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59화 (159/225)

# 159

언제까지나 (1)

피아노 반주와 함께 시작된 곡은 리드미컬하고 파워풀하게 진행되었다. 후렴구의 멜로디 또한 강렬했다.

가이드를 대충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반복되는 후렴구에 가사를 붙여보고 싶을 정도로 선명한 멜로디였다. 드라마에서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이 붙는 중요한 순간에 흘러나오면 좋을 멜로디이기도 했다.

“오······. 신인이 작곡하고 부른 겁니까? 작가님 드라마에 굉장히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곡이 정말 좋네요. 소개 받고 싶을 정도예요!”

노래를 들은 심준 팀장이 잠시 OST 메인 테마를 자신들이 따내야 한다는 것도 잠시 잊고 순수하게 감탄하며 말했다.

듣자마자 괜찮은 곡이라는 감이 왔고, 대중성이 뛰어난 곡이었다.

이 정도 수준의 곡을 작곡한 이라면 못해도 힛 엔터테인먼트 가수의 앨범 수록곡에 들어갈 곡 정도는 거뜬히 작곡할 수 있을 듯했다.

거기에 음색도 도욱 못지 않게 좋았다. 대충 가이드한 것만 들어도 편안한 음색이나 음정이 뛰어났다.

“어머, 전문가가 그렇게 말해주시니까 믿음이 확 가네. 진짜.”

권미정 이사가 끄덕이며 말했다. 정은수 작가가 뿌듯한 표정으로 답했다.

“아마 신인 가수가 아닐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사실 제 팬이 메일로 보내온 거라서요.”

“팬이요?”

“네, 얼마 전에 메일로 ‘후계자들’ 기사난 걸 보구 직접 작곡해서 불러봤다면서······.”

정은수 작가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곡 같은 건 회사에 보내는 게 빠를 텐데 싶었어요. 저는 OST엔 별 관심 없어서······. 회사에서들 알아서 하는 거구. 근데 또 팬이라고 보내온 걸 안 들어볼 수가 없으니까 들었는데.”

“너무 맘에 들었던 거지. 드라마 분위기랑도 맞아요, 드라마를 본 것처럼 맞아, 막. 정 작가가 미는 데다 음악감독도 듣고 좋다고 하니······. 일단 가 봐야죠.”

권미정 이사가 체념조로 말했다. OST 앨범에 어떻게든 곡을 넣으려고 배우들 소속사와 투자사, 방송사 모두 난리였는데 메인 테마곡을 알지도 못하는 신인에게 넘길 상황인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곡이 좋아 드라마에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 화앤수 제작사로서는 마다할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은수 작가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권미정 이사 개인이 여기저기 시달리는 중이었다.

“저······.”

가만히 듣고 있던 도욱이 말을 꺼냈다.

서로 얘기하던 세 명의 시선이 한 번에 도욱에게로 쏠렸다. 도욱이 조금 난처하고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 제가 보낸 메일입니다······.”

도욱의 말에 모두의 눈이 커다랗게 터졌다.

“어머, 어머!”

가장 먼저 상황을 알아차린 건 권미정 이사였다.

제일 넋이 나간 건 심준 팀장이었다. 심준 팀장도 전혀 알지 못했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네······, 네 곡이라고?”

도욱이 머쓱하게 웃으며 끄덕였다.

“와······.”

심준 팀장이 넋이 나가선 여러 번 감탄사만을 뱉어냈다. 데뷔 때부터 도욱의 목소리로 앨범을 제작해 온 자신이 가이드한 곡을 듣고도 도욱인지 몰랐다는 충격도 있었다.

“말씀 못 드려서 죄송해요. 팬으로서 작가님께 보내본 거라······. 저도 이렇게 작가님께서 좋아해주시는 줄은······.”

도욱의 말에 정은수 작가 또한 얼떨떨한 채 답했다.

“아! 제가 내일 답장을 하려구······. 근데 이게 도욱 씨 곡이에요? 세상에, 정말 몰랐네. 너무 신기하다. 어쩐지 곡이 너무 좋더라구. 도욱 씨 작곡 잘한다더니 정말이구나.”

“호호. 그러니까, 진짜 재능이 너무 많네!”

권미정 이사가 칭찬하며 박수를 치다시피 했다.

‘후계자들’의 OST에 참여하고자 마음을 먹은 도욱은 심준 팀장에게 ‘후계자들’ 제작사 쪽과의 만남을 부탁했었다.

그 뒤 만남을 기다리면서 지난 날 보았던 드라마 ‘후계자들’을 떠올렸다. 도욱도 전 회차를 챙겨보지 못했지만 1화부터 8화 정도까지는 즐겁게 본 기억이 있었다.

