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58화 (158/225)

# 158

왕관을 쓰려는 자 (4)

심준 팀장은 화앤수 제작사의 실세라고 할 수 있는 이사실에 연락을 넣었었다. 이사는 자리를 비웠었고, 전화를 받은 비서는 어떤 일로 이사님을 만나고 싶으신 것이냐 물어왔었다.

당시 심준 팀장은 도욱과 이야기한 대로 케이케이의 멤버가 정은수 작가님의 팬이어서 만나고 싶다는 식으로 이사와 만나고자 하는 의사를 전했다.

연예인이나 유명 관계자들이 서로 만나고 싶다고 회사에 연락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물론 진짜로 그런 의도였다면 앨범제작팀 팀장이 아닌 매니저 실장이 연락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쪽이 더 자연스러웠고, 만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아무런 협의조차 없었는데 대뜸 OST 작업에 참여하고 싶다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금의 연락은 비서로부터 되돌아온 연락이었다.

연락이 왔다는 것은 물론 긍정적인 뜻이었다.

그렇게 도욱은 얼마 후 제작사 화앤수의 이사와 드라마 최고의 스타작가라 할 수 있는 정은수를 한자리에서 만나게 되었다.

심준 팀장이 도욱과 동행했다.

네 사람의 만남은 일산의 고급 한정식집에서 이루어졌다. 정은수 작가의 작업실이 일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도착한 심준 팀장과 도욱이 A코스 4인분을 준비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 정도 늦게 정은수 작가와 화앤수의 권미정 이사가 도착했다. 다다미방으로 된 곳의 문을 밀고 두 사람이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있던 심준 팀장과 도욱이 일어섰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아유, 늦어서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권미정 이사가 입을 떼자마자 사과의 말을 전했다. 심준 팀장이 얼른 괜찮다고 답했다. 뒤편에 선 정은수 작가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정은수 작가는 펌을 한 단발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마흔 다섯 정도의 나이였지만 삼십 대 후반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로 동안이었다.

물론 화장기 하나 없이 꾸미지 않은 얼굴이라 더 어려보이는 걸 수도 있었다. 차림새도 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채였다.

자리에 앉는 정은수 작가는 무척이나 피곤해 보였다.

“이렇게 자리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먼저 코스 시켜놨는데 괜찮겠지요?”

“그럼요, 그럼.”

권미정 이사가 붙임성 좋게 웃으며 답했다. 확실히 정은수 작가를 케어하며 동시에 수많은 방송 관계자들까지 주무르는 인물다웠다.

모두 자리에 앉자 곧 종업원이 식전 음식들을 내왔다.

심준 팀장과 권미정 이사가 식전 음식들을 비우며 대화를 이었다. 정은수 작가에게서 피곤한 기색이 느껴졌다. 심 팀장과 도욱이 정은수 작가의 기색을 살피는 게 느껴졌는지 권미정 이사가 말했다.

“그 지금, 우리 정 작가가 드라마가 촬영에 들어가서······. 방영도 곧 하거든요. 그래서 좀 바빠요. 대본 쓰느라. 오늘도 거의 밤새우고 낮에 잤다가 막 일어나서 나온 거예요.”

권미정 이사의 설명에 심 팀장과 도욱은 정은수 작가의 상태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정신도 아직 안 들었는데 식사 자리에 끌려 나온 것이다.

심준 팀장이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이곤 물었다.

“‘후계자들’ 말씀이시죠?”

“아시는구나. 홍보 들어가긴 했죠. 네, 맞아요. ‘후계자들’이요.”

권미정 이사가 반색을 하며 답했다.

“대본 작업하시느라 바쁘실 텐데······. 저희가 괜히 작가님께 폐가 됐네요.”

“어휴, 아니에요. 정 작가도 어차피 밥은 먹어야죠. 안 그래, 정 작가?”

권미정 이사가 정은수 작가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 정은수 작가는 식전 음식으로 나온 냉채를 조금 먹고서야 정신이 든 모양이었다.

“맞아요. 저두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정은수 작가의 말에 심준 팀장이 허허, 하고 웃었다.

“그리구 도욱 씨가 연락줬다고 해서 나왔어요. 솔직히 다른 사람이면 안 나왔지, 내가 이 자리에.”

“맞아요, 맞아. 도욱 씨 만나고 싶었던 건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권미정 이사가 맞장구치며 말했다.

심준 팀장이 도욱을 곁눈질했다. ‘거봐, 이러다 너가 주인공 될 수도 있다니까’ 하고 말하는 듯해서 도욱은 잠시 웃음을 참아야 했다. 심준 팀장이 자신을 인정해주는 것은 좋았지만, 너무 심하게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촬영까지 들어간 드라마였다.

“영광입니다, 작가님.”

“제 팬이라구요. 정말이에요?”

도욱의 말에 정은수 작가가 치고 나왔다. 도욱은 당황하지 않고 그렇다 답했다.

