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역습 (3)
서강준이 떠나고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맨투맨에 채은호를 새로 투입했다.
거의 한 달여를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서강준의 빈자리를 채울 멤버이기도 했고, 시상식에서 화려한 데뷔 무대를 가진 멤버이기도 했으므로 채은호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는 당연한 것이었다.
거기에 채은호는 수백 명의 연습생이 존재하는 아라 엔터테인먼트에서도 에이스라고 불리는 존재였다.
실제로 TVN 시상식을 통해 데뷔한 채은호의 존재는 왜 에이스라고 불렸는지 알만했다. 외모와 실력 모두 겸비한 인재였다.
본래 그룹의 인기는 멤버 개인의 매력도 중요하지만, 멤버들간의 호흡과 관계성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전에도 문제가 있어 몇 번 멤버 탈퇴나 교체가 있었던 그룹이 있어왔지만 이후에는 내리막길을 걷는 것이 대다수였다.
때문에 채은호에게 쏟아졌던 스포트라이트 속에는 사실 ‘잘될 리가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대다수 있었다.
그러나 채은호는 놀랍게도 맨투맨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 넣으며 팬들을 끌어 모으고, 맨투맨이 좋은 성적을 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케이케이와 데뷔 시기도 같고, 비슷한 시기에 연기자로 데뷔한 서강준과 도욱의 라이벌 구도가 형성되면서 맨투맨은 괜찮은 성적을 내고도 늘 ‘2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있었어야만 했다.
맨투맨은 한 번 고꾸라질 뻔했던 그룹이었고, 케이케이는 현재 맨투맨이 넘보기 힘든 대형 스타의 자리에 가 있었다. 오히려 그 점이 맨투맨이 맨투맨만으로 평가받게 했다.
덕분에 시상식 때 공개한 새로운 앨범으로 맨투맨은 2주 동안 음악방송 1위를 차지했다.
이후 빠르게 앨범을 준비해 지난 주 다시 컴백을 한 상태였고, 새로 나온 앨범 ‘전화해’는 엄청난 기세로 차트를 점령하고 있었다.
“와······. 맨투맨 팬들 목소리 봐. 인기 진짜 많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안형서가 말했다. 석지훈이 조금 어이없다는 듯 답했다.
“우리 팬들 목소리가 더 크잖아요.”
“그건 그렇지만. 작년만 해도 맨투맨 팬들 저 정도는 아니지 않았나?”
국내에서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 케이케이의 팬덤과 비교를 하는 건 문제가 있었다. 안형서가 중얼거리듯 말하자 옆에 있던 박태형도 놀랐다는 듯 끄덕였다.
“인기가······. 많이 는 것 같아요······.”
확실히 놀라운 기세였다.
이렇게 빠르게 연속해서 두 개의 앨범을 내고, 두 개의 앨범 모두 퀄리티가 나쁘지 않은 것은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저력이 보이기도 하는 부분이었다. 자본과 노하우의 힘이었다.
‘케이케이가 긴장해야 하는 정도는 아직 당연히 아니지만······.’
맨투맨의 재도약은 서중원 본부장의 재도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조급해하지 말자. 흔들렸던 자신의 자리를 수습하는 데는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다. 아직 맨투맨이 정상에 자리에까지 오른 것도 아니고······.’
서중원 본부장이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사장 자리를 차지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었다. 그사이 도욱은 서중원 본부장을 어떻게든 끌어내릴 생각이었다.
도욱은 잠시 입술을 물었다.
텔레비전 소리에 잠시 중단되었던 대화를 오백호 실장이 이었다.
“이대형 팀장하고 직접 말을 해보고 싶다고? 흐음······. 너 설마 다 말할 생각은?”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그런데 그쪽에서 서준 얘기를 꺼냈다는 게 걸려서요.”
“나도 그게 걸려. 뭔가 알고 있는 건가. 최성준 기자나······. 사실 근데 우리가 딱히 한 것도 없잖아?”
오백호 실장이 확인하듯 물었다.
확실히 도욱이 서강준의 몰락에 직접적으로 한 일은 없었다.
서강준의 학교폭력 사실을 폭로하기 위해 최성준 기자의 동생이 편지를 쓰게 하고 최 기자와 함께 방법을 고민한 게 전부였다.
또 대학 입시 비리도 문제도 최 기자가 도욱의 말을 듣고 본격적으로 취재에 들어간 것이었다.