당시 OST는 그리 유명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후계자들’에서 인기가 많았던 장면은 곧바로 떠올랐다.

남자주인공이 여자주인공이 푸른 바다가 펼쳐진 바다에서 처음 만나는 씬과 고백을 하는 씬이었다. 그 씬들을 생각하니 어렵지 않게 어떠한 곡을 작곡해야 할지 감이 왔다.

도욱은 제작사 쪽에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라마 방영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고, OST 작업도 진행되고 있을 수 있었다.

‘뭐라도 해봐야지······.’

도욱이 현재 OST 작업을 욕심내는 데는 꼭 케이케이의 공백을 메우는 데에만 있지는 않았다.

케이케이가 ‘후계자들’ OST를 녹음하게 되고 결과가 나쁘지 않다면 케이케이는 OST 시장 쪽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었다.

OST 작업에도 케이케이 멤버들이 꾸준히 참여할 수 있다면 장기간으로 보았을 때도 여러모로 큰 도움이 될 터였다.

여러 생각을 하며 도욱은 고심 끝에 틈틈이 곡을 작업해 정은수 작가에게 메일을 보냈다.

정은수 작가가 과연 곡을 들어봐 줄까 싶기도 했지만, 곡을 듣는다면 아마도 마음에 들어 할 거라는 생각도 있었다.

‘이미 정은수 작가가 쓰고자 하는 드라마의 내용을 알고 작업한 곡이니까······. 유리한 게 사실이다. 정은수 작가가 들어만 준다면······.’

작가가 OST에 직접 참여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정은수 작가의 마음에 든다면 분명히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케이케이라는 것을 밝히지 않은 것은 순수하게 팬으로서 곡을 작곡한 점을 어필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곡은 도욱이 메일을 보내려고 생각하기 전, ‘후계자들’을 떠올리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곡이었기 때문에 반쯤은 메일의 내용이 사실이기도 했다.

그러나 메일을 확인한 정은수 작가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도욱은 조금 실망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은수 작가가 메일만 보고 곡을 들어보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OST 곡 작곡은 처음이라 부족한 점이 많았을 수도 있었다.

때마침 제작사 쪽에서 자리를 갖자는 답변을 해주어서 다행이었다.

‘케이케이’의 이름을 내세워서 OST 곡을 따내는 것은 원래의 계획이었다. 때문에 정은수 작가가 맘에 들어 하는 곡이 따로 있어 케이케이가 메인 테마곡을 가져가는 건 어려울 것 같다는 권미정 이사의 말을 들었을 때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었다.

‘안 되는 건가······.’

낙담하던 도욱의 귀에 들려온 건 바로, 자신이 작곡한 곡이었다.

사무실 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지 않고 숙소의 자신의 방에서 급한 대로 가이드 녹음을 한 탓인지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고, 심지어 심준 팀장마저도 자신의 목소리인 줄 모르고 있었다.

“이 곡의 주인이 도욱 씨고, 케이케이가 부를 노래라면······. 방송사에서 반대할 일은 전혀 없겠는데, 언니?”

“어머. 당연하지, 정 작가. 기획사들만 몇 달래면 되겠어.”

정은수 작가는 권미정 이사를 언니라고 부를 만큼 그녀와 막역한 사이였다. 신인 작가 때부터 지금의 정은수 작가가 있기까지 옆에서 끌어준 게 바로 권미정 이사였다.

두 사람의 말에 심준 팀장의 입이 크게 벌어지며 절로 웃는 얼굴이 됐다. 생각지도 못한 도욱의 메일로 일이 한 방에 해결된 기분이었다.

그냥 기다리고만 있었어도 도욱에게 어차피 연락이 왔을 거라는 소리였지만, 이 자리에서 밝혀진 것은 무척이나 극적이었다.

이 자리로 인해 정은수 작가의 눈에 완벽하게 도욱이 들어왔을 게 분명했다.

“어, 근데 어떻게 이런 곡을 썼어요? 후계자들 대본이라도 읽은 줄 알았어요. 유출됐나?”

정은수 작가가 도욱에게 기분 좋게 물었다.

나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도욱은 조금 머뭇거리며 답했다.

“아······. 그냥 인물소개 같은 것을 보고······.”

“아휴, 정말 대단하네. 볼수록. 나중에 우리 정 작가 드라마에도 출연하면 그때도 곡 또 써줘요, 네?”

권미정 이사의 말에 도욱이 알겠다고 답하며 분위기는 더욱 화기애애해졌다.