“뭐 제일 좋아하는데요? 제 드라마 중에.”

“저!······. 아, ‘지금은 방송중’가장 좋아합니다.”

도욱은 아차 싶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드라마를 좋아한다고 할 뻔했던 것이다. 정은수가 조금 의외라는 듯 말했다.

“내 드라마 뭐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지금은 방송중’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던데. 나는 ‘비밀정원’이나 ‘뉴욕의 연인’ 말할 줄 알았어요. 도욱 씨가. 아, ‘뉴욕의 연인’할 때는 너무 어렸나? 도욱 씨가?”

그 말에 심준 팀장이 웃으며 “어렸죠, 완전!” 하고 신나서 대답했다.

도욱이 ‘지금은 방송중’을 좋아한다고 했던 것이 정은수 작가의 마음에 든 게 분명했다. 정신이 들기도 했고, 기분이 좋아지니 말수부터 달라졌다.

‘뉴욕의 연인’이 방영중일 땐 도욱이, 그러니까 김보명도 어린 나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행어인 ‘자기야, 가자!’는 도욱도 알 정도였다. 전 국민이 그 말을 한 번쯤은 해봤을 정도의 인기였다. 재벌 남자와 가난한 여자라는 클리셰 소재로 국민 드라마를 만들어낸 정은수 작가는 그 뒤로도 승승장구했다.

‘비밀정원’은 작년을 휩쓴 드라마였다. 이번에는 재벌 남자주인공과 가난한 여자주인공의 사랑이야기에 약간의 판타지가 가미된 작품으로 남자주인공의 말투를 따라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사이 나왔던 ‘지금은 방송중’ 또한 두 드라마에 비할 건 아니었지만, 상당한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였다. 정은수 작가가 고수해오던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뒤집어 배우와 작가, 피디와 매니저 등 방송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실감나게 담아낸 드라마였다.

“아···. 아무래도 남자라서 로맨스에는 별 흥미가 없어요?”

정은수 작가가 혹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가지고 물었다. 로맨스 드라마 전문 작가 앞에서 로맨스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오만한 배우도 있기야 하겠지만, 도욱은 그런 배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거짓으로 관심 있는 척 꾸며낸 것도 아니었다. 정은수 작가의 드라마는 실제로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아닙니다. 작가님 다른 작품들도 좋아하고······. 그리고 ‘지금은 방송중’도 로맨스 드라마지 않았습니까?”

“그건 그래요. 재벌 남주만 쓰는 속물 작가가 쓰는 게 다 그렇죠, 뭐.”

정은수 작가가 농담처럼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스스로 하며 말했다. 인기와 안티가 비례하는 건 가수나 드라마 작가나 마찬가지였다. 정은수 작가에게는 작품성 없이 시청률만 쫓는 속물 작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곤 했다.

정은수 작가 본인이 그걸 웃어넘긴다는 건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도욱은 난처해하지 않고 받아쳤다.

“그러니까 드라마죠. 작가님이 속물인 게 아니라 현실이 주지 못하는 환상과 꿈을 주시는 거고요.”

“아, 내참. 어린 친구가 잘생기기만 하면 됐는데 뭘 또 말까지 통하고 그래요?”

정은수 작가가 진심으로 기분 좋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권미정 이사도 싱글벙글이었다.

“팬이라더니 진짜인가 보네. 정말. 아휴.”

정은수 작가를 이 자리에 데리고 나오면서도 혹시 정은수 작가의 기분이 오늘 자리로 인해 상하지 않을까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다른 때라면 괜찮았지만 요즘은 한창 대본 작업 중이었다. 첫 방송도 얼마 남지 않아 무척이나 예민한 상태였다.

그러나 다행이 도욱 덕분에 오히려 정은수 작가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권미정 이사가 바쁜 때에 정은수 작가를 대동하고 도욱을 만나고자 한 건 권미정 이사대로 이유가 있었다.

“혹시 드라마 출연 생각 있어요? 그래서 만나자고······.”

권미정 이사가 까놓고 이야기를 꺼냈다. 연기자이기도 한 도욱이 만나자고 했으면 뻔한 이유일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도욱이 손사레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아닙니다. 정말 팬이어서 뵙고 싶어서 연락 드린 겁니다. 대본 집필 중이셔서 바쁘실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 했어요. 죄송합니다.”

도욱의 말에 권미정 이사가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아니에요?”

“네. 아닙니다.”

도욱이 진심인 듯해서 더 의아했다. 물론 도욱은 진심이었다. 출연을 부탁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 지금은 케이케이의 활동에 집중해야지 혼자 드라마에 들어갈 때도 아니었다.

“아쉽게 됐네.”

“네?”

정은수 작가의 말에 도욱이 무슨 말이냐는 듯 물었다.

“사실 나두, 여기 권 이사님두 도욱 씨 팬이에요. 도욱 씨 데뷔작 보면서 신윤호 감독이 어디서 저런 친구 데려왔나 했는데······. 아이돌이라구.”

