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눈 떠보니 슈퍼스타-141화 (141/225)

# 141

바다를 건너 (5)

‘······다른 것?’

도욱은 물론이고 다른 멤버들 또한 갑작스러운 안형서의 말에 놀란 토끼 눈을 했다.

‘안형서에게 다른 개인기가 있었나?’

조금 걱정스러운 눈으로 도욱은 안형서 쪽을 바라보았다. 와타나베의 도발에 안형서가 넘어간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나 안형서의 눈빛을 보며 도욱은 이내 마음 속 걱정스러움을 잠시 접어두었다.

안형서의 눈에는 이렇게 바보 취급을 당한 채로는 절대 녹화를 끝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물론 의지만으로 모든 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안형서도 충분한 재능과 끼가 있는 인물이었다. 어떻게든 잘해낼 거라는 믿음이 도욱에게 있었다.

와타나베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다른 거? 뭐죠? 과연 팀에서 SNS만 겨우 담당하고 있는 형서 군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네요!”

와타나베의 안형서를 무시하는 태도가 인격적으로 옳다고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오늘 처음 본 안형서를 단순히 괴롭히려고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미를 뽑아내려는 와타나베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었다. 누군가를 무시하고 놀리는 것에 쾌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분명히 존재했다.

다만 당하기만 하다가 녹화를 마무리 지을지, 역으로 와타나베를 공격할지 등은 게스트의 선택과 역량에 달려 있었다.

같은 방식을 써도 반응은 게스트마다 다르기 마련이었다.

와타나베는 안형서가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기회를 줄 의향은 있었다. 못하면 못하는 대로 더 우스운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사실 제대로 못해서 웃기기라도 하면 대성공이었다.

애매하게 웃기지도 못할 경우야 말로 정말로 안형서가 우스워지는 것이었다.

“저······ 저기······ 콜라······.”

호기롭게 외친 안형서였지만 갑자기 일본어가 느는 것은 아니었다. 안형서가 MC석에 있는 간접광고용 콜라병을 가리키며 더듬거렸다.

안형서의 옆에 앉아 있던 도욱이 귀를 기울이자 안형서가 도욱에게 한국말로 자신이 할 개인기에 대해서 설명했다.

“형 그걸 할 수 있어요?”

“어. 한 번밖에 안 해 보긴 했는데······.”

도욱은 조금 찌푸렸다. 생각만 해도 목이 따끔거리는 듯했다.

그러나 안형서가 하고자 했으므로 도욱은 와타나베 쪽을 보며 일본어로 설명했다.

“콜라를 주실 수 있으실까요? 콜라 한 병을 모두 한 번에 다 마신 후 곧바로 노래를 부르는 개인기라고 합니다.”

“오오?!”

도욱의 설명에 와타나베가 흥미롭게 안형서를 바라보았다.

MC석에 준비된 간접광고용 콜라는 400ml 페트병에 담긴 것이었다. 탄산이 센 콜라 400ml는 그냥 마시기에도 쉬운 양은 아니었다. 그런데 콜라를 다 마시고 곧바로 노래까지 한다고 하니 흥미가 돋울 수밖에 없었다.

탄산이 주는 괴로움에 콜라를 마시다가 실패를 한다고 해도 괴로워하는 모습은 가학적인 것을 어느 정도 좋아하는 시청자들에게도 좋은 유희거리가 될 듯했다.

도욱의 설명에 다른 멤버들도 조금 놀라거나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안형서를 보았다. 김원은 어차피 할 거면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을 한 모양이었다.

“제가 봤어요! 제가 이거 할 때 봤는데 그때는 성공했습니다.”

바람잡이 역할을 하며 기대감을 불어 넣었다.

안형서가 씨익 웃었다.

김원과 숙소에서 치킨에 콜라를 먹다가 장난으로 해본 것이었는데 이렇게 개인기로 내세우게 될지는 몰랐다.

와타나베가 MC석에서 콜라를 가져다가 직접 안형서에게 건넸다.

“성공했다고 하니 기대되네요!”

콜라를 전해 받은 안형서가 호흡을 고르며 콜라를 마실 준비를 했다.

안형서가 과연 해낼지 결과를 알 수 없는 건 옆에 있는 멤버들도 알지 못했다. 정윤기는 다만 안형서가 콜라를 마시다가 뱉거나 트림을 해서 이미지를 깨는 일만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인기를 하나 할 뿐인데도 긴장 되는 순간이었다.

어쩐지 예능이라지면 안형서를 무시한 와타나베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자아······. 시작!”

