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2
역습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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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제작팀 회의실의 분위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케이케이 다음 앨범 컨셉을 두고 열띤 회의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앨범제작팀 직원들과 심준 팀장은 물론이고 신인개발팀과 제작이사인 권흥조까지 참여하여 오랜 시간 공들인 기획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케이케이 데뷔 앨범이었다.
용감한외동이 프로듀서로 들어오고 도욱도 타이틀곡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며 완성도를 높여가긴 했지만 가장 바탕이 되는 것들은 회사의 기획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이케이 멤버들의 경험이 쌓여감에 따라 이제 더이상 회사의 기획으로만 앨범이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멤버들은 점점 더 앨범의 초기 단계인 기획 및 제작 단계에서부터 많은 참여를 하게 되었다.
도욱이 프로듀서가 되면서는 다른 멤버들 또한 참여가 활발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앨범이니 앨범이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도욱을 돕고 싶은 마음도, 뒤쳐지지 않겠다는 마음도 모두 작용했다.
덕분에 이제는 컨셉 회의에서 직원들보다 멤버들이 더 많은 의견을 내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직원들은 그런 멤버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면서도 외부의 객관적인 반응들을 전달하고 현실적인 방향으로 앨범을 끌어나가는 역할을 했다.
“뭐 중간에 타이틀로 낸 보컬 강한 곡들도 잘되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앨범 타이틀은 댄스로 가야 하는 것에는 이견 없는 거죠.”
심준 팀장의 말에 모두가 끄덕였다. 리더인 정윤기가 말했다.
“확실히 무대 위에서 춤으로 파워풀한 모습을 보여줄 때 좋은 반응이 오는 것 같아요.”
“파워풀한 것도 좋지만 댄스라면 역시 ‘푸른 하늘’ 분위기로 가야될 것 같아요. 케이케이가 밀어왔던 ‘열정 넘치는 청춘’의 이미지도 계속해서 살리면서 말이에요.”
앨범제작팀 팀원 중 하나가 ‘푸른 하늘’을 언급하면 말했다.
원래 힛 엔터테인먼트에서는 데뷔 후 어느 정도 이미지가 잡힌 가수의 경우에는 그 가수의 이미지에 맞는 곡들이 들어오게 되므로 곡을 받아보고 ‘이거다!’ 싶은, 가장 좋은 곡을 타이틀로 고르는 방식을 택했었다.
타이틀이 정해지고 나면 다각도로 앨범 홍보 전략을 세우게 되고, 앨범의 세부 컨셉은 알아서 따라오게 돼 있었다.
그러나 이번 케이케이 앨범은 조금 더 디테일한 컨셉을 잡고 타이틀 선정에 들어가기로 했다.
도욱이 어떤 장르든 훌륭하게 해내는 전천후 프로듀서이자 작곡가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도욱이 먼저 제안한 일이기도 했다.
후자의 방법이 원하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좋았고 도욱도 무작정 곡 작업을 하는 것보단 확실한 컨셉이 있는 상태에서 작업하는 게 자신의 스타일에 맞다는 것을 최근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푸른 하늘’ 할 때 같이 뛸 수 있다고 좋아해줬던 팬들도 많았던 것 같긴 해요.”
팀원의 말에 안형서가 흥 넘쳤던 무대들을 생각하며 끄덕였다.
콘서트에서도 ‘푸른 하늘’을 부를 때 팬들이 하나 되어 노래를 따라 불러주고 그 노랫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메우면 그게 그렇게 신나고, 즐거울 수 없었다.
노래를 부르다 흥을 주체하지 못해 엄청난 고음의 애드리브를 치다 콘서트 도중 음이탈이 난 적도 있었다.
“신나니까 부르는 저도 좋고.”
“그러다 음이탈도 나고?”
안형서의 말에 정윤기가 한마디 보태자 안형서가 찌푸리며 지지 않고 답했다.
“형. 형도 저번에 가사 씹었던 거 신나서 그런 거지?”
그 말에 정윤기도 입을 다물었다.
현재 회의의 뜨거운 감자는 장르였다. 댄스 장르를 하는 것 자체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그 안에서 두 가지 방향으로 의견이 갈라졌다.
하나는 ‘Very Sorry’나 ‘Howl’처럼 각 잡힌 퍼포먼스에 조금 더 중점을 둔 파워풀한 일렉트로닉 계열의 곡을 타이틀로 하자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푸른 하늘’처럼 쉽고 따라 부르기 좋은 대중성 있는 멜로디를 중심의 팝 댄스를 중심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제일 반응 좋았던 것도 ‘푸른 하늘’이니까요.”
