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역습 (4)
***
“와······. 도욱아 진짜 대박이다.”
“녹음실 귀신보다도 이게 더 확실한 대박 징조 아니겠나. 마, 도욱이 니 진짜 대단하다.”
“당연하지. 꿈에서 떠올린 곡인 건데!”
회사 내에 있는 스튜디오에 모인 멤버들이 한 마디씩 했다.
안형서와 정윤기가 발 벗고 나서 도욱을 칭찬했다. 일부러 하는 칭찬이 아니라 칭찬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어서 하는 칭찬이었다.
깊은 수면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꿈에서 떠올린 곡이라기보단 도욱이 제대로 잠들지도 못한 채로 생각해낸 곡에 가까웠지만, 아무튼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멤버들은 더 극적으로 생각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대로 잠에서 깨어나 작업을 시작한 도욱은 하루, 24시간 동안 잠도 자지 않고, 최소한으로 먹고 마시며 타이틀곡을 완성해냈다.
일주일 안에 일단 기본 비트만 잡아보자고 계획을 세웠던 앨범제작팀을 멍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하루만에 곡을 완성해 버린 도욱에 전화를 받은 심준 팀장은 벙찐 표정으로 이렇게까지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고 중얼거렸다.
도욱도 굳이 체력을 소비해가며 무리를 할 생각은 없었다.
작업이 막히거나 지지부진해지면 도욱도 쉬어가며 남은 작업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정말 꿈처럼 곡이 떠올랐고 이후의 작업도 막힘이 없었다.
아직 편곡까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우선 완성된 곡을 어서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24시간 넘게 깨어 있어 정신이 몽롱했기 때문에 자신의 곡이 어떤지 감도 오지 않았다. 멤버들에게 들려주고 솔직한 평가를 받고 싶었다.
멤버들은 도욱의 연락에 다른 연습이나 스케줄도 모두 미루고 한달음에 스튜디오로 달려왔다.
정윤기와 안형서가 나누는 대화를 듣던 김원이 물었다.
“녹음실 귀신? What is······.”
“어······. 요즘에는 잘 없는데···. 성공한 가수들이 꼭 녹음실에서 귀신을 봤다거나 귀신 목소리를 들었다거나······. 그런 말을 했었어서······. 녹음실에서 귀신 봤다고 하면 엄청 성공할 징조로 보거든요.”
“오?”
박태형의 설명에 김원이 눈을 크게 뜨며 호기심 어린 눈을 했다.
서양문화권에서 자란 김원은 한국의 귀신 이야기나 속담 등에 무지한 편이었고, 그런 것에 굉장한 호기심을 느끼는 타입이었다.
석지훈이 그런 김원에게 추가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녹음실이 노래하는 곳이니까 귀신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귀신이 노래를 좋아해?”
“그렇다고들 하죠.”
“와우, 어쩐지 등골이 서운하다.”
김원의 말에 박태형과 석지훈의 얼굴에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서운한 건 슬픈 거고, 서늘하다가 맞아요. 이럴 때는.”
도욱이 졸린 눈을 비비며 김원의 말을 고쳐주었다. 김원은 잘 나가다가도 이렇게 한 번씩 단어 사용에 있어 실수를 범했다.
그러나 그런 실수라도 없으면 김원이 한국에서 살지 않았다는 걸 믿지 못할 듯했다. 그만큼 웬만해서는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했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 스튜디오에서 귀신을 본 사람은 없지만······. 아무튼 대박 예감이라는 거지.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작업해준 우리 프로듀서 덕분에!”
안형서의 말에 석지훈이 끄덕였다.
“안 그러고도 항상 대박이었잖아요.”
그건 그렇지, 하며 모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다 도욱이 덕분이라는 말에 도욱은 조금 쑥스럽게 웃으며 기계를 만졌다.
“아직 끝까지는 믹싱 못 했어요······. 1절까지만 완벽하다고 생각하시고 들으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감상은 솔직히 말해주시면 좋겠어요.”
“오케이!”
“어차피 하루 만에 완성한 거라 아예 엎으라고 해도 상관없으니까······.”
도욱이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행여나 도욱이 맘 상할까 걱정 말고 솔직한 감상을 내놓길 바라는 것이었다.
멤버들은 도욱이 무슨 걱정을 하는지 안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말했다.
“네.”
물론 도욱도 멤버들이 그런 식으로 도욱을 배려하는 것에 신경을 쓰느라 감상을 내놓는 일에 망설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솔직한 감상이 도욱에게도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고, 모두에게 중요한 일이었다.
곡이 좋지 않으면 아무리 쌓아 놓은 인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니 좋은 곡을 뽑기 위해 어떻게든 노력해야 할 때였다.
어느 앨범이고 중요하지 않은 앨범이 없었지만, 이번에 나올 앨범은 또 이번에 나오는 것대로 중요했다.
우선 정상을 지켜야 하는 입장이었다.
위를 보고 달리는 것보다 그 자리를 지키는 일이 더 어려운 일임을 멤버들은 최근 깨달아가는 중이었다.