안형서가 뚜껑을 따는 것과 동시에 와타나베가 시작을 알렸다.

“하압!”

안형서가 벌컥벌컥 콜라를 들이켜기 시작했다. 카메라가 콜라를 마구잡이로 넘기는 안형서의 목울대를 클로즈업했다.

“으으······.”

보는 게 더 괴로운 콜라 마시기였다. 상상만 해도 목이 따가운 것 같았다. 석지훈이 마치 자신이 콜라를 마시는 것처럼 눈을 찌푸리며 안형서로부터 눈을 돌렸다.

큰 웃음 포인트 없이 너무 무난하게 촬영이 진행된 것 같아 불만족스럽던 와타나베는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흥미진진하게 안형서를 바라보았다.

최선을 다해 콜라를 마시며 안형서가 애쓰는 모습이 나쁘지 않았다. 확실히 괜찮은 그림 하나는 나온 게 분명했다.

콜라는 어느덧 두 모금 정도만이 남아 있었다.

“힘내!”

“힘내세요······!”

김원과 박태형이 일본어로 안형서에게 응원의 말을 전했다.

“흡···!”

응원과 함께 콜라 한 병을 입안에 다 털어 넣은 안형서가 가슴에서부터 밀고 올라오는 탄산을 억지로 삼키며 숨을 가다금었다.

그리고는 곧장 노래를 시작했다.

“워어어어어―!”

와타나베가 연습을 잘 안 해온 것 아니냐고 지적했던 ‘별의 꽃’이었다.

안형서는 그대로 ‘별의 꽃’ 후렴구 한 소절을 멋들어지게 불러냈다. 물론 콜라 한 병을 마신 직후로 호흡이 딸리긴 했지만, 기교를 발휘하며 호흡이 부족한 것조차도 감정처리인 것처럼 처리해냈다.

“······하아. 여기까지······ 입니다만.”

안형서가 노래를 마치고 와타나베를 보며 말했다.

노래를 마치고서야 무언가 올라오는지 안형서가 가슴을 두드리며 아직 다 내려가지 않은 콜라를 소화시키기 바빴다.

“엄청난데?······.”

보고 있던 멤버들도 안형서의 개인기에 절로 박수를 쳤다.

와타나베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단한 개인기네요! 진작 이걸 보여주지 그랬어요!”

여전히 얄궂은 멘트가 함께이긴 했지만, 와타나베도 박수를 치며 안형서를 칭찬했다.

***

“꺼억.”

“윽! 더럽게 뭐냐!”

녹화를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 안형서가 참다 못해 내뱉은 트림에 옆좌석의 정윤기가 기겁을 하며 안형서를 밀쳐냈다.

“으악. 고생한 동생을 그렇게 밀다니!”

“마, 누가 하랬나. 지가 손들어서 해놓고.”

“와······.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복수하겠다.”

“너희는 제일 큰 형들이 맨날 왜 그러냐. 조용히 해라.”

조수석에 앉은 오백호 실장의 말에 투닥대던 정윤기와 안형서가 대화를 멈췄다. 그러고서도 안형서는 자꾸만 트림이 올라오는지 가슴을 두드렸다.

“고생했어요, 형.”

반대쪽에 앉아 있던 도욱이 안형서에게 말을 건넸다. 안형서가 뿌듯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양손으로 브이자를 그렸다.

“흠. 고생한 건 사실이지. 그래도 바로 옆에서 트림은 자제해라.”

정윤기가 한 마디 덧붙이자 안형서가 정윤기를 흘기고는 다른 대꾸는 하지 않았다. 사실 멤버들 모두 오늘 안형서가 보여준 개인기가 신기하고 놀란 게 사실이었다. 왜 안형서가 하지도 않던 개인기를 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오기가 발동한 거겠지······.’

와타나베는 녹화 후 안형서에게 따로 찾아와 통역 담당을 통해서 오늘 방송을 살린 건 형서 군이라고 안형서를 치켜세웠다.

안형서도 와타나베가 개인적인 감정이 있어서 자신을 무시한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안형서도 와타나베 덕에 오기가 생겨 관심 받을 만한 좋은 컷을 얻어냈으니 만족스러웠다.

안형서는 구김 없이 와타나베에게 사진을 요청하고는 멤버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후 곧 방송될 프로그램을 기대해달라는 내용을 SNS 업로드했다.

프로그램 PD도 멤버들과 오백호 실장에게 녹화에 대해 무척이나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 편집 없이 멤버들 개인기 전부가 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전해 왔다.