***

‘후계자들’ 첫 방송일.

케이케이 멤버들은 숙소 텔레비전 앞에 둘러 앉았다. 여섯 명 모두 모여 텔레비전을 보는 일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텔레비전에서는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역시 정은수 작가의 드라마고 해서 광고가 많이 붙었는지 광고가 계속해서 나왔다.

“드라마 볼 때는 치킨이라도 한 마리······.”

“쓰읍.”

치킨 얘기를 꺼냈던 안형서가 오백호 실장의 소리에 바로 입을 다물었다. 안형서는 확실히 컴백일이 다가올수록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몸도 완전히 나아졌고, 목 상태도 회복해 ‘후계자들’ OST 녹음도 무리 없이 해냈다.

“이제 컴백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몸 관리해야지.”

“네에······.”

안형서가 시무룩한 척을 하며 대답했지만, 그런 것에 넘어갈 오백호 실장이 아니었다.

‘정확히 23일 남았구나······.’

시선은 텔레비전 쪽으로 향한 채 도욱은 새삼 생각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컴백일도 D-DAY를 세어야 할 만큼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동안 케이케이 멤버들은 자체 제작 프로그램 녹화를 제외하고는 모든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내며 컴백 준비에 열을 올렸다.

처음에는 힘겨워 따라가기도 버거웠던 안무는 이제 몇 번을 해도 동선을 틀리지 않을 만큼 완벽을 뽐낼 수준이 되었다.

타이틀곡 음원 녹음도 끝난 상태라 현재는 MR을 틀어놓고 라이브 연습을 하는 중이었다. 안무가 고난이도라 라이브도 확실히 쉽지 않았다.

“어! 시작한다! 와우!”

김원이 소리쳤다. 광고가 끝나고 방송사 로고가 나오며 ‘후계자들’의 첫 화가 시작되었다.

시작부터 캘리포니아 해변을 배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장면이었다. 상의를 탈의한 남자 주인공 역할의 주민호가 눈부실 정도로 푸른 해변에서 미인들과 함께 비치발리볼을 했다.

“오······.”

김원을 비롯한 멤버들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물론 주민호의 탄탄한 근육질 몸 때문은 아니었다. 함께 비치발리볼을 하는 서양의 미녀들 때문이었다.

“입 닫아라, 마, 입 닫아.”

정윤기가 옆에 앉은 김원의 턱을 손으로 다물게 하며 핀잔을 주었다. 정윤기도 잠시 평소보다 동공이 커졌었지만, 가장 빠르게 정신을 차렸다.

이후에는 도욱도 아는 ‘후계자들’의 내용이 계속되었다. 장면을 보니 새록새록 이전에 보았던 드라마가 생각났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들게 살아가는 가난한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이 사는 곳 근처에서 혼자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오자 석지훈이 고개를 저으며 혼잣말을 했다.

“우는 것도 정말 예쁘네. 저 누나는 어릴 때부터 저렇게 쭉 예쁘네.”

안형서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헐, 뭐야 막내! 저 아름다우신 분이랑 아는 사이?”

“같이 아역 했었어요.”

“역시 다르네. 아역 배우······.”

그렇게 보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면이었다. 처연한 얼굴로 울고 있는 여자 주인공을 발견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갑작스럽게 낚아채는 손에 놀란 여자 주인공이 남자 주인공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엔딩이었다.

그리고 엔딩과 함께 케이케이가 부른 ‘후계자들’ OST, ‘말해 봐’가 흘러나왔다.

케이케이 멤버들이 일순 집중했다.

날 좋아한다 말해 봐―

널 사랑한다 말할게―

나만 보인다 말해 봐―

도욱과 안형서가 화음을 넣어 부르는 목소리가 드라마에 녹아들었다. 곧바로 정윤기의 랩이 이어지며 자막이 흘러 나왔다.

-후계자들 OST, ‘말해 봐’ (케이케이)는 오늘 자정 파인애플 뮤직에서 공개됩니다.

드라마에 대한 반응과 함께 케이케이의 OST에 대한 반응도 곧장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확인한 오백호 실장이 멤버들에게 말했다.

“뮤비 촬영지 결정됐다.”

예고편을 보며 드라마와 자신들이 부른 OST 곡의 여운에 젖어 있던 멤버들의 고개가 오백호 실장 쪽으로 쏠렸다.

오백호 실장의 표정이 좋지만은 않았다. 오백호 실장 또한 케이케이 멤버들과 함께 촬영지에 가게 될 것이었다.

“너희 이제······ 큰일 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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