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50화 (150/225)

# 150

내일 아닌 오늘 (4)

도욱의 아버지 강웅천 교수는 교수연구실에서 전화를 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전의 아들은 크게 사고를 치거나 하는 나쁜 학생은 아니었지만, 학교에 지각을 밥 먹듯이 하고 성적도 좋지 않았으므로 성실한 학생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교수인 부인도 학교에서 수업과 연구를 병행하느라 정작 자식에게는 큰 관심을 쏟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때문에 그냥 사고만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던 때였는데 어느 날 부터인가 사춘기가 끝나고 철이 들었던 모양인지 부쩍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과 부인을 불러 가수가 되고 싶으며, 보컬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말을 해왔을 때 강웅천 교수는 크게 티는 내지 않았지만 무척이나 기쁘고 뿌듯한 마음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목표가 생겼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이었다.

학원을 다니고 기획사 오디션에 들어가 연습생 생활을 하는 동안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적극적인 지원을 해주기는 했지만, 외에는 딱히 도와준 것이 없었다.

어차피 그 정도 경제적 지원은 도욱이 평범하게 학교만 다녔어도 해주었을 법한 용돈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욱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향해 열심이었다.

강웅천 교수는 아들이 완전히 딴 사람이 된 것 같아 이따금 놀람을 감추기 힘들었지만, 어쨌든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나가고 있어 뿌듯했다.

거기에 연습생 생활과 연예인 생활을 하느라 집에 잘 오지는 못해도 부인과 자신에게 꼬박꼬박 안부 연락을 하는 도욱이었다.

결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도욱은 이제 강웅천 교수의 교수 지인들마저도 얼굴을 아는 유명 연예인이 되어 있었다.

거절하긴 했지만, 한 번은 도욱의 부모인 강웅천 교수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연락까지 온 적이 있었다.

강웅천 교수는 부모인 자신들을 살뜰히 챙기면서도 어린나이에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는 아들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그러던 와중 강웅천 교수는 얼마 전 아들인 도욱의 전화를 받았었다.

으레 하는 안부전화인 줄 알았는데 도욱은 다른 이야기를 꺼내왔다.

“투자를 하고 싶어서요.”

“······투자?”

“네.”

이제 도욱의 수익은 알려진 대로 상당했다.

일단 케이케이 멤버로서 앨범판매와 굿즈 등의 실물 판매, 공연 수익, 광고 수익 등이 있었다. 중간에 힛 엔터테인먼트나 다른 유통 업체, 멤버들과도 1/n로 수익을 나누기까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돈이 도욱에게 돌아왔다.

거기에 도욱은 직접 수많은 곡을 작곡하고, 작사해왔다. 솔로 음반까지 내면서 음원으로 얻는 수익이 상당했다.

이번 LIL과의 작업으로 미국 시장 음원사이트에도 단 한 곡뿐이지만 작곡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거기에서 발생하는 수익도 컸다.

그에 비해 지출은 많지 않았다.

숙소에서 생활하는 데다 따로 집이나 차를 산 것도 없었다. 활동비는 회사에서 대주는 것이고, 활동비를 뺀 것을 정산해 주는 것이었으므로 생활에 다른 돈이 들어가는 것도 없었다.

기껏해야 개인적으로 사 모으는 장비들이나 사복을 사는 것에 돈을 썼지만 그마저도 최근에는 팬들이 도욱이 필요한 것들을 서포트로 넣어주면서 서포트 된 것들을 사용하며 인증하기에도 바빴다.

심지어 도욱의 부모님들은 현직에서 교수 생활 중이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보낼 필요도 없었다. 결국 가장 많은 지출이 일어나는 곳은 기부금 명목의 돈이었다.

때문에 억대를 넘어가는 돈은 통장에 쌓여만 가고 있었다.

은행의 추천으로 펀드를 몇 개 굴리고 있긴 했지만 것도 큰돈은 아니었다.

그렇게 돈에는 큰 관심이 없어 보였던 도욱이 갑자기 투자를 하겠다고 하니 강웅천 교수로서는 조금 의아했다.

“혹시 주변에 믿을 만한 컨설턴트 있으세요?”

강웅천 교수는 경제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다행이 주변에 꽤 많은 금융전문가가 있었다. 강웅천 교수가 물었다.

“어떤 종류의 투자를 하고 싶은지 말해주면 좋겠구나.”