이후의 일들은 서강준 스스로 추락의 길을 걸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도욱이 무언가를 조작하거나 꾸민 것도 아니었다. 전부 서강준이 한 행동 그래도의 일로 인한 것이었다. 자업자득이었고, 인과응보였다.
‘직접 움직인 건 최성준 기자였지만······. 그렇지만 최성준 기자와 내가 협력했던 건 사실이다.’
도욱은 생각했다.
연속해서 터진 일들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자신의 아들이 연예계에서 추락하는 것을 보게 된 서중원이었다. 이후에 그것을 그냥 넘길 사람은 아니었다.
‘보복······.’
처음에 도욱이 최성준 기자와 함께 복수의 뜻을 밝혔을 때 오백호 실장이 걱정하던 것도, 도욱이 힘을 키운 후에야 서강준을 무너뜨릴 수 있겠다 생각한 것도 그것이었다.
지난 날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던 서강준이 피해자로 둔갑해 도욱을 밀어붙였던 서중원 본부장을 생각하면, 보복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최성준 기자도 다른 기자들에게 자료를 넘기는 방식으로 최대한 몸을 숨겼다. 설사 드러난다고 하더라도 두려울 것 없다는 게 최성준 기자의 입장이었지만······.’
서중원 본부장이 최성준 기자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수 있었다.
그와 연락한 도욱까지 알아낸 것일 수도 있었다.
다만 어떤 식으로 보복해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짐작하기 힘들었다.
“그건 그렇지만 어떻게든 연결고리를 찾아낸 것일 수도 있어요. 그 인간이라면.”
도욱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끄덕였다.
서중원 본부장이 무언가 작정하고 알아내려고 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다 문득 도욱이 ‘복수’하겠다고 한 상대가 서강준만이 아니었던 건가 하는 생각이 오백호 실장의 머릿속을 스쳤다.
“도욱이 너 인마······. 아니지? 서중원 그 인간이 악독한 인간이야. 네가 친구 일로 화가 난 건 알겠지만 그래서 서강준 이제 연예게 발도 못 디디게 했잖냐. 서중원 본부장까지는······.”
말 그대로였다. 서강준까지는 어떻게 응징할 수 있었다지만, 서중원 본부장은 아니었다. 아들의 실패로 더 예민해져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서중원 본부장이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되고 연예계에서 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존재가 되겠죠?”
도욱이 차분하게 오백호 실장에게 물었다.
오백호 실장은 새삼 놀랐다. 서중원 본부장이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대표가 될 것이라는 얘기는 엔터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 공공연하게 도는 소문이었다.
아라 엔터를 대형 기획사의 반열에 올리고 여기까지 키운 데에는 확실히 서중원 본부장의 공이 컸다. 거기에 서중원 본부장은 제작뿐 아니라 경영 쪽에도 욕심을 내며 회사에서의 힘을 키워 나가고 있었다.
아라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에서 그다음 사장의 자리는 서중원 본부장이라는 것이 대부분 관계자들의 생각이었다.
여러 방송국이나 신문사 등지에서 서중원 본부장이 받는 대접은 본부장의 신분이 아닌 사장대리로서 받는 대접이기도 했다.
그렇다고는 해도 도욱이 거기까지 알고 있으리란 건 생각 못 했던 오백호 실장이었다. 도욱은 음악뿐 아니라 업계 전반에 대한 이해가 엄청났다. 오백호 실장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욱이 말을 이었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가 그런 위치에 있다면, 서강준도 어쩌면 다시 발 디디게 될지도 모르죠. 이 연예계에······.”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 거냐······.”
“대중들이 용서해주지 않아도 방송에 나와 어떻게든 이미지를 바꿔 먹고사는 연예인들이 지금도 많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서중원의 아들 서강준이라면 더욱이 쉽겠죠.”
오백호 실장은 팔짱을 끼며 한숨을 쉬었다. 도욱이 하고자 하는 말은 과장 섞인 말이 아니었다. 사고치고 조금 자숙하다가 눈물 흘리며 다시 돌아오는 패턴. 현재에도 숱하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다닌 서강준이라는 괴물을 만든 건······. 서중원입니다.”
도욱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저는 서중원 본부장도 그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도욱은 말하며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오백호 실장을 보았다.
‘처음부터 그걸 위해서 여기까지 달려온 거예요, 형. 비록 지금은 순수하게 좋은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꿈도 생겼지만······.’
차마 할 수 없는 말이었다.
그럼에도 오백호 실장은 자신의 어설픈 설득으로는 도욱이 절대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다.
오백호 실장의 걱정을 안다는 듯 도욱이 말했다.