팀원이 덧붙였다.
통계적으로 ‘푸른 하늘’이 가장 반응이 좋았던 건 맞는 이야기였다. 앨범 판매량은 물론이고 음원 차트에는 아직까지도 100위 안에 머물러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심준 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근데 그러면 너무 쉽게 가는 것 같은데. 아냐?”
“쉬운 게 나쁜 건 아니잖아요. 쉬운 길 놔두고 굳이······.”
심준 팀장의 말에 팀원이 반박했다. 서로 맞고 틀리다의 문제가 아니라 의견의 차이였기 때문에 직급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도 고민에 빠진 얼굴이었다. 사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각각 다른 방식으로 좋아서 더 문제였다.
가만히 생각하던 김원이 말했다.
“어음······. 사람들이 ‘푸른 하늘’을 한 번만 듣고도 따라 부를 수 있고, 버라이어티하게 리액션이 좋았던 건 리메이크 곡이라는 점이 컸던 것 같아요.”
김원은 맞은편에 앉은 도욱을 힐끗 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만들려면 만들 수야 있겠지만 리메이크 곡보다 더 빠르게 대중을 장악할 만한 곡을 작곡한다는 게······.”
도욱에 대한 믿음과는 또 다른 일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앨범제작팀 대리가 말했다.
“케이케이는 계단식으로 차근차근 팬덤을 키워 나가고, 대중성을 확보해 왔어요. ‘푸른 하늘’의 성공은 단지 푸른 하늘 자체의 성공이라고 보긴 힘들어요······.”
심준 팀장이 계속 얘기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팬-마케팅팀이 지난 번 정기회의 때 분석했던 자료도 보면 케이케이 팬덤 규모가 확 늘어난 일이 Very Sorry’ 때 한 번 있었고, ‘Howl’ 때도······. 그리고 오케이 앨범과 도욱 군 솔로 앨범이 나온 기간에도 꾸준히 늘고 있었거든요.”
“그건 그랬지.”
“그렇게 모인 화력이 ‘푸른 하늘’에서 터진 거라고 보면······.”
심준 팀장이 그래서 결론이 무엇이냐는 눈으로 대리에게 묻자 대리가 답했다.
“케이케이의 음악적 성공 요인이야 너무 다양한 곳에서 찾을 수 있겠죠. 그치만 팬덤을 키우는 데는 윤기 씨 말대로 파워풀한 무대가 더 좋을 것 같단 얘기예요.”
대리의 말을 다 들은 심준 팀장이 새로운 화두를 던졌다.
“자, 이 앨범의 타깃과 목표를 생각해 보죠. 지난 앨범이 조금 더 넓은 세대에 중점을 둔 거였다면 이번 우리의 목표는 해외 시장입니다.”
팀원들을 비롯한 멤버들이 ‘해외 시장’이라는 말에 눈을 빛냈다.
케이케이는 일본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해 돔투어를 성황리에 끝마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중국 시장 공략도 성공적이었다.
K-POP 문화가 이미 자리 잡고 있는 기타 아시아 국가들에서의 인기 또한 최고였다.
심준 팀장이 말하는 ‘해외 시장’이라는 것은 이제는 아시아만이 아닌 아시아를 포함한 서구권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 직원들로서는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자신들이 국내 톱을 차지하는 건 물론이고 세계 시장에 진출할 만한 가수의 앨범을 제작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케이케이가 한 계단씩 성장해나갔듯 회사와 회사의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자긍심이 엄청 났고, 이번 앨범에 대한 열의도 큰 것이었다.
“해외 시장에 뭐가 더 먹힐까······. 세계적인 트렌드는 무엇인가. 그러한 것도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죠.”
“세계적인 트렌드라는 게 어차피 영미권 트렌드인데, 그게 또 결국 한국 트렌드라서 생각 안 할 수가 없긴 하죠.”
심준 팀장의 말에 김원이 덧붙였다.
“그렇다고 아예 영미의 팝을 따라 갔다가는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어차피 팝을 제일 잘하는 건 그 사람들이잖아요.”
나름대로 많은 생각을 해왔던 석지훈이 말했다. 석지훈의 말에 모두가 동의하듯 끄덕였다.
앉아서 모든 말들을 잘 듣고 있던 도욱이 생각을 정리한 듯 입을 열었다.