신인 때나 인기를 얻어갈 때는 주변은 보이지 않았었다. 그럴 여유가 없다는 게 맞는 말이었다. 경주마처럼 케이케이의 음악을 한 명이라도 더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달렸었다.
그러나 위에 올라서니 주변을 돌아볼 여력이 아무래도 생기게 됐고, 아래가 내려다보이는 것이었다.
맨투맨이나 최근 인기를 끄는 아이돌을 보고 있으면 ‘언제까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어쩔 수 없이 생겼다.
그렇다고 아래만 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케이케이에게는 세계 시장 정복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다시 한 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다.
‘대상 한 번 타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더 크고 넓은 곳을 향해가는구나.’
멤버들과 앞으로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런 감격에 젖게 되는 도욱이었다.
도욱은 생각하며 준비해둔 곡을 플레이했다. 자신이 써내려나간 곡을 남에게 선보이는 일은 언제나 떨리는 일이었다.
‘어떨까······. 케이케이의 음악 색깔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노력했고, 거기에 이전과 비교될 만큼 사운드를 파워풀하게 채웠다.’
쿵―! 쿵―!
처음 시작부터 베이스의 울림이 남달랐다.
멤버들은 집중해서 곡을 감상했다. 집중한 멤버들의 표정이 다시없을 만큼 진지했다.
1절 중반에 들어서자 비트가 느려지면서 오히려 멜로디 부분의 음이 고음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가사가 붙어 있지 않았고, 가이드도 되어 있지 않았지만 ‘고음의 보컬이 이곳에서 터진다면······.’ 하는 생각이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구간이었다.
쿵! 쿵― 쿵― 쿵―!
후렴구는 ‘이곳이 훅이구나!’ 싶게 강렬했다. 바닥에 발을 구르며 뛰어 오르고 싶은 충동이 들게 했다.
반주가 흘러나오는 동안 멤버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않았다. 단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은 기회처럼 노래에 집중해 있었다. 도욱도 마찬가지였다.
“엇!”
막 문을 열고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오던 오백호 실장과 구철민은 도욱이 작곡한 곡의 반주 외에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숨을 삼켰다.
멤버들은 힐끔 두 사람에게 잠시 시선을 주었을 뿐이었다.
두 사람은 곡 초안이 완성돼 멤버들이 모였다는 소식에 점심이 지나도록 밥을 먹지 않았을 멤버들을 위해 근처 백반집에서 밥을 포장해 온 것이었다.
지금 시간이 오후 두 시였다.
자신의 방에서 대충 작업을 하다 사무실 스튜디오로 나온 도욱이 밤새 곡 작업을 마치고 멤버들에게 연락을 한 게 오후 한 시였다. 막 일어나 나온 멤버가 대부분이라 밥을 챙겨먹을 시간도 없었다.
오백호 실장과 구철민은 살금살금 움직이며 포장해 온 밥을 테이블 위에 놓은 채 소파에 가 앉았다.
노래가 끝나고, 잠시간 녹음실에 정적이 돌았다.
의자에 앉아 버튼을 조작하던 도욱이 천천히 뒤돌았다. 뒤에는 멤버들이 서 있었다. 도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때요?”
도욱의 물음에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서 있던 정윤기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너무······.”
도욱이 긴장으로 침을 한 번 삼켰다.
“너무 최곤데?”
정윤기의 반응에 도욱의 긴장으로 굳어져 있던 어깨가 풀렸다. 아, 하는 탄성과 같은 신음이 절로 터졌다.
“진짜. 마, 진짜 최고다. 나만 소름 돋았나?”
“아니, 나도!”
“저도······.”
정윤기의 물음에 안형서와 박태형이 거들었다. 김원과 석지훈도 예외없이 엄지를 치켜 들며 감탄을 표했다.
컨셉 회의 때 회의하며 바랐던 바로 ‘그 곡’이라는 느낌이 모두에게 전율처럼 일었다.
오케이 활동을 하며 이제는 정윤기도 작곡과 프로듀싱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아직 배울 점이 많았지만,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이 케이케이 앨범에 싣자고 할 만큼 완성도 있는 곡을 써내기 시작한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정윤기는 현재 도욱이 뽑아낸 곡이 얼마나 대단한지 더 잘 알 수 있었다.
필요한 요소들이 다 있는 느낌이었다. 기, 승, 전, 결 중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은 기분이었다.
“도욱아······. 어떻게 하루 만에 이런 걸 만들······. 와······.”
박태형은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감탄만 했다. 평소 늘 조용하던 박태형마저 감탄을 늘어놓자 이번에야말로 조금 더 쑥스러워진 도욱이었다.
“이대로 가면 될까요? 2절도 이런 식으로······.”
“어, 당연하지! 근데 하나 물어볼 거 있는데.”
“물어보세요, 형.”
“그······. 고음부는 내 파트가 되려나?”
“아, 아마 이대로 가게 된다면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도욱의 답에 안형서가 끄덕였다. 확실히 킬링 파트가 될 부분이었다. 원래도 고음 파트를 맡으며 노래를 살리는 역할을 하는 안형서였지만, 이번 고음 파트는 다른 곡에서보다 임팩트가 있었다. 그 구간이 길기도 했다.
