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
왕관을 쓰려는 자 (1)
“무슨 일이야?”
“마, 뭔 일 있나.”
거실 테이블에서 이번에 정윤기가 작사, 작곡한 곡에 대해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던 도욱과 정윤기가 놀라서 물었다.
그러나 휴대폰을 들고 있는 석지훈은 두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오백호 실장에게 상황을 전달하기 바빴다.
“형서 형 병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네······. 네. 목소리가 거의 안 나와요. ······네. 알겠습니다.”
석지훈의 말에 놀란 도욱과 정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윤기가 빠르게 지훈과 안형서가 룸메이트로 지내며 쓰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후!”
훅 들이치는 습기에 정윤기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냈다. 두 사람의 방이 밀림과도 같은 습기로 가득했다. 도욱도 축축하기까지 한 공기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누워있던 안형서가 벌컥 문 열리는 소리에 꿈틀대며 몸을 일으켰다.
“어! 일어나지 마세요. 누워 있으세요, 형.”
도욱이 얼른 그런 안형서를 말렸다. 안형서는 반쯤 감긴 눈으로 문을 열고 들어온 게 도욱과 정윤기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알았다는 듯 다시 몸을 눕혔다.
방 안을 두리번거린 정윤기가 습기의 정체를 파악했다. 자리를 크게 차지하고는 있지만 책과는 거리가 먼 안형서와 석지훈이 앉는 법 없던 책상 위를 커다란 가습기가 차지하고 있었다.
안형서의 감기 때문에 틀어 놓은 모양이었다.
안무 연습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나흘 전부터 안형서는 약한 감기를 앓아왔다.
막 안무 연습에 들어간 터라 제대로 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연이어 앨범 수록곡들이 결정 되면서 간간이 생긴 녹음 일정까지 모두 소화해야 했다.
약을 챙겨 먹고 급한 대로 병원에서 주사도 맞고 왔지만 감기는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안형서가 콜록거리며 기침했다.
“그러게 무리하지 말라니까.”
정윤기가 혼잣말처럼 안형서를 나무라며 한숨을 쉬었다. 나무란다기 보다는 걱정되는 마음에 한숨처럼 나온 핀잔이었다.
무리하지 말라고 했어도 무리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을 정윤기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컴백이 겨우 한 달 하고도 열흘 정도 남은 상황이었다.
당장 타이틀 곡 녹음이 완성되면 그다음부터는 재킷 촬영과 뮤직비디오 촬영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줄줄이 예정된 스케줄을 뻔히 알고 있는 멤버들이었는데 힘들다고 누구 하나 쉬고 싶다고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더욱이 안형서는 타이틀곡에서 자신이 맡은 파트에 무척이나 만족하고 있던 상태라 누구보다 컴백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일본에서 돔 투어를 하면서도, 또 미국에서 LIL과 작업을 하면서 또 한 번 보컬적인 성장을 이룬 안형서였다. 이번 곡은 그런 성장을 모두 녹여낼 만한 곡이었다.
케이케이 팬들에게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보여줄 기회가 왔음을 느낀 안형서는 케이케이의 멤버가 아닌 안형서 개인으로서도, 어떻게든 보컬로서 강한 인상을 남기고자 했다.
그러니 더욱 연습을 쉴 수 없었다. 안무 연습이 끝나고도 안형서는 꾸준히 노래 연습을 했다. 타이틀곡 자신의 파트는 가장 좋은 목소리, 가장 좋은 호흡법을 찾기 위해 몇백 번 불러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형······. 목소리 안 나와요?”
누운 채로 왜 들어왔냐는 듯 정윤기와 도욱을 보고 있던 안형서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종일 방 안에서 안 나와서 약 기운에 잠을 오래 자나 보다만 싶었던 멤버들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석지훈이 뒤늦게 안형서의 심각한 상태를 알아차리고 오백호 실장에게 전화를 넣었던 것이다.
“안 나온대요. 괜히 목 써봤자 안 좋을 것 같아서 일단 말하지 말라고 그랬어요.”
오백호 실장과 전화를 마치고 따듯한 물을 한 잔 떠 온 석지훈이 멍하니 선 두 사람의 뒤에서 말했다.
“인마 이거, 그제 병원에선 그냥 감기라 안 했나.”
석지훈이 끄덕였다.
그제 연습 시간 전에 매니저인 구철민과 함께 병원에 다녀온 안형서는 가벼운 감기였음을 전하고는 다시 연습을 매진했었다.