“아직까지 저는 괜찮을 거예요. 이대형 팀장을 떠 보려고 한 것으로 봐선 제대로 감을 못 잡은 것일 수 있죠. 그리로 사실 꼭 서강준의 일이 아니더라도······. 정상의 자리에 아라 엔터 소속 가수가 아닌 케이케이가 있다는 것부터 이미 눈꼴사납겠죠. 치워버리고 싶을 거예요.”
“하긴 전부터 라이벌 구도 생기니까 아니꼬워 하긴 했지.”
오백호 실장도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꼭 서강준의 일이 도욱의 탓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케이케이의 존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언제든 케이케이가 무너지길 바랐던 아라 엔터테인먼트였다.
“그렇지만 저희 지금, 무너뜨린다고 바로 무너질 위치도 아니잖아요.”
도욱의 말에 오백호 실장이 픽 웃었다.
케이케이는 이제 대형 팬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의 그룹으로 자리 잡으며 이제 세계를 눈앞에 두고 있었다.
멤버들 스스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섣불리 건드렸가다
“······말도 안 되는 보복을 당하기 전에 제가 먼저 칠 겁니다.”
“후······.”
오백호 실장은 한숨을 쉬면서도 끄덕였다. 그게 맞는 방법일 수도 있었다. 상대가 서중원 본부장이라면.
“이 팀장이랑은 곧 밥 한번 먹도록 하자.”
“네.”
도욱은 답하며 오백호 실장에게 신뢰 어린 눈빛을 보냈다.
***
[맨투맨 3주 연속 1위 쾌거! 전화해 돌풍!]
[위기 딛고 일어선 맨투맨, 팬 여러분들께 감사한 마음 전하려 팬미팅 개최]
[맨투맨 팬미팅 현장.. 화정체육관 울려 퍼지는 달콤한 보이스]
[눈물과 웃음으로 가득했던 맨투맨 팬미팅 현장..]
[신인의 마음으로 다시 시작한 맨투맨! 효과 있었나? 3주 연속 1위!]
-오 맨투맨~~ 응원한다~~~!!
-서준 때문에 다른 멤버들이 고생이 많다ㅠㅠ
-오빈 춤 실력 더 는 것 같아,, 옛날에 그 광고 나올 때 춤보고 반했었는데..
-사랑해요 빈이 오빠~!
-전화해위복
-ㅋㅋㅋㅋㅋㅋ전화위복이요?
-전화해위복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서준 지금 외국에서 울고 있음?
-관광 왔다가 서준 봤는데.. 여전히 잘생기긴 함.. 근데 저 잘생긴 얼굴로 주먹 휘둘렀을 거 생각하니까 무서웠음.. 고생한 얼굴이었음
-고생한 얼굴인데 뭐 어쩌라고요 동정표 원하심? 서준한테 아직도 팬이있나
-팬 아니고 그냥 후기 쓴 건데 웬 시비입니까?
-맨투맨 화이팅! 흥해랏!
-한때는 케이케이랑도 비교됐던 맨투맨인데 어쩌다가ㅎㅎㅎㅎ
-케이케이는 이제 넘사고요~~!! -------넘사벽-------
-어디서 케이케이를 끌어들임? 자가 강남 아파트 VS 강북 월세 수준
-뭘 또 그렇게까지.. 케이케이팬들 유난..
-뭐가 유난이냐 쨉도 안 되는 거 맞는데 케이케이 돔에서 공연할 때 얘네 국내 듣보 체육관
-화정체육관 안 가봤으면 말을 말자
맨투맨의 신곡 ‘전화해’의 기세가 놀라웠다.
도욱도 사람이었기 때문에 여러모로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서중원 본부장도, 맨투맨의 기세도, 케이케이의 다음 앨범에 대한 부담감도 도욱을 조여 왔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도욱은 하나만 생각했다.
‘케이케이의 컴백······.’
하루라도 빨리 컴백을 하고 무대 위에 올라 노래하고, 춤추고 싶었다. 도욱은 더욱 더 케이케이의 앨범 타이틀곡을 작곡하는 것에만 열중했다. 다른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정도로 열중했다. 온종일 도욱의 머릿속은 곡에 대한 생각으로 차고 넘쳤다.
본격적인 타이틀곡 작업에 들어간 지 삼 일 째 되던 밤, 도욱은 옅은 잠에서 깨어나 이불을 박차고 일어났다.
도욱은 빠르게 노트북을 켰다.
머릿속에 떠오른 음계들이 사라지기 전에 기록해두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