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45화 (145/225)

# 145

What is your name (4)

***

사실 이번에 LIL과의 작업은 케이케이로서도 큰일이었지만, 도욱의 작곡가로서의 커리어에도 상당한 의미가 있는 일이었다.

도욱은 케이케이 앨범의 타이틀곡과 수록곡 다수에 작곡, 작사가로서 참여했으며 프로듀서로서도 이제 확실히 자리매김한 상태였다.

그러나 도욱의 작곡가 및 프로듀서로서의 일은 케이케이에 한정된 부분이 있었다.

실력의 문제라기보단 선택과 집중의 문제였다.

다른 가수의 곡을 작업한 일은 박태형이 함께한 현지의 앨범이 전부였다. 그러나 그것은 용감한외동과 공동으로 작업한 것이었기 때문에 온전히 도욱의 작업물은 아니었다.

케이케이가 참여한다지만, 다른 가수에게 주는 첫 노래가 LIL에게 주는 곡이 되는 셈이었다.

‘작곡가로서도······. 정말이지 엄청난 기회인 게 분명하다.’

숙소 테라스 문을 열고 나간 도욱은 크게 호흡을 내쉬었다. 바깥의 찬 공기에 몸이 움츠러들었지만, 정신을 맑게 하는 데 찬 공기만큼 좋은 게 없었다. 거기에 보름달이 환하게 테라스를 비추고 있었다.

달빛을 받으며 도욱은 꿈을 되새겼다. 스스로도 가수로서 좋은 곡을 남기고, 좋은 가수를 제작하고 싶은 큰 꿈.

언제 다시 몸이 바뀐 현실 같지 않은 현실에서 깨어날지 몰라 복수 외에 다른 것은 잘 생각하지 않던 도욱은 어느덧 먼 미래에 대해서도 계획하며 ‘강도욱’으로서의 삶을 충실히 살아나가고 있었다.

현재 도욱의 음악적 식견과 작곡 능력이라면 사실 어느 정도의 노력만 기울이면 LIL이 원하는, LIL이 중심이 되고 케이케이는 그림자와 같이 존재하는 곡을 뽑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도욱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니만큼 케이케이도 충분히 LIL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조금은 욕심을 내도 되겠지······.’

그러기 위해서는 작곡가로서의 강도욱이 정말이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었다.

‘LIL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곡이어야 하니까.’

그때 테라스 문이 열리며 안형서가 들어왔다.

“안 추워?”

“이제 들어가려고요.”

“그래, 얼른 들어와. 리원이 라면 끓였으~! 한입 먹어.”

“어······.”

LIL과의 영상 통화 이후 김원은 멤버들 사이에서 ‘리원’으로 통했다. ‘온리 원’에서 따온 리원이었다.

김원의 팬페이지 중에서도 ‘ONLY ONE’이라는 팬페이지가 있었다. 1집 때부터 꾸준히 김원의 사진을 찍어온 팬페이지였다. 아마 그 팬페이지 마스터가 들으면 무척이나 좋아할 게 분명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라면이라는 말에 도욱이 멈칫 하자 안형서가 도욱을 잡아끌었다.

“한입만 먹어, 딱 한입만!

비활동기인 데다 이제 연차가 쌓이고 믿음도 쌓여 오백호 실장의 감시가 약해진 틈을 타 멤버들은 종종 야식을 먹고는 했다.

그렇지만 자기 관리가 철저한 도욱은 야식 멤버에서 줄곧 빠져 왔었다.

“너 오늘도 밤새 작업할 거잖아. 넌 배도 안 고파?”

“그게······.”

“설마 음악이 제 양식입니다······. 그런 건 아니겠지!”

안형서가 오바하며 말하자 도욱이 피식 웃었다.

“형, 와서 한 입만 드셔 보세요. 리원이 형 라면 솜씨 일치월장!”

“뭐야? 일취월장이야.”

정윤기가 눈을 흐리며 석지훈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깔끔한 성격에 예의도 바르고 패션 센스까지 뛰어난 기가 막힌 막내였지만, 어린 시절부터 연예계 생활을 해와서인지 가끔 부족한 지식을 드러내고 마는 석지훈이었다.

도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안형서와 함께 식탁 쪽으로 향했다.

유혹을 거부하기에는 라면의 냄새가 너무나 강력했다. 그리고 안형서의 말대로 오늘도 밤 새워 곡 작업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한 입 정도는 먹어두는 게 새벽을 위해서도 나을 것 같다.

후루룩!

멤버들이 둘러 앉아 라면 면발을 흡입하는 소리가 숙소에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조금 보태서 대야만 한 냄비에 끓인 여섯 봉지의 라면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맛있네요, 형.”