“아, 네에······.”

“내가 아이돌은 잘 몰라서. 뭐 그때까진 그냥 그랬는데 ‘푸른 고래’두 봤어요. 아는 애가 시네필이라 같이 소극장에서 봤는데 ‘준비하라’에서 봤던 그 배우 맞나 싶게 또 다르더라구요.”

“감사합니다.”

“일단 내 드라마 남자주인공 하려면 얼굴이 중요한데 얼굴이 백점이니까. 도욱 씨가 해주면 너무 좋을 것 같구.”

도욱은 정은수 작가의 칭찬에 그저 감사 인사를 할 뿐이었다. 도욱은 정말로 얼떨떨했다. 정은수 작가는 앞으로 더욱 잘될 작가였다.

지금 붙는 속물작가라는 꼬리표도 잠깐이었다. 시청률 50퍼센트를 넘기는 드라마로 연이어 대박 작품을 터뜨리면, 더는 그런 꼬리표도 붙이지 못하게 되는 것이었다. 거기에 점점 더 정은수 작가 작품 세계는 재미와 깊이 모두를 붙잡는 그것이 된다.

그런 정은수 작가가 도욱을 눈여겨보게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다른 삶이다. 꿈꾸는 것 이상의 삶이 되어가고 있어.’

도욱은 속으로 감탄하며 생각했다.

“아휴, 우리 정 작가가 사실 오래 전부터 기획하는 드라마가 있거든요?”

“그렇습니까? 무슨······.”

“뭐 아직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렇게 얼굴도 보구 마음도 잘 맞으니깐 나중에 같이 작업하면 좋겠다 이거지요.”

권미정 이사의 말에 심준 팀장과 도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정 작가님 드라마라면 꼭 출연하고 싶습니다.”

도욱의 말에 권이정 이사와 정은수 작가의 표정이 밝아졌다.

사실 ‘후계자들’에 캐스팅 하고 싶었지만 투자사와의 문제로 도욱의 캐스팅 건은 무산되었다. 그때 정말로 아쉬워했던 권미정 이사였다.

권미정 이사나 정은수 작가는 이 일을 꽤 오래 해 온 베테랑들이었다. 이미 도욱이 스타에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앞으로는 더 대성할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전에 잡아두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때문에 도욱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다고 했을 때는 무척이나 기쁜 마음이었다.

예술 영화를 찍은 것을 보며 아예 영화 쪽으로 빠져서 다른 몇 배우처럼 드라마판으로는 안 넘어올까 걱정했었기 때문이었다.

밥을 먹으며 서로 잘 모르는 드라마 쪽과 가수 쪽의 이야기를 교환하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LIL과의 작업 때문에 미국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이 기술 차이와 기술자 대우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그건 드라마 쪽에서도 마찬가지로 미국 드라마 시장과는 너무 큰 차이가 있다며 같은 엔터테인먼트 업계인으로서의 공감대도 형성됐다.

이야기가 무르익었을 때, 심준 팀장이 이야기를 꺼냈다.

“아, 사실 정은수 작가님 드라마 팬이다 보니까 드라마에 출연은 못 하더라도······. 어떻게든 같이 작업을 하고 싶긴 했습니다.”

심준 팀장의 말에 권미정 이사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본론이 역시 따로 있었구나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르는 체하며 무엇이냐고 호들갑스럽게 물었다.

“어머, 뭔데요, 뭔데! 우리도 뭐든 같이 하면 좋죠.”

“그 OST······.”

“아······.”

OST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권미정 이사의 표정이 흐려졌다.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속이 터져요. 아실 수도 있겠는데 거기에 발 담그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야지. 워낙 어? 짭짤하긴 하죠.”

권미정 이사의 말에 이번엔 심준 팀장의 표정이 살짝 어두워졌다. 조금 생각하던 권미정 이사가 말을 이었다. 케이케이가 OST에 참여한다면 절대로 손해는 아니었다.

“거기에다가 이번엔 정 작가까지 미는 곡이 따로 있어서······. 아마 그걸로 메인테마가 될 것 같기도 하고······. 꼭 메인 테마 아니어도 괜찮으면······.”

권미정 이사가 말을 흐리자 정은수 작가도 거들었다.

“그러게. 이번에 내가 꽂힌 곡이 있어서, 안 그래도 그쪽에 내일 연락을 하려고 하거든요. 조금만 빨리 연락을 줬으면 좋으면 좋았을걸.”

안타깝다는 듯 말하는 정은수 작가에 도욱은 괜찮다고 답하며 물었다.

“어떤 곡이시길래 그러세요?”

“아, 도욱 씨가 곡을 더 잘 알 테니까 들어볼래요? 신인이라서 나두 추천하면서두 불안한 것두 있어요.”

정은수 작가가 휴대폰을 꺼내 음악 재생 어플을 켰다.

곧 정은수 작가가 꽂혔다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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