“하나는 주식 투자고······. 지분을 꽤 많이 모으고 싶어요. 차근차근. 그리고 하나는 주식 상장은 아직 되지 않은 소규모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습니다.”

강웅천 교수는 빠르게 머릿속에서 자신이 아는 금융전문가들을 떠올렸다. 마침 적합한 인물이 떠올라 맡아줄 만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도욱이 말했다.

“그럼 그분께 제 자산 일부의 컨설팅을 의뢰하고 싶은데요. 일단은 아버지께서 대신 만나서 의뢰해주실 수 있을까요? 아버지가 바쁘시면······.”

“아니다. 그 정도야 할 수 있지. 아무리 바빠도 너보다 바쁘겠냐? 일본에 간다는 기사는 봤다.”

“네. 지금 오사카 공연이 끝난 참이에요. 곧 미국도 가게 될 것 같아요.”

그렇게 강웅천 교수는 대신해서 도욱의 자산을 컨설턴트에게 맡기게 되었다.

투자하고 싶은 금액과 내용은 도욱이 메일을 통해 강웅천 교수에게 전달했다. 강웅천 교수는 오래 전 자신의 수업을 듣다 현재는 잘나가는 투자자가 되어 이따금 자신에게 인사를 오곤 하는 제자에게 이 일을 맡겼다.

-어, 그 친구가 네 말대로 투자를 했다고 하더구나. 기획사 투자는 네가 내 명의로 했고.

“네.”

-그리고 주식은 네가 말한 음원사이트를 사두었다는데. 앞으로도 전망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 굳이 사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걱정하던데 괜찮은 거 맞니?

강웅천 교수의 말에 도욱은 끄덕였다.

도욱이 주식 투자를 하겠다고 한 사이트는 지금 당장 보기에 확실히 전망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급속도로 커진 음원 시장에서 가장 큰 사이트는 ‘파인애플 뮤직’이었다. 그다음이 케이블 방송사인 TBN이 가지고 있는 ‘BN 뮤직’이었다.

3위 음원사이트인 ‘잼 뮤직’은 시장점유율도 높지 않고, 위 두 사이트의 점유율만 계속해서 높아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잼 뮤직의 미래는 확실히 어두웠다.

그러나 도욱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당장의 돈, 수익을 봤더라면 돈이 생겼을 때부터 미래에 잘될 곳에 투자하며 돈을 벌었을 것이다.

돈도 물론 꿈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수단이 될 테지만, 수단일 뿐이었다. 도욱이 가치를 두는 것은 돈이 아니었다. 이번 투자는 앞으로 펼칠 더 큰 꿈을 위해 밑작업을 해두는 것뿐이었다.

“괜찮아요. 알고 투자하는 거예요. 번거로우셨을 텐데 고맙습니다, 아버지.”

-아니야. 이 정도는 열심히 일하는 아들 위해서 해줄 수 있지. 일단 중간 중간에 메일을 통해서 투자 보고를 하겠다고 했어. 너를 직접 보고 싶어 하던데.

“음······. 당분간은 아버지 통해서 연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부정한 일을 하거나 크게 돈을 버는 일도 아니었지만,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자신이 나서서 어디에 투자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좋을 게 없었다.

-그래. 알겠다. 몸 상하지 말고 잘 지내라.

“예. 쉬는 날 집에 꼭 갈게요.”

-무리는 말고.

“네, 아버지. 엄마한테도 안부 전해주세요.”

전화를 마친 도욱은 기지개를 켜고 일어섰다.

오늘은 유성패션 이유민 대표와 약속이 있는 날이었다.

***

힛 엔터테인먼트 팬-마케팅팀 남효진은 퇴근 후 회사 근처의 칵테일 바에서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여기 우리 팀 회식 때 팀장님이 데리고 오신 덴데 분위기 진짜 괜찮지 않음?”

“어, 완전 좋은데?”

남효진의 절친이 고개를 마구 끄덕이며 답했다.

“팀장이면 그 좀 훈남이라던 사람? 어떻게 잘해 봐봐.”

“뭐래! 잘해보긴 뭘 잘해 봐.”

“아, 왜.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고, 능력 있고 성격도 좋다며.”

“그러니까 언감생심이지. 그리고 상사는 상사일 뿐.”

두 사람은 테이블에 앉아 안주 중 가장 값이 덜 나가는 치즈 나쵸와 칵테일 두 잔을 시킨 상태였다.