방송 내용도 알찼고 마지막에 재미와 놀라움까지 얻었으니 25분까지 분량을 늘릴 생각이라는 얘기도 함께였다.

“근데 방송 때는 어떻게 참았어요? 바로 어떻게 노래 불렀어요? 한국에서도 하면 대박날 것 같은데······.”

뒷좌석에 앉아있던 석지훈이 물었다.

석지훈은 만약 안형서에게 노하우가 있다면 노하우를 전수 받아 ‘캠핑 48시간’에 가서 하고 싶어 질문한 것이었다.

“어떻게 참긴······. 그냥 참은 거지!”

그러나 노하우 같은 게 있을 리 없었다. 안형서가 소리쳤다.

“한국에선 못 해! 딱 한 번밖에 못 하는 일회용 개인기야!”

***

며칠 후.

그사이 짤막한 인터뷰와 무대 등을 방송을 통해 보여준 케이케이였다. 케이케이 멤버들은 짧지만 길었던 일본 스케줄을 마치고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짐을 싸고 있었다.

와타나베와 함께한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되자 다른 방송보다 더 큰 반응이 왔다.

와타나베는 일본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츠코미가 심한 MC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당황하지 않고 대답하는 케이케이 멤버들의 센스에 대한 칭찬이 많았다. 또 개인기 코너에서 보여준 개인기들이 무척이나 인상 깊었다.

노래, 춤 무엇 하나 빠지지 않는 실력파 그룹이라는 게 확실하게 드러났다.

거기에 도욱이 ‘칸 영화제’ 출신이라는 것이 팬이 아닌 일본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외국에서 인정 받은’ 인물들에 대해 후하게 쳐주는 경향이 있었다.

실제로 도욱이 펼친 ‘한죠 나오키’의 연기가 훌륭하기도 했다. 출연하는 많은 프로그램 중 하나일 뿐이었는데 그 프로를 위해 특별히 일본 인기 드라마의 연기를 준비해온 것은 일본인들의 마음을 녹이기 충분했다.

덕분에 도욱의 일본 별명인 우키에 나오키까지 덧붙어 ‘우오키’라는 새로운 별명이 생겨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마이튜브에 편집돼 올라가면서 제일 뜨거운 반응을 불러온 건 안형서의 ‘콜라 마시고 노래부르기’ 개인기였다.

유머 영상으로도 널리 퍼지면서 일반 일본인들 사이는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한국의 팬들은 일본에 가서 열심히 노력하는 케이케이의 모습을 보며 어쩐지 마음 한편이 뭉클해져 오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실력 좋고 인성까지 좋은 케이케이가 한국인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안형서의 콜라 마시기 영상은 몇 만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마이튜브 유저들 사이에서 안형서의 개인기를 따라해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유행이 되기도 했다. 콜라를 뱉는 사람들도 있었고, 도저히 못 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덕분에 안형서의 개인기는 레전드 영상으로 남기까지 했다.

각자 호텔 방에서 짐을 싸고 나온 케이케이에게 오백호 실장이 기쁜 소식을 알렸다.

“얘들아.”

오백호 실장이 낮은 목소리로 멤버들을 부르자 멤버들이 들뜬 눈으로 오백호 실장을 보았다. 오백호 실장의 분위기로 보아 좋은 소식이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됐다, 됐어.”

“네? 되다뇨?”

“3월이야.”

3월이라는 말에 멤버들이 모두 입을 벌리고 멍하니 오백호 실장을 보았다.

“돔 투어. 확정됐다.”

일본 팬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앨범 판매량이 급상승하고 있었다. 원래도 인기가 있었기 때문에 더 늘어난 인기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일본 활동의 큰 목표이기도 했던 돔 투어 확정이 결정된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성과였다.

한국 가수들 중 돔 투어에 이른 가수는 아직 한 그룹 정도가 유일했다.

“와우!”

김원이 소리쳤다. 기쁜 소식이었다. 일본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다고 해도 아레나 투어에서 돔 투어로 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주변 가수들을 본 터라 잘 알고 있는 케이케이 멤버들이었다.

작은 공연장에서 아레나 투어까지, 일본에서도 차근차근 기초를 다지며 성장해온 케이케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돔이라니······.’

도욱도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케이케이 멤버들을 싣고 갈 차가 도착했지만, 다들 차에 오를 생각은 못한 채 돔 투어 확정의 기쁨을 만끽했다.

돔은 규모면에서나 시설면에서 한국의 대형 공연장과 또 다른 위세를 과시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도욱은 그곳에서 공연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뛰었다.

그때 도욱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진동했다. 메일 어플에 새로운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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