피식 웃은 정윤기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너, 랩 해볼래?”
“예에?!”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이야기였다. 늘 덤덤하게 잘 놀라지 않던 도욱마저도 놀라며 큰소리를 냈다.
정윤기는 아랑곳 않고 가만히 가사가 적힌 종이를 보더니 펜으로 한 부분을 짚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네! 여기 이 부분!”
정윤기가 짚은 건 김원과 정윤기가 같은 가사를 주고받듯 반복하는 Hook 구간이었다.
“형들이 잘해서 랩 곡을 고른 거지 제가 랩을 하려고 한 게······. 아니 저, 랩은 한 번도 안 해본 거 아시잖아요.”
“여기 좋은데? 여기 강렬하고! 쉽기도 하다, 마. 한 번 해봐라.”
“형······.”
“진짜. 한 번만 해봐. 원래 노래 잘하는 애들이 랩도 잘해.”
정윤기가 보았던 많은 연습생들의 경우 그랬다.
도욱은 처음부터 확실하게 보컬 파트를 지원하겠다고 했고,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데뷔가 결정되어 따로 랩 수업을 듣진 않았지만 본래 대부분의 연습생들은 자신의 파트를 찾기 위해 보컬 수업과 랩 수업을 모두 들었다.
그때 보면 노래를 잘하는 연습생들은 리듬감도 뛰어나서인지 랩도 중간 이상은 했다.
정윤기가 계속해서 채근하자 도욱은 수긍하는 수밖에 없었다. 한숨을 쉬고는 정윤기가 말한 부분의 랩을 떠올렸다. 녹음 때 이미 수십 번 들었기 때문에 금세 떠올랐다.
형편없는 도욱의 랩을 듣고 나면 도욱에게 랩 파트를 부르게 하겠다는 정윤기의 생각은 바로 정리될 것이라는 게 도욱의 생각이었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 we go the highest ever, 내가 선 곳이 바로 그곳.”
도욱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춰 랩을 불렀다.
‘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가사는 미국의 대통령 영부인의 연설에서 따온 것이었다. 김원이 무척이나 인상 깊게 들은 연설이라고 했다.
그러한 연설을 인용한 만큼 ‘Go low, Go high’는 누군가 자신을 무너뜨리려고 진흙탕 싸움을 걸어도 자신은 끝까지 어떠한 품위를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곡이었다.
확실히 노래의 중심이 되는 가사였고, 무게가 실린 파트였다.
“어?”
“어······.”
도욱과 정윤기의 눈이 놀란 채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