그러다 몸 상태가 더 나빠진 게 분명했다.
“으으······.”
안형서가 답답한지 앓는 소리를 냈다. 소리를 내자 목이 아픈 모양인지 목을 부여잡으며 눈을 감아버렸다.
목이 이렇게 아프고, 목소리가 안 나오는 정도라면 그냥 감기라고 넘길 상황은 확실히 아니었다.
“오 실장님은 뭐라고 하셨어?”
도욱이 물었다.
“실장님은 지금 미팅 중이시라 못 오시고 철민 형이 온대요. 큰 병원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하시는데요.”
석지훈의 대답에 도욱과 정윤기가 끄덕였다.
얼마 후, 구철민이 숙소로 와 안형서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뒤늦게 숙소로 돌아와 소식을 들은 박태형과 김원의 얼굴에도 수심이 가득했다. 신체적으로는 고된 상태였지만, 정신적으로 활력이 넘치던 숙소의 분위기가 금세 침울해졌다. 숙소의 분위기 메이커였던 안형서여서 더욱 그랬다.
“내일 모레 녹음은······.”
“어려울 것 같네.”
도욱이 석지훈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답했다.
동료가 몸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내일 모레 있을 녹음 스케줄 걱정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후······.”
리더인 정윤기의 한숨이 깊어졌다.
“병원 갔다 와서 오늘 낫는다고 해도 하루 이틀은 더 쉬어야지 않겠나.”
“맞아요······. 활동 중에 아프면······.”
정윤기의 말에 박태형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활동 중에 아프면, 이라는 가정만으로도 모두의 안색이 한층 더 어두워졌다.
‘확실히 그건 더 최악이다.’
무대에서 쓰러질 뻔한 도욱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안형서는 체육 예능에서도 서강준의 태클에 걸려 넘어져 연습에서 제외된 적 있었다. 다행이 활동 시기는 아니었지만 당시에도 빨리 연습에 복귀하고 싶어서 애가 타 했는데 이번에는 컴백이 코앞이었으니 더욱 그럴 터였다.
‘며칠 쉬고 나아지면 좋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는 도욱이었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
역시나 안형서는 단순히 감기 때문에 목이 아픈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평범한 목감기였지만, 쉬지 않고 계속해서 목을 쓰는 바람에 성대결절 초기 증상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물론 증상 자체로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 한동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금세 호전될 것이라고 의사는 말했다.
그러나 안형서의 직업은 가수였다. 그것도 컴백을 앞둔 가수.
‘쉬어가면서’라는 말이 가능할 리 없었다.
병원에서 돌아온 구철민과 안형서를 멤버들이 둘러쌌다. 미팅을 끝내고 허겁지겁 돌아온 오백호 실장도 병원에 간 두 사람만 숙소로 다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날 좋은 봄인데 머플러로 목을 칭칭 감싸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안형서 대신 구철민이 소식을 전했다.
성대 결절이라는 단어에 모두 아연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반응을 살핀 안형서가 휴대폰을 꺼내 단체 메시지로 보냈다.
[너무 너무 미안 죄송합니다ㅠㅠ]
약을 먹은 후라 조금 나아져 말을 할 수는 있었지만, 아직까지 말을 하면 목이 아팠고 의사가 최대한 목을 아끼라고 한 상태였다. 하루라도 빨리 나으려 안형서는 기꺼이 말을 하지 않기로 했지만 미안한 마음만은 전하고 싶었다.
“괜찮아요, 형······.”
도욱은 안타까움에 말을 잇지 못했다. 안형서는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안형서의 손가락에 시선이 집중됐다.
[녹음 날까지 얼른 나을게]
“뭐라노. 말 좋아하는 인간이 말 못 해서 우짜나. 마, 가서 쉬어라.”
정윤기의 말에 안형서가 울상을 지으며 제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아무도 안형서에게 무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컨디션 관리를 잘 하지 못한 것은 안형서였지만, 술이나 담배를 하거나 밖에서 유흥을 즐기다 몸이 안 좋아진 것도 아니었다.
연습을 하다 안 좋아진 몸에 가장 속상할 사람도 안형서였다.
오히려 안형서의 상태 때문에 무거워진 마음으로 자신을 탓하고 있는 것은 오백호 실장과 도욱, 정윤기였다.
가수를 관리하는 건 매니저의 일이었다. 그러려고 매니저가 있는 것이었다. 오백호 실장은 안형서의 상태를 너무 만만하게 봤던 자신을 탓했다.