“아 이런 데 나 같은 말단은 월급날이나 돼야 오지.”

“그래도 정직원 됐다고 이런 것도 쏘고, 잘나간다 남효진?”

“잘나가긴 정직원 되자마자 잘릴 뻔했어.”

“뭐? 왜?!”

마침 도착한 나쵸를 한 움큼 집어 입안에 넣고 씹으며 남효진이 우물우물 답했다. 생각하기만 해도 아찔하다는 표정이었다.

“아니 우리 도욱이······.”

말을 하다가 남효진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회사 근처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관계자가 있나 확인하는 것이었다.

사실 남효진은 케이케이의 열렬한 팬이었다. 힛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한 것도 반은 케이케이와 도욱을 보기 위해서였다. 실제로도 사무실을 오갈 때마다 도욱을 마주치면 심장이 벌렁거리고 귀까지 빨개지는 걸 티내지 않으려 무던히도 노력 중이었다.

다행인지 회사 여직원들 중 상당수가 도욱이라면 흠모의 눈길로 바라보는 이들이 있어서 남효진의 행동이 그리 튀는 것은 아니었다.

“도욱이 LIL이랑 작업하는 거 친한 애들한테 말하면서 내가 그렇게 비밀이라고 신신당부를 했는데······. 바로 다음 날 기사 터졌잖아. 그거 수습하느라고 개고생······. 팀장님이 나 불러서 지시하는데 손에서 땀이 막 나고······. 하아······.”

LIL과의 작업 소식을 알게 된 남효진은 너무나 기쁜 마음에 친하게 지내는 케이케이 팬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었다. 기쁨을 빨리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야, 그러게 그걸 걔네한테 왜 말해.”

“그니까. 내가 미친년이지. 진짜 다시는! 다시는 말 안 해!”

“어휴······.”

남효진의 절친이 고개를 저었다. 남효진은 다짐하며 와그작, 나쵸를 씹었다.

이유민 대표를 만나기 위해 버버리 코트에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온 도욱은 바에 들어서다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팬-마케팅팀 직원이었던가?’

굳이 친구와 있는데 알은체를 할 필요를 못 느낀 도욱은 바 내부의 룸 쪽으로 향했다.

관계자들이 이 바를 자주 이용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내부의 룸이었다. 비밀 공간처럼 일반 이용자들은 잘 모르는 구석진 복도로 향하면 그곳에는 룸이 있었다.

도욱은 자연스럽게 룸으로 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룸 안에는 이유민 대표와 함께 삼십 대 후반의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는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의 한국 지사 관계자였다.

“반가워요.”

남자가 일어서며 도욱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Coco 한국지부 지사장 정진’

오늘 이유민 대표가 도욱을 부른 이유는 그를 소개 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도욱은 좋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는 이유민 대표의 말에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지만, 명함을 받은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Coco에서? 무슨 소식일까······.’

이 정도 좋은 소식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Coco는 명품 브랜드 중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브랜드였다. 명품이라고 하면 Coco부터 떠올리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반갑습니다.”

도욱은 정진 지사장과 악수를 나누었다.

“이렇게 직접 보니 정말로 미남이군요. 이런 말 너무 많이 들었죠?”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패션 센스도 이유민 대표가 말한 대로 정말 좋네요. 버버리에 모자가 이렇게 어울릴 줄이야.”

연이은 칭찬에 도욱은 웃음으로 답했다.

“일단 앉아요, 정진 씨도 도욱 씨도. 만나자마자 일 얘기하기야?”

“아, 센스를 칭찬한 것뿐이에요. 대표님.”

“패션하는 사람이 패션 칭찬하는 게 일이지 뭐야.”

이유민 대표의 핀잔에 정진 지사장이 머쓱하게 웃었다. 도욱도 웃으며 두 사람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

정진 지사장, 이유민 대표와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며 패션 업계의 동향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어가던 도욱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룸을 나왔다.

룸을 나오던 도욱은 바로 옆 룸으로 들어가는 익숙한 남자의 뒷모습에 잠시 멈춰 섰다.

팬-마케팅팀 이대형 팀장이었다.

이대형 팀장이 술 한잔하러 이곳에 온 게 이상할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순간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도욱은 이대형 팀장이 향한 룸 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룸에는 불투명한 창이 나 있었다. 도욱은 조심스럽게 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는 이대형 팀장과 함께 아라 엔터테인먼트 서중원 본부장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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