도욱의 말에 김원이 씨익 웃었다. 웃으면서도 손은 젓가락을 움직여 면발을 집고 있었다. 인당 1개씩 먹을 수 있도록 끓였지만, 먹는 속도가 너무나 빨랐다.

“밥 말아 먹을 사람.”

정윤기의 질문에 멤버들이 모두 정윤기를 보았다. 박태형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아······. 밥까지 먹으면······.”

“나! 난 먹을래!”

안형서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그럼 저도요!”

박태형도 홀린 듯 손을 들었다.

결국 다같이 국물만 남은 냄비에 밥을 잔뜩 말아 먹고서야 배가 부르다는 멤버가 나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은 건 도욱이었다. 석지훈도 더는 못 먹겠다는 듯 배를 두드렸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작은 체구였지만 안형서가 은근히 대식가였다. 밥을 더 말아먹을 기세인 안형서를 석지훈이 그러다 체한다고 말렸다.

“작업은 잘돼가나.”

배를 좀 채우자 대화가 시작됐다. 정윤기의 질문에 물을 마시던 도욱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뭐······.”

도욱이 도욱 답지 않게 어물거렸다. 잘된다고 확답하기에는 아직 장르나 전체적인 방향도 확실히 잡지 못한 게 현실이었다.

“어렵지······.”

정윤기가 입을 닦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는 건 모두 알고 있었다. 특히 도욱이 LIL이 원하는 대로만 할 수 없을 거라 말한 뒤로는 더욱 그랬다.

“일단은 LIL의 음악 스타일을 제대로 파악하려고 하는 중이에요.”

“LIL 앨범을 듣고 있는 거예요?”

“LIL 앨범에 수록된 곡들 말고도 공연에서 커버했거나, 다른 가수들 노래 부른 것들도 보면 스타일 파악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다 보고 있어.”

석지훈의 질문에 도욱이 답했다. 도욱은 말 그대로 LIL의 음악을 닥치는 대로 섭렵하고 있었다.

멤버들 모두 돕고 싶은 마음이야 가득했지만 어떻게 도와야 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마, 너무 부담 갖지 말구. LIL이랑 작업 안 해도 되니까.”

정윤기의 말에 도욱이 끄덕였다. 부담이야 안 가질 수 없었지만, 멤버들이 이렇게 믿고 따라주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

야식을 챙겨 먹고 자신의 방이자 작업실로 돌아온 도욱은 역시나 오늘도 LIL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의 특색과 장단점, 그것들을 살리는 방법은 이미 옆에서 생활하고 함께 음악 활동을 하면서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도욱이었다.

LIL 역시 마치 제7의 케이케이 멤버처럼 이해하게 되면, 곡 작업을 하는 것에 훨씬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도욱은 확신했다.

‘똑같은 노래라도 가수마다 다르게 부른다. 어디에서 힘을 주고, 어디에서 힘을 빼고······. 숨을 쉬는 방법을 달리 하고······. 그런 것을 파악하면 노래를 통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가수의 마음까지도 읽을 수 있어.’

한창 LIL의 ‘IN THE DARK’를 다시 들어 볼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안형서가 들어왔다.

“무슨 일 있어요?”

도욱의 질문에 안형서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손바닥만 한 검은색 물체는 외장하드였다.

“이게 뭐예요?”

“외장하드에 뭐가 들어 있겠어. 흐흐.”

안형서가 음흉한 웃음소리를 내며 답했다. 도욱은 잠시 멍하니 무슨 말인지 뜻을 파악하려 애썼다.

“네가 혼자서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도움이 될까 하고.”

“네?”

도욱이 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을 때였다.

“설마 야······.”

“LIL이 여태까지 공연한 영상들. 마이튜브는 물론이고 해외 음악 사이트에 올라온 것들까지 전부 날짜별로 다운 받아서 정리한 거야.”

다른 영상을 생각했던 도욱이 당황하며 외장하드를 받아 들었다.

안형서의 장난 때문에 당황한 도욱이었지만, 곧 가슴 한편이 훈훈해져 왔다.

“이런 거라도 하면 도움이 될까 해서. 며칠 전부터 틈틈이 한 건데 마침 네가 LIL 음악 듣고 있다니까 잘 됐다 싶어.”

“아······. 진짜 고마워요, 형. 어떻게 다 정리하셨어요. 많았을 텐데.”

안형서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보컬 연습하려고 모아둔 것도 꽤 있어서 금방 했어. LIL이 좋아한다고 인터뷰한 공연 영상들도 추가로 넣어 놨어.”

도욱은 외장하드를 꼭 쥔 채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직접적인 도움은 아니었지만, 일일이 영상을 찾아보지 않아도 되었음으로 시간을 단축하는 데 도움을 주는 건 확실했다.