“별로인가요?”
“아니, 아니! 절대로 아니! 별로인 게 아니라 오히려 너무 좋아서. 내가 잘해야겠다 싶어서.”
안형서가 손을 내저으며 답했다.
정말로, 안형서로서는 만족스러운 파트일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멤버들의 파트까지 모두 신경 써가며 작곡했을 도욱이 안형서의 실력을 얼마나 믿고 있는지도 알 수 있는 파트였다.
“형은 지금도 잘하고 계세요.”
“아니 뭐 그런 칭찬을 듣겠다는 건 아니었구~!”
안형서가 웃으며 말하자 석지훈이 뒤에서 조용히 ‘그거 맞는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렸다. 안형서가 그런 석지훈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런데 곡이 막 두 곡을 합친 것처럼 느껴질 만큼 베리에이션이 있는 게······.”
“네, 일부러 그런 느낌을 준 거긴 한데······.”
“아, 이상한 건 아니고. 좋아, 굿! 다만 그 빠른 템포에서 느린 템포로 넘어갈 때 브릿지를 한 마디 더 주는 게 낫지 않겠어?”
김원의 말에 도욱이 끄덕이며 빠르게 옆의 메모지에 내용을 메모했다.
파워풀한 안무가 들어갈 파트, 뛰어난 보컬과 랩 파트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했고, 곡은 하나의 곡 임에도 다양한 형태로 변주하는 식이었다. 그렇다 보니 신선하지만, 동시에 어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도욱도 작업하면서 했었다.
‘역시 그 부분을 조금 더 수정해야겠군.’
생각하며 도욱은 멤버들의 반응이 좋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곡이 타이틀곡이 되려면 더 많은 추가 작업이 필요했고, 앨범제작팀 등의 컨펌도 남아 있었다.
‘그렇지만······. 확실히 내가 원했던 곡 그 자체의 느낌이긴 해. 대중들이 원하는 곡이기도 해야 할 텐데······.’
도욱은 주먹을 꽉 쥐었다 폈다.
“곡 작업은 얼마나 더 남은 거야?”
앉아있던 오백호 실장이 다가와 물었다. 오백호 실장 역시 멤버들처럼 도욱이 곡을 완성했다는 말에 마찬가지로 놀랐었다.
“만약 이대로 가도 된다고 하면······. 2절 편곡만 조금 더 하면 돼요. 뒤로는 가사 붙여서 녹음 들어가고, 믹싱 작업 마무리하고······. 일단 오늘 거 심 팀장님한테 보내고 얘기 나눠봐야 작업 마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오백호 실장이 끄덕였다. 앨범제작팀 심준 팀장이나 팀원들이 듣고 피드백을 주는 데 적어도 하루는 걸릴 것이었다.
“그럼 일단 밥 먹고 마저 해라. 다들 배고플 거 아냐.”
멤버들이 테이블로 몰려들었다. 안 그래도 곡을 다 듣고 나니 그제야 스물스물 녹음실 안에 퍼지는 김치찌개 냄새에 현기증을 느끼던 멤버들이었다.
구철민이 빠르게 포장을 벗기며 숟가락과 젓가락을 세팅했다.
“형, 형도 얼른 와서 드세요.”
모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도욱만 아직이었다. 석지훈의 부름에 기계들을 끄고 자리를 정리한 도욱이 말했다.
“저는······. 일단 숙소 들어가서 자도 될까요.”
그렇게 말하는 도욱의 눈이 퀭하기 그지없었다. 조금만 더 깨어 있었다가는 완벽할 것만 같은 도욱의 잘생김에도 금이 갈 듯했다.
도욱은 곡에 대한 평가까지 다 듣고 한결 마음이 놓이니 긴장이 풀리면서 급속도로 피곤을 느끼고 있었다.
“와우, 얼른 들어가서 자!”
“고생했다. 도욱아.”
“그래, 얼른 자! 밥보다 잠이 먼저인 것 같다. 넌.”
오백호 실장이 걱정된다는 듯 도욱을 보냈다.
도욱은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 침대에 눕자마자 기절하듯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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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이 나오자 앨범 준비는 아우토반을 달리는 스포츠카처럼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안무를 받은 멤버들은 입을 벌렸다. 어려워도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안무였다. 무언가 불평을 하기도 전에 안무가인 노태현은 연습 시작을 알렸다.
이번 앨범 타이틀 곡에 안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노태현도 잘 알고 있었다. 회사 내부에서 거는 기대가 컸고, 부담도 있었다. 노태현은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이번 안무를 구성했다.
그런 안무였으니 케이케이 멤버들에게는 벅차게 느껴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멤버들도 어떻게든 안무를 따라가려 애썼다.
멤버들이 흘린 땀이 연습실을 흥건히 적시고 있었다.
그렇게 힘들지만 순조롭게 앨범 준비가 진행되어 가고 있을 때였다. 다른 것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문제가 생긴 건 타이틀 곡 녹음이 있기 이틀 전이었다.
“오 실장님! 큰일 났어요!”
방에서 나온 석지훈이 오백호 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거실에 모여 있던 멤버들의 시선이 석지훈에게로 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