정윤기는 리더로서 멤버를 챙기지 못했던 점을 탓했다. 연습이 급해 안형서가 힘들어 하는 걸 알면서도 괜찮겠지 싶어 내버려두었던 것이다.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안형서에게 너무 많은 부담을 준 걸지도······.’
부단한 노력으로 데뷔 이후부터 지금까지 보컬적 성장을 이룬 안형서였으므로 도욱은 그 기대치를 이번 곡에 쏟아 부었다. 그것을 대번에 알아차린 것도 안형서, 본인이었다.
안형서가 자신이 가진 모든 기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려고 한 일이었지만, 그게 부담이 됐을 수도 있었다.
‘프로듀서로서 그 짐을 덜어줬어야 하는 건데······.’
도욱은 생각했다.
그러나 스스로를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결론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없었고, 중요한 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였다.
***
안형서를 제외한 케이케이 멤버들과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 오백호 실장이 한자리에 모였다. 케이케이 앨범의 프로모션 스케줄을 조정해야 할 팬-마케팅팀 이대형 팀장도 함께였다.
“당장 언제쯤 녹음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황인 거죠?”
심준 팀장이 묻자 오백호 실장이 답했다.
안형서가 구철민과 병원에 다녀온 게 이틀 전의 일이었다. 안형서는 병원에 한 번 더 다녀왔다. 감기 자체는 나았지만 여전히 성대에 무리를 주지 않는 게 최선인 상황이었다.
“못해도 2주 정도는 무리하지 말고 쉬라는 게 의사 소견입니다.”
“2주······.”
심준 팀장이 캘린더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이대형 팀장의 손도 빠르게 움직였다.
“멤버들도 2주는 쉬고 완전히 회복한 뒤 녹음이든 활동이든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데는 이견이 없고요.”
오백호 실장이 멤버들의 의견 또한 전달했다. 안형서가 약을 먹고 잠든 사이에 의논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앨범 제작 일정을 전체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심준 팀장의 미간이 좁혀졌다.
타이틀 곡 녹음보다 안무연습이 먼저 이루어 졌을 만큼 이번 안무는 난이도가 무척 높았다.
안무가인 노태현은 가이드 버전의 곡과 도욱이 알려준 파트 분배를 토대로 안무를 짜 온 상태였다.
녹음 후 정식 버전으로의 연습도 상당한 시간 필요했다.
녹음이 딜레이 되면 다른 것들도 모두 딜레이 되기 마련이었다.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오 실장님 방송 스케줄은 아직 잡힌 거 없는 거 맞죠? 이 팀장님 쪽도······.”
심준 팀장이 오백호 실장과 이대형 팀장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저희야 컨셉 사진이랑 뮤직비디오 나오는 것 맞춰서 마이튜브 광고 내보낼 예정이었어요······. 그걸 미루면 되긴 합니다.”
다행이 이대형 팀장의 일정은 충분히 조정 가능한 것이었다. 오백호 실장도 끄덕이며 답했다.
“컴백쇼 논의 중인 방송사가 있긴 한데, 논의였으니까 일정 조율 다시 해야겠죠.”
“원래 예정했던 컴백일로부터 한 달 정도 미루는 게 최선인 것 같군요.”
심준 팀장이 다른 가수들의 일정도 확인하며 말했다.
컴백 일정을 잡을 땐 다른 대형 가수들과의 컴백 일정도 생각해야만 했다. 완벽하게 타이밍을 맞출 수는 없지만 대형가수들끼리 괜히 맞붙어서 좋을 일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케이케이의 컴백이 한 달 정도 연기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다른 가수들의 컴백 일정에도 영향을 미칠 게 분명했다.
‘한 달이라······.’
짧을 수도 있지만, 길다면 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예전에는 일 년에 한 번만 앨범이 나와도 인기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한시 바삐 앨범을 들고 나갔어야 할 타이밍이 늦춰지게 되었으니 도욱은 조금 고민스러웠다.
“팬들이 걱정이긴 하네요. 그사이에 지훈 씨 예능 말고는 국내 다른 활동이 전혀 없으니······. 그 짧은 시기에 유닛 앨범이나 다른 앨범을 낼 수도 없는 일이고요.”
마침 이대형 팀장도 도욱과 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이 시기를 넘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도욱은 방법을 생각했다. 공백을 메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거면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