“고맙긴. 그럼 수고.”

안형서가 넘기고 간 외장하드를 노트북에 연결하자 수백 개의 영상이 폴더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도욱이 아직 보지 못한 커버 영상도 있었다. 도욱은 차례대로 영상을 클릭해 나가기 시작했다.

새벽 세 시.

영상을 보던 도욱은 졸린 눈을 비비며 영상 하나를 클릭했다.

‘이것만 보고 세수라도 하고 와야겠어.’

LIL이 아직 유명해지기 직전, 그러니까 데뷔곡인 ‘IN THE DARK’를 발표하고 일주일도 되지 않을 때의 소규모 공연장 공연의 영상이었다.

공식 영상이 아닌 공연장에 간 관객이 휴대폰으로 촬영해 올린 듯 화질과 음질이 좋지 않았다. 음향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넘겨도 될 것 같았지만, 넘기지 않은 이유는 해당 공연의 플레이리스트가 최근 공연의 플레이리스트와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IN THE DARK’를 부른 후 LIL은 유명 가수의 노래를 언플러그드 버전으로 커버해서 불렀다.

노래의 반주부터 조금 의외다 싶었던 도욱은 LIL의 노래가 시작되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거다!’

마우스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도욱은 드디어 작곡할 곡에 대한 방향을 잡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도욱은 빠르게 욕실로 가 세수를 하고 돌아왔다.

이제 곡 작업에 박차를 가할 때였다.

***

LIL에게 보낼 곡 가이드가 거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한 번 방향을 잡고 시작하니 순풍에 돛단 듯 빠르게 작업이 진행되었다.

도욱은 우선 멤버들에게 곡을 들려주었다. 멤버들은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도욱이 선택한 장르는 기본적으로는 R&B 계열이라고 볼 수 있었다.

LIL이 굉장한 보컬리스트였기 때문에 R&B 장르가 될 것은 예상 가능했다. LIL도 흥겨운 음악을 원했고, 래퍼가 두 명이나 있는 케이케이가 참여할 것이므로 힙합적 요소도 어느 정도 들어갈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도욱이 가져온 곡은 힙합 R&B이긴 했으나 무척이나 재지한 느낌이 강했다. 딱 들어도 파워풀한 보컬보단 부드러운 음색의 보컬이 어울릴 듯했다.

“곡은 너무 좋다. 계속 듣고 싶어지는데?”

안형서의 평가에 도욱이 기분 좋게 웃었다. 도욱이 멜로디를 짜며 생각했던 핵심이 바로 ‘계속 듣고 싶’어지는 멜로디를 만들자는 것이었다.

노래를 들으면서 걸으면 저절로 발과 고개를 까딱이게 되는, 유쾌한 비트에 계속 듣고 싶어지는 멜로디를 만들기 위해 도욱은 애썼다.

“그런데 조금 더 딥(deep)할 줄 알았는데. LIL은 파워 보컬이잖아.”

김원의 말에 도욱은 자신이 봤던 영상을 틀었다.

“LIL한테 이런 목소리가 있더라고요······.”

음질이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LIL의 목소리는 마이크를 뚫고 공연장을 울려 퍼지고 있었다.

파워풀한 보컬이 아닌 힘을 약간 뺀 채로 부르는 목소리는 무척이나 감미로웠다. 기본기가 탄탄했으니 듣기 좋은 건 당연했다.

도욱은 파워풀한 성량과 고음, 독특한 음색에 가려져 있던 LIL의 부드러운 음색을 살려볼 생각이었다.

동시에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라면 김원과 정윤기의 랩, 안형서를 비롯한 케이케이 보컬들에게도 무척이나 어울릴 것이다.

“그래도 LIL이 자신의 특장점을 살리고 싶어 할 테니 후반부에는 힘을 쓰는 부분을 조금 넣어는 보려고요.”

도욱의 말에 멤버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받던 곡들과는 달라서 오히려 좋아할지도······.”

안형서가 중얼거렸다. 안형서도 뛰어난 보컬이었기 때문에 알고 있을 것이다. 도욱도 보컬의 입장으로서 생각했기 때문에 아는 부분이었다.

‘좋은 보컬은 도전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하니까······.’

도욱은 LIL이 이 곡을 받아들여주길 바랐다. 이런 것도 잘할 수 있다, 하는 것을 보여줄 기회이기도 했다.

‘물론 확신하긴 힘들지만.’

도욱은 생각했다. 혹시라도 LIL과의 콜라보가 무산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입안이 썼다.

***

그리고 그때, 사무실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이대형 팀장은 눈을 의심했다.

<[단독] 케이케이! 세계적인 스타 LIL과 손잡다?>

‘이게 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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