“제 생각도 그래요. 지훈이 말대로 그건 그들이 제일 잘하니까. 해외시장을 공략한다고 해도 우리는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문제는 심준 팀장과 지난 앨범 활동이 끝나고부터 함께 고민해오던 것이었다.
그 고민을 하던 와중에 이대형 팀장의 아이디어 덕에 세계적인 팝스타 LIL과 작업을 할 기회가 생겼다.
LIL과의 작업을 하면서, 또 여러 차례 직원들, 멤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도욱은 점점 방향성을 잡고 있었다.
“제가 최근 더 확실히 깨달은 건 자신만의 색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 색이 해외시장에 통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거고요.”
모두 도욱의 말에 귀 기울였다.
“그리고 ‘지금’ 가능한 걸 하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잘할 수 있는 것’이요. 나중에 할 수 있고, 해도 되는 건 꼭 지금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거니까.”
가만히 생각하던 심준 팀장이 말했다.
“케이케이의 색이라면······.”
케이케이는 꾸준히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힙합적인 색깔을 얹어 단체 군무와 같은 퍼포먼스 강한 무대를 해왔다.
그것이 케이케이가 누구보다 가장 잘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어떤 그룹도 케이케이처럼 뛰어난 래퍼와 보컬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지 않았고, 세계에서도 케이케이만큼 강렬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그룹은 흔치 않았다.
깔끔한 결론이었다.
‘눈을 뗄 수 없고, 귀를 세울 수밖에 없는 무대! 무대로 승부한다!’
직원들과 멤버들 모두 무언가 전체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곧바로 정윤기가 입을 열었다.
“Howl보단 더 센 느낌이 났으면 좋겠는데······.”
“비트도 더 쪼개고!”
정윤기의 말에 김원이 합세했다. 앨범제작팀 직원들도 덧붙였다.
“베이스가 웅장한 느낌이면 뭔가 더 큰 무대가 될 것 같아요.”
“케이케이가 이어오던 청춘의 에너지를 완전히 발산하는 느낌! 가사도 그런 쪽으로 잡으면 될 것 같구요.”
조용하던 박태형도 더듬더듬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어······. 간주에요······. 예전에 했었던 아크로바틱이나 단체 군무를 넣을 수 있는 곡이면·········.”
도욱은 박태형의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게 맞았다.
‘아······. 좋은 곡이 나오면 좋겠다. 멤버들과 무대에 어서 서고 싶어!’
도욱은 기대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심준 팀장이 씨익 웃으며 엄지를 세웠다.
“좋아, 좋아. 윤기가 원래 오케이 앨범에 넣으려고 가져왔던 곡이 있는데 그거 좀 디벨롭시켜서 이번 앨범에 넣고 싶은데? 컨셉이랑 잘 맞을 것 같아.”
“정말이에요?”
정윤기가 조금 놀란 듯 물었다. 케이케이 앨범에 자신의 곡이 실릴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그럼 받았던 곡 중에 이번 앨범에 들어갈 만한 수록곡들 추려서 올릴게요. 팀장님.”
외부의 곡들을 추리는 일을 맡은 팀원이 말했다.
다음 케이케이 앨범의 앨범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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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대형 팀장한테 다시 돌아오라는 스카우트 제의를 했나 보더라고. 그리고 서준 일에 대해서 은근슬쩍 물어보더래.”
“서준이요?······.”
숙소 안. 오백호 실장과 도욱은 따로 식탁 쪽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긴 회의를 끝내고 온 멤버들은 거실 소파와 바닥에 저마다 자리를 잡고 앉아 오늘 저녁 방송되었던 음악 방송의 재방송을 시청하는 중이었다.
오백호 실장은 멤버들이 회의에 가 있는 동안 이대형 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온 터였다.
“연봉은 물론이고 앞으로의 승진까지도 제안했던 모양인데······. 아무튼 여기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다고 생각했던 판단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하더라. 자기를 부른 이유가 이 팀장의 능력 말고도 뭔가 케이케이나 너를 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더라고.”
오백호 실장이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혹시 뭔가 관련된 게 있는 건 아닌지 묻더라. 일단은 없다고는 했다만.”
서중원 본부장의 속내를 다 알지 못하는 도욱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대형 팀장님하고 저도 얘기를 나눠 보는 게······.”
그때 멤버들이 보고 있던 텔레비전 속에서 1위를 발표하는 소리가 들렸다.
“둘째 주 1위는······! 맨투맨! 맨투맨입니다! 축하드려요!”
맨투맨 팬들의 함성이 텔레비전 밖으로 쏟